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소속 이름 테러리스트 그룹 영화 제목 영화 전체
2025.10.14. 20:27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흑백 필름 영화 전체
2022.11.25. 19:08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영화 전체 흑백 필름
2022.09.16.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