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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떠나는 것들 속에 사랑을

유년의 기억 속에 대청마루 한 가운데 액자가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칠 때까지 뭐가 적혀 있는지 읽지 못했다. 우리집 대청마루는 엉덩이만 붙이면 누구나 쉬어갔지만 대부분 액자의 글을 읽지 못했다.   출생지가 현풍면 원교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현풍읍을 지나 마산과 창영을 연결하는 삼거리 작은 동네다. 낙동강을 구비 돌아 비슬산을 등지고, 먼지가 눈 앞을 가리는 도로를 달리면 삼천리 버스는 우리집 앞에 선다.   대구에서 탑승해 목마른 손님들에게 차갑고 신선한 우리집 우물물을 배달하는 건 내 몫이다. 갈증을 푼 손님들은 청문 틈으로 찌게발(?)을 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애호박 바가지에 동전을 넣어주었다. 고마운 사람에겐 돈을 주는구나 생각했다.   아! 이젠 족보도 연유도 없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청마루에 유령처럼 자리잡고 있던 그 액자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하루에도 몇차례 삼천리버스가 오고가는 탓에 누렁이 황구 털처럼 잘 다져진 갈색 마당은 먼지를 뒤집어쓴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차례 회색 눈처럼 덮히는 대청마루를 쓸고 닦는데 공을 드린다. 한글을 잘 못 읽는데도 어머니는 정성스레 액자의 먼지를 닦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액자의 시를 내가 낭송하고부터 어머니 이마의 굵은 주름살이 펴지고 보름달은 외양간과 돼지우리, 찔레꽃이 만발한 마당을 훤하게 비춰주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리도 / 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옴을 믿으라.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1837초판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저서 출간 번역본 참고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고통과 슬픔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슬픔과 괴로움은 결국 지니갈 것이고 인생의 역경과 불안, 좌절과 슬픔을 견디면 더 나은 내일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푸쉬킨의 시는 청상과부 어머니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푸시킨은 러시아 사람들한테는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단순한 시인을 넘어 러시아 문어체의 기틀을 세운 작가로 토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푸쉬킨은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 없는 작가로 시대와 맞선 조용한 저항은 푸시킨이 남긴 침묵의 항거였다.     살아갈수록 푸쉬킨의 시가 주는 무게가 가슴에 쌓인다. 어릴 적엔 철 없어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탐욕과 재물에 도취돼 욕망이라는 전차에 매달려 허우적거렸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으며, 무엇을 위해 남은 시간을 소모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중한 것들이 한 순간, 눈 깜박 할 사이에 사라져도 그리운 것들을 붙잡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고뇌와 아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새벽별 머리에 이고 아침을 기다린다.     마음은 침묵으로 말한다. 떠들지 않는다. 마음의 창문을 닫지 않으면, 내일은 미래를 머리에 이고, 밝은 걸음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사랑하는 그대여! 마음이 미래에 사는 것처럼, 오늘이 슬퍼도 내일은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한 순간에 인생이 덧없이 지나가도, 떠나는 것들에게 가볍게 손 흔들며, 다가오는 날들 위해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간구합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우리집 대청마루 청상과부 어머니 알렉산드르 푸시킨

2026.01.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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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돌아갈 수 없는 새들

운명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다. 유리알을 꿰맞추고 줄을 터트리기를 반복한다. 유리알이 땅에 떨어져도 주워 끼우면 새 목걸이가 된다. 똑같은 반복은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동작으로, 작고 일상적이지만 삶에 대한 절실한 태도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디자이너가 출시하는 신상품처럼 단 하나뿐인 내 이름으로 창작한 고유한 작품이 나의 운명이다.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다. 숙명에 순응하면 고삐 묶인 소처럼 끌려다닌다. 피할 수 없다. 숙명은 래디매이드 기성복이라서 누구나 입고 다닌다. 숙명은 수동적이고 집착이다. 지루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어릴적 시골집 대청마루 한가운데 이 글이 적힌 액자가 먼지를 뒤짚어 쓰고 걸려있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뜻을 새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황토로 잘 다진 마당 깊은 초가집에서 누렁이 꼬리 잡기하던 시절은 행복했다. 우울하지도 슬퍼할 일도 없었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제는 슬픈 것’이란 끝맺음은 쓸쓸했다.     독립기념일 온 동네가 축제판이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건너 불 보듯 축제를 즐긴다. 남의 잔치에 숫가락 얹는 수준으로 그릴에 햄버그와 핫도그를 굽는다. 경기 시작할 때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광복절기념 한인피크닉에서 태극기 걸고 애국가를 합창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나라 모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때 천국인 줄 알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나뒹굴며 천국 속에 지옥을 경험했다. 점쟁이는 안 믿어도 운명을 믿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는 새 동앗줄을 움켜잡았다.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 처럼 지옥을 거쳐 연옥에 이르면 종국에 천국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끝맺을 수 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찾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을 극복한 사람은 운명의 법칙를 안다.     ‘아모르 파티(라틴어: Amor Fati)’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에 대한 사랑(Love of Fate)‘을 말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함으로서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개척하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깊고 푸른 태평양 건너 구비구비 세월의 모퉁이 돌고돌아 파도타듯 여기까지 왔다.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았다. 사는 것이 숙명같은 운명이라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슬프고 아파도 날개짓 멈추지 않는다. ’파테마타 마테마타‘ 사람은 고통에서 배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광복절기념 한인피크닉 철학자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르 푸시킨

2022.07.05. 18:2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돌아갈 수 없는 새들

운명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다. 유리알을 꿰맞추고 줄을 터트리기를 반복한다. 유리알이 땅에 떨어져도 주워 끼우면 새 목걸이가 된다. 똑같은 반복은 없다. 비슷하지만 다른 동작으로, 작고 일상적이지만 삶에 대한 절실한 태도가 새로운 운명을 창조한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디자이너가 출시하는 신상품처럼 단 하나뿐인 내 이름으로 창작한 고유한 작품이 나의 운명이다. 숙명은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이다. 숙명에 순응하면 고삐 묶인 소처럼 끌려다닌다. 피할 수 없다. 숙명은 래디매이드 기성복이라서 누구나 입고 다닌다. 숙명은 수동적이고 집착이다. 지루한 반복이 있을 뿐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어릴 적 시골집 대청마루 한가운데 이 글이 적힌 액자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걸려있었다. 친구네 집에도 있었다. 이것이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뜻을 새기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황토로 잘 다진 마당 깊은 초가집에서 누렁이 꼬리 잡기하던 시절은 행복했다. 우울하지도 슬퍼할 일도 없었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이란 끝맺음은 쓸쓸했다.   독립기념일로 온 동네가 축제판이다. 현란한 불꽃놀이와 폭죽 터지는 소리, 매케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들과 딸은 손주들과 찍은 피크닉 사진을 실시간 전송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강 건너 불 보듯 축제를 즐긴다. 남의 잔치에 숟가락 얹는 수준으로 그릴에 햄버그와 핫도그를 굽는다. 경기 시작할 때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광복절 기념 한인피크닉에서 태극기 걸고 애국가를 합창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두 나라 모두 내게는 아픈 손가락이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천국인 줄 알았다.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나뒹굴며 천국 속에 지옥을 경험했다. 점쟁이는 안 믿어도 운명을 믿었다. 바닥에 떨어지면 위로 올라가는 새 동앗줄을 움켜잡았다. 단테의 신곡(The Divine Comedy)처럼 지옥을 거쳐 연옥에 이르면 종국에 천국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끝맺을 수 있을까.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더 빠른 길을 찿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자신을 극복한 사람은 운명의 법칙을 안다.   ‘아모르 파티(라틴어 : Amor Fati)’는 운명애(運命愛), 운명에 대한 사랑(Love of Fate)’을 말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함으로서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개척하는 인간은 위대하다고 칭송한다.   깊고 푸른 태평양 건너 구비구비 세월의 모퉁이 돌고 돌아 파도 타듯 여기까지 왔다.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았다. 사는 것이 숙명 같은 운명이라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새들은 그들의 언어로 노래한다. 슬프고 아파도 날갯짓 멈추지 않는다. ‘파테마타 마테마타’ 사람은 고통에서 배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철학자 프리드리히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골집 대청마루

2022.07.0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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