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배우자인 질 바이든 여사가 스미소니언국립동물원이 게재한 영상에 등장해 “판다가 DC로 다시 돌아온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판다는 미·중 외교의 상징이다. 중국은 1972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앞두고 처음으로 미국에 판다를 보냈다. 현재 이 동물원의 판다 우리는 비어있다. 양국 관계가 얼어붙으며 지난해 11월 판다 세 마리가 중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질 바이든 여사의 판다 복귀 선언은 대(對)중국 외교의 전면에 영부인이 직접 나섰음을 의미한다.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달 22일엔 백악관 브리핑을 했다. 국빈방문하는 케냐 정상에 대한 영접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브리핑에선 “손님이 떠날 때 내가 케냐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이 따뜻함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케냐를 단독 방문했다. 이번에 워싱턴에 도착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부부를 공항에서 영접한 것도 질 바이든 여사의 몫이었다. 질 바이든 여사는 대선 관련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선거의 쟁점인 고령 리스크에 대해선 “트럼프가 78세고, 조는 81세다. 이번 선거는 나이가 아닌 성격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쟁점인 낙태권과 관련해선 “올해 여성의 권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며 “우리는 민주주의와 혼돈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도 그의 적극적 행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고 평가한다. 종종 공개 행보를 거의 하지 않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두 영부인의 행적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도 전·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배우자들이 연일 주목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 같이 정치의 중심에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현 영부인은 명품백 수수 의혹이 불거진 뒤 5개월간 잠행했다가 최근 공개행보를 재개했고, 전 영부인은 옷값 논란과 인도 순방 관련 논란의 중심에 섰다. 거대 야당 대표의 배우자는 법카 유용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제 막 개원한 22대 국회의 첫 번째 쟁점은 이들 ‘3김 여사’와 관련한 특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상대 진영의 ‘김 여사’를 공격하는 사이에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의 리더십이 바뀔 수도 있다. 북한에선 언제든 화학무기로 대체될 수 있는 오물 풍선이 날아오고 있다. 강태화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여사 트럼프 여사 케냐 대통령 현직 대통령
2024.06.05. 22:03
“앨리스 스코필드 여사 묘비 제막식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수영(애너하임)씨가 지난 11일 캐나다 토론토의 마운트 플레젠트 묘지에서 열린 고 앨리스 딕슨 스코필드(1889-1959) 여사 묘비 제막식에 참석, 연설까지 해 주위의 눈길을 모았다. 스코필드 여사는 캐나다의 선교사로 한국의 독립과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의 부인이다. 결혼 후 1916년부터 남편과 한국에서 생활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에 대한 일제의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임신한 상태에서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 치료를 위해 캐나다로 돌아가 출산한 스코필드 여사는 이후 40년 동안 정신질환자 시설에서 고생하다 1959년 타계했다. 김 작가는 스코필드재단(대표 김만홍) 주최로 열린 묘비 제막식에서 연단에 올라 고인을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선교의 사명을 다하며 한국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스코필드 박사 부부의 놀라운 인생을 기린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스코필드재단에 3000달러를 기부했다. 김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 재학 시절인 19세 때, 당시 수의과 대학에서 강의하던 스코필드 박사의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21년엔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을 담은 한·영 수필집 ‘스코필드 박사와 에델바이스의 추억(한국신춘문예협회)’을 출간했다. 수필집 제목은 스코필드 박사가 스위스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 말린 에델바이스 꽃잎을 넣은 액자를 김 작가와 김영교(시인) 자매에게 선물한 일화에서 비롯됐다. 김 작가는 한국에 가면 현충원을 찾아 스코필드 박사 묘소에 참배하고 동상 제막식 등 고인을 기리는 행사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 임상환 기자스코필드 여사 스코필드 여사 스코필드 박사 앨리스 스코필드
2024.05.20. 20:00
남가주 한인사회 이민 1세대로서 여성단체 활동에 앞장섰던 이명희(사진) 여사가 지난 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고인은 최근까지 미주3·1여성동지회 고문, LA한인회 자문으로 일하며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고인은 1934년 1월 3일 경북 경산군에서 태어났고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에서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 주부클럽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1988년 부군 이준영씨와 이민 후 미주주부클럽연합회와 미주다문화연합회 등을 창설해 여성의 교육을 중시하고 지위 향상에 공헌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오는 9일(목) 오전 10시 성바실 천주교회(637 S. Kingsley Dr. LA)에서 김태환 신부 집전으로 열린다. 유족으로는 부군 이준영씨와 두 아들이 있다. ▶연락처: (213)210-8568 부고 이명희 여사 이명희 여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한인사회 봉사활동
2023.03.06. 20:38
남가주를 방문한 백악관 질 바이든 여사가 차이나타운의 재활 시설을 방문한다. 백악관 측은 바이든 여사가 16일 저녁 민주당 기금모금 행사에 앞서 차이나타운에 소재한 '홈보이 베이커리'와 '홈걸 카페'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홈보이 베이커리는 사회 적응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직업 훈련과 각종 교육을 제공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88년에 설립됐으며 청소년들의 직업 훈련을 돕는 단체로 출발해 현재는 전세계 가장 큰 재활 및 직업교육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베이커리에서는 방부제가 없는 빵과 케익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디지털본부 뉴스랩 차이나타운 여사 여사 la 직업교육 프로그램 홈보이 베이커리
2022.09.16. 10:14
‘어쩌다가 내가 그 애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친구가 될 수 없는 각각의 처지였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중간축에 들었는데 그 애는 항상 전교 톱이었다. 특히나 수학을 잘했다. 나는 수학 숙제를 하지 않아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꿈을 요즘도 종종 꿀 정도로 수학을 못 했다. 그 애가 기차로 안양에서 등하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팔랑귀가 솔깃한 것이 시작이었다. 기차 차창 밖을 내다보는 흰 칼라의 청색 교복을 입은 단정한 소녀를 상상하다가 나도 기차로 등하교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다. 기차를 놓칠까 봐 부지런히 하교하던 그 애와 학교에서 떠들고 놀았던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여고 시절 그 애의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곧바로 아버지가 숨겨 놓은 것을 꺼내기라도 한 듯 참한 아줌마와 재혼했다. 채 마르지도 않은 그 애의 엄마 무덤 앞에서 우리는 함께 서럽게 울었다. 나도 엄마가 늘 아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 아마 같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서로의 입장이 같아서였나보다. 남편에게 말했다. “작년 여름 우리 기차 타고 내리고 싶은 기차역에 내려서 7마일 정도 걸었을 때 빠진 뱃살이 도로 부풀었어. 줌바를 추면 그나마 줄기는 하는데 추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아파. 내 여왕봉 친구 알지? 그 애는 남편과 함께 서울 시내를 샅샅이 걸어 다니며 둘러본다네. 뱃살이 붙어있을 틈이 없대. 멋지지 않아?” 오래전 여왕봉 친구가 LA에서 몇 년 살다 서울로 돌아간 적이 있다. 내가 LA를 방문했을 때 그 애를 여왕봉 다방에서 만났다. 남편은 나를 차로 다방까지 데려다주고 1시간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1시간이 10분으로 여겨질 정도로 후다닥 날아갔다. 이야기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남편이 다방 문 앞에서 시간을 보라는 듯 손목에다 검지 손가락질하며 나오라고 했다. “1시간만 더 있으면 안 될까? 이야기 시작도 아직 못했는데. 제발 봐줘요.” 사정하고 돌아와 궁둥이를 붙이고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는 중 남편의 인상 쓴 큰 얼굴이 다시 다방 문 앞에 나타났다. 또 손목에 검지 손가락질하며 성질부렸다. “뭔 수다를 2시간씩이나 떨어. 주차장을 찾지 못해 주위를 몇 바퀴나 돈 줄 알아.” 가뜩이나 목청이 큰 남편의 꽥 지르는 소리에 친구는 놀라 당황한 얼굴로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 연유로 여왕봉이라고 부른다. 친구는 그 이후 내가 다혈질 남편과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놀린다. 남편이 성질내며 추한 꼴로 죽 갔다면 참다가 싫으면 싹 돌아서는 나는 끝장을 봤을 것이다. 다행히도 남편은 ‘변해야 산다. 마누라 말 들었더니 자다가 떡이 생겼네’라며 못된 성질 누그러뜨렸다. “내가 마누라 뱃살 책임지고 빼 줄게. 우리도 일요일마다 여왕봉 여사처럼 맨해튼을 싸질러 다니자고.”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여왕봉 여사 여왕봉 여사 여왕봉 친구 여왕봉 다방
2022.07.15. 17:43
심종민 기자 [email protected]여사 뉴욕 여사 뉴욕시
2021.10.20.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