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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구해주세요"…6살 힌드의 마지막 외침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사실과 기록, 증언을 중심에 둔다. 허구적 서사보다 실제 세계의 파편을 모아 관객 앞에 제시하는 형식이다.     반면 드라마는 대본과 연기를 통해 현실을 닮은 이야기를 구성한다. ‘다큐드라마’는 이 둘의 경계에 선다. 실제 사건과 기록을 토대로 하되,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재연을 통해 감정적 몰입을 끌어낸다. 사실의 전달과 감정의 환기를 동시에 노리는 이 형식은 언제나 윤리적 질문을 동반한다.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의 '힌드 라잡의 목소리(The Voice of Hind Rajab)'는 바로 그 경계 위에 놓인 영화다. 이 영화는 전쟁, 폭력, 난민, 구조 실패라는 거대한 문제를 다루지만, 접근 방식은 극도로 개인적이다.   2024년 1월 29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구조대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발신자는 여섯 살 소녀 힌드 라잡이다. 가족과 함께 피난하던 중 군사 공격을 받은 차 안에서, 힌드는 홀로 살아남아 구조를 요청한다. 영화는 이 전화 통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면은 대부분 제한된 공간에 머물고, 관객이 듣는 것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다.   “무서워요, 제발 와주세요”   이 짧은 문장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증언이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장면은 따로 연출된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목소리 그 자체다. 과장된 음악이나 자극적인 편집은 필요하지 않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힌드의 불안에 찬 목소리, 그 자체로 충분히 잔혹하고, 충분히 압도적이다.   구조대는 즉각 출동을 시도하지만 군사 통제와 이동 허가, 안전 문제라는 관료적 장벽에 가로막힌다. 구조 센터 내부에서는 책임과 한계, 분노와 무력감이 뒤엉킨 대화가 오간다.     전쟁 상황에서 구조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는지, 그리고 그 지연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시간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결국 구급차는 출동하지만, 현장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연락이 끊겨 버린다. 이후 구조대 차량과 힌드가 갇혀 있던 차량 모두 폭격으로 파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2월 10일, 군이 철수한 뒤에야 시신이 수습된다.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단순한 비극 재현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이 죽음을 우연이나 불운으로 처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 아이의 죽음을 반복되는 구조 실패와 체계적 폭력의 결과로 제시한다.     실제 통화 녹음을 중심에 둔 선택은 이 작품을 허구가 아닌 '증언'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군사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종종 숫자와 통계로만 남지만, 이 영화는 그들에게도 이름과 목소리가 있었음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개인의 비극은 그렇게 공동체 전체의 비극으로 확장된다.   이 영화는 관객을 안전한 영역에 두지 않는다. 죽음에 직면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지켜보며, 그들이 처했던,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 결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사건은 가자지구에 일어난 일이지만, 영화는 또 다른 힌드 라잡이 세상 어디에든, 심지어 미국에도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보편성은 이 영화를 특정 지역의 비극을 넘어선 이야기로 만든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인상적이다. 와이드스크린 화면 안에서 대부분 단일 장소에 가까운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은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분노와 공감, 그리고 완전한 무력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밀도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극단적인 비극을 재연하는 방식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한 비판도 뒤따른다. 무엇보다 아이의 죽음을 영화로 재현하는 행위가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그 고통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위험 때문이다. 또한 감정적 충격이 지나치게 강해 관객에게 사유의 여지를 충분히 남기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분노와 적나라함은 강력한 효과를 낳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영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녹음과 배우의 연기를 함께 보는 경험은 관객을 전쟁의 참상과 감정적으로 씨름하게 하기보다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구조의 실패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이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질문을 제기하며, 이 작품의 의미가 단순한 감정 자극에 머물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지금 이 시점에서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영화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의 연출과 힌드 라잡 어머니의 동의라는 맥락 속에서, 이 작품은 인간성의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나쁜 모습을 동시에 응시한다.     작고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가자지구를 넘어, 세상 어디에서든 반복될 수 있는 인간 비극의 규모를 드러내는 면밀한 접근은 결국 강력하고 파괴적인 도움의 외침으로 확장된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약 24분간 이어진 기립박수는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정서적 반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계열 영화 가운데 평단의 집중된 주목을 받았고,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 지명 역시 유력하다. 튀니지의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출품작으로 현재 쇼트리스트에 올라 있다.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한 편의 비극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반복되는 폭력을 기억하게 하는 증언으로 남을 때, 영화는 비로소 존재 이유를 지닌다. 영화는 그 목소리를 관객에게 건네고, 어떤 해석도 덧붙이지 않은 채 물러선다. 의미 없이 죽임을 당한 한 아이의 마지막 흔적을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외침’으로 전환하며 폭력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호소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한 동정을 넘어 책임과 연대를 요구한다.     '힌드 라잡의 목소리'는 영화이기 이전에, 인류사의 비극을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매개에 가깝다. 다큐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영화가 어디까지 사회적 증언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증언의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전쟁으로 인해 침묵 당한 목소리에 대한 무력감과 우리가 사는 암울한 세계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힘!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외침 베니스국제영화제 영화 전체 전쟁 폭력 이후 구조대

2026.01.0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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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속’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소속 이름 테러리스트 그룹 영화 제목 영화 전체

2025.10.1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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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흑백 필름 영화 전체

2022.11.25. 19:08

[그 영화 이 장면]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영화 전체 흑백 필름

2022.09.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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