타이페이에 놀러 간 아들아이가 카톡을 했다. 우리 사업장인 야구 연습장에 도둑이 들었다며. 알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건물 책임자가 아들아이로 되어있어서 여행 중인 아들에게 연락이 간 모양이다. 마침 예배 중이어서 교회를 마치고 야구연습장으로 향했다. 알람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경찰은 이미 다녀갔고, 신고서 양식을 두고 갔다. 피해 물품 리스트와 피해액을 자세히 기록하여 제출하라고 한다. 가게 문을 연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난리도 아니더라며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범인들은 연습장 쪽 사무실 금전등록기를 부수고 동전을 여기저기 흩어놓는 등 난장판을 만들었다. 건축회사 쪽 사무실도 온갖 서랍을 다 열고 뒤졌으나 있는 거라곤 도면들뿐이라 가져갈 게 없었는지, 때마침 경찰이 와서 도망갔는지 다른 피해는 없다. 당장 오늘 영업 마친 후에 문을 닫고 가야 하니 철문을 고쳐야 해서 수리공을 불렀다. 돈이 얼마 안 나오자 홧김에 부쉈을까? 금전등록기도 하나 새로 사야 한다. 그나마 사람 안 다쳤으니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무얼 도모하려면 생각도 좀 하고 전략도 짜야 하건만, 무턱대고 철문부터 톱으로 자른 도둑이 안타깝다. 야구 연습장에 흔한 코인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게임용 코인이란다 도둑님아! 그걸 하나 넣으면 야구공이 여덟 개 나오는 가치밖에 없는 코인인 것을 미처 몰랐나 보다. 철문 자르려고 전기톱을 샀을 텐데 그 밑천도 못 건진 초짜 도둑 아닌가? 10년 전에도 이런 도둑이 들어 철망을 치고 이중 문을 하고 셔터를 설치했다. 그러다 다시 느슨해져서 셔터를 안 내리고 다녔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소홀해진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것 같아 이번 사건은 오히려 감사하다. 요즘 어려워진 경제 상황 때문에 절도범이 늘어 가정이나 상점에 피해가 크다고 들었다. 불황일 때의 도둑은 생계형 범죄로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근래엔 재미 삼아 놀이로 하는 어린 절도범이 태반이며 먹고 마시는 유흥비 마련 목적이 많은 게 문제라고 한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나의 가진 것이 내 소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배부를 때, 배고픈 이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타인을 위해 나누는 분량이 그 사람의 영성이라고 들었다. 나눔이 없는 삶은,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범은 아니어도 도둑질하는 삶이나 마찬가지라는 글을 읽었다. 땡스기빙의 절기에 도둑맞은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태껏 무난히 산 것에 감사(Thanks)하며 작은 것이나마 주위와 나눌(Giving) 때이다. “해피 땡스기빙!”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안녕 사무실 금전등록기 야구 연습장 알람 회사
2024.11.25. 18:59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왜 이런 인사를 하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몇주 전 아침에 일어나니 한국에서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친구가 심정지로 숨졌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친구는 동호인들과 산악자전거를 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근처 카페로 가서 쉬는 도중 갑자기 심정지 상태가 됐고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다. 친구들 모두 비보로 충격에 빠져 “이게 무슨 날벼락”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동적이었는데” “여정을 이렇게 먼저 떠날 줄이야” “기가 막혀 뭐라 할 말이 없네” “충격적입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떠난 친구는 ‘비바 그레이’라는 책의 저자로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 그의 책은 액티브 시니어, 즉 노년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과거의 노년층과는 달리 여가와 취미를 즐기면서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친구는 스스로도 책의 내용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혈기 왕성하게 생활하며 인생을 즐길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이를 몸소 실천했던 친구였다. 그는 청년 시절보다 더 활발하게 여가와 취미 활동을 즐겼다. 50-60대들에게 신나게 노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다. 그가 즐겼던 취미 활동으로는 패러글라이딩, 경비행기 조종, 요트와 수상스키, 스키, 승마, 산악자전거,세계일주 여행, 낚시, 서예, 사진, 글쓰기, 그리고 악기 배우기 등 정말 다양했다. 스포츠도 못 하는 것이 없었다.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연말 파티에서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은퇴 후 제주도로 이주해 서예와 한시 작업에 열중인 친구가 그에게 ‘라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브라보’에서 ‘브’를 뺀 것이지만, 한자로는 벌릴, 그물 ‘라’와 지킬 ‘보’자를 쓴다. 그가 평소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해서 지어준 것인데 패러글라이딩할 때 제일 뒤에서 날개를 크게 펴고 위험해 보이는 사람을 보호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한다. 친구는 떠나기 얼마 전 페이스북에 ‘설 연휴 끝날에 친구들과 북한산 다녀 왔습니다.... 응달에는 아직도 뽀드륵 거리는 하얀 눈 속을 마냥 걷고 싶은데, 아쉬운 겨울이 지나가는군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면서 즐겁고 신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무엇보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운동은 지양하고 걷기, 스트레칭, 골프 등으로 건강을 유지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베풀고, 공유하면서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자 한다. 필자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평안히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 어쩌면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 갑자기 떠났으니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라보’ 친구 잘 가시게. 이제는 ‘밤새 안녕하십니까?’를 물어야 하는 나이가 된 듯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열린광장 안녕 열중인 친구 친구들 모두 취미 활동
2024.03.11. 19:20
우리 교회에는 환자실이 있다. 대예배실 오른편에 나처럼 면역력이 없는 환자들이 격리 예배 드릴 때 이용하는 작은 방이다. 편한 소파에서 TV 화면으로 생중계되는 예배를 본다. 팬데믹기간 대면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가줄어서 그런지 그 환자 방은 거의 내 차지였다. 내가 환자 예배실의 단골손님이고 가끔 부목사님 사모님이 들어와 쉬셨다. 면역체계 이상으로 늘 아프셨던, 6개월마다 항암을 하신 사모님. 동병상련으로 나와 마음이 통한 환자실 동문이셨다. 지난주 55세의 그 사모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오늘 교회에서 고별예배(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다. 부목사님이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를 읽으신다. “못난 남편 만나 고생하고 수고 많았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아프다며 다리 주물러라, 물 떠오라, 쓰레기 버려라, 청소해라, 당신의 잔소리가 안 들리니 너무 적적하네. 새벽기도 가려면 9시에는 자야 하는데 한시에도 두시에도 당신 없으니 잠이 안 와요. 세 아이는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안 굶기고 잘 보살피리다. 이젠 아무 곳에도 당신이 없어요. 이제 내 마음속에(왼편 가슴을 두드리며) 있네요. 천국 가서 주님 품에서 편히 쉬어요. 다시 만날 때 까지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목사님은 우리와 같은 평신도였다가 전도사님이 되셨고 두 해 전에 늦깎이 목사 안수받으셨다. 사모님은 편찮으신 몸으로 간호사 일을 하며 내조를 했다.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무뚝뚝한 목사님이 마지막 구절에 “잘 가요. 안녕 내 사랑”하자 모든 교인이 울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목사님은 다정한 분이셨던 거다. 스크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진 속에서 그 가정의 행복한 순간들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사모님도 여한이 없으시리라. 나도 사모님과 똑같이 늘 남편에게 아픈 핑계로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했는데, 남편도 나 없으면 적적하려나? 천국행 내 순서도 머지않을 것 같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남편에게 내 장례식에서 인사말을 할 때, 오늘 목사님이 하신 것과 꼭 같이하라며 부탁했다. 끝에 “잘 가요. 안녕 내 사랑”을 붙이라고, 그러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남편은 어처구니없다며 순서 없이 오고 연습 없이 가는 인생에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나? 평생 골골한 내가 먼저 갈 테니 꼭 그리하라고 다짐받았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진다. 죽음은 또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래서 죽음은 원수조차 용서하게 하기도 한다. 화해의 메신저가 되는 셈이다. 모든 것이 용납되는 죽음 앞에선 그저 한마디 “잘 가요. 안녕 내 사랑” 이면 족할 듯싶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가요 안녕 부목사님 사모님 대예배실 오른편 사모님도 여한
2023.08.06. 19:00
‘안녕 인사동’에서 삼 주 동안 한국 방문이 시작 되었고 이제 ‘안녕 인사동’에서 한국 방문 마지막 새벽을 맞고 있다. 경주 힐튼에서 4일 간 열리는 제 8회 세계 한글 작가 대회를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왔고, 대전에서 열린 ‘시와 정신’의 20주년 기념행사, 서울에서 한용운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하고 틈틈히 화랑과 문학관을 방문했으며 길을 걷다 대학 동기의 전시를 우연히 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전철을 갈아타며 여의도에 있는 국회도서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페북 친구의 사진전(Blue Story)을 보기 위해 북촌의 오르막길을 용감하게 걷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함께 활동하던 시인님 부부의 배려로 맛집과 함께 차를 마시고 인사동 거리를 걷기도 했다. 오랜만에 뭉친 친구들과의 이어지는 만남으로 지난 삼 주 동안 인사동에서 서산으로 다시 인사동으로 다시 대전으로 통영으로 다시 대전으로 세계 한글 작가대회가 열리는 경주로 다시 서울로 인사동으로…. 장소를 바꾸며 분주하게 다녔다. 서산까지 차를 드라이브 하며 왕복 6시간동안 친구와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보기도 했다. 여행 중 5군데 원고를 보낼만큼 시카고에서의 루틴한 삶에 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이른 새벽 이지만 불 켜진 고층 빌딩 사이로 어렴풋이 먼동이 튼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잠들어 있겠지만 간혹 깨어 있는 사람은 안다. 먼동이 얼마나 아름답고 아프게 떠오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을 만나고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일인지 알 것 같다. 마음 가득 가을 모습 담아 오세요. 나중에 제게도 나눠주세요. 바람도, 나무도 사람처럼 향이 있다는데, 차 맨 뒷자리 창가에 구겨져 가고 있답니다. 통영으로 간다는데 긴 다리를 지난다는데 나는 안개 속에 있습니다. 물푸레나무 향기 속에 있고 싶습니다. 사랑, 이별 별 건가요. 사랑이 사랑 하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를 만나고 그러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면 내 속에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하세요. 인생을 계산 하는 밤은 별이 보이지 않겠지요. 그러나 몇 몇은 추운 새벽으로 단단해지기도 한답니다. 누구나 미래를 팔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답니다. 모든 걸 넘어야 산다는 마음도 간혹 들겠죠. 아침에 일어나면 반대편 하늘을 향해 굿나잇 할게요. 눈 내리면 잠들기 전 굿모닝이라 말 할게요. 차가운 눈 길을 걸어 그대를 만나고 찬 손을 부빌 거예요.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같은 쪽으로 머리를 누울 거예요. 아침을 저녁처럼 맞이 하고 어둠이 내린 창가에서 그대를 새벽으로 맞고 싶어요. 행여 별빛을 당신 눈빛으로, 수천 수만 의 기억으로 채울 거예요. 소리 내지 않아도 되요. 달려 오지 않아도 되요. 그대 시간을 향해, 그대 장소를 따라 내가 거기 서 있을 테니요. (시인, 화가) 다가 설 때마다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나 멀리 있어도 향기는 내게 오고 나는 그 향기에 취해 하늘을 날고 있어요 막막한 바다 위에서도, 깊은 산 대나무 숲에서도 당신은 낙엽처럼 흔들리며 내려 앉아 안 와도 오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나는 매일 당신께 가겠다고 말 하려다 뻔한 거짓말에 울고 말았어요 하루가 이렇게 하늘을 비껴가고 있는데 당신은 날 어루만지는 나쁜 사람 난 당신 눈물 속에 살아요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인사동 안녕 안녕 인사동 인사동 거리 동안 인사동
2022.11.07. 15:58
더운 여름이 두 번 지나도록 반쯤 밖에 열리지 않은 문 슬프도록 아픈 기억을 지우려 화사한 봄을 풀고 어머니의 눈물샘 같은 유월의 응달을 꽃비가 대신 지워 갑니다 숨죽이고 뛰어보지만 징검다리는여적 멀어 진도 팽목항에서 울던 사월도 울음 따라나선 오월도 제자리 턱으로 물러서고 그때 떠밀려간 그대 생각에 마음만 급한 철이 바뀌고 있습니다 세월은 한창이라는데 무엇을 기리다가 호흡이 먼저와 숨 헉헉거리는지 아름다움을 녹이는 시간 안으로 묵직한 울음이 진하게 박힐지라도 뜨는 아침을 위해 유월의 시선으로 어깨를 뻗어 올리면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는 하늘의 품이 빛으로 다가섭니다 가슴을 치며 우는 바람이 반쯤 열린 대지 위에 무성의 색깔을 입히듯 반쯤 열린 문이라도 길은 막히지 않아 인내할 수밖에 없는 슬픔의 잔등 차 한 잔이 시간의 그리움이 되고 한 번의 마주침이 즐거움이 되고 그런 기대의 현실을 그리 고백하며 그대 떠난 당신의 계절에 우린 살아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서로의 인사를 안녕으로 묻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안녕 오월도 제자리 꽃비가 대신 그대 생각
2022.06.24. 22:38
수업시간 공책에 그림을 자주 그리던 남학생은 꿈이 많았다. 화가가 되고 싶어 그림을 배웠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하늘을 나는 조종사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공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공군에 자원입대해 비행기만 실컷 봤다. 제대 후, 먹고살 거리를 고민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만화. 집에서 독학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의 글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다 틀리면 수정액으로 지우면 되는데, 그 수정액을 쓸 줄 몰라 처음부터 다시 만화를 그렸다. 만화가 신문수의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신문엔 독자만화 투고가 가능했는데, 20대 청년이던 그 역시 만화를 그려 보냈다. 이렇게 눈에 띈 그는 ‘도깨비 감투’(1972년)로 주목을 받는다. 1979년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에 새 만화를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로봇찌빠(사진)’. “미국의 어떤 로봇 제작회사에서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다는구나.” 설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빠가 펼쳐 든 신문에 등장한 도망친 로봇. 무려 미국에서 태어난 그 로봇이 한국에 있는 팔팔이네 집에 등장한다. 똑똑한 로봇이면 좋으련만,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로봇 이름은 찌빠. 늘어나는 긴 팔, 코는 돼지코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 코는 특히나 만능이었다. 미사일도 쏘고 영상도 보여줬다. 아이들이 그렇듯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찌빠는 팔팔이와 우정을 나눈다. ‘로봇찌빠’는 1980~90년대 아이들의 친구였다. 십수년간 연재가 이어지며 아이들을 위한 일상의 웃음을 대변하는 ‘명랑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대표작이 됐다. 2010년대엔 TV 만화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년중앙’에 실리고 난 원고를 받아다 1편부터 모아왔을 정도로 신문수 화백은 찌빠에 대한 애정이 컸다. 찌빠를 그린 한국 만화의 대부, 신문수 화백이 82세 나이로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찌빠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 부모의 자리에 섰다. 명랑만화가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손엔 이제 수학이니, 영어니, 한자니 ‘학습’이란 이름을 단 만화책과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이 들어서 있다. 세월은 변했지만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아이들을 위해 그가 그려온 찌빠 이야기는 우리에게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김현예 / 한국 페어런츠팀장분수대 안녕 독자만화 투고 신문수 화백 한국 만화
2021.12.05.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