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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속’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들

Los Angeles

2025.10.1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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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논설실 기자

조원희 논설실 기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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