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내가 왜 슬픈지 아시나요
잡히지 않는 시냇물 같이 울리지 않는 조용한 모습으로 늙고 싶었지 헌데, 달려드는 아픔에 휘청거려야 했어 동그라진 채 눈가 귀퉁이가 찢겨 핏물로 앞이 캄캄했지 먹먹한 가슴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갔던 날 걱정 한 움큼 집에 던져 놓고 무서운 꿈속을 헤매었어 즐겨 치던 골프장 갈꽃 날리며 뛰던 날 푸른 초원 서성거리던 언저리 조잘거리던 새들이 한없이 예뻤는데 신음소리 토하며 쓰러짐으로 새들도 놀랐겠지 푸름 안고 살길 원했는데 흘린 핏물에 당혹했을 거야 두고 온 발자취 더듬으며 내가 난 멋진 인생이었다 생각했던 자만 종횡무진 달려온 나의 역사가 움츠릴 때도 있었지만 만조의강은 흘러도 잔주름 건져내려 했던 것을 애끊는 심정으로 반추해 본다 생 엄지 손톱이 빠져나갔던 고통 늙은 얼굴 열세 바늘 꿰매야 했던 슬픔 바닐라 커피 한잔 따라 놓고, 검은 탄을 나르던 광부처럼 몇 주가 지나도 안부 전화 한번 안 하는 염치없는 사람 떠올라 괴로워할 사람 쓸쓸한 가을 길목 바라보며 앉았을 친구 생각하며 내가 왜 슬픈지 아시나요 길을 걸으며 큰 한숨을 날린다 엄경춘 / 시인문예마당 눈가 귀퉁이가 바닐라 커피 엄지 손톱
2025.09.25.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