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한국전쟁 무명용사의 유해를 발굴해 신원을 확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6일 군사 전문지 ‘스타스 앤 스트라이프스’에 따르면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한국전쟁 무명용사 유해의 발굴을 육군에 공식 요청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최근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명용사의 신원을 확인할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켈리 맥키그 DPAA 국장은 이날 “해당 무명용사의 신원을 확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알링턴 국립묘지 측에 유해 발굴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DPAA는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약 7400명 중 94%에 달하는 실종자 가족의 DNA 표본을 확보한 상태다. 맥키그 국장은 “최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사망자와 최대 4세대 떨어진 친족의 표본으로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알링턴 국립묘지의 유해 발굴 작업은 하와이 호놀룰루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안장된 한국전쟁 무명용사 유해 발굴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된 이후 시작될 예정이다. 숀 에버렛 DPAA 대변인은 “하와이에서 유해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알링턴 국립묘지를 관할하는 육군에 유해 발굴 요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DPAA가 하와이 묘지에 안장돼 있던 한국전쟁 무명용사 유해 약 900명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수년간 진행해 온 유해 발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가 될 전망이다. 앞서 연방의회는 1956년 한국전쟁 전사자 중 신원 미상의 미군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 인근에 안장하도록 의결했다. 당초 무명용사의 묘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유해만 안장돼 있었다. 이에 따라 1958년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있던 한국전쟁 무명용사의 유해가 워싱턴DC로 운구됐다. 이 유해는 제2차 세계대전 무명용사 유해와 함께 연방의회 의사당에 안치된 뒤 운구 마차를 통해 알링턴 국립묘지로 옮겨졌으며, 장례식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이 직접 주관했다. 국방부가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유해를 발굴해 신원을 밝혀낸 사례는 전에도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1984년 안장됐던 베트남전쟁 무명용사 유해를 1998년 발굴해 조사한 결과, 공군 중위 마이클 블래시로 신원이 확인됐다. 블래시 중위의 유해는 이후 고향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의 제퍼슨배럭스 국립묘지에 재안장됐다. 한편 베트남전쟁 무명용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던 묘실은 현재 비어 있는 상태며, 해당 묘비에는 “미국의 실종 장병을 기리고 그들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강한길 기자이름 영웅 한국전쟁 무명용사 알링턴 국립묘지 세계대전 무명용사
2026.09.17. 22:17
LA카운티 정부가 고용주들에게 엄격히 준수하라고 요구해 온 최저임금. 정작 당국 스스로 고용주의 입장에 서자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LA카운티 선거관리국이 현장 선거관리원 모집에 나섰다.〈본지 8월 27일자 A-1면〉 관련기사 LA카운티, 선거관리원에 ‘반값 시급’〈15시간 기준 시간당 6.67달러〉 일당은 100달러다. 선거 기간 10일을 모두 근무하고 사전 교육까지 이수하면 1000달러가 넘는 돈을 받게 된다. 언뜻 액수만 보면 제법 쏠쏠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 근무시간을 들여다보는 순간 얘기는 달라진다. 선거관리국이 밝힌 하루 평균 근무시간인 14~15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수당은 카운티 최저임금(시간당 18.47달러)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거관리국은 지원자를 ‘자원봉사자’로 간주한다. 그러면서 모집 공고에는 참여 혜택으로 ‘하루 수당 100달러’와 ‘민주주의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역할 수행’ 등을 내세웠다. 자원봉사라는 명분을 앞세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헐값 수당을 정당화하려는 모양새다. 더욱이 지원자가 사전에 반드시 숙지해야 할 실제 근무시간은 정작 모집 공고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공고 하단 구석에 있는 별도의 질의응답(Q&A) 페이지까지 찾아 들어가야 겨우 확인할 수 있다. ‘남는 시간에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가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공고에 적힌 한 문구는 씁쓸함마저 자아낸다. ‘선거관리원과 지역사회가 얻는 보람은 헤아릴 수 없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주면서 뒤에 덧붙인 ‘헤아릴 수 없는 보람’이라는 구절은 턱없이 부족한 보상을 덮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시민에게는 헌신을 요구하면서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에는 인색하다. 정부 기관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보람’을 운운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송윤서 사회부 기자취재 수첩 민주주의 이름 헐값 노동 la카운티 선거관리국 헐값 수당
2026.08.27. 22:48
비율빈, 서반아, 오란다, 오지리, 서서, 향항, 로서아…. 아마, 이런 나라 이름을 요즘 세대는 모를 것이다. 필리핀,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홍콩, 러시아라고 부르면 금방 알 것이다.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불렀다. 중국이나 일본의 한자 표기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그러다 국제화가 되면서 제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미국, 영국, 독일, 중국, 호주, 일본, 이태리 등은 아직도 옛날식 그대로 부른다. 프랑스, 불란서처럼 양쪽을 다 쓰는 경우도 있다. 사물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그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를 의미한다. 특히, 고유명사는 중요하다. 사물의 정체성이나 역사적 배경 등 고유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부르느냐는 부르는 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말해주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역을 로스앤젤레스라고 부르느냐, 엘에이라고 부르느냐, 나성이라고 부르느냐, 또는 ‘서울시 나성구’라고 부르느냐에 따라 심리적 거리나 친밀감이 달라진다. 다른 말로 하면 엘에이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영향력도 제법 있으니 한국식으로 ‘나성’이라고 친근하게 불러도 될 것이라는 심리가 깔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고, ‘서울시 나성구’라는 다소 도발적인 낱말도 눈길을 끄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샌프란시스코를 ‘상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미국의 도시를 우리식으로 부르는 예도 없는 것으로 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를 미국(美國), 즉 아름다운 나라라고 부르는 것과 아메리카나 USA로 부르는 것 사이에는 심리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한편, 한자 문화권인 동양 3국에서는 고유명사의 교통정리가 좀 복잡하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인물은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고 ‘이등박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촌상춘수(村上春樹)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이태백 등은 어떤가?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전공인 동양미술사를 공부할 때 영어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데 화가나 인물들의 이름 표기가 그동안 익혔던 것과 생판 달라서 크게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공자, 맹자, 노자 같은 것도 다르니 정말 정신이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고유명사는 이름이다. 김춘수 시인이 명시 ‘꽃’에서 노래한 것처럼 이름을 불러줘야 비로소 내게 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주변의 자연에 미안하기 짝이 없다. 꽃이나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정작 이름을 아는 것은 몇 가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은 나의 세계 안에서 선명한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 이름 부르기는 바깥에 있던 타자를 불러와서 우리의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김지연 미술평론가 ‘등을 쓰다듬는 사람’에서 젊은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침팬지를 관찰하면서, 늘 살펴보는 침팬지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가 학계 원로들의 비난을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기존의 학계에서는 과학적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관찰의 대상인 동물들을 번호나 기호로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만큼, 과학연구에 인간적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동물 연구 분야의 학문적 새 지평을 연 것은 자기가 관찰하는 대상에 이름을 붙여 부른 제인 구달 박사의 열린 마음과 사랑이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고유명사 이름 나라 이름 이름 표기 정작 이름
2026.06.25. 18:43
사십이 다 된 어머니에게 이미 자식 다섯이 있었다. 그녀에게 내가 들어선 것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맏며느리라 시부모를 모시고 시동생 시누이가 각각 셋이나 있었으니까. 내가 세상에 나오자 아버지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라는 뜻이었는지 ‘미래’ 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름다울 미(美), 올 래(來).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이름은 미래였다. 처음 학교에 갔더니 내 이름이 없었다. 대신 정미애(鄭美愛)라는 이름이 있었다. 동사무소 서기였던 막내 삼촌이 간난 여자아이 이름으로 아름답고(美) 사랑스럽다(愛)가 더 나았는지 마음대로 그 이름을 호적에 올린 것이다. 그 후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과 가족이나 동네 친구들이 부르는 두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때 이사를 했다. 그 동네를 뜨자 나를 미래로 부르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로 한정되었다. 점점 나는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미래’라는 이름을 비밀스럽고 숨겨진 보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친한 친구나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특혜라도 주듯 은밀하게 그 이름을 알려 주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지키지 못했다. 일찍 사회로 나가 일하게 된 곳은 호텔이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여성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호텔에 들락대는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 내 위상도 올라가거나 내려갔다. 서울손님들은 나를 미스 정이라 불렀고 지방에서는 정양으로 불렀다. 서울 조선 호텔 예약부에 입사하자 부장이 ‘아그네스 정’라는 이름을 내게 주었다. 그때 조선 호텔은 미국 프렌차이즈 회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미국인 이사나 매니저들이 한국 직원들 이름을 기억하기도, 부르기도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본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사하듯 영어이름을 만들어 미국 직원들에게 부르기 쉬우라고 던져 준 부장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본 제국이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민족적 전통을 확립하고자 투쟁한 조선인의 후예가 아닌가. 다행히 그 이름은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았다. 퇴사하면서 나와 상관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왜 부장이 내게 아그네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한 미국 손님이 명찰에 쓰여 있던 나의 영문 이름, M.I.A.E를 ‘마야’로 읽었다. 또 다른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운명처럼 나는 그 이름을 덥석 물어 버렸다. 그것이 미국까지 나를 밀어붙인 것인지, 따라 왔는지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나는 ‘마야’였다. 미국인들은 남의 이름을 자기네들이 부르기 쉽도록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의 고유 이름을 기억하고 제대로 부르려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당신의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하고 있느냐’고도 묻는다. 세월은 내게 또 다른 이름을 내밀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옮겨야 할 때가 되자 다시 이름이 바뀔 위기가 온 것이다. 부동산 에이전트 라이선스를 따고 새 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때는 한국 신문에 에이전트의 사진과 함께 가명으로 부동산 광고를 낼 수 있었다. 얼마 후 광고에 에이전트의 법적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법이 바뀌었다. 한인 사장이 내게 광고에 낼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미국에서 15년 넘도록 사용한 내 이름 ‘마야’는 인류에서 망해 사라진 마야 문명의 잔재라고 했다. 그 이름으로는 부동산업계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다. 내게 아그네스라는 이름을 던져 주었던 부장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무슨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겠느냐고 그에게 되물었다. 사장이 ‘에이미’라는 이름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또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사장의 촉’이라고 했다. 분명 부동산 에이전트로 성공하게 될 것이란다. 나는 단호하게 NO! 라고 대답했다. 그의 촉이라는 것이 찬란했던 마야 문명보다 훨씬 더 형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986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내 손에는 한국정부에서 발급해 준 여권이 들려있었다. 그 여권 속에 이미 내 성씨(姓氏)가 ‘애들란드(Edlund)’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의 성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가족을 철저히 떠나야 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멀리 와야 내 지난 허물을 벗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살다보니 이름도 바뀌고 성까지 바뀌었다. 결혼한 한국여자에게 시집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며느리에게 성씨를 내주지 않는다. 한국 며느리들은 친정 성을 가지고 있지만 친정으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친정 대문은 그녀들에게 다시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어떤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떠돌이 같은 한국여성의 운명이었다. 애들란드 가문이 그들의 성씨를 내주며 나를 가족일원으로 맞아 들였다. 나는 더 이상 정양도 아니고 미스 정도 아닌 미시즈 애들란드(Mrs. Miae Edlund)다. 성씨까지 받았으니 진정 이집 귀신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죽어 구천을 떠돌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내 인생에 아름다운 것이 도착하기를 바란다며 ‘미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 이름은 어떤 서류에도 없다. 이름을 지으며 늦둥이 막내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을 내 아버지. 자신이 지어 준 딸의 이름이 속수무책으로 바뀐 것을 알았을 때 정말 그는 아무렇지 않았을까. 왜 이제야 섭섭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고 싶어지는 것일까. “아버지, 제가 비록 ‘미래’라는 이름은 잃어 버렸지만 ‘마야’라는 이름에 당신의 성씨를 붙이겠습니다.” 미국에서 ‘마야’라는 이름 또한 별명이었고 가명이었고 애칭이었다. 나는 ‘마야 정’이라는 이름을 나의 필명으로 정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 온 이야기를 쓴 인물이다. 나는 그 안에 존재한다. 마야 정 / 수필가문예마당 변천사 이름 영문 이름 법적 이름 고유 이름
2026.06.04. 18:41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배반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경건한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이것은 역사의 경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다. 인류가 선과 악을 처음 신학의 언어로 갈라놓은 것은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였다.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어둠의 신 아흐리만, 그 사이에서 인간은 반드시 한편을 선택해야 한다. 이 이원론은 강력하다.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적을 선명하게 만들며, 자신의 편에 절대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강력함 때문에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악은 언제나 이 문법을 빌려 자신을 신성하게 포장했다. 히틀러는 이 점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신이 우리와 함께(Gott mit uns)’를 군인들의 혁대에 새기고 아리아인을 빛의 편에, 유대인을 어둠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더 노골적인 것은 “하일 히틀러(Heil Hitler)”였다. ‘하일(Heil)’은 독일어로 구원을 뜻한다. 예배에서 “주께 구원을(Heil dem Herrn)”이라 노래하던 바로 그 단어가 히틀러를 향한 경례 구호가 됐다. 군중은 예배의 문법으로 인간을 경배하고 있었다. 루터의 언어가 나치의 언어가 된 것처럼, 신성한 어휘가 인종적 증오의 포장지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문법은 죽지 않았다. 2020년과 2024년 미국 대선 당시 플로리다와 텍사스의 대형 복음주의 교회들은 특정 후보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선포했고, 이는 한인 교회 강단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단순한 위선자로 보는 것은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은 진짜다. 가정이 무너지고, 아이들이 이념의 실험 대상이 되고, 교회가 사회적 압력 앞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 앞에서, 그들 자신이 스승으로 삼는 프란시스 쉐퍼가 일찍이 경고했던 “기독교 문명의 붕괴”가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 믿음 위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찾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신앙적 반응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두려움이 클수록 구원자를 향한 갈망은 더 커지고, 그 갈망이 클수록 구원자의 결함을 보는 눈은 더 좁아진다. 신앙이 분별력을 낳아야 할 자리에서, 두려움이 맹목을 낳는다. 그리고 그 맹목 위에서 예수의 이름은 가장 크게 울리고, 예수의 복음은 가장 조용히 배반당한다. 예수는 경고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양의 옷이란 나쁜 의도가 아니다. 가장 선한 의도, 가장 확신에 찬 신앙이다. 라인홀드 니버가 경고했듯, ‘집단적 자기 의(collective self-righteousness)’는 개인의 죄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것은 양심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자신이 빛의 편이라는 확신이 깊을수록, 그 확신이 만들어내는 폭력은 더 순수해진다. 신앙의 분별력이란 이것을 아는 것이다. 빛과 어둠을 가르기 전에 나 자신이 지금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배반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묻는 용기다. 그 용기는 자신의 공동체에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질문을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금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신앙적 의심을 환영하는가, 아니면 침묵을 요구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그 공동체가 예수를 따르는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지를 가르는 가장 정직한 시금석이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성서로 세상 읽기 이름 신의 이름 하일 히틀러 신앙적 의심
2026.05.19. 19:39
조건 없는 사랑과 호의를 받아 본 기억이 많다. 그때의 상황도 호의를 베푼 사람도 기록해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과 친절한 음성은 마음에 새겨져 있다. 수 많은 그들의 존재가 나의 삶을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민자로 살면서 인종을 초월해 받았던 호의와 돌봄은 교회와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내가 병원 환자와 그 가족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동안 받았던 호의를 돌려주기 위함이다. 성서는 십자가 사랑을 통해 영원한 소망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록했다. 이 거룩한 돌봄으로 우리가 삶의 도전에 마주하며 갈 수 있게 하신다. 의료계에서 5월은 ‘정신건강인식 의 달(Mental Health Awareness Month)’이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 워크숍도 진행된다. 큰 주제 가운데 하나가 정신건강은 모두의 과제이며, 사랑하는 사람의 돌봄이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치유 방법이라는 것이다. 삶의 환경이 점차 더 거친 광야의 모습으로 변하는 이 시대에 귀 기울일만한 임상 결과다. 농산물 생산 증가와 다양한 교육 기회, 그리고 의학 발전은 인류에게 기여한 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가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던 시절의 기억은 그저 지나쳐 온 삶의 모습일 뿐인 것일까. 현대인이 맞이하는 외로움과 정신건강의 도전은 어디에서 오는가. 5월은 ‘어머니 날’이 있는 달이다. 이날은 형언하기 어려운 큰 감사와 추억이 동시에 찾아온다. 어머니의 사랑과 돌봄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지만 이를 일찍 깨닫지 못했고, “어머니의 사랑 고맙습니다”란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철이 들어 어머니를 돌봐 드리려 했더니 그분은 벌써 떠나고 창밖의 나뭇가지만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구나’라는 문구가 아프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숭고한 돌봄을 왜 일찍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인생의 철이 드는 것은 이다지도 느린 것인가. 병원 원목의 돌봄 가운데 가장 진지하고 소중한 시간은 임종환자 방문이다. 환자는 병상에서 다 이루지 못해 남기고 가는 다양한 삶의 일들을 회고하게 된다. 그 삶의 못다 한 일 가운데서도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머니에게 사랑의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돌봄을 일찍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문을 마칠 즈음,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약속하신 그 크신 사랑과 생명의 언약을 다시 영혼에 새긴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 함께 할 그 이름 ‘어머니’, 참으로 귀한 이름, 잊지 못할 이름이다.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가정이나, 그리워하는 가정 모두 그 분의 큰 사랑과 돌봄을 깊이 느끼는 5월이 되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원목 협회 디렉터이아침에 어머니 이름 어머니 마지막 십자가 사랑 상황도 호의
2026.04.30. 18:55
네가 내게 지어준 이름이 너무 좋아서 바닷가 등대 꼭대기에 붙여 놓았다 밤이면 시꺼먼 바다 갈 길 잃은 배들 앞길을 밝히며 어둠을 사른다 바래지 말라 빛나는 이름이여 오늘도 나는 너를 닦으러 간다 이상훈 / 시인·수필가문예마당 이름 바닷가 등대
2026.04.16. 18:41
최근 뉴욕이나 파리의 중심가에서 한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외국인 고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언어의 혼란’이다. 한식 세계화를 위한 수많은 전략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 음식을 알리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이름이 제각각인 점은 뼈아픈 실책이다. 매일 식당 현장에서 타민족 고객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은 통일되지 않은 메뉴판이다. 대표적인 K-푸드인 떡볶이만 하더라도 식당마다 Tteokbokki, Topokki, Dukboki 등 표기가 천차만별이다. 일본 스시(Sushi)나 멕시코 타코(Taco)가 세계인의 머릿속에 하나의 고유명사로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고 직관적인 단일 표기 덕분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직관적이고 발음하기 쉬운 통일된 영문 표기법은 한식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이름이 통일되지 않은 브랜드는 결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명칭 통일을 미루는 사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전 세계 검색 엔진과 SNS, 배달 플랫폼에서 한식 메뉴명이 제각각으로 분산되면서, K-푸드에 대한 빅데이터 집계와 마케팅 효율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명칭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는 해외 마케팅 비용의 누수와 브랜드 인지도 손실은 엄청나다. 이는 마치 하나의 브랜드를 수십 개의 가짜 이름으로 광고하며 스스로 브랜드 파워를 갉아먹는 꼴이다. 국가 차원의 디지털 표준화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홍보 예산 투입이 반복될 뿐이다. 한국 정부는 이제 학술적인 한국 음식 명칭 사전을 만드는 안방 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실제 영업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 해외 한식당들이 통일된 명칭을 일제히 도입할 수 있도록 ▶표준 명칭이 적용된 다국어 표준 메뉴판과 키오스크 같은 디지털 인프라 무상 지원 ▶표준안에 맞춰 메뉴판을 교체하는 영세 한식당에 대해 교체 비용 일부 실비 지원 등의 강력한 지원책과 인센티브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필자가 해외에서 오랜 세월 외식업 컨설팅과 식자재·장비 사업을 하며 깨달은 진리는 명확하다. 이름표가 제대로 붙지 않은 상품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한식은 이미 맛과 건강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제는 그 훌륭한 콘텐트에 걸맞은 ‘이름표’를 제대로 붙여줄 때다. 그것이 바로 한식 세계화의 정점을 찍는 마지막 퍼즐이자, 국가 브랜드 자산을 지키는 길이다. 김종훈 외식업 컨설턴트·전 미 동남부 한인외식업협회 회장발언대 시급 이름 명칭 통일 한식 세계화 가짜 이름
2026.04.12. 8:00
샌퍼낸도밸리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신분 도용 피해를 당해, 제3자가 그의 이름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 일을 하며 수천 달러의 소득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의 배우자에 따르면, 최근 우편으로 도착한 우버 환영 안내문을 통해 사기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됐다. 해당 안내문에는 신규 운전자로 등록하는 절차가 담겨 있었지만, 가족 중 누구도 운전자로 지원한 적은 없었다. 이후 국세청에서 발송된 세금 서류를 통해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신분 도용범이 피해자의 이름과 사회보장번호를 사용해 우버 운전자로 활동하며 상당한 수입을 올린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해당 소득이 피해자 명의로 신고돼 세금 문제까지 떠안게 됐다. 피해 가족은 우버 측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명확한 설명이나 즉각적인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회사 측이 ‘운전자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계정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피해 복구 과정도 쉽지 않았다. 가족은 경찰 신고는 물론, 국세청과 주 세무 당국에 연락해 신분 도용 사실을 소명해야 했으며, 세금 기록을 바로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사건은 차량 공유 서비스 운전자 검증 절차에 대한 우려도 불러일으켰다. 피해 가족은 운전자 신원 확인과 배경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플랫폼 이용을 중단하고 자녀들에게도 사용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신분 도용 피해 지원 단체 관계자는 이번 사례가 ‘고용 관련 신분 도용’의 전형적인 예라며, 앱 기반·비대면 일자리가 늘면서 이러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금 신고 기간을 전후해 본인이 벌지 않은 소득에 대한 세금 서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세금 서류를 받았을 경우 즉시 국세청에 신고하고, 신용 동결, 개인 식별 번호 설정, 이중 인증 활성화, 비밀번호 변경 등 추가적인 보안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버 측은 해당 사안을 전문 지원팀에 이관해 조사 중이며, 피해자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서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AI 생성 기사이름 운전 신분 도용범 운전자 개인정보 세금 서류
2026.02.14. 6:00
LA 한인타운 남쪽 10번 프리웨이와 연결되는 주요 도로 가운데 하나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러바드(Martin Luther King Jr. Blvd, 이하 MLK Blvd)다. 이 도로는 서쪽 끝이 볼드윈 빌리지 지역의 오바마 불러바드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사우스 알라메다 스트리트까지 이어진다. 현재는 LA 남부를 관통하는 간선도로로 기능하지만, 이 길이 지금의 이름을 갖기까지는 긴 역사가 있다. 이 도로의 원래 이름은 샌타바버러 애비뉴(Santa Barbara Avenue)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00년 이전에는 ‘40번 도로’로 불렸으며, 당시에는 버몬트 애비뉴와 연결되는 비교적 작은 도로 중 하나였다. 이 도로명이 바뀐 계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LA 시의회는 1982년부터 도로명 변경을 추진했고, 이듬해인 1983년 1월 15일, 킹 목사의 54번째 생일을 맞아 공식적으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러바드로 개명했다. 당시 시의원 로버트 C. 패럴이 개명 작업을 주도했는데 시민 반대가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었다. 새 도로 표지판 정비 등으로 약 6만4000달러가 필요하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LA시는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적 중심축이었던 이 도로에 킹 목사의 이름을 붙이는 결정을 내렸다.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옳지 않은 일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3대째 이어진 목사 가정의 영향 속에서 그는 신학과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첫 전환점은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덱스터 애비뉴 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몽고메리는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바로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 여사의 버스 좌석 거부 사건이다. 로자 파크스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이 사건은 곧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확산됐다. 킹 목사는 이미 그해 여름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의에서 로자 파크스를 만난 인연이 있었다. 당시 그는 초청 강사였고, 로자 파크스는 협회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버스 보이콧 운동은 무려 381일간 이어졌다. 당시 몽고메리의 법은 버스 좌석을 백인석과 흑인석으로 나누고, 공용석에 앉은 흑인도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양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흑인은 요금을 앞문에서 낸 뒤 다시 내려 뒷문으로 타야 했고, 운전사는 반드시 백인이어야 했다. 이 부당한 제도에 처음으로 집단적 저항이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운동이었다. 젊은 목사 킹은 비폭력 저항 원칙 아래 이 운동을 이끌었고,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중교통에서의 인종 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로자 파크스는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마틴 루터 킹은 전국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킹 목사는 학문적으로도 탁월했다. 15세에 모어하우스 대학에 조기 입학해 사회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크로저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학생회장을 지냈다. 이후 보스턴대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과정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코레타 스콧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1960년 애틀랜타로 돌아와 에벤에셀 침례교회에서 아버지와 공동 목회를 이어갔으며, 전국 각지에서 인권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이 과정에서 옥중에서 쓴 공개서한은 그의 비폭력 저항 철학을 집약한 문서로 평가받는다.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문장은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같은 해 워싱턴 대행진에서 발표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은 미국 인권운동의 정점으로 남았다. 이어 1965년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이어진 투표권 행진은 투표권법 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써 미국의 법적 인종차별 시스템은 사실상 해체됐다. 그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말년에는 빈곤 문제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앞장섰다. 사생활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과 실천은 그 모든 평가를 압도한다. 오늘날 그는 세대와 인종, 종교를 초월해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 미국은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의 날’로 지정해 그의 정신을 기린다. 미국 전역에는 수많은 기념관과 도서관, 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1000개가 넘는 도로와 고속도로가 그의 이름을 달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여러 도시에서도 어김없이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LA의 MLK 불러바드도 그 긴 역사와 기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길 위의 인문학 이름 길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로자 파크스 당시 몽고메리
2026.01.15. 19:32
연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친척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연례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마련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작년 선물을 하나씩 떠올리며 올해는 누구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며 준비하게 된다. 각각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하고 교환이나 환불할 수 있는 물건을 골라 포장하여 우체국을 통해 보낸다. 같은 방식으로 내게 전해지는 선물은 성탄일 아침에 풀어본다. 때로는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성가신 물건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로 기쁨이 더해지길 바라며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웃어른이 올해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일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이메일로 전해왔다. 자본주의 극대화를 돕는 경제행위를 끝내자는 이유도 포함돼 있었다. 내게 맞지 않은 기성품을 입는 듯 마땅치 않았던 성탄절 행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 생산된 상품은 소비자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 마케팅으로 성탄절을 앞둔 매출은 일 년 중 최고를 기록하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론을 앞세우며 소비를 부추겨 온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작은 선물까지 금지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거실 한쪽에 첼로가 세워져 있었다. 궁금해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내 손발이 되어 24시간 같이 있던 사람이 언제 나가서 저 악기를 사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떨린 목소리와 촉촉해지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미술을 공부했던 어머니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첼로를 배우고 싶었지만 다섯 아들을 키우며 살림을 돌보는 사이 세월은 흘렀다. 해보지 못한 아쉬움을 알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첼로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몇 차례 수업을 받아보려 했으나 노인성 손가락 관절 통증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첼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내 남편 차지가 되었다. 내가 받은 선물도 아니건만 첼로를 볼 때면 두 분의 애틋한 크리스마스 사랑 이야기가 생각나 마음이 훈훈해진다. 나에겐 이맘때면 집에서 담은 김치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 가끔 마켓에서 김치를 사다 먹는 내게는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나 역시 몇몇 이웃이나 친구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크리스마스 즈음에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고받는 선물은 단순히 소비를 조장하는 일이 아닌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일이 아닐까. 선물을 주고받지 말자는 집안 어르신의 지엄하신(?) 분부가 있긴 하지만, 나는 올해도 이웃에게 줄 내 방식의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선물 속에 들어있을 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될 성싶어서이다. 이정숙 / 수필가이아침에 선물 이름 크리스마스 선물 작년 선물 크리스마스 사랑
2025.12.29. 19:19
‘흑인 공동체, 백인 가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란 한 아들의 회고’는 내가 집필 중인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의 부제다. 독자들은 아마 내 칼럼 말미에서 이 제목을 이미 보았을 것이다. 나는 디트로이트 외곽의 흑인 공동체, 미시간주 잉크스터(Inkster)에서 자랐다. 주민들은 이곳을 ‘잉크타운’이라 불렀다. 우리 가족은 그 동네에서 유일한 백인 가정이었고,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반에서 유일한 백인 아이였다. 나는 그 경험에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쓰는 예술 관련 글들은 모두 그 성장 배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예술관에 깊이 빠져든 경험은 십대 시절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위니프레드 하지(Winifred Hodge)가 나를 디트로이트 미술관(DIA)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회화와 조각을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설명해 주었고, 추상미술의 장벽을 허물어 주었다. 그 경험은 내 삶에 큰 기쁨과 충만함을 안겨준 평생의 예술 사랑으로 이어졌다. 고향에서 만난 또 다른 인물 크리스티나 스미스(Christina Smith)는 나를 현대무용과 발레 공연에 자주 데려갔다. 그를 통해 나는 신체를 통한 예술적 표현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정들이 있을 때, 무용은 그것을 깊이 있게 표현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삶을 바꾼 인물은 또 있다. 가족을 제외하면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학창 시절 친구 마크 웰스(Mark Wells)였다. 마크는 나의 음악적 멘토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전업 음악가로 활동하다가 최근 반은퇴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사실 ‘멘토’라는 말로는 마크를 다 담아내기 어렵다. 내가 무용을 안무하거나 그림으로 그를 표현할 재능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작가로서 나는 영감, 관대함, 인내, 그리고 끝없는 격려 같은 단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크와 나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며 말과 음악으로 긴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미시간주 잉크스터의 스타더스트 럭셔리 라운지에서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마다 열리는 ‘잉크타운 잼 세션’을 함께 주최하고, 무대에도 함께 오른다. 디트로이트 인근에 올 일이 있다면 꼭 들러보길 권한다. 마크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분명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는 미술관 강연과 투어를 즐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잉크스터에서 씨앗이 뿌려지고, 뉴욕에서 가꾸어졌으며, 한국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은 이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에 대한 사랑은 나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 넘쳐난다. 그래서 이를 독자들과 나눌 수 있게 해준 것에 감사한다. 예술의 복음을 전하는 내 설교를 견뎌줘서도 고맙다. 새해를 맞으며, 2025년 첫 주에 이 칼럼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읽어준 모든 독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특히 이메일로 글에 대한 소감을 보내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미국과 한국에 이토록 많은 예술과 문화의 애호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불안정과 외국인 혐오, 과학 부정,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인종차별, 폭력적 여성혐오 인물에 대한 미화, 자금과 박수 속에 자행되는 집단학살, 그리고 환멸과 냉소에 빠지기 쉬운 수많은 유혹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도, 예술이 상처를 치유하고 간극을 잇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문학과 음악, 무용과 시각예술은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더 나은 길을 보여줄 힘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술은 이해를 낳고, 그 안에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 있다. 이것이 내가 잉크타운에서 배운 변하지 않는 교훈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미리 전한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페이스북(Facebook.com/RobertWTurley)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잉크타운 이름 공연예술과 시각예술 예술 사랑 예술적 표현
2025.12.24. 19:42
해마다 연말이면 신문에 단골로 실리는 것이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 인사’라는 기사다. 우리와 친숙했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던 그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올해도 많은 유명 인사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국제적인 인물로는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며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이태리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01~2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 세상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모든 활동과 지향의 뿌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 2014년 한국 방문 때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만났고,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장애인들도 만났다.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도 올해 별세했다. 현대 건축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 게리는 “건축은 인간 삶의 혼란과 감정, 민주적 정신을 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연예인으로는 지난 11월2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이순재를 비롯해,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미녀배우 김지미, 원로배우 윤일봉, 코믹 감초연기로 유명한 배우 남포동,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한명숙, ‘쨍하고 해뜰 날’의 가수 송대관, 개그계의 맏형 전유성, ‘우정의 무대’ 사회자로 군인들의 큰 형님으로 알려진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 연극무대와 방송에서 활동한 배우 이주실, 배우 김새론, ‘명랑운동회’ 사회자로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국회의원을 지낸 변웅전 등이 올해 별세했다.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이순재는 69년 연기 인생을 후회 없이 살다간 ‘평생 현역’ 배우로, 노력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철학, 확고한 직업의식을 통해 후배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정부는 고인에게 문화 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미국의 인기인으로는 할리우드의 대표적 미남배우 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 ‘프렌치 커넥션’, ‘포세이돈 어드벤쳐’ 등의 영화에서 개성적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진 해크먼, 영화 ‘대부’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고 우디 앨런 감독의 ‘애니 홀’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다이앤 키튼, ‘킬링 미 소프틀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로버타 플랙 등이 올해 타계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폴 뉴먼과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의 할리우드 스타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선댄스 영화제’를 만드는 등 영화계 발전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던 ‘할리우드의 위대한 별’이었다. 한편, 한국 문화예술계의 인사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섬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섬 시인’ 이생진, ‘엉겅퀴꽃’, ‘철원 평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노래한 민영 시인, 소설가이며 시인, 화가로 활동한 윤후명 작가, 재일동포 소설가로 1972년 외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 등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얼과 정신을 담은 사진으로 인간의 근원을 탐구한, 특히 예술가 초상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육명심, 한국화가 홍석창 등도 올해 타계했다. 또한, 제3세계 최고 권위의 로터스 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박경리 문학상 등을 수상한 케냐의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 응구기 와 시옹오, 소설 ‘천상의 푸른 빛’ 수필집 ‘노인이 되지 않는 법’ 등의 저자인 일본작가 소노 아야코 등이 올해 별세했다. 미주 문인으로는 시인 겸 소설가 곽상희 작가, 김신웅 시인, 조만연 수필가, 김태영 동화작가, 손명세 시인, 영어 교재 저술가이며 소설가로도 활동한 조화유 작가 등의 원로 문인들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원로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울 젊은 문인들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한인사회의 따스한 관심도 절실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름 국민배우 이순재 미녀배우 김지미 프란치스코 교황
2025.12.18. 20:25
100만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확률을 뚫고 태어난 신생아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아기의 이름을 LA 다저스의 한인 에이스였던 류현진 선수의 성에서 따온 사연이 눈길을 끈다. 가주 베이커스필드에 거주하는 앤드류 로페즈와 수즈 로페즈 부부는 지난 8월 18일 LA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아들 류(Ryu)를 얻었다. 의료진에 따르면 수즈는 수정란이 자궁이 아닌 복강에서 자라는 ‘자궁외 임신’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산모와 태아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극히 드문 사례로, 담당 의료진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백만분의 1보다 훨씬 낮다”고 설명했다. 수즈는 난소에 22파운드에 달하는 대형 난소 낭종(물혹) 제거 수술을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로 임신 여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그는 이후 두 차례 추가 검사를 했고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다. 수즈는 남편 앤드류의 간호대 마지막 학기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다저 스타디움에서 이 소식을 깜짝 발표했다. 하지만 경기 관람 도중 수즈는 복부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태아가 이미 만삭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료진은 8파운드가 넘는 태아가 양수 없이 복강 내에 자리 잡은 극히 이례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대형 낭종 뒤에 가려져 있던 태아를 꺼내기 위해 긴급 수술에 돌입했다. 수술 과정에서 수즈는 4.7리터에 달하는 출혈을 겪었지만, 의료진의 신속한 대응으로 생명을 건졌다. 신생아 역시 집중 치료를 거친 뒤 건강을 회복했다. 아버지 앤드류는 아들의 이름을 ‘류’로 지은 이유에 대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장소가 다저 스타디움이었고, 다저스를 대표했던 투수 류현진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윤재 기자류현진 이름 아이 이름 로페즈 부부 앤드류 로페즈
2025.12.17. 20:37
10대 초에 흑산도에서 3년을 사는 동안 바다를 마음에 들였다. 해안선이 기다란 캘리포니아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바다와 친구가 되었다.만남이 늘어갈수록 바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청탁(淸濁)과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물을 차별하지 않는 바다를 닮고 싶었다. 물과 대면할 때마다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있다는 문구를 생각했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저 물을 좋아할 뿐, 지혜와는 무관하다고, 그러니까 기원전 500년에 살았던 공자의 사상은 한 개인의 시대적 견해일 뿐 공식(公式)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은데,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숙원을 풀어주는 문구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자(知者)는 물을 즐기고, 인자(仁者)는 산을 즐긴다 하였으나, 나는 그저 물과 산을 즐길 뿐, 지자와 인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북송 시대 문장가 소식(蘇軾)의 글이다. 공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세기의 논리를 뒤흔드는 당당함에 반해버렸다. 시대문화의 전횡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개가 매력적이었다. ‘~하니까’, ‘~ 때문에’ 라고 변명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겠다는 단호함에 환호했다. ‘그저’는 이 문장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대충 얼버무릴 때 사용하는 어정쩡한 단어가 아니다. 내적으로 작심하고 선택한 어휘다. 기대지 않는 독립성, 관계와 무관한 자존감이 내재되어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어느 날 공자의 생각을 읽었다.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살았던 그는 인간의 완성을 인(仁)에서 찾고, 그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知), 즉 분별력과 통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에게 지(知)는 변화를 읽고 길을 찾는 능력으로, 흐름 속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것이요, 인(仁)은 감정이 아닌 지속성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고 관계를 견디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타인을 감싸 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자요수 인자요산은 취향이 아니라 자연의 성질을 닮은 덕의 성향에 대한 비유였다. 공자의 비유에 대한 화답 같은 소식의 글 또한 네 본성대로 살라는 존재 방식에 대한 비유였다. 물과 산처럼 사람마다 타고난 결이 다르지만 완성을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혹은 물이니 산이니 구분하지 말고 산이든 물이든 제 속성대로 살게 하면 조화로운 하나가 되지 않겠는가, 라는 청유였을까. 낳고 살고 죽기. 인생이란 연습 없이 태어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이 세 가지 항목으로 간단히 요약정리된다고 말한다. 함께 견딜 때 오래 버틸 수 있다. 우리 서로가 타인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따스한 눈길로 그저 응원해주면 어떨까.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이름 용기 문장가 소식 독립성 관계 동안 바다
2025.12.15. 19:29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소속 이름 테러리스트 그룹 영화 제목 영화 전체
2025.10.14. 20:27
내 이름은 이윤희다.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라 김윤희로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이제는 이윤희보다 김윤희가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린다. ‘진실 윤’ ‘바랄 희’ 진실만 바라며 살라는 부모님의 염원이 담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지어 주셨다. 우리나라는 문중의 항렬과 사주를 고려한 한자 이름이 일반적이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순우리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국제화된 시대에는 영문 표기와 발음이 쉬운 받침 없는 이름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름에도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가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버지가 지어 준 ‘진희, 주희, 윤희’ 우리 세 자매의 이름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촌스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희야’는 우리 집안 여자들의 공용 호칭이었다. 넓은 잔디밭과 정원 가장자리에 한옥과 양옥이 기역자 형태로 배치된 집에서 조부모님과 부모님, 두 언니와 두 오빠, 엄마의 살림을 도와주던 순자 언니, 그리고 막내인 나까지 열 명이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다. 식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주로 한옥에서 보내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그마한 일에도 우리를 자주 호출하셨다. “희야”하고 부르면 엄마와 세 자매는 합창하듯 “예” 하고 대답했지만 결국엔 막내인 내가 떠밀려 심부름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도 몰래 챙겨주시던 용돈 받는 재미에 두 분의 기침 소리만 들려도 전광석화처럼 달려가곤 했다. 언니 오빠들은 슬쩍 눈치를 보며 딴청을 피웠지만, 그 심부름 끝에 주어지는 달콤한 사탕이나 빳빳한 지폐의 유혹은 막내인 내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보상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나를 ‘막둥이’라고 불렀다. 여고생이 되기 전까지는 집안의 자잘한 심부름은 거의 내 몫이었다. 그래서 동생 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막내의 설움을 운운하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막내라는 이유로 받은 특혜와 내리사랑은 늘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 마는 세상 부모들이 막내를 더 애틋하게 여기는 건 그 자식과의 인연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상황에도 묵묵히 이해해주던 형제자매들에게 한때나마 품었던 불만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사촌의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산모 병실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간호사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엄마 안 공(Ahn S Kong), 아빠 상 공(Sang S Kong), 아기 조이스 공(Joyce Kong)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금방 찾아 준다. 동양인이 드문 병원이라 금세 눈에 띄었나 보다. “‘앤 콩, 생 콩, 조 콩’은 203호 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글 이름을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흔한 해프닝이었지만, 콩 콩 콩이라니. 간호사에게 이 웃음의 의미를 설명해주려 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 미묘한 어감의 재미를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호사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리며 그저 따라 웃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에게 ‘앤 콩, 생 콩, 조 콩’은 한동안 박장대소의 화제가 되었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난다. 특별한 추억을 남겨준 그 간호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웃기는 한국 이름’을 작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운명이라고 할 만큼 인생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삶에 굴곡이 많은 이들 중에는 운세를 바꾸기 위해 개명을 하고, 무명 생활이 길어진 연예인은 예명으로 재기의 발판을 삼는다. 그 효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지만 실제로 성공 사례는 종종 들려온다. 개명 사유 중에는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거나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가장 많다는 통계를 보았다. ‘송 아지’나 ‘방 귀남’처럼 성과 이름의 부조화로 놀림을 당하는 경우도 적잖게 볼 수 있다. 평생 불릴 이름이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면 개명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새로운 이름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운을 바꾸려는 시도를 넘어, 온전한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지 모른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 따르면 사람은 세 가지 이름을 갖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두 번째는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붙여준 별명 또는 애칭, 세 번째는 삶이 끝났을 때 지인들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득과 실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남보다 조금 손해 보며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인생의 후반기를 그렇게 걸어 가려 한다. 인생의 시작은 이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부르기 좋고, 듣기 좋고, 의미 있는 이름을 선물 받은 내 인생의 시작은 꽤 괜찮은 편이다. 삶의 여정 속에서 마주할 장애물 앞에서도, 정직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부모님의 당부. 그 뜻을 내 이름에 담아 주셨음을 이제야 깊이 느낀다. 앞으로 누군가 내게 ‘윤희’의 뜻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김윤희 / 수필가수필 이름 한자 이름 한글 이름 성과 이름
2025.10.09. 19:33
연방 상원의 야당 대표가 정부 산하 공기업이 고속철도 브랜드 교체에 33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을 두고 “무책임한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28일(수), 보수당의 리오 하우사코스 상원의원은 상원 질의응답 시간에 “경제적 논리도 없이 세금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예”라며, “이런 무책임한 예산 집행은 자유당 정부의 방만한 행정 태도를 보여준다”고 질타했다. 논란이 된 주체는 알토(Alto)라는 새 이름을 단 공기업으로, 토론토~퀘벡시티 간 고속철도(HSR) 사업을 총괄하는 연방 법인이다. 알토는 원래 ‘VIA-HFR’이라는 이름으로 VIA 철도(Via Rail) 산하 고빈도 철도(high-frequency rail)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2021년 발표된 기존 노선 구상에 대한 국민 관심이 미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는 기존 계획을 고속철도 중심으로 수정했고, 이에 맞춰 브랜드 정비에 착수했다. 알토는 퀘벡 소재 마케팅사인 코세트 커뮤니케이션(Cossette Communication Inc.)에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총 33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며, 명칭과 로고, 마케팅 전략을 전면 개편했다. ‘Alto’는 ‘더 높은 속도’와 ‘향상된 서비스 수준’을 상징하는 브랜드명으로 선정됐다. 정부 측 상원 대표인 마르크 골드의원은 이에 대해 “알토 프로젝트는 캐나다를 하나로 잇는 국가적 대형 사업 중 하나”라며 “신임 마크 카니 총리도 국가 단위 인프라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골드는 “카니 총리는 동시에 재정 건전성도 매우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고속철도는 지난 2월, 당시 총리였던 저스틴 트뤼도가 공식 발표한 대표 사업이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 약 3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번 노선은, 기존의 ‘고빈도’ 철도망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망을 목표로 한다. 초기 계획인 ‘고빈도 철도망’은 토론토-오타와-몬트리올-퀘벡시티를 연결하되, 속도가 고속철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정부가 재검토를 거쳐 ‘속도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우사코스 의원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데 세금을 쓰는 게 우선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예산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임영택 기자 [email protected]고속철도 이름 고속철도 브랜드 알토 프로젝트 정부 산하
2025.06.10. 9:01
국방부가 DEI(다양성, 평등성, 포용성) 폐지 정책의 일환으로 동성애 인권운동가 이름을 딴 해군 군함 명칭을 변경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성전환 군인 복무를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었다. 최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존 펠란 해군성 장관에게 해군 급유선 ‘하비 밀크호’의 이름을 변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비 밀크는 한국전쟁 참전군인 출신으로 성소수자 권익 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동성애자 사실이 드러나 해군에서 강제전역 당했으나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돼 미국 첫 동성애 커밍아웃 선출직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1978년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하비 밀크호를 명명했다. 국방부는 “헤그세스 장관은 모든 국방자산 관련 명칭에 대해 미국의 정신과 합치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전환 군인에 대한 전역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스스로 성전환 군인임을 밝힌 1천여명에 대한 전역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국방부는 성전환 자진 신고기간을 설정해 자진 전역을 유도하고 있다. 자진 신고기간에 자진 전역하지 않고 강제 전역 당할 경우 수당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트랜스젠더 이름 트랜스젠더 이름 변경 추진 해군 군함
2025.06.04. 11:40
“폭싹 속았수다.”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속았다’는 말 같지만, 알고 보면 가슴을 울리는 감사의 언어다. 이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이민 1세대 부모님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고, 반도체·K팝·의료·교육 등 다방면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라의 재건을 위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 한 세대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의 비좁은 골목에서, 부산의 왁자한 시장통에서, 거친 바다를 가르던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속에서, 그리고 멀리 LA의 작은 세탁소에서, 뉴욕의 쉴 틈 없는 델리에서, 댈러스의 마트와 애틀랜타의 뷰티서플라이 매장 안에서도, 우리 부모 세대는 온몸으로 고단한 삶을 버텨냈다. 낯선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맨주먹으로 부딪히며, 오직 자식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이민 1세대의 땀과 눈물은, 오늘날 대한민국과 해외 한인 사회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이민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분들이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식당 문을 열고, 수십 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터의 불을 밝혔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교회와 한인회, 이웃들 간의 끈끈한 유대 속에서 ‘품앗이’와 ‘정’의 공동체 문화를 낯선 땅에서도 꽃피웠다. 오늘의 우리는 그분들이 세워놓은 삶의 터전 위에 서 있다. 더 나은 직장과 더 넓은 교육의 기회를 누리며,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당연함’은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결과였고, 침묵 속의 기도였으며, 오래된 손의 굳은살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받은 사랑을 다시 세상에 돌려줄 때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나라, 도움을 주는 나라다. 정부 차원의 공적개발원조(ODA)는 매년 확대되고 있으며, KOICA를 통해 60여 개국에 보건, 교육, 식수, 디지털 기술을 나누고 있다. 굿네이버스, 한인교회 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미주 한인사회 역시 글로벌 나눔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에 정착한 한인 동포 사회는 ‘K-나눔’의 중요한 축이다. K-팝과 K-푸드로 문화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자원봉사하며, 재난 구호와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서며 ‘정’의 문화를 세계 속에 심고 있다. 문화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눔이 국경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우리가 받은 것을 기꺼이 나누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부모님 세대가 몸소 보여주신 위대한 삶의 방식이자,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의 제목을 넘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어버이들과,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기적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오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고백하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이제, 그 고마움을 행동으로 전할 시간이다. 김재학 / 굿네이버스 USA 본부장구호 현장에서 대한민국 이름 오늘날 대한민국 미주 한인사회 굿네이버스 한인교회
2025.04.29.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