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가지에 비유하셨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따라서 가지의 일은 열매를 맺자가 아니라 나무에 붙어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열매만 맺자고 애쓰는 가지도 안쓰럽지만, 한편 나무에 붙어 있으려고 바둥바둥 애쓰는 가지도 만만치 않다. 마치 체력 측정장에서 가쁜 숨을 쉬며 떨리는 팔로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인상을 쓰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비유에는 나무에 붙어있는 우리의 모습이 나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붙어 있는 모습은 아니다. 특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으니'라는 말씀은 고난도의 묘기를 보여주는 철봉 선수에게 "자,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봐라. 내가 붙잡아 줄 테니 아무 염려 말고"라는 코치의 소리로 들린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던 날,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꼭 붙잡고 있어. 떨어지면 끝장이야"가 아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안에 거하라는 끝이 아니다. 기쁨으로 거하라. 우리는 즐거운 인생과 행복을 원하면서도 그런 인생은 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사는 듯하다. 여기에는 세상을 좋아해서는 안 되고, 항상 거룩하고 근엄한 경건에 좀 더 점수를 주는 경향도 한몫할 것이다. 거룩과 경건은 신앙생활에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즐거운 거룩' '미소가 절로 생기는 경건' '미치도록 기쁜 인내' '마음이 붕 뜨는 봉사'는 어떤가. 물론 버티는 것도 실력이다. 자리를 지키는 것도 성실이다. 내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름다운 성품이다. 그렇다면 즐겁게 버티고, 웃으며 자리를 지키고, 기쁘게 책임을 다하는 것은 더 멋있지 않은가. C. S. 루이스의 말처럼 우리의 문제는 행복을 너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기쁨을 준다고 해도 겨우 삶의 쾌락과 성공 등에만 집착하면서 너무 쉽게 만족해 버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님 안에 거하는 일은 기쁨으로 가득 차는 일이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서 나무의 모든 명성과 영광을 누린다. 루비로망은 그 가지도 루비로망이다. 그뿐인가. 열매는 가지에 달린다. 나무가 다해 주고 열매를 가지에 맺게 하신다. 이 얼마나 황홀한 기쁨인가. 이 기쁨을 누릴 때까지 기쁨을 멈출 수 없다. [email protected]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열매 너희 기쁨 철봉 선수 쾌락과 성공
2023.07.10. 18:28
농경사회에서 가을은 풍성함이다. 더도 덜도 말고 저 보름달 뜨는 절기만 같아라 하며 넉넉지 못했던 삶의 소원을 그려보게 하는 때이다. 온갖 열매가 익어서 곡간을 채워주는 시절이다. 모두가 농민이었던 시기를 지나 몇 안 되는 농사꾼만 남아 농사를 이어가고 모두가 도시에서의 삶을 만들어가는 지금은 가을의 추수 풍경과 그 풍성함의 그림이 계절을 잊어버렸다. 제철 과일이라는 의미가 이제는 낯설어지고 덜 익은 열매를 거두어 보내어 길 위에서 혹은 창고에서 억지로 비슷한 맛이 되어 사람들 손에 들려지는 제맛을 잃은 열매가 진열장에 가득하다. 항상 추수철같이 열매 상품 가득한 시장의 좌판에는 잘 익은 열매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하여 논밭과 과수원의 빛나는 시간을 잊어버리게 한다. 과수원에서 제철에 제맛을 담은 과일을 먹어보았던 달콤한 기억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계절 흔하게 만나는 제철 아닌 열매의 편리한 먹거리 시대를 좋아해야 할지 섭섭해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저 맛이 제대로 들어있는 열매가 그리울 뿐이다. 과수원을 만나면 우리는 마음이 푸근해진다. 열매가 익어가는 장소가 주는 넉넉함이다. 처음 사과밭에 들어섰을 때 그 대단했던 감동이 지금도 가슴을 채운다. 사람 키 높이 몇 배가 넘는 거대한 사과나무에 가지마다 빽빽이 달려있던 검붉은 사과의 위세가 정말 놀라웠다. 지금 제철을 잊은 것만큼이나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사람 키 높이로 낮아진 사과나무가 시야를 가득 채우던 위용을 잊은 지 오래다. 사과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과수원의 과목들이 관리 편리성에 맞추어 예전의 모양을 떠나 기계적으로 보일 만큼 크기도 작아지고 질서정연한 자세로 관리 기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수원은 여전히 잘 익고 있는 열매로 인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농부는 땀 흘린 지난 시간을 기억해내고 탐스러운 열매에 감사와 보람으로 바라본다. 어쩌다 들린 도시인들은 주렁주렁 먹음직한 열매에 그저 경탄의 시선을 보낸다. 달콤한 과육이 우리의 혀를 감동하게 할 때 잘 익은 열매의 놀라운 언어가 우리의 마음도 휘어잡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노마드 랜드’,‘정원의 쓸모’,‘그냥 하지 말라’,‘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습니다’ 최근 만나 본 책의 제목들이다. 잘 익어가는 열매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들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들어선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익어가고 있습니까 하며 묻고 있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수명이 길어져서 사오십년 직장 퇴직 후 또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시간을 죽이며 소일거리 찾아 헤매는 발걸음이 되지 말고 그만큼의 세월을 아껴가며 속살에 제맛을 높혀가는 열매가 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권고하는 책들이 줄 서 있다. 책을 넘어서는 많은 수단들이 있어 앉아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잡아끌고 있다.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세계가 수많은 정보를 교류시키며 익어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달콤함이 떨어지는 포도는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거나 떫은 열매는 버리어지고 발에 밟혀버리고 만다. 잘 익은 열매는 농부를 기쁘게 한다. 잘 익은 사람은 삶의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가을의 풍성함을 바라보며 제철을 맞아 잘 익은 열매를 거두는 마음이 되어 본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열매 유튜브 트위터 소셜 네트워크 노마드 랜드
2022.10.14. 19:39
농경사회에서 가을은 풍성함이다. 더도 덜도 말고 저 보름달 뜨는 절기만 같아라 하며 넉넉지 못했던 삶의 소원을 그려보게 하는 때이다. 온갖 열매가 익어서 곡간을 채워주는 시절이다. 모두가 농민이었던 시기를 지나 몇 안 되는 농사꾼만 남아 농사를 이어가고 모두가 도시에서의 삶을 만들어가는 지금은 가을의 추수 풍경과 그 풍성함의 그림이 계절을 잊어버렸다. 제철 과일이라는 의미가 이제는 낯설어지고 덜 익은 열매를 거두어 보내어 길 위에서 혹은 창고에서 억지로 비슷한 맛이 되어 사람들 손에 들려지는 제맛을 잃은 열매가 진열장에 가득하다. 항상 추수철같이 열매 상품 가득한 시장의 좌판에는 잘 익은 열매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하여 논밭과 과수원의 빛나는 시간을 잊어버리게 한다. 과수원에서 제철에 제맛을 담은 과일을 먹어보았던 달콤한 기억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사계절 흔하게 만나는 제철 아닌 열매의 편리한 먹거리 시대를 좋아해야 할지 섭섭해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저 맛이 제대로 들어있는 열매가 그리울 뿐이다. 과수원을 만나면 우리는 마음이 푸근해진다. 열매가 익어가는 장소가 주는 넉넉함이다. 처음 사과밭에 들어섰을 때 그 대단했던 감동이 지금도 가슴을 채운다. 사람 키 높이 몇 배가 넘는 거대한 사과나무에 가지마다 빽빽이 달려있던 검붉은 사과의 위세가 정말 놀라웠다. 지금 제철을 잊은 것만큼이나 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사람 키 높이로 낮아진 사과나무가 시야를 가득 채우던 위용을 잊은 지 오래다. 사과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과수원의 과목들이 관리 편리성에 맞추어 예전의 모양을 떠나 기계적으로 보일 만큼 크기도 작아지고 질서정연한 자세로 관리 기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수원은 여전히 잘 익고 있는 열매로 인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 농부는 땀 흘린 지난 시간을 기억해내고 탐스러운 열매에 감사와 보람으로 바라본다. 어쩌다 들린 도시인들은 주렁주렁 먹음직한 열매에 그저 경탄의 시선을 보낸다. 달콤한 과육이 우리의 혀를 감동하게 할 때 잘 익은 열매의 놀라운 언어가 우리의 마음도 휘어잡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서른 시에서 길을 만나다’‘노마드 랜드’‘정원의 쓸모’‘그냥 하지 말라’‘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습니다’ 최근 만나 본 책의 제목들이다. 잘 익어가는 열매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들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들어선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익어가고 있습니까 하며 묻고 있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수명이 길어져서 사오십년 직장 퇴직 후 또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시간을 죽이며 소일거리 찾아 헤매는 발걸음이 되지 말고 그만큼의 세월을 아껴가며 속살에 제맛을 높혀가는 열매가 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권고하는 책들이 줄 서 있다. 책을 넘어서는 많은 수단들이 있어 앉아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잡아끌고 있다. 유튜브, 트위터,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세계가 수많은 정보를 교류시키며 익어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다. 달콤함이 떨어지는 포도는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거나 떫은 열매는 버리어지고 발에 밟혀버리고 만다. 잘 익은 열매는 농부를 기쁘게 한다. 잘 익은 사람은 삶의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가을의 풍성함을 바라보며 제철을 맞아 잘 익은 열매를 거두는 마음이 되어 본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열매 유튜브 트위터 소셜 네트워크 노마드 랜드
2022.10.03. 21:21
오늘 아침 동네를 걷다가 잘 익은 열매를 발견했다. 먹어도 괜찮을까. 잠깐 망설이다가 너무나 젊게 보여 하나를 입에 넣었다 몹시 쓴 열매였다. 뱉을까 하다가 음미했다 한두 주 있으면 산책로에는 오디가 익을 것이다 지난 해에는 따다가 잼을 해 먹고 술을 담구어 가족들과 나누어 마셨다 이어서 블루베리, 라즈베리가 열릴 것이다 늦가을이 온다. 싱싱했던 열매가 쭈그려 들고 기운 없이하나둘 땅에 떨어진다 나는 찬 바람을 피하려 옷깃을 여민다 긴 겨울, 야생 과실수는 헐벗은 몸으로 모진 바람을 맞는다 (이름도 모르는 과일을 먹고, 어디서 재배했는지 모르면서 와인을 마신다) 쓴 과일은 써서 좋고, 단 것은 달아서 좋다 늙어 찌그러진 과일은 나름대로의 향기가 있다 뭐든지 제대로 익으면 아름답다 최복림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열매 블루베리 라즈베리 겨울 야생
2022.06.24.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