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 13일은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이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첫 한인 이민자들이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올해는 한인 이민 123년이 되는 해다. 남가주는 미주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특히 남가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요 활동지역이었던 까닭에 해외 한인 독립운동의 핵심 축으로 기록돼 있다. 안창호 선생은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1894년 상경, 구세학당에서 수학했다.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평양에서는 관서지부 설립을 주도했다. 1899년에는 강서군 동진면 임화리에 점진학교를 설립하고 황무지 개간사업을 병행하는 등 교육과 실력 배양을 중심으로 한 계몽 활동을 전개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미주 한인 사회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미주 활동에서 중요한 지역 가운데 하나가 남가주의 리버사이드다. 리버사이드는 1904년 이후 한인 이민자들이 오렌지 농장 노동자로 정착한 지역으로, 1905년 조성된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는 미 본토 최초의 한인 집단 거주지로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한인들이 거주하며 공동 취사와 교육, 종교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했다.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의 한인 이민자들의 노동은 도산 안창호의 미주 활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일하던 한인들과 교류하며 생업과 독립운동을 분리하지 않는 자세를 강조했다. 안창호는 오렌지 농장에서의 성실한 노동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독립운동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고 보았으며, “오렌지 하나를 정성스럽게 따는 것도 애국”이라는 말로 노동과 민족의식의 연결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버사이드의 오렌지 농장은 초기 미주 한인 이민자들의 노동 현실과 도산의 사상이 교차한 공간으로 기록돼 있다. 리버사이드 한인 공동체는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조직 활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공립협회와 대한인국민회 활동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계몽 활동도 병행됐다. 현재 파차파 캠프 터에는 도산 안창호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리버사이드시는 이를 역사 유적지로 보존하고 있다. 안창호는 1903년 LA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해 회장으로 선출됐다. 1905년에는 이를 발전시켜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공립협회는 상부상조와 조국 광복을 목적으로 활동했으며, 기관지 ‘공립신보’를 발행했다. 1909년에는 미주 한인 사회의 중앙 조직 역할을 한 대한인국민회가 창립됐다. 대한인국민회는 미주 전역의 한인 단체를 통합해 독립운동 자금 모금, 교육 사업, 언론 활동을 전개했다. 현재 LA에는 대한인국민회관을 계승한 기념재단이 운영되고 있으며, 도산 안창호의 생애와 미주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전시·보존하고 있다.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흥사단이 창립됐다. 흥사단은 무실역행과 인격 수양, 단결 훈련을 목표로 한 민족 계몽 단체로, 이후 미국과 중국, 한반도 등지로 확산됐다. 도산 안창호는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해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했다. 그는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임시정부 행정 정비 등에 관여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임시 사료편찬회를 조직해 ‘한일관계사료’ 전 4권을 편찬·발행했다. 임시정부 재정이 어려워지자 임시정부후원회를 조직해 해외 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독립 자금을 모금했다. 이후에도 임시정부 조직 통합과 독립운동 방략 논의에 참여했다. 도산 안창호는 1927년과 1932년 일제에 의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상하이에서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고, 1933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에도 독립운동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35년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한 뒤에도 계몽 강연을 이어갔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됐다. 옥고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38년 3월 10일 경성에서 별세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여사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 안필립, 차남 안필선, 장녀 안수산, 차녀 안수라, 유복자인 안필영이다. 도산 안창호는 LA에서 가족과 약 13년 2개월간 함께 생활했으며, 세 차례에 걸쳐 미주에 체류했다. 현재 그의 후손들은 남가주를 중심으로 4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가주에는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와 LA 대한인국민회관을 비롯해 도산 안창호의 미주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과 기록이 남아 있다. LA 한인타운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산 안창호 우체국도 있다. 이는 연방정부가 한인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기념한 사례로 기록돼 있다. 이 밖에도 남가주 일대에 남아 있는 관련 공간과 사료들은 미주 한인 이민 사회의 형성과 해외 독립운동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있다. 남가주에 남아 있는 도산 안창호의 발자취는 미주 한인 사회 형성과 해외 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로 기록됐다. ━ ☞ 도산 안창호는… 지난 1938년 11월 별세했다. 평안남도 강서 출신인 그는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만민공동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이듬해인 1899년에는 강서군 동진면 임화리에 점진학교를 설립해 교육 계몽 운동에 나섰다. 19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한인 사회 조직 활동에 적극 참여해 1905년 공립협회 창립을 주도했고, 1909년에는 대한인국민회 창립에도 관여했다. 1913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 창립에 참여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송윤서 기자안창호 오렌지 도산 안창호 안창호 선생 리버사이드 오렌지
2025.12.31. 19:53
국가보훈처는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총 303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12일 밝혔다.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79명(애국장 19명.애족장 60명),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200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30명이다. 건국훈장.포장과 대통령표창은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사진) 선생은 대통령표창 독립유공자로 포상된다. 안 선생은 1932년 캘리포니아에서 대한인국민회 활동을 펼치며 언론을 통해 조국의 절대독립 의지를 선전했다. 1942년 미 해군 장교로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도 한국의 사정을 알리는 데 힘썼다. 앞서 안창호 선생(1962년 대한민국장)과 부인 이혜련 여사(2008년 애족장), 아들 안필립 선생(2021년 대통령표창)도 포상됐다. 1931년 인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와 연계해 군자금 모집과 연락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징역 7년을 받은 윤도중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아울러 일제와 결탁한 고관의 직접 처단을 목적으로 한 의열투쟁에 참여한 현학표 선생(애국장), 지역 비밀결사의 전국화를 모색한 윤영원 선생(건국포장), 대한국민회에서 독립군 활동을 펼친 엄주철 선생(애국장) 등도 포상된다. 애국장이 추서된 정두흠 선생은 1910년 전남 장흥에서 국권상실 소식을 듣고 자결 순국했다. 정재건, 장태수 선생과 함께 호남지역 3대 순절자 중 한명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최초 포상 이래 이번 광복절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총 1만7588명으로 건국훈장 1만1669명, 건국포장 1495명, 대통령표창 4424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597명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포상하고 그 공훈을 기릴 수 있게 돼 뜻깊다"며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독립유공자 안수산 독립유공자 포상자 대통령표창 독립유공자 안창호 선생
2022.08.12. 20:45
15일 박경재 LA 총영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 필립 안(1978년 사망)과 3남 랄프 안 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전수했다. 안창호 선생의 장남 고 필립 안 씨는 부친을 도와 한국침략 상을 미국에 알리며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안창호 선생의 3남 2녀 자녀 중 유일한 생존자인 랄프 안 씨는 대한인국민회관 보존사업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박경재 총영사(오른쪽)가 랄프 안 씨에게 표창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LA총영사관 제공] 김상진 기자사설 면단독 표창장 전수 자녀들 표창장 안창호 선생
2021.12.16.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