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크루즈를 타면서 단 한 번도 밴드가 연주하는 밤에 춤추러 가지 않았다. 남편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춤추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릴 때마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춤을 추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 한이 되었다. “이번에는 꽤 오래 배 안에 있어야 하니까 밤무대에서 춤을 꼭 춰야겠어. 나 춤추러 가는 것 말리지 말고 케빈에서 자고 있어.” “알았어. 마누라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도 나의 춤 사랑에 지쳤는지 흔쾌히 허락해 줬다. 나흘째 되는 날 큰맘 먹고 추러 갔다. 모두가 부부들이 왔다. 나만 혼자다. 연주가 시작된 지 15분쯤 후, 한 여자가 그녀보다 마른 남편을 끌어내어 추기 시작했다. 배 둘레가 키보다 더 굵었지만, 통통한 몸매로 잘도 흔들었다. 흥이 많은 와이프를 위해 마지못해 끌려나가 쑥스럽다는 듯 흔들며 그만 추었으면 하는 표정이다. 여자는 흥에 겨워 벌어진 입으로 남편에게 뭐라고 지껄이며 잘도 흔들었다. 갑자기 춤추는 여자만큼이나 통통한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나를 자꾸 쳐다보며 웃었다. 쳐다보는 눈초리가 예사 눈빛이 아니다. ‘혹시 레즈비언은 아니겠지?’ 비슷한 경험이 한번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밴드가 연주하는 리버사이드 공원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뚱뚱한 브라운 피부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여자가 자꾸 나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나도 웃음으로 인사했다. “이 동네 살아요?” “네 당신은?”으로 시작한 대화가 점점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레즈비언 파트너를 찾는다는 직감에 먼저 가겠다고 일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크루즈 춤으로 돌아가서 내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브라운 여자와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눈빛이 같다는 느낌이 들어 몸을 움츠렸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추워요?” “약간” 그녀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자 “그럼 우리 나가서 춤출래요?” 춤추고 싶어 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와 함께 무대로 나가 추기 시작했다. 다른 키 큰 여자도 합세했다. 그리고 이어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나와 흔들었다. 밴드도 신나는 춤곡을 마구 연주하고 가수는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음악이 끝나도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췄다. “우리 그만 자리에 들어갈까?” 그녀가 헐떡이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더 출래요.” 대답했더니 “그럼 한 곡만 더 추고 들어가지요.” 처음엔 신나서 추더니 힘든가 보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내가 물었다. “혼자 배 탔어요?” “아니. 남편은 피곤하다고 자요.” “내 남편도 지금 자고 있어요. 밥 먹을 때만 나와요. 나는 싱글처럼 혼자 돌아다녀요. 우리 내일 또 함께 출까요?” “글쎄 내일은 잘 모르겠는데.” 예상을 뒤엎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했지만, 내일은 나 혼자 서러도 흔들어야겠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영혼 브라운 여자 레즈비언 파트너 세월 크루즈
2025.06.12. 17:57
작년 이맘때 문인 3개 단체가 관광 버스를 대절해 단합대회 겸 야유회를 갖고자 ‘카추마 레이크’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여류 소설가 K 작가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 이름 석 자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첫 인상은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느껴졌다. 우수에 젖은 듯한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녀에게서 친필 서명이 적힌 작품 ‘내 영혼 어디에’를 선물로 받았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미국 교포인 미모의 의대생 강엔젤라와 20년 연상인 한국 인기 영화 배우 김청하가 전무후무한 뜨거운 사랑에 빠졌으나 엔젤라가 의문의 교통 사고로 사망하여 그 영혼이 우주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암으로 10년을 고생하다 죽은 70대 여인 유여사와 동반자가 되어 하늘 아래 지상을 내려다보며 나누는 대화체 형식의 중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나는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오늘도 새벽 1시쯤에 깨어난 이후로 갖은 상념에 잠겨 밤을 꼬박 새웠다. 내가 살아온 70평생을 뒤돌아보며 지은 죄가 어떤 것이었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중절시키는데 공범이 된 것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죄를 여섯 번이나 더 범하였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인간이 죽어서 육체가 땅에 묻히면 흙 속으로 사라지고, 불에 타면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어디론가 사라진다. 육체는 이미 사라졌지만 영혼은 그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작가의 말 중에서) 영국의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 역정’은 기독교 우화 소설로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익히는 책이라고 하는데 죽은 영혼이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비슷하나 천로 역정은 내가 무지해서인지 이해하기가 역부족이었고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 어디에’는 미사여구 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간 작품이었기에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영혼이 100% 존재한다고 확신하며 살아온 이유는 밤에 자다가 가끔 꿈을 꾸게 되기 때문이다. 꿈이란 넋이 돌아다니며 겪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육체는 그대로 누워 있으나 그 혼은 돌아다니며 망자를 만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꿈속에서는 이루기도 하는 등 온갖 일을 경험한다. 꿈을 꾸며 살기에 영혼은 존재한다고 여기고 살아오지만, 천국과 지옥설에는 반신 반의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영혼처럼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느냐? 확증은 없으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있다’ 라고 심증을 굳혔다. 영혼은 영원불멸하여 이 우주 어디엔가를 떠돌아다닌다는데, 내가 지은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하느라 잠 못 이루고 있다. 내 여생을 자신보다 처지가 불우하고 가난하며 약한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며 살아간다면 그 지은 죄를 대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께 용서받는 길이란 그것 뿐일 것이라고 가슴 속에 새겨둔다. 사후 세계에서 내 영혼을 벌하실 신 앞에 서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영혼 영혼 어디 여류 소설가 우주 공간
2025.05.20. 18:50
책을 읽다가 ‘영적 홈리스’라는 낱말 앞에서 딱 멈추었다. 나도 ‘영적 홈리스’가 아닐까? 라는 고약한 생각에 심각해진 것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노숙자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LA같은 대도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골칫거리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데 대책은 거의 없는 답답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낱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우스 리스’가 아니고 ‘홈 리스’다. 생존과 사랑의 문제, 생명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걱정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물질적 공간의 문제가 고작이다. ‘홈리스’의 아픔을 돌보기까지는 멀고도 멀었다. 정신세계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현실적으로 가장 근본적이고 많은 대답은 신앙일 것이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절에 가서 절하는 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그럴까?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언제나 절대자에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디인가? 내 마음의 고향은? 혹시 예술이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야무진 꿈을 꾸어보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 내 영혼의 집,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몸이 많이 아팠던 작년 겨울 어느 날, 그가 서재에 있는 어머니 사진 앞에 망연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죽음이 바짝바짝 쫓아오는 그 암담한 시기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의 기댈 언덕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도 자식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런 절박한 시간에 그는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부인 강인숙 관장이 고인을 기리며 쓴 책 ‘만남’의 한 구절이다. 기독교 세례를 받기 전의 이어령 선생에게 어머니는 신성(神性)을 지닌 절대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선생의 어머니는 그가 11세 소년일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몸은 70년 전에 떠나가셨지만, 어머니는 평생 아들의 영혼의 집,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강인숙 관장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어느새 잊어가는 자신을 한탄하자,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감동적이다. “걱정 마,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 와서 영원히 안 떠나셔.” 어머니를 구원의 상징으로 그린 예술작품은 많다. 러시아 한인(韓人) 화가 변월룡(1916~1990) 화백의 어머니 초상화도 좋은 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어머니를 그렸다. 이미 40년 전에 세상 떠나신 어머니를 그림으로 살려냈다. 울면서 그렸다, 미술전문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이 그림은 변월룡 화백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5년 뒤 숨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화가 변월룡은 러시아 최고의 레핀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이 대학의 정교수가 된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이며, 리얼리즘 미술에서는 단연 한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존재였다. 그가 그리움을 담아 그린 ‘어머니’는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화가는 왜 말년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렸을까? 그림 맨 밑 오른쪽 귀퉁이에 한글로 ‘어머니’라고 적었다. 평생 타향살이를 한 화가에게 어머니는 고국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디아스포라 예술가에게 어머니는 조국 같은 존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비틀비틀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들에게 잠시라도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주면 정신 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예술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야무진 헛꿈인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영혼 어머니 초상화 어머니 사진 이어령 선생
2024.06.06. 18:24
샤토갤러리(관장 수 박)가 오는 20일부터 박혜숙, 김성일 작가의 2인전 ‘형상을 넘어서(form and formless)’를 개최한다. 샤토갤러리 측은 “보기 드문 대작들과 설치 및 조각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급 전시 규모”라며 “두 작가의 예술 철학이 집약된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몸과 영혼 그리고 자연과 생명의 연결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혜숙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형태, 그리고 대상들에 대한 과감한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열정의 작가’로 불리는 그는 스튜디오가 통째로 불타는 등 삶의 역경을 예술로 이겨내고 지독하게 창작에 매진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곧 작업의 도구라는 그는 인생과 그림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큰 캔버스에 대담하게 그려낸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자연스럽게 동양적 정서가 드러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화법과 특유의 감각으로 작가 고유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박 작가의 작품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콜로라도 덴버아트 뮤지엄과 오클랜드 뮤지엄 오브 캘리포니아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베이징, 서울, 파리, 뉴욕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도예가이며 조각가인 김성일 작가는 세라믹과 철근, 목재를 접목한 인체 크기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도예라는 장르의 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재료 선택을 시도해 탄생한 그의 믹스드 미디어(mixed media) 작품들은 몸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작가의 인생을 담았다. 초기 작품들이 치열했던 작가의 삶과 예술적 고민을 표현했다면, 그의 신작은 샌버나디노 엔젤레스 포레스트로 이주한 후 산중 생활 속 평화와 자유를 찾은 작가의 삶을 대변하듯,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다. ‘형상을 넘어서’ 전시회는 20일부터 5월 18일까지 진행되며 오프닝 리셉션은 20일 오후 4~6에 열린다. 이날 작가가 전시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아티스트 토크도 준비되어 있다. ▶주소:3130 Wilshire Blvd, #104, LA ▶문의:(213)277-1960 이은영 기자영혼 자연 전시 작품 박혜숙 김성일 초기 작품들
2024.04.14. 19:01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첫 주택 구입자의 중간 연령(the median age)은 35세로 나타났다. 이는 2022년 36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내집 장만 연령이 조금 낮아진 것이다. 즉 요즘 35세 이전 내집 장만하는 이들은 '영 바이어'가 되는 셈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고공행진 중인 집값을 고려했을 때 Z세대 주택 구입자는 '유니콘'이라 할 만큼 희귀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Z세대의 첫 집 장만은 너무 이른 것일까? 또 Z세대들이 주택 구입 시 고려할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부동산 전문가들을 통해 알아봤다. ▶현황 요즘 같은 집값과 재고 부족, 모기지 이자율을 생각했을 때 Z세대에게 내집 장만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30년 전인 1991년 주택 구입자 중간 연령(median age)은 28세로 20대 때 집 구입은 그리 희귀한 일은 아니었다. 이후 2011년 30세, 2021년 33세로 연령층이 높아지면서 30년 새 첫 집 장만 연령이 열살이나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주에선 18세 이상이면 합법적으로 주택 구입이 가능하다. 예외 지역은 앨라배마와 네브래스카로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택 구입 가능한 합법적 연령이 된다고 해도 대출 승인 여부가 가장 큰 관건. 일반적으로 대출기관은 소득, 신용점수, 자신 및 부채를 기준으로 대출을 승인하므로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면 나이와 상관없이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 규정에 따르면 신청자의 연령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점 이른 나이에 내집 장만 시 가장 큰 장점은 부동산 투자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구입한 집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집 가치는 올라가므로 시간이 지난 후 상당한 차익을 얻을 수 있으며 임대 부동산으로 전환할 경우 임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또 낮은 이자율로 주택 담보 대출이 가능하며 아파트를 렌트해 거주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임대료 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외에도 주택 구입을 통해 좋은 신용기록을 쌓을 수 있고 주택 소유에 따른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재정적 고려사항 부동산 전문가들은 "첫 주택 구입은 일생의 가장 큰 금융 거래"라며 "전 연령대를 막론하고 결국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현금 구입이 아닌 이상 모기지 대출을 상환할 수 있을 만큼 재정상태가 안정적이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얼터닷컴(Realtor.com)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구매자들은 집값의 평균 14.7%, 약 3만400달러 정도를 다운페이먼트한 것으로 나타났다. LA 소재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지난 5년간 주택 구입을 도와준 20대 고객들 중 90% 이상이 부모의 재정적 도움으로 집을 구입했다"며 "그러나 구입 후 모기지 상환과 생활비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므로 계획 없이 집을 구입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다운페이먼트만 확보된다고 주택을 구입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클로징 비용 및 이사 비용도 확보해야 한다. 클로징 비용은 대출금의 3~6% 정도인데 이는 모기지 대출에 포함돼 대출금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사 비용은 전국 평균 1250달러로 집계됐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단순히 주택 구입과 이사에 필요한 비용뿐 아니라 1년 치 모기지 상환금과 재산세, HOA 관리금 등 안정적 예산이 확보돼야 안전하다"며 "일부 지역 콘도에선 20% 다운페이먼트 및 18~24개월에 해당하는 모기지 상환액 예금 증명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용점수도 중요하다. 대출기관은 은행 잔고가 충분해도 신용기록과 점수를 중요시 여기는데 대출 승인을 위한 최소 신용점수는 620점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택 매매를 위해 충분한 예금을 갖고 있지만 신용 점수 또는 신용 기록이 좋지 않아 대출 상환 신청이 반려된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대출 전문가들은 "모기지 승인을 위한 안정적인 신용점수는 720점 이상"이라며 "또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 개인 대출 등 신용 거래 계정이 3곳, 거래 기간은 최소 12개월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전문가들은 "일부 대출기관은 신용보고서에 거래 라인 3~4곳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이런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대출을 승인하지 않는 대출 기관도 있다"고 말했다. ▶거주기간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 20대들의 경우 렌트비를 지불하는 것보다 주택 구입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주택 구입 시 단순히 재정적 상황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주택 구매 후 그곳에서 얼마나 거주할 것인가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판매 후 세금과 이사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2~3년만 거주하고 집을 팔고 이사 가는 것은 결코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세대일수록 이직과 학업 등을 이유로 이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신중히 고민 후 구입을 결정해야 한다. 이주현 객원기자내집 영혼 주택 구입자 현금 구입 부동산 전문가들
2024.04.10. 18:13
버지니아 매나사스에 위치한 올리브나무교회(담임 강일성목사)가 지난 23일, 교회 설립 3주년 기념 장로장립 및 권사취임식을 가졌다. 올리브나무 교회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2월 강일성 목사의 가정에서 예배를 시작해 따뜻한 위로와 복음이 필요한 영혼을 직접 찾아가는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강 목사는 “예배를 위해 모일수 조차 없던 시기에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교회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개척하게되었다”면서 “복음으로 힘을 주고 답을 주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뜻을 함께 한 몇몇 성도들이 모여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해 영광을 돌리자’는 목표를 잡고 소외된 영혼들과 거리를 좁혀가는 사역에 온 성도가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특별히 누구나 찾아와 쉼을 얻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안락함을 주는 영혼의 쉼터 역할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는 센터빌, 챈틸리, 페어팩스 지역에 브릿지교회를 세워 복음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점차 그 사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센터빌 한인타운으로부터 차량 주행 15분 거리에 자리한 매나사스 올리브나무 교회의 주일예배는 오전11시이며, 매나사스 침례교회와 파트너십 사역을 통해 영어권 및 주일학교를 상호 교류하고 있다. 주소: 8800 Sudley Rd. Manassas VA 문의: 703-473-3233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목회로 영혼 목회로 영혼 담임 강일성목사 올리브나무 교회
2024.04.03. 13:58
주일 아침, 성당 미사에 참석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노인들뿐이다. 나만 해도 50대에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 이제 60 중반을 넘었다. 인구의 고령화는 교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늘 보이던 노인이 안 보이면 혹시 아픈 것이 아닌가 싶어 주변에 물어보게 된다. 몸이 아파 못 나오던 교우는 몇 주 후면 다시 나타나지만, 다투고 삐져서 떠난 교우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다들 고집을 가지고 산다. 자신의 기억과 생각만이 옳으며 남들이 틀렸다고 굳게 믿는다. 노인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라. 대개는 일방통행이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간혹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걸 트집 잡아 언쟁이 벌어진다. 나는 4년째 매일 5년 일기장에 일기를 쓴다. 4번째 칸에 오늘 일기를 쓰며 지난 3년 치 일기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내 기억이 틀린 것이다. 4년의 기억이 그러할진대 50-60년 된 기억이야 어떻겠는가. 나이 먹은 사람은 살아온 날이 많으니 당연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모두 좋거나 옳은 것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거나 바로 잡지 않고 지나친 것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이를 앞세워 나의 언행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문제다. 나 역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며 산다. 올해 대학에 간 조카 녀석을 데리고 살며 늘 나이를 앞세워 내 주장을 펼쳤다. 서로 의견과 생각이 다르면 마치 내 방식만이 성공 방정식인 양 고집을 부렸다. 60년 살아 굳어진 나를 고치기보다는 이제 겨우 10여 년 산 네가 바뀌기가 쉽지 않겠느냐는 이상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반대가 맞다. 60여 년 살아오며 보고 들은 것이 많은 나는 오늘 옳다고 믿었던 것이 훗날 틀린 것이 될 수도 있으며, 마치 세상이 무너질듯한 절망의 순간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세상사라는 것이 누가 가르쳐 준다고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는 것이다. 세상사 절대적인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늘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가 이해하고 양보하는 것이 맞다. 나는 요즘 학교에 가서 미술 클래스를 듣는다. 매주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제를 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사물의 크기도 다르고 색상도 다르며 붓질도 다르다. 세상사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눈에 까맣게 보이는 것도 다른 이에게는 잿빛으로 비출 수 있고,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는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한 단체는 모두 작은 공동체다. 뜻을 같이하는 가족인 셈이다. 일가친척도 다투고 소원해지면 남이 된다. 짐 싸 들고 집을 나가면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부부는 다투고도 한방에서 자야 하며 가족은 머리가 깨지도록 싸워도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한다. 나이 들어 몸에 힘 빠지고 마음도 흔들리는 우리는 모두 가여운 영혼들이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삽시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영혼 다들 고집 미술 클래스 오늘 일기
2023.10.18. 20:25
인도를 가보지 않았다면 세계 일주를 했다고 말할 수 없고, 갠지스 강변의 바라나시를 가보지 않고는 인도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감히, 인도 여행을 정의 내리자면 소우주와 같이 다양한 문화, 종교, 철학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여행이라 말하고 싶다. ▶델리(Delhi)=대한민국 지도를 호랑이 형상에 빗대듯 인도 사람들은 인도가 마치 춤추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중 델리는 인도의 가슴 부분이다. 이 때문인지 델리 또한 심장이라는 뜻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쿠뚭 미나르(Qutub Minar)는 델리 술탄국의 첫 노예 왕조가 세운 인도 최대 규모의 승전탑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웅장하면서도 독특한 건축 양식이 시선을 압도한다. ▶바라나시(Varanasi)=그 유명한 바라나시는 기원전부터 존재했고,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이자, 인도의 정신적 수도라 할 수 있다.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강으로 델리와 힌두스탄 평야를 지나 벵골만으로 빠져나간다. 물이 마르지 않는 이 강의 중.상류 지역에 무려 1억 명이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로 항상 붐비는 가트(터)에서는 매일 저녁 힌두교 시바신을 향한 제사가 펼쳐지는데 종소리로, 디아 꽃잎으로, 연기로, 불로 행하는 영혼 정화를 위한 의식은 신비한 기운마저 감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강에는 채 다 타지도 않은 시신이 재와 함께 던져진다. 인도인들은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윤회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이란 곧 새 생명의 탄생으로 직결된다. 생과 사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이 화장터에는 통곡하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성지의 화장터에서 죽는 것을 큰 영광이라 여긴다. 또한 강물로 목욕을 하는 사람, 좌선을 하고 앉아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갠지스강은 시바신의 부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머니인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것이다. 어머니가 몸을 씻겨주는 것은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타지마할(Taj Mahal)=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타지마할의 죽음을 애도해서 만든 타지마할은 무려 2만 명이 넘는 노동력을 동원해 22년 만에 완공됐다. 강가에 이토록 커다란 호화 무덤이 지어졌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다. 무덤이 아니라 궁전과도 같은 타지마할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가운데 뭄타즈 마할의 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샤 자한의 관이 더 크게 안치되어 있다. 360도 돌면서 무덤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이프르(Jaipur)=구시가지 건물들은 죄다 핑크빛으로 물들여 '핑크 시티'로도 불린다. 이곳의 명물인 아메르성은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성으로 손꼽힌다. 성까지는 자이프르의 마스코트인 코끼리 또는 지프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대리석과 붉은 사암으로 건축된 힌두 스타일 건축물로, 내부에 들어서면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진다. 힐링과 자아성찰을 모티프로 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인도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휴식처 영혼 인도 여행 영혼 정화 인도 사람들
2023.10.12. 20:08
영혼도 눈물 흘린다. 슬프면 혼자 운다. 밤새 어둠 속을 헤매다가 새벽이면 별빛 받아 반짝인다. 이슬은 영혼이 흘린 눈물이다. 영혼의 호수에 돌을 던지면 풍덩 소리 나지 않는다. 잔잔한 진동으로, 작은 파장으로 호수를 빙그르르 돌며 퍼져나간다. 사는 게 지치고 허기지면 영혼이 흐느낀다. 마음이 병들면 영혼을 갉아먹는다. 영혼은 정신과 구별되는 생명 원리다. 산 사람의 육신에 깃들어서 생명을 지탱해 주는 기(氣)로 인식된다. 육신의 죽음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실체를 존속시키는 능력이 있어 초월성을 지닌다고 믿는다. 사람의 몸 속에는 공기나 불 같은 것이 들어있어 그것이 신체를 지배하며, 잠들었을 때와 기절했을 때는 이것이 잠시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죽게 되면 몸에서 빠져 나와 그림자나 망령이 되어 허공에 떠돌아 다닌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길의 한 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신곡 (Devine Coedy) 지옥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르네상스의 여명을 밝힌 선구자로 신곡은 중세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신곡은 단테가 1302년에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된 후 유랑 생활 중 1308년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한 1만4233행으로 된 서사시다. 단테는 위대한 시인이고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와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한다. 단테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천사를 보는듯한 환상에 빠지는데 9년 뒤 베키오 다리 위에서 스치는 듯 다시 만나지만 베아트리체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단테의 나이 37세, 피렌체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하지만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빵을 얻어먹는 망명자로 전락한다. ‘천국’편에서 ‘남의 빵이란 얼마나 쓴 것인지, 또 남의 층층대를 오르고 내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라고 단테는 인생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별을 찾아 불멸의 대작을 완성한다. 지옥편에서 단테는 ‘나 이전에 창조된 곳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고 적고 있다. 단테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지옥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징조는 어디든지 있다. 모진 지옥불 속에서도 영혼은 불타 오르고, 믿고 사랑하는 것들 속에 희망의 씨앗은 싹을 틔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지옥과 천국을 오고 가는 순례자의 길인지 모른다. 그 길이 멀고 힘들고, 발길이 무거워도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다만 믿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허리 굽혀 땅에 입맞추며, 각자의 어깨에 지워진 고행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 고통 속에 꽃을 피운다. 육체가 망가지고 죽음이 어둔 그림자를 창문에 드리울 때 어쩌면 영혼은 하얀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가지 않을까. 소멸은 잠시 형체만 바뀌는 것. 가지려 애썼던 모든 것들이 허공에 흩날리다 땅 속 깊이 묻힌다. 어릴 적 동무들과 물수제비 튕기는 내기를 했다. 동무들의 던진 조약돌은 반원을 그리며 물 위를 사뿐히 걸어갔다. 내가 던진 조약돌은 물에 빠져 작은 파장으로 번져나갔다. 조약돌이 물 위를 걷지 못해도 작은 원으로 번지는, 물이 그리는 그림은 아름다웠다. ‘가을엔 곡식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천개의 바람이 되어’중에서 영혼이 일탈을 꿈꾸는 아침, 가슴 밑바닥으로 찬바람이 분다. 청춘 시절에는 몰랐다. 바람이 비를 몰고 온다는 것을. 작은 슬픔이 큰 파도로 인(Q7 Editions 대표, 작가) 생길을 덮친다는 걸. 남은 시간이 살아온 날들 보다 적다는 것도 이제 깨닫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 호수 사랑 베아트리체 단테 알리기에리 editions 대표
2023.09.19. 14:08
나도 당신도 꿈을 꿀 때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물체를 보면서 환청과 환시 증세를 일으킨다. 헛것을 듣고 본다. 여덟 살 때 살던 집 뒷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느 땅거미 지는 저녁녘 그 밑을 지나가며 무심코 하늘을 쳐다봤더니 지붕보다 키가 큰 나무 꼭대기에서 커다란 괴물이 이빨을 드러내고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앞마당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지금 곱씹어보며 내가 본 것이 ‘환각’이 아닌 ‘착각’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외부 자극 없이 일어나는 감각을 환각이라 하고, 외부 자극을 틀리게 해석하는 것을 착각이라 부른다. 그것은 환시(幻視)가 아니라 착시(錯視)였다. 병동 환자 윌슨의 증상이 환시인지 착시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아무리 두 증세를 분별해서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하는 지능의 한계가 큰 이유다. 그는 간호실을 가리키며 그곳에 자기와 같은 국적의 아름다운 남미 여자가서 있다고 말한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공간에 아무도 없을 때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간호사가 딱 한 명만 있을 때 그 옆 공간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한데 분명치 않다. 하여간 그와 나 사이에는 이것이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내가 따지고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정교하게 펼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안개 낀 새벽에 아버지의 유령을 접한다. 그가 정신 증세를 보였다는 학설이 있다. 17세기식 사고방식대로 당시에 정말 유령, 귀신이 존재했다는 설명도 있다. 신의 존재를 믿듯 유령의 실체도 믿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뿐만 아니라,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귀신을 불쑥불쑥 출현시킨다. 우리의 민간설화나 성경에도 귀신들이 자주 등장한다. 브루스와 내가 가벼운 논쟁을 벌인다. 신이 그에게 말하기를 정신과 약은 몸에 해로우니 복용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내가 너의 신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느냐? 내 신이 여러 신 중에 가장 강력한 신이니까 그래야 돼! 그렇다면, 너는 인종주의자처럼 신을 차별하느냐? 이윽고 브루스가 껄껄 웃는다. ‘神’은 한자사전에 ‘귀신 신’으로 나와 있다. 미국 지폐에 인쇄된, ‘In God we trust’는 ‘우리는 귀신을 믿는다’? ‘God’에 해당하는 순수한 우리 말은 없다. 도깨비? 우리는 유령이나 귀신을 무서워한다. 말을 하지 않는 유령은 더더욱 무섭다. 언어를 구사하는 유령과 귀신들은 우리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준다는 면에서 지성적인 엔티티로 보아 무방하다. 부처의 화신이 불시에 나타나서 요긴한 귀띔을 해주는 설화도 부지기수다. 귀신은 영혼의 첩보원이다. 고대영어에서 온 ‘ghost’는 ‘귀신’이라는 뜻. 삼단 같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연못 위로 떠오르는 ‘장화홍련전’의 자매가 연상된다. 같은 의미로 라틴어 ‘spirit, 영혼’은 무섭기는커녕 점잖게만 들리지. ghost=spirit=귀신=영혼. 기독교의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에 나오는 ‘령’은 유령의 령과 같은 말. 성령은 즉 신성한 귀신이다. ‘ghost, 귀신’과 ‘spirit, 영혼’의 원래 뜻은 ‘숨, breath’이었다. 숨 속에 영혼이 깃들여져 있다는 발상이다.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한 마디 내뱉는다. 귀신과 영혼을 다스리기 위하여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보람찬 삶이라고.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귀신과 영혼 귀신과 영혼 spirit 영혼 유령 귀신
2023.05.02. 17:46
나에게 영혼이란 단어는 친숙하다. 물질적인 부를 축적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자는 항상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요즘에는 과연 그 영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사전을 찾아보니 영혼이란 인간에게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그 삶의 성격, 인격, 지혜, 의지 그리고 감정을 포함한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전체 혹은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죽음이란 영혼이 떠난 상태를 말하지 않을까. 이 영혼이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문제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한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다. 한 65세 남성이 간질성 폐 질환(다양한 염증세포의 침윤, 섬유화가 진행되어 폐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는 질환)으로 폐 이식 수술받고자 입원했다. 컴퓨터 공학박사로 62세에 정년퇴직한 후 최근에 급속도로 악화하여 24시간 산소공급이 필요하게 되었다. 숨쉬기조차 힘이 드는 환자는 먹는 일과 배변하는 일도 큰 노동이었다. 한 3일을 간호하면서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많이 가까워졌다. 장기이식은 기증자뿐만 아니라 수혜자도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몸 내부에 있는 각 장기와 조직이 거의 완벽한 상태에 있어야 기증받아도 별 탈 없이 안정된다. 한 2주 동안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한 후 이제 겨우 수혜자의 명단에 올랐다. 지금부터는 매치가 되는 기증자만 기다리면 된다. 이제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왜냐면 특별히 중환자실에서 해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 이 무슨 불행한 일인가! 환자는 사흘 만에 심한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를 꽂고 중환자실로 옮겨왔다. 급성폐렴이었다.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폐만 제외하고는 모든 검사 결과 건강이 양호한 상태였는데도 그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간질성 폐 질환에 급성폐렴은 치명적이었다. 간헐적으로 의식이 오가고 있었지만 날마다 그는 쇠약해갔다. 그동안 나는 환자와 그 가족과 나누었던 많은 대화를 통해 그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책임감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장기수혜자 명단에 오른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그는 한편 이식받은 후 기증자와 수혜자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여 나에게 크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2주 만에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갔다. 그는 그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따뜻한 사람이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데, 그리고 그 사실은 다 수용하기까지 부정과 절망, 고통과 괴로움을 다 이겨내고 이 모든 불편한 감정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겪어야 하는 자연현상이다. 사고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다. 나에게 죽음은 삶을 밝혀주는 바탕화면이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값진 것이 아닐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그냥 “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자체로 존중이고 사랑이다.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름을 불러주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의 의식 중에 사랑이 싹트고 집중하고 몰입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최근에 출간된 이다희의 ‘사는 마음’에서는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영혼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이가 사랑해야 장난감은 영혼을 갖는다’라고 했다. 영혼은 어디에든 있다. 단지 내가 그 영혼을 인지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햇빛과 물 그리고 사랑으로 자양분을 공급할 때 아름다운 영혼이 자라게 된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며 관계를 맺는 장면처럼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가 필요하게 되지, 넌 나에게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까.’ 영혼은 길들여진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영혼 장기수혜자 명단 수혜자 사이 컴퓨터 공학박사
2023.04.21. 17:55
인생을 바치기는 쉽지만 영혼을 바치기는 어렵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준다 해도 영혼까지 주기는 쉽지 않다. 맑고 빛나는 영혼은 어둠 속에서 반짝인다. ‘우리 인생길의 한 중앙, 올바른 길을 잃고서 어두운 숲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서움으로 적셨던, 골짜기가 끝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위를 바라 보았고, 이미 별의 빛줄기에 휘감긴 산 꼭대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자기 길을 올바로 걷도록 이끄는 별이었다’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 지옥편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이어 단테의 신곡은 장편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산 사람은 경험할 수 없는 사후세계를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형식을 빌어 인간의 욕망과 죄악, 운명과 영혼의 구원을 심오하게 그려낸다. 훌륭한 가문과 명석한 두뇌, 지도자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음에도 정치적 상황과 음모로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 고통을 겪는다. 단테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슬픔, 사랑과 희망으로 응집된 이 작품을 통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모든 역량과 영혼의 아픔을 이 책을 완성하는 데 쏟아 붓는다. 예술가는 아름답고 정직한 영혼을 꿈꾼다. 가난과 멸시, 무관심과 비판으로 육신이 허물어져도 위대한 예술가는 영혼의 횃불을 들고 미래의 역사를 비춘다. 아무도, 세상 모두가 고개 돌려 외면해도, 생의 아픔과 절망이 뼈와 살을 갈라도 진정한 예술가는 아름다운 영혼의 자유를 위해 생을 바친다. 1890년 7월 70일 해질녘, 고흐는 밀밭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권총은 빗나갔지만 이틀 후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을 돌봐주던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37년의 생을 마감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명성과 돈을 얻지 못했지만 그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작품을 그린 화가로 꼽힌다.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고흐가 살아 생전 판 그림은 단 한 점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뿐이다. 생활비를 전적으로 동생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화가는 때때로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놀라게 하지. (중략)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고흐는 ‘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를 그리며 창작의 희열과 기쁨을 참지 못해 영혼의 동반자 동생 태오에게 편지를 보낸다. 진솔한 영혼을 담아내지 못하는 작품은 거짓이다. 예뻐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은 덧칠에 불과하다. 예술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것은 생의 아픔과 절망을 견디는 힘을 준다. 꿈꾸지 않는 자는 죽은 것과 같다. 시체는 부패한다. 절망과 죽음에서 예술은 생명의 꽃을 피운다. 위선과 거짓, 가식의 주술방망이를 내려놓으면 먼동이 트는 새벽별을 만날 수 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가슴에 천국의 별을 단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 해질녘 고흐 동반자 동생 우리 인생길
2023.04.11. 14:30
60여년의 세월. 시공을 뛰어넘어 내 꿈속으로 찾아온 사람, 이민호. 그 아이는 내 중학교 때 한반 짝꿍이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학교는 불에 타서 변해 국방색 천막에서 공부를 했다. 우리 둘은 키가 작아서 그 아이는 5번, 나는 6번 교실 맨 앞쪽 선생님 강단 앞에 앉아 공부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장에서 전사해서 어머니와 어린 누이동생과 셋이서 살았는데 어머니가 시장통에서 떡 장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공부 시간에 공책이 없어 선생님 말씀만 듣곤 했지만, 시험을 치면 늘 상위권으로 머리가 명석했던 것 같다. 미술 시간에 그림 그리기 시험을 쳤는데 나는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 풍경화를 그렸고 민호는 백지를 냈다. 미술 선생님은 전쟁 중에 한쪽 눈을 잃어 의안을 하고 있어 철이 없던 우리는 개눈깔이라고 깔깔댔다. 미술 시험에 백지를 냈으므로 응당 선생님의 불호령을 듣고 꿀밤을 맞았다. 민호는 꿀밤을 맞으면서 “선생님, 저는 토기와 거북이 경주 그림을 그렸는데 토끼는 너무 빨리 뛰어 도화지 밖으로 나갔고 거북이는 너무 느려 아직 도화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과 우리는 조선시대 학자인 오성과 같은 지혜로운 답변에 할 말을 잊었던 기억이 새롭다. 선생님은 그의 명답을 듣고 얼굴에서 노기를 풀고 “이놈아, 그러면 이쪽 도화지 끝에 토끼 꼬리를 그리고 저쪽 끝에는 거북이 머리를 그렸으면 꿀밤은 안 맞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영어책을 살 수 없는 가정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상상 밝은 모습이었다. 새로 나온 영어책을 나에게 빌려 읽더니 레슨(Lesson)1 부터 레슨(Lesson) 26까지 다 외어 버렸다고 했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시험 때 100점을 맞을 수 있을 텐데 왜 80점 정도만 맞니?” 그의 대답 한번 걸작이다. “다 아는 문제인데 다 맞추면 재미가 없단다.” 어느 날 떡 장사 하는 어머니가 다른 일이 었어 민호에게 떡 모판을 맡기고 가셨는데 늘 굶주려 배고프던 시절 첫 마수걸이로 떡 판돈 10환을 여동생에게 주고 떡을 사 먹었다. 배가 고팠던 동생도 그 10환을 오빠에게 다시 주고 떡을 사 먹고…. 결국 그 10환 가지고 서로 실컷 배부르게 떡을 사 먹은 탓에 떡 모판은 텅 비어 있었고 종일 떡 판 돈은 달랑 10환만 남았다. 어머니가 돌아왔을 때 기막힌 일이 아닌가. 떡 장사 밑천을 다 털어먹은 오누이는 엄마한테 실컷 얻어맞고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고시에 합격했다고 뛸 뜻 기뻐하며 나에게 달려와 힘들었던 옛이야기를막걸리로 목 추기며눈물반웃음반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한 후 학벌이 안되어서 한동안 발령을 못 받아마음고생 하다가 경상도 지역의 궁벽한 지역으로 발령을 받고 판사를 하더니 하루는 나를 찾아와 미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훌쩍 떠나갔다. 동부 명문대학에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고 유명한 법대에서 청빙을 받아 금의환향, 곧 귀국하겠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런데 한국 유학생이 필라델피아 고속도로에서 교톻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의 귀국을 기다리던 나는 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공부해 오늘에 이르렀는데 노모에게 효도 한번 못하고 타향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 아닌가. 나는 하늘은 왜? 착하고 훌륭한 이들을 먼저 데려가는지 신에게 묻고 싶다. 세상에 악의 무리를 먼저 없애야 옳거늘 늘 반대의 결과에 울화가 치민다. 정의는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인가? 신은 정녕 존재하는가? 그런데 까맣게 잊고 살았던 추억 속의 이야기 보퉁이를 그것도 60여 년 전의 이야기를 꿈길로 찾아와 왜 풀어놓고 갔을까? 오래전에 고인이 된 사람인데…. 알 길이 없다. 노모가 손꼽아 기다리는 고향에 끝내 돌아가지 못한 길잃은 영혼이 타국에서 외로움에 옛날 학교 짝궁 친구가 미국에 사니까 나를 찾아와 옛이야기를 하고 갔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사는 한 세상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꽃 한 번 못 피우고 그것도 타국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친구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이산하 / 수필가수필 영혼 추억 미술 선생님 앞쪽 선생님 선생님 말씀
2022.12.01. 19:03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많다. 눈 덮인 융프라우, 마터호른 산의 절경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두말할 필요 없겠고 세계 일류를 자랑하는 열차, 시계, 초콜릿, 치즈 등도 스위스를 대표하는 상징들이다. 여기 스위스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반전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온천이다. 동양의 온천 메카가 일본이라면 서양 쪽은 단연 스위스다. 장엄한 알프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알파인 스파’는 스위스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스위스의 온천 역사는 유구하다. 무려 2000년 전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이 전상자 치료를 위해 개발한 것인데 로이커바드(Leukerba)와 생모리츠(St. Moritz)가 대표적이다. 로이커바드는 알프스산맥을 병풍 삼아 따끈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유명 온천 마을이다. 로이커바트 자체가 호수를 뜻하는 ‘로이커(Leuk)’와 목욕을 뜻하는 ‘바트(Bad)’가 결합해 생겨난 지명이다. 이곳에서는 칼슘과 유황이 특히 풍부한 122℉의 고온 온천수가 뿜어져 나온다. 120여 개의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로 채워진 1500여 개 호수와 강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데워진 온천수다. 로이커바드 온천수에는 칼슘과 유황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테, 모파상, 뒤마 등 세계적인 작가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풍덩’ 하고 몸을 담그면 티끌 한 점 없는 스위스의 공기와 물을 오롯이 누릴 수 있다. 몸도, 마음도 힐링 그 자체다. 한겨울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알프스를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보다 더 멋진 일이 살아생전 얼마나 더 있을까. 로이커바드에서 1시간 30분이면 레만호 동쪽에 위치한 몽퇴르(Montreux)다. 레만호는 스위스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호수로 호수를 경계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몽퇴르는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모든 이를 위한 천국’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지금도 한 손은 마이크를 잡고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든 그의 동상이 광장 앞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다. 동상 아래 ‘몽퇴르는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여전히 그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꽃다발들이 놓여 있다. 머큐리에 앞서 루소, 바이런, 헤밍웨이 등도 이곳을 배경으로 근사한 작품을 써 내려 갔다. 그들이 걸었을 몽퇴르의 호반 산책로 중 시선을 잡아끄는 독특한 풍광은 시용성이다. 바이런이 쓴 ‘시용성의 죄수’로 유명해진 이 성은 자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If you want to peace of mind, come to Montreux.” 머큐리는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몽퇴르로 오라고 했다. 멀리서 그의 음악이 들려오는 듯하다. 몽퇴르에서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안식처 영혼 고온 온천수 스위스 여행 여기 스위스
2022.09.22. 19:14
포리스트 카터(1925~1979)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다. 소설의 원제목은‘Education of Little Tree’이고 저자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이다.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 무렵. 주인공 ‘작은 나무’는 다섯살 때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 혈통을 이어받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속에서 살게 된다. ‘작은 나무’는 사냥과 농사일, 위스키 제조 등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자연에서 얻는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점차 터득해 나간다. 주인공인 저자, 그의 인디언 이름은 ‘작은 나무’다. 그는 이른 새벽 할아버지와 함께 산꼭대기를 오른다. …산꼭대기에는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반짝이는 빛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고, 얼음에 덮인 나뭇가지들은 물결처럼 내려가면서 밤의 그림자들을 천천히 벗겨가고 있었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할아버지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읽는 내내 울창한 숲과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 한가운데 서 있는 착각이 들게 했다. 할아버지는 산에 가서 매가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것을 보고 자연의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똑같아.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 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자연의 이치란 누구나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마치 산모가 이불을 쥐어뜯듯 온 산을 발기발기 찢어놓곤 한다. 어린이답지 않게 당차고 성숙한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무한한 감동을 안겨준다. ‘작은 나무’는 개울가에 앉아서 거미가 거미줄을 한 가닥씩 쳐 나가는 광경을 관찰하기도 하고 봄철이 되면 민들레꽃들을 따서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대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작은 나무’ 의 모습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없이 자랐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밖에서 자랐다. 사계절 내내 집 주변 마당과 들판에서 시간을 보냈었고 친구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새빨갛게 매달린 옆집 석류나무에서 몰래 석류를 훔치기도 하고, 한여름 포도나무에 기어올라 입술이 시퍼렇도록 포도를 따 먹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야생나무처럼 들판을 뛰어다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영혼이 가장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낙원이다. “더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과거를 모르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며 체로키족의 지난 일들을 알려준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육신보다는 영혼의 마음을 키워야 하며 서로의 영혼을 이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치는 인디언의 삶을 통해 환경, 인종, 교육문제 등을 생각해본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작은 나무’의 순수한 모습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행간 들어 있는 인디언의 시각에서 바라본 문명인에 대한 해학,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의 만담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들어있는 이책은 풍부한 감성으로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며 자연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영혼 한여름 포도나무 옆집 석류나무 할아버지 할머니
2022.06.15. 20:02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아이를 바르게 성장하도록 이끄는 힘은 바로 부모의 말과 행동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괴 행동을 그대로 배운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은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따뜻함을 느껴 선택했던 책이다. 원제목(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 말해주듯 주이 책은 주인공 작은나무가 세상을 배워가는 성장소설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영혼의 지혜가 담겨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대사가 모두 가르침이 된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대공황 무렵. 인디언 소년 작은나무는 다섯 살 때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 혈통을 이어받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산속에서 살게 된다. 작은나무는 사냥과 농사일, 위스키 제조 등 할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을 자연에서 얻는 인디언식 생활방식을 터득해 나간다.. 그들은 가장 작고 약한 동물만을 죽인다. 그래야 크고 강한 동물들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꿀벌들은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하기 때문에 곰한테 너구리한테 체로키한테 뺏기는 거라며, 사람들도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죽어가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래서 체로키들은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고,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작은나무는 할머니한테서 읽기와 쓰기, 산수 등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셰익스피어나 워싱턴 전기 등의 책을 할머니가 낭독해 주는 것을 들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운다.. 할머니는 영혼에 관해 들려준다.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 다른 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다. 만약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남을 해칠 일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영혼의 마음을 크고 튼튼하게 가꾸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이해는 사랑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심오한 삶의 철학이다. 현대인들이 인디언의 생활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체로키족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체로키족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비해 놓고 조용히 맞이한다. 할아버지의 친구 윌로 존은 살았을 적 소나무가 많은 씨앗을 퍼뜨려 따뜻하게 해주고 감싸주었으니 이젠 소나무 옆에 묻혀 소나무의 거름이 되겠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생전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하던 그곳, 자신만의 비밀장소에 묻힌다. 작은나무가 겪은 일 중에 가장 슬픈 일은 억지로 고아원에 보내진 것이다. 작은나무의 조부모가 교육받지 못했고 인디언인데다 외할아버지가 밀주 제조 혐의로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전과자여서 아이를 기를 자격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고아원은 작은나무에게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작은 나무’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목사한테서 사생아라 불리며 멸시받고 가혹하게 매를 맞는다. 다행히 할아버지 친구인 윌로 존의 도움으로 작은 나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평온한 시간도 잠시 윌로 존의 죽음에 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나무는 홀로 세상에 남겨진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다운 삶의 지속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꾸어야 하며, 그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물질주의의 거대한 급류에 휘말려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설교'는 한 가닥 지푸라기만도 못한 주제일 수 있다. 하찮은 들꽃 하나, 작은 나무 한 그루에 스며들어 있는 '영혼'을 그들은 믿지 않으려고 하니까.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멸망사를 다룬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 주오〉를 오래 전에 읽은 이라면, 그 후 20세기 초 인디언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문명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이 새와 나무와 풀들과 나누었던 영혼의 대화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현대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 또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출구가 될 터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문명은 거의 스러졌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지혜는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빛난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들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인간이 알아야 할 세상의 근본과 삶의 교훈을 일깨워준다.“당신이 태어났을 때 그대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그대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고 그대는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라.” 체로키족의 잠언이다. 손녀에게도 이 책을 읽히고 싶어졌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을 추천하고 사서 읽혀보라고 일러주었다. 얼마 후 아들 집에 들렀을 때 손녀의 서가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발견했다. 물론 영어로 된 원서였다. 10년 전 우리 부부가 중국애서 돌아왔을 때 그 애는 네 살의 꼬마였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기 때문에 그 애와 함께 지내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몫이었다. 우리 부부는 손녀와 함께 놀아주면서 할아버지는 한글을 가르치고 할머니는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그 애는 성경의 에스더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애는 책읽기를 좋아했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 손녀가 판타지 소설을 출간했다. 14살 짜리 중학생이 쓴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400쪽이 넘는 꽤 두께가 있는 공상소설이다. 전화를 걸어 격려해주고 언제 이걸 썼느냐고 물었더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갇혀 지내는 동안 틈틈이 썼다고 한다. 아이들은 쓰면서 자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쓰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거듭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궁리하면서 자란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문장 하나 쓰는 게 얼마나 고독한 작업인가를.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헤밍웨이는 옥탑방 창가에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봐.." 바로 내가 손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지민 기자영혼 할아버지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인디언식 생활방식
2022.04.20. 7:32
차고 문을 열었다. 거라지에는 식솔들의 삶이 만든, 희로애락의 길고 짧은 이야기들이 정차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차를 보관하는 공간인 거라지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쓸 물건들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곳에 넣었던 나의 게으름 탓에 그곳은 이제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해졌다. 꽉 찬 거라지 문을 열면 뒤죽박죽 엉킨 사연들이 세월의 순서조차 무시된 채 뻥튀기 기계 속의 팝콘들처럼 마구 튀어나온다. 거라지에 물건을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지자 집안은 삶의 군더더기가 쌓여만 갔고 빈구석마다 겹겹이 얹어졌다. 과거의 역사와 살아 있는 역사 사이에 교통정리가 절실했다. 서둘러 지난 세월에 채워진 것들을 비워내고, 매일 생기는 삶의 부스러기들을 그곳에 옮기기로 했다. 과거에서 탈피하여 현실로 그리고 미래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허공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듯이,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어쩌면 채워짐과 비워짐은 칼날의 양면같이 한몸인 듯도 싶다. 그러기에 동양화의 여백도 채워진 푸른 숲의 풍경과 함께 그림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는가. 오늘 아침 문득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가슴에 온갖 삶을 품은 탓에 정지된 채 미동도 못하고 서 있는 거라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거라지는 나를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세 시제에 다리를 걸친 채, 갖가지 희로애락의 감성이 포화상태로 채워져 숨이 멎을 듯 서있는 거라지는 바로 내가 아닌가. 오해와 집착, 아집과 애증이 만든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끝내는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이 정지된 차고가 되어 세상 한가운데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나. 새해를 맞으며 마음에 남은 어제의 찌꺼기를, 내일을 위해 정갈하게 정화시켜야겠다. 살라야 할 불순물이 많은 내 영혼에 정화의 불이 점화되면 그 불길은 삽시간에 커지고 거세질 듯싶다. 검붉게 타오를 아집과 편견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 하지만 한바탕의 거대한 소각이 끝난 뒤, 정화되어 생긴 빈 여백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하리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작은 나’에서 ‘큰 나’로 영혼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내 혼이 작은 나를 비워내 허공과 같아지면 세상에 품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슴을 허공같이 비워 주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빈 공간의 너그러움 때문일 듯도 싶다. 영혼의 거라지가 깨끗하고 맑게 비워지면 그곳에 넉넉한 선반을 달고 싶다. 그리고 그 선반 위에 ‘이해의 상자’ ‘소통의 상자’ ‘사랑의 상자’ 등 여러 개의 영혼이 따뜻해지는 상자들을 진열해 놓고 싶다. 그리하여 산골 옹달샘에서 솟는 끊이지 않는 샘물처럼 내 가슴의 거라지에도 끊이지 않는 포근한 사랑이 넘쳤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언젠가, 내 영혼의 거라지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 같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영혼 창고 집착 아집과 아집과 편견 갖가지 희로애락
2022.01.27. 18:56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1897. 삼베에 유채. 141x 376 cm, 보스턴 미술관) 폴 고갱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답을 찿지 못했다. 고갱은 알코홀 중독과 병마에 시달리며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 대작을 완성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1848-1903)은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창작에 몰두한다. 서구 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남쪽나라 낙원 타이티로 가서 원시적인 풍경과 원주민들의 순수한 모습을 강렬한 빛과 색채에 담았다. 자연은 고갱 예술세계의 무한한 원천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원주민들이 만끽하는 자유로운 모습은 그를 원시주의의 창시자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뇌에 가득 찬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1897년 사랑하는 딸을 잃은 고갱은 악화된 건강과 빈곤한 생활로 참담하고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데 죽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한 달이란 짧은 기간 동안 이 대작을 완성했다. 스스로 이 작품은 최악의 상항에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모든 열정과 영혼을 담은 작품이며 여태까지 그린 작품들을 뛰어넘는 역작이라고 자평했다. 그림 속에는 여러 군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인간의 탄생, 삶, 죽음 등을 담고 있다. 오른편 아래쪽 담요에 누워있는 아이는 출생을, 왼쪽에 두려움으로 움츠린 노인은 죽음을 상징한다. 건장한 모습으로 그림 중앙에서 과일을 따는 여인은 삶과 연관돼 있다.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가꾸는 것이라고, 절망과 고뇌 속에서도 축복의 열매를 따는 것이라고 고갱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화가 고갱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화목한 가정과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두고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모험을 떠난 기이한 화가의 행적을 그린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좇아 떠난 그에게 금전적인 여유는 없었다. 더럽고 낡은 호텔방에서 머무르며 하층민의 삶을 전전하던 스트릭랜드(주인공)는 곧 생활고에 몸져 눕게 되지만…’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달’은 화가가 추구하는 이상을 상징하고 ‘6펜스’는 사회 물질적인 재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의 귀착점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인지 모른다. 그 중간에서 고뇌하며 ‘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갱은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여인의 손에 잡힌 한 알의 과일이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인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갱은 생명과 죽음,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염원을 이 작품에 담고 있다. 우리는 낙원을 꿈꾸지만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갑고 냉정하고 투쟁해야 할 현재가 있을 뿐이다. 캄캄하고 어두워도 빛은 존재한다. 어둔 밤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길은 있다. 먼저 가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가면 큰 길이 된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바로 그게 바른 길이야. 넌 어디든 네 의지로 갈 수가 있어. 올바른 길이란 진리는 없어. 그러니 네가 스스로를 믿고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단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중에서. 왜 사는지 답할 수 없어도 생과 죽음 사이 오솔길 따라 오늘도 길을 간다. 길은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영혼 창작 영혼 창작 고갱이 자신 고갱이 우리
2022.01.25. 14:45
한국에서 존경받는 한 신부님께서 40대 중반의 여자분과 면담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고, 의사 말에 따르면 1년 이상 살 수 없다 했습니다. 자식도 두 명 있는 그분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신부님께서는 너무 안타까워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은 자기가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것이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 했습니다. 남편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애들도 다 대학에 갔기에 걱정할 것은 없으나 단 한 가지의 아쉬움이 있다 말했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자식을 돌보며 자기 인생을 살아왔는데, 남을 돌보기만 했지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했습니다. 우리는 남편, 아내, 가장, 어머니, 며느리, 회사의 사원 등 다양한 위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가족을 위해 주변 사람을 위해 살다가 참 나를 잊어버리고 살지 않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행기가 많이 흔들릴 때 산소마스크가 떨어집니다. 이때 주의사항이 나옵니다. 옆의 자식, 아내, 남편 등 다른 사람을 돕기 전 우선 자기가 먼저 마스크를 쓰라고… 부처님께서도 당신을 먼저 구원하신 후에 타인 구원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천하를 얻어도 네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 봅시다. 호주의 어떤 병원에서 일하는 임종 간호사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사람들이 죽기 전 무엇을 후회하는가에 관한 통계를 내어 보았다 합니다. 사람들이 임종 직전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난 단지 일만 했다” “난 타인을 원하는 삶을 살았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내 감정을 솔직히 말하며 살지 못했다” “어떤 이유로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렸다”였다고 합니다. 돈을 더 벌지 못해 혹은 세상에서 성공 못 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합니다. 임종 전에 우리가 인생을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볼 수 있기에 이런 말이 참으로 진리적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에게는 때가 늦은 것이지요. 우리가 마지막 임종 순간에 우리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마음이 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차를 멈추고 차 밖으로 나와서 방향을 재확인하거나 지도를 다시 봅니다. 차를 멈추고 내비게이터에 목적지를 다시 입력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을 근원적으로 되돌아보기 위해 또한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 위해 우리는 ‘멈추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선과 명상, 기도를 생활화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놓고 일요일 혹은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서 교회나 절 혹은 명상 센터에 가서 정신적으로도 재충전하고 성현의 지혜 말씀을 들음으로서 자기를 깊게 바라보고 인생의 방향을 항상 그리고 자기 생활을 끊임없이 재조정해야 합니다.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 일단 움츠립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한 번씩 시간을 내어 사람들이 없는 곳에 물러나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7일 입정, 7일 출정, 즉 일주일간 법문을 하신 후 다음 한 주는 묵언과 명상으로 쉬며 적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쁜 미국 대통령들도 휴가를 다 갑니다. 늦가을에 나무가 모든 잎을 떨어버리고 겨울 동안 나무의 에너지를 뿌리에 보내어 다음 해 봄 여름에 잎과 꽃을 활짝 피우는 준비를 하듯,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이런 재충전, 함축의 시간을 가집시다. 유도성 / 원불교 원 다르마 명상센터 교무삶과 믿음 천하 영혼 남편 아내 임종 간호사 자식 아내
2021.11.04.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