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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속’의 이름으로 싸우는 사람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를 보았다. 평소부터 좋아하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골랐다.   영화는 무척 훌륭했다. 3시간에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시간 50분 중에서 단 한 장면이라도 뺀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아주 잘 짜여진,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장면마다 다층적인 의미가 숨어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메시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봐도, 짜릿하게 즐거운 영화였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수준의 각본과 연출은 연기자들을 통해 완성됐다. 주연 배우들은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쓰는 말처럼 영화 내내 ‘연기 차력쇼’를 펼쳤다. 특히 연방요원 록조 역의 숀 펜의 연기는 그의 긴 커리어를 비춰봐도 최고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출났다.   영화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 그룹과 이를 잡으려는 연방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단체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치정이 얽히고 서로 좇으면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다. 16년에 걸친 이 과정은 현재 양극화된 미국 사회를 정확히 보여준다. 주인공 밥 퍼거슨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가 극단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연방 청사를 폭탄으로 파괴하는 급진 그룹과 비밀스러운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 두 축으로 등장하며 대규모 이민 단속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사건 중 하나다. 그 어느 때보다 갈려 버린 미국 사회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각본을 쓴 앤더슨 감독은 20년 이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하는 시점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맴도는 한 가지 키워드는 ‘소속감’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실상은 단 하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바로 소속감이다. 그것이 테러리스트 그룹이든, 백인 우월주의 그룹이든, 서류미비자들을 숨겨주는 이민자 단체든, 수녀회로 위장한 대마초 농장이든, 혹은 그저 댄스 파티에 가는 고등학생들 친구 집단이든,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곳’을 위해서 노력한다.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끝없이 대립하여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느꼈을 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곳, ‘소속’을 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속을 갖게 됐을 때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다.     결국 영화는 서로 다른 진영에 선 사람들조차도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메시지는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왔다. 8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나는 딸을 위해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는 밥 퍼거슨의 캐릭터에 더 몰입했을지도 모른다.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영화 제목처럼 끝없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헌사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소속 이름 테러리스트 그룹 영화 제목 영화 전체

2025.10.1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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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이름에 담긴 뜻은

내 이름은 이윤희다.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라 김윤희로 살아온 세월이 길다 보니 이제는 이윤희보다 김윤희가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린다. ‘진실 윤’ ‘바랄 희’ 진실만 바라며 살라는 부모님의 염원이 담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지어 주셨다.   우리나라는 문중의 항렬과 사주를 고려한 한자 이름이 일반적이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순우리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국제화된 시대에는 영문 표기와 발음이 쉬운 받침 없는 이름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름에도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가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버지가 지어 준 ‘진희, 주희, 윤희’ 우리 세 자매의 이름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촌스럽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희야’는 우리 집안 여자들의 공용 호칭이었다. 넓은 잔디밭과 정원 가장자리에 한옥과 양옥이 기역자 형태로 배치된 집에서 조부모님과 부모님, 두 언니와 두 오빠, 엄마의 살림을 도와주던 순자 언니, 그리고 막내인 나까지 열 명이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다. 식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주로 한옥에서 보내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그마한 일에도 우리를 자주 호출하셨다. “희야”하고 부르면 엄마와 세 자매는 합창하듯 “예” 하고 대답했지만 결국엔 막내인 내가 떠밀려 심부름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도 몰래 챙겨주시던 용돈 받는 재미에 두 분의 기침 소리만 들려도 전광석화처럼 달려가곤 했다. 언니 오빠들은 슬쩍 눈치를 보며 딴청을 피웠지만, 그 심부름 끝에 주어지는 달콤한 사탕이나 빳빳한 지폐의 유혹은 막내인 내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보상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나를 ‘막둥이’라고 불렀다. 여고생이 되기 전까지는 집안의 자잘한 심부름은 거의 내 몫이었다. 그래서 동생 있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막내의 설움을 운운하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막내라는 이유로 받은 특혜와 내리사랑은 늘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느냐 마는 세상 부모들이 막내를 더 애틋하게 여기는 건 그 자식과의 인연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상황에도 묵묵히 이해해주던 형제자매들에게 한때나마 품었던 불만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사촌의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산모 병실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간호사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묻는다.   엄마 안 공(Ahn S Kong), 아빠 상 공(Sang S Kong), 아기 조이스 공(Joyce Kong)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금방 찾아 준다. 동양인이 드문 병원이라 금세 눈에 띄었나 보다. “‘앤 콩, 생 콩, 조 콩’은 203호 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글 이름을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흔한 해프닝이었지만, 콩 콩 콩이라니. 간호사에게 이 웃음의 의미를 설명해주려 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어 그 미묘한 어감의 재미를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호사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리며 그저 따라 웃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에게 ‘앤 콩, 생 콩, 조 콩’은 한동안 박장대소의 화제가 되었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난다. 특별한 추억을 남겨준 그 간호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웃기는 한국 이름’을 작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운명이라고 할 만큼 인생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삶에 굴곡이 많은 이들 중에는 운세를 바꾸기 위해 개명을 하고, 무명 생활이 길어진 연예인은 예명으로 재기의 발판을 삼는다.     그 효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지만 실제로 성공 사례는 종종 들려온다. 개명 사유 중에는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거나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가장 많다는 통계를 보았다.   ‘송 아지’나 ‘방 귀남’처럼 성과 이름의 부조화로 놀림을 당하는 경우도 적잖게 볼 수 있다. 평생 불릴 이름이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면 개명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새로운 이름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마음은 단순히 운을 바꾸려는 시도를 넘어, 온전한 자신으로 존중받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지 모른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 따르면 사람은 세 가지 이름을 갖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두 번째는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붙여준 별명 또는 애칭, 세 번째는 삶이 끝났을 때 지인들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득과 실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남보다 조금 손해 보며 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인생의 후반기를 그렇게 걸어 가려 한다.   인생의 시작은 이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부르기 좋고, 듣기 좋고, 의미 있는 이름을 선물 받은 내 인생의 시작은 꽤 괜찮은 편이다. 삶의 여정 속에서 마주할 장애물 앞에서도, 정직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부모님의 당부. 그 뜻을 내 이름에 담아 주셨음을 이제야 깊이 느낀다. 앞으로 누군가 내게 ‘윤희’의 뜻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김윤희 / 수필가수필 이름 한자 이름 한글 이름 성과 이름

2025.10.09. 19:33

고속철도 새 이름 짓기에 33만불 지출

  연방 상원의 야당 대표가 정부 산하 공기업이 고속철도 브랜드 교체에 33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을 두고 “무책임한 행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28일(수), 보수당의 리오 하우사코스 상원의원은 상원 질의응답 시간에 “경제적 논리도 없이 세금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예”라며, “이런 무책임한 예산 집행은 자유당 정부의 방만한 행정 태도를 보여준다”고 질타했다.   논란이 된 주체는 알토(Alto)라는 새 이름을 단 공기업으로, 토론토~퀘벡시티 간 고속철도(HSR) 사업을 총괄하는 연방 법인이다. 알토는 원래 ‘VIA-HFR’이라는 이름으로 VIA 철도(Via Rail) 산하 고빈도 철도(high-frequency rail)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2021년 발표된 기존 노선 구상에 대한 국민 관심이 미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는 기존 계획을 고속철도 중심으로 수정했고, 이에 맞춰 브랜드 정비에 착수했다.   알토는 퀘벡 소재 마케팅사인 코세트 커뮤니케이션(Cossette Communication Inc.)에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총 33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며, 명칭과 로고, 마케팅 전략을 전면 개편했다. ‘Alto’는 ‘더 높은 속도’와 ‘향상된 서비스 수준’을 상징하는 브랜드명으로 선정됐다.   정부 측 상원 대표인 마르크 골드의원은 이에 대해 “알토 프로젝트는 캐나다를 하나로 잇는 국가적 대형 사업 중 하나”라며 “신임 마크 카니 총리도 국가 단위 인프라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골드는 “카니 총리는 동시에 재정 건전성도 매우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고속철도는 지난 2월, 당시 총리였던 저스틴 트뤼도가 공식 발표한 대표 사업이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 약 3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번 노선은, 기존의 ‘고빈도’ 철도망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망을 목표로 한다.   초기 계획인 ‘고빈도 철도망’은 토론토-오타와-몬트리올-퀘벡시티를 연결하되, 속도가 고속철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정부가 재검토를 거쳐 ‘속도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우사코스 의원은 “속도도 중요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데 세금을 쓰는 게 우선이었는지 묻고 싶다”며 예산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임영택 기자 [email protected]고속철도 이름 고속철도 브랜드 알토 프로젝트 정부 산하

2025.06.10.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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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이름 군함 변경 추진

국방부가 DEI(다양성, 평등성, 포용성) 폐지 정책의 일환으로 동성애 인권운동가 이름을 딴 해군 군함 명칭을 변경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성전환 군인 복무를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었다.    최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존 펠란 해군성 장관에게 해군 급유선 ‘하비 밀크호’의 이름을 변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비 밀크는 한국전쟁 참전군인 출신으로 성소수자 권익 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동성애자 사실이 드러나 해군에서 강제전역 당했으나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돼 미국 첫 동성애 커밍아웃 선출직 공무원이 됐다. 하지만 1978년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하비 밀크호를 명명했다.   국방부는 “헤그세스 장관은 모든 국방자산 관련 명칭에 대해 미국의 정신과 합치하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전환 군인에 대한 전역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스스로 성전환 군인임을 밝힌 1천여명에 대한 전역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국방부는 성전환 자진 신고기간을 설정해 자진 전역을 유도하고 있다. 자진 신고기간에 자진 전역하지 않고 강제 전역 당할 경우 수당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트랜스젠더 이름 트랜스젠더 이름 변경 추진 해군 군함

2025.06.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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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현장에서] 폭싹 속았수다, 그 이름은 대한민국

“폭싹 속았수다.”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속았다’는 말 같지만, 알고 보면 가슴을 울리는 감사의 언어다. 이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이민 1세대 부모님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고, 반도체·K팝·의료·교육 등 다방면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라의 재건을 위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자식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 한 세대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의 비좁은 골목에서, 부산의 왁자한 시장통에서, 거친 바다를 가르던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속에서, 그리고 멀리 LA의 작은 세탁소에서, 뉴욕의 쉴 틈 없는 델리에서, 댈러스의 마트와 애틀랜타의 뷰티서플라이 매장 안에서도, 우리 부모 세대는 온몸으로 고단한 삶을 버텨냈다. 낯선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앞에서 맨주먹으로 부딪히며, 오직 자식에게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은 이민 1세대의 땀과 눈물은, 오늘날 대한민국과 해외 한인 사회의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이민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분들이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식당 문을 열고, 수십 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터의 불을 밝혔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교회와 한인회, 이웃들 간의 끈끈한 유대 속에서 ‘품앗이’와 ‘정’의 공동체 문화를 낯선 땅에서도 꽃피웠다.   오늘의 우리는 그분들이 세워놓은 삶의 터전 위에 서 있다. 더 나은 직장과 더 넓은 교육의 기회를 누리며,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당연함’은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결과였고, 침묵 속의 기도였으며, 오래된 손의 굳은살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받은 사랑을 다시 세상에 돌려줄 때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나라, 도움을 주는 나라다. 정부 차원의 공적개발원조(ODA)는 매년 확대되고 있으며, KOICA를 통해 60여 개국에 보건, 교육, 식수, 디지털 기술을 나누고 있다. 굿네이버스, 한인교회 네트워크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미주 한인사회 역시 글로벌 나눔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에 정착한 한인 동포 사회는 ‘K-나눔’의 중요한 축이다.  K-팝과 K-푸드로 문화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자원봉사하며, 재난 구호와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서며 ‘정’의 문화를 세계 속에 심고 있다.   문화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눔이 국경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우리가 받은 것을 기꺼이 나누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부모님 세대가 몸소 보여주신 위대한 삶의 방식이자, 우리가 계승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의 제목을 넘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어버이들과,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기적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오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고백하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폭싹 속았수다.”     그리고 이제, 그 고마움을 행동으로 전할 시간이다. 김재학 / 굿네이버스 USA 본부장구호 현장에서 대한민국 이름 오늘날 대한민국 미주 한인사회 굿네이버스 한인교회

2025.04.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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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이라는 이름의 불법…텍스리펀 뒤에 숨은 병원의 수익 놀음

한국의 의료관광 시장은 미용 수요 확대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을 찾은 피부과 외국인 환자 수는 약 117만 명으로, 전년(61만 명) 대비 93.2%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한때 급감했던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은 3년간의 회복기를 거쳐 빠르게 반등하고 있으며, 2009년 이후 누적 방문자는 505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외국인 환자 유치가 다시 활성화되는 가운데, 시장의 건전성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왜곡된 운영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 중인 '의료 택스프리' 제도는 본래 취지와 달리 일부 의료기관과 유관 업체 간의 부적절한 수익 분배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 택스프리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미용 시술이나 수술을 받은 경우, 일정 금액의 부가가치세를 환급해 주는 제도로, 2016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어 현재까지 연장 운영되고 있다. 병원이 이 제도를 활용하려면 먼저 ‘외국인환자 유치기관’으로 등록하고, 지정된 ‘환급창구운영사’에 가입해야 한다. 이 운영사는 병원을 대신해 세금 환급 업무를 처리하며, 통상적으로 환급액의 1~2%를 수수료로 취한다.   문제는 이 수수료가 환급창구운영사와 병원 간의 거래에서 정상적인 계약 범위를 벗어나,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가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일부 병원들은 운영사로부터 수수료 상당액을 되돌려받는 조건을 제안받거나, 이를 기준으로 운영사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의 한 피부과 원장은 “운영사 여러 곳에서 ‘수익의 일부를 돌려줄 테니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이미 업계에서는 흔히 오가는 이야기”라고 전했다.   이 같은 수익 분배 구조는 단순한 유치 전략을 넘어 제도 본연의 취지를 훼손하고, 의료기관 간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조장할 수 있다. 특히 환급 과정에서 정부의 세금 환급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혜택인지 모호해지며, 세제 지원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저하시킬 수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산업은 국가 서비스 수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 수익을 위해 제도를 악용하거나,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왜곡된 경쟁이 반복된다면 결국 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건전한 시장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의 자정 노력은 물론, 관련 당국의 적극적인 관리·감독과 실효성 있는 제도 정비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지금 이대로 방치한다면 산업의 신뢰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최지원 기자관행 이름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수익 분배 외국인 환자

2025.04.2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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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시집이란 이름의 책방

아침에 시집을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시집에서 만난 말 없는 사람들의 말들이   책꽂이에 빼곡하고     나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 시집에 온 몇몇 사람들이   시인을 만나기 전 그의 외모를 훑어보고   한 줄 명함을 읊고 서 있네       시집 한 권을 꺼내 들고 창가로 왔다   ‘그 남자의 집’   전혀 모르는 시인의 시집 앞에서     나는 너를 떠올리네       오늘은 그런 감정으로, 그 남자와 함께   내 남자의 집에 돌아왔다   내일은 그 남자와 함께 시집에 들러   떼어놓고 와야겠다 홍유리 / 시인문예마당 시집 이름 시간 시집

2024.12.05. 19:31

왜 자꾸 이름을 잊어버릴까

 시니어가 되면서 아니, 40대부터도 주위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나 셀럽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한글로 된 지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다. 예를 들어서 이름이 서동균이라는 지인이 있는데 앞의 두 글자가 '서동'만 기억나는 경우다.아니면 아예 서동만, 서동희, 서동훈 등으로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며 대개 걱정할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 잘못된 이름으로 불렸다. 일상에 바쁜 어머니는 가족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인이 되어도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것이 그들에게 소홀해서 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한 연구에서 인터뷰에 응한 대학생 중 절반이 자신에게 친숙한 사람이 잘못된 이름을 불렀다는 응답을 했다.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부모와 조부모만이 아니다. 이 연구에서 38%의 학생들은 친숙한 사람을 잘못된 이름으로 불렀으며, 대부분 가족인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를 잘못된 이름으로 부를 때 일반적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등 유사하거나 관련된 사람의 이름을 사용한다. 두뇌는 관련 용어의 네트워크에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카테고리에 묶인 이름을 대체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실수로 잘못 이름을 붙인 사람보다 나이가 더 많으며, 화자가 자주 만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여성은 남성보다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가 약간 더 많으며 자신의 이름도 혼동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연구 참가자의 40% 이상이 이름을 혼동한 사람이 피곤하거나 좌절하거나 화가 났다고 보고했다.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고 하면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많은 사람이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에 따르면 이름보다 직업을 더 잘 기억한다.   이런 명명 오류는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명백한 기억 실수 중 일부이지만 두뇌는 실제로 항상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한다. 또한 정상적인 노화 과정의 일부로 사람들은 원치 않는 단어를 억누르던 능력을 어느 정도 잃는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말실수를 하게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나 엉뚱한 단어를 쓰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 아무리 친했어도 막상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결국 자연스러운 것이다.  장병희 기자이름 가족 이름 기억 실수 연구 참가자

2024.08.11. 19:00

[발언대] 교회 이름에도 ‘한인’을 넣어야 하는가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50년 이상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한인의 우수성이다. 한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몇몇 단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편 가르기와 차별 대우다. 한인들끼리도 출생지,출신 학교, 학벌, 직업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하거나 차별을 한다. 심지어 목숨 걸고 탈출한 탈북민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심하지 않다는 의미다.     나는 미국에서 50년 이상 의사로 일하면서 인종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를 찾았던 환자들이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나를 무시하는 인종 차별적 행동이나 말은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는 40여년 전 미시간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며 유대계 백인 의사가 운영하던 병원을 인수했다. 환자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인수 당시 환자의 절반쯤은 잃을 각오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백인 환자가 늘었다. 열심히 일하는 젊은 의사로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아프리카 출신 흑인 의사가 서울에서 병원을 개업한다면 환자가 얼마나 찾을까.     지난 50년 동안 내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어느 의대를 졸업했는지 물어보는 환자는 정말이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의사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얼마 전 신문 광고면에서 ‘oo 한인 교회’라는 문구를 봤다. 그동안은 별 생각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문구가 유난히 이날은 거북했다. 그러고 보니 한인 교회 가운데 교회 이름에 ‘한인’이라는 말이 들어간 교회가 꽤 많은 것 같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oo 한국식당’ 처럼 의도적으로 차별성을 강조해야 하는 경우에야 어쩔 수 없지만, 차별을 덮고 하나 됨을 강조해야 하는 종교단체의 이름에 굳이 ‘한인’이라는 이름을 넣어야 하느냐는 생각이다.     요즘 이민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2세들이 점차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성장하면 달라진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에게 ‘한인 교회’라는 이름은 오히려 이질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타인종 친구를 교회에 대려 오기 곤란한 면도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에 ‘종로 영남인 교회’ ‘용산 호남인 교회’, ‘을지로 서울대 동문 교회’ 등의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이를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이름을 지을 당시 다른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한인들의 교회’라는 것을 이름에도 나타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세,3세들까지 생각한다면 이제는 다시 고려할 문제라고 본다. 이제는 이름뿐 아니라 교회 분위기도 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오픈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김홍식 / 은퇴의사발언대 교회 이름 한인 교회 교회 이름 교회 분위기

2024.07.2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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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야기] 이름이 문제인가, 내용이 문제인가

  학교나 박물관 등의 시설에 기부자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LA 다운타운에 있는 뮤직센터(Music Center)는 화장실에 기부자의 이름을 넣은 브랜드를 쓰고 있다. 화장실의 명칭은 ‘레프톤 패밀리 레스트룸(Lefton Family Restrooms)’. 아마 기부자는 이 이름이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화장실 변기에도 기부자의 이름이 들어갈 것 같다.     기업들은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기업명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최대 한인 은행인 뱅크오브호프(Bank of Hope)도 BBCN과 윌셔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미국의 대표적 통신사인 버라이즌 역시 벨 애틀랜틱과 GTE의 통합으로 생긴 이름이다.     또 기업이나 기관 소유주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후 ‘X(엑스)’로 바꾼 것이 이런 예다. 필자는 아직 자산가치 200억 달러가 넘는 트위터(Twitter)라는 기업의 브랜드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 왜 그가 엄청난 가치가 있는 이름을 바꿨는지 궁금하다.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일까?     어떤 이유건 브랜드 이름을 바꾸는 데 필요한 비용은 만만치가 않다. ‘앤더슨 컨설팅(Anderson Consulting)’은 모기업인 ‘아서 앤더슨 회계 법인(Arthur Anderson accounting firm)’과 분쟁이 생기는 바람에 회사 이름을 ‘액센추어(Accenture)’로 바꿨다. 이름 변경 작업에 사용한 비용만 약 1억 달러가량으로 추산됐다. 또 바뀐 이름을 알리는 데 사용한 시간과 추가 비용도 상당했다. 기업의 규모나 사업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름 변경이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필자가 이번 칼럼에서 다루려는 주제는 특별한 이유로 회사나 제품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특별한 이유란 고의나 아니면 실수로 중대한 위법 행위를 저질렀거나 도덕적으로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이 발생한 경우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89년 한국에서는 라면 우지 파동이 나라 전체를 흔들었다. 라면 업체들이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쇠기름)로 라면을 생산해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는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문이었다. 오랜 공방 끝에 결국 무죄 판결이 났지만 그 기간 당시 라면 업계 선두주자였던 삼양라면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미지 실추로 기업은 존폐위기에까지 몰렸다. 생존을 위해 ‘삼양라면’이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까지 고려해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삼양식품의 예는 극단적인 경우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회사나 제품의 이름을 바꾸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고민하는 기업주를 자주 봤다. 기업이나 제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인들은 이름 변경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어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름 변경과 관련 유의해야 할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그 문제가 브랜드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브랜드 이름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브랜드 이름은 기억하기 쉬워야 하고 발음하기 편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의 기적과 같은 승전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쏘나타를 출시한 직후 일부에서는 ‘소나 타는 자동차’라고 빈정댔다. 그러나 지금 쏘나타 자동차는 미국 등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구글(Google)은 이름 때문에 잘 되고, 야후(Yahoo!)는 이름 때문에 경쟁에서 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존 제품의 이름을 바꿔 다시 출시한다고 제품이 더 잘 팔릴 것인가?  기업의 이름을 바꾼다고 고객들이 이름 때문에 그 기업을 더 좋아할 것인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브랜드가 고객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브랜드가 고객들에게 어떤 혜택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브랜드 이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존경심을 갖는 것은 나라를 구한 그의 업적 때문이고, 김연아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동계 올림픽 등에서 국가를 대표해 큰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중대한 실수를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나 제품 이름을 바꾼다면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기 어렵다. 그보다는 브랜드가 고객을 위하여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고객의 신뢰와 사랑을 다시 찾을 수도 있고, 그 반대 상황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된 삼양식품이 당시 이름을 ‘동향’으로 바꿔 ‘동향라면’을 출시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그런 일이 생겼다면 삼양라면은 두 가지 이유로 후회했을 것이다.       첫째, 고객은 새로운 이름의 라면을 만든 기업이 삼양식품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름을 바꾼 이유가 궁색해지게 된다. 둘째는 이름을 바꿔도 이를 홍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효용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이도 삼양식품은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브랜드의 이미지나 명성이 훼손된 경우라도 이름을 바꿔 문제를 피하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대신 잘못을 반성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개선하려는 노력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박충환 / 전 USC석좌교수브랜드 이야기 문제 이름 브랜드 이름 제품 이름 회사 이름

2024.02.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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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애니깽' 슬픈 이름

애니깽이란 멕시코에서 재배하는 용설란 나무를 말한다. 원래 명칭은 ‘에네구엔(Heneguen)’ 이지만 발음을 잘못한 것이다. 나무의 잎은 길쭉하고 그 껍질을 잘라 삶아서 심줄을 뽑아내 선박용 로프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뿌리 부분은 데낄라 술 원료로 쓰인다. 이처럼 부가 가치가 높은 작물이라 과거 한국인을 농장 노동자로 고용했다.   1905년 4월 4일 한국인 남자 802명과 여자 209명 그리고 어린이등 총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했다. 그리고 1905년 5월 15일 멕시코 유카탄주 살리나크루스항에  도착하여 메리다 등지의 25개 농장으로 흩어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농장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목표량을 못 채우면 채찍질을 당하는 등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새벽에 시작된 일은 밤늦게야 끝났는데 한국인들은 스페인 어 교육을 받지 못해 소통조차 어려웠다. 당시 중국인 허이후씨가 황성신문에 멕시코 한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려 국내 여론이 들끓었지만 망해가던 대한제국 정부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1909년 5월로 4년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점으로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그들 중 약 300여 명은 쿠바로 떠났다. 유카탄의 한인들과 쿠바로 떠난 한인들은 적은 돈이지만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선생 앞으로 독립자금을 보낸 기록도 있다. 대한국민회 유카탄 지부와 쿠바 지부를 열고 한인의 정체성을 교육하고 민성국어학원을 열어서 한글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유카탄과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 중 재계나 문화계, 정치계에 흔적을 남긴 한인은 거의 없다. 그들인 한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한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고국은 너무 멀고 일제의 강점 상황에 있었다. 그만큼 불운한 세상을 살다 가신 분들이었다.     지금 그 지역과 주요 대도시에는 5세, 6세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가 방문하면 한인 후손인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꽃다발을 전달하지만 행사 때뿐 평소에는 모일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 그리고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고 쿠바로 탈출한 한국인들은 꿈속에서만 고국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신 분들이다. ‘애니깽’은 한국인 노동자의 슬픈 이름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 그분들의 고혼을 위로하며 명복을 빌고 빈다. 김호길 / 시인세상만사 애니깽 이름 한국인 노동자들 멕시코 한국인 한국인 남자

2024.02.06. 18:56

[글마당] 이름 없는 강

내 가슴 깊은 곳   긴 강이 흐른다   알 수 없는 시작과 종점       때론 거칠게 때론 조용히   세월과 비례하는 깊이       이 세상 어딘가에   가장 속 깊이 날 알고   사랑하며 감싸줄 사람       길고 긴 기다림은   강물이 되어 오늘도   이렇게 흐르고 있는데       머리엔 갈대꽃   몸뚱인 고철이 다된   이제야 바라뵈는 수평선       기다렸던 그 사람   희미한 등대 되어   멀리서 내 영혼 마중 나와 서 있네. 강언덕 / 시인글마당 이름 영혼 마중

2023.11.24. 17:40

[돈의 세계] 내 이름은 알루미늄

이 몸은 한때 지상에서 가장 고귀했다. 나폴레옹 3세(재위 1852~70)는 최상급 귀빈에게만 나로 만들어진 나이프와 포크를 내놓았다. 금 소재 식탁용 날붙이류는 그 다음 등급 진객에게 제공했다. 1884년 세워진 미국 워싱턴 기념비의 꼭대기에는 나로 제작된 무게 2.7㎏의 피라미드가 씌워졌다.   실은 흔하디 흔한 게 나다. 지각의 8%를 차지하고, 산소와 규소에 이어 셋째로 많다. 다만 보크사이트에서처럼 다른 원소와 결합되어 존재한다. 나는 1825년에 처음 분리·추출됐지만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태부족했다. 그 후 60여 년간 이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던 1886년. 미국 오벌린대에서 화학을 배우던 23세 학부생 찰스 홀이 전기분해로 나를 분리해낸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동갑내기 야금기사 폴 에루가 거의 같은 공법을 개발한다. 홀은 공장을 세우고, 이는 훗날 알코아가 된다. 대량 생산되면서 내 몸값은 급락한다. 화려한 최상류층 식탁을 누비던 시절은 갔다. 나는 깡통 등 생활용품의 소재로 확산된다. 경제학의 ‘희소성과 가격’ 원리를 설명하기에 좋은 사례다.   근년 들어 나는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배터리 장착으로 무거워진 전기차를 중심으로 감량을 위해 나를 더 활용하고 있다. 원자재시장 분석회사 코리아PSD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차량 한 대당 투입량은 2006년 121㎏에서 지난해 205㎏으로 약 70% 늘었다.   나는 대개 알루미늄(aluminium)이라고 불린다. 리튬과 마그네슘, 칼슘 등 여러 원소의 이름과 ‘ium’ 돌림자가 같다. 미국인들은 나를 알루미넘(aluminum)이라고 부른다. 이는 내 ‘은인’ 홀이 광고 문안에서 낸 오타에서 비롯됐다. ‘um’으로 끝나는 이 별칭도 나쁘지 않다. 백금 플래티넘(platinum)과 같은 항렬이니. 이름이야 어떻거나. 세상 곳곳에서 내가 더 요긴하게 두루 쓰이게 되면 그만이다. 백우진 /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돈의 세계 알루미늄 이름 소재 식탁용 원자재시장 분석회사 동갑내기 야금기사

2023.11.15. 21:19

[열린광장] 이름에 담긴 의미

1910년 대한제국과 일본의 병합조약으로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게 되었고 이후 우리는 호적의 성을 바꿔야 하는 고통까지 겪었다. 나도 호적에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변씨(卞氏)라는 성 대신 일본인이 만들어 준 도쿠야마(德山)라는 일본식 성으로 기재가 됐었다. 이 치욕스러운 일이 일제 치하에 겪었던 창씨개명(創氏改名)이다.     미국에 와서 첫 직장을 얻었는데 당시 루스라는 이름의 부사장이 내게 베드로라는 이름의 명찰을 만들어 주었다.  루스는 회사 내에서는 동료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하고 내가 베드로를 닮은 데가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백인인 루스는 직장 상사였지만 내가 미국에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분이었다.     사실 당시 나도 미국식인 직장 동료들의 이름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당황한 적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부르기 쉽게 그들의 이름을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1978년에 시민권을 취득하며 미국 이름을 ‘베드로’로 했다. 당시 아내는 ‘바버라’, 딸은 ‘버지니아’, 아들은 ‘로이’ 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는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개명이었다. 아버님이 지어준 이름을 바꾼다는 죄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새 이름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당시 나는 ‘베드로’ 라는 성경의 인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다. 그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벽기도를 다니는데 어느 집 앞을 지날 때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하자 말베드로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한 부분이 생각났다. 나는 매일, 어디에서, 얼마나 자주 예수님을 모른다고,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지?     자녀 이름을 지을 때 이름처럼  존귀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름을 잘 지었다고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귀한 삶을 살 때 그 이름이 존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좁게는 가정에서, 넓게는 사회와 국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이 좋은 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신 분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들처럼 살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귀한 일을 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직자의 입장에서도 훗날 내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욕되지 않게 사는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변성수 / 교도소·사역 목사열린광장 이름 의미 자녀 이름 예수 그리스도 식인 직장

2023.11.13. 17:58

[시] 이름 없는 강

내 가슴 깊은 곳   긴 강이 흐른다   알 수 없는 시작과 종점       때론 거칠게 때론 조용히   세월과 비례하는 깊이       이 세상 어딘가에   가장 속 깊이 날 알고   사랑하며 감싸줄 사람       길고 긴 기다림은   강물이 되어 오늘도   이렇게 흐르고 있는데       머리엔 갈대꽃   몸뚱인 고철이 다된   이제야 바라뵈는 수평선       기다렸던 그 사람   희미한 등대 되어   멀리서 내 영혼 마중 나와 서 있네. 강언덕 / 시인시 이름 영혼 마중

2023.10.26. 20:06

[아름다운 우리말] 나의 이름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이름을 쓸 일은 많이 있는데 부르는 일은 극히 적어짐을 느낍니다. 내가 이런저런 문서에 내 이름을 남겨야 하는 일은 많지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적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내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하고, 특히 주부인 경우는 자신의 이름을 들을 일이 더더욱 없어집니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이나 사모님 등으로 바뀌는 겁니다. 이는 사실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 아빠나 직책이 그대로 호칭이 되곤 합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으로는 부모, 형제, 친구가 있습니다. 나이가 먹으면 형제들도 서로 이름을 부르는 일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사라진다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면 이름을 부르지 않는 부모도 많습니다. 역시 결혼 후에는 ‘애비, 애미’로 호칭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름은 우리말에서 복잡한 특성을 갖습니다. 다른 언어에 비해서도 매우 특징적입니다.   이름은 사실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름에 온갖 좋은 뜻을 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저희 삼형제만 해도 이름에 용(龍), 성(星), 왕(王)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주 거창합니다. 막내는 누군가의 실수로 왕이 비슷한 글자인 옥(玉)으로 변하였습니다. 이름짓기도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우리 삼형제의 이름을 보면 용이 나타나고, 별이 보이며, 왕이 됩니다. 거창한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이름에 참 진(眞)이 쓰이고, 착할 선(善)이 쓰입니다. 덕(德)이나 인(仁) 등도 단골로 쓰입니다. 물론 성별에 따라 혁(赫)이나 철(鐵) 등이 쓰이기도 하고, 숙(淑)이나 희(希)가 쓰이기도 합니다. 성 차별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부모님이 바라는 바가 아들과 딸에 따라 달랐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성과 관계없이 부르기 좋고 발음이 예쁜 이름도 많이 쓰입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성의 차이는 느껴집니다.     저의 경우도 이제는 제 이름을 쓸 일은 많으나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조차 제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가끔가다 제 이름 전체를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깜짝 놀랍니다. 어색함을 느낍니다. 학생이 제게 ‘조현용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선생님의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름은 누군가에게 지칭하는 것은 가능하나 직접 부르는 것은 불가합니다. 때로는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섭섭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도 점점 이름을 안 부릅니다. 이름이 살아지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기독교 ‘성경 인명 지명 사전’을 보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경의 이름에는 그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어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노아는 위로, 다윗은 사랑함, 마태는 하나님의 선물, 요한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안나는 은혜, 한나는 자비라는 의미라고 나와 있네요. 저에게는 무척이나 놀라운 이름도 있었습니다.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이고, 아히야는 여호와의 동생이라는 설명입니다. 놀랐습니다. 오늘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사람의 이름은 그 뜻을 좇아가며 읽고 부르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종종 이름은 결실이 되기도 합니다. 희망을 갖고 부르는 이름은 주문처럼 뜻을 이루어 주기도 합니다. 나의 이름을 다시 새겨 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이름 전체 부모 형제 저희 삼형제

2023.10.08. 16:4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자유’란 이름으로

확신은 교만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이 틀어질 지 모른다. 세상에 마음 먹은대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탄탄대로로 직행하는 일이 생긴다. 뜻밖의 일로 횡재를 만나고 골 때리며 죽자사자 기획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참사를 당한다.     나는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가 ‘야호’를 외친다. 사실은 뒷마당으로 향한 데크로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감격의 하루를 맞는다. 반나절도 못돼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절망과 부질없는 힘 겨루기를 하지만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다.   시집 가기 전까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을 뒹구는 늦잠꾸러기로 어머니 등골을 쑤시게 했다. 새벽형 인간으로 개과천선 한 건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   글 쓰는 일이 두뇌와 영혼의 노동이라면, 그림 그리기는 강인한 정신력과 육체노동, 체력과의 전쟁이다. 잡사로 힘이 빠지기 전,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다. 마음이 백지처럼 욕심 부리지 않아야 정화된 시간에 신선한 작품을 그릴 수 있다. 마음은 요지부동이 아니라 헝클어진 실타래 같아서 아무리 풀어도 처음 시작한 매듭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작품이 잘 되면, 혹시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처럼 되는 게 아닌가 나 홀로 감격하며 교만 떨다가 그림을 망쳐 금새 천상에서 추락한다.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여자로 살던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1600점의 작품을 그린 미국 국민화가다. 모지스는 살면서 체험한 모든 기억을 마법처럼 화폭에 담아낸다. 빨래하는 날, 한겨울 단풍나무 시럽 끓이기, 칠면조 잡는 추수감사절,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축제와 마을 풍경을 어린아이 그림처럼 단순하게 화폭에 담는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라고 그랜마 모지스는 말한다.     시작을 꿈꾸는 삶은 늘 아름다운 소풍이다. ‘희망사항’은 높고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도 괜찮다. 하고 싶은 일, 꿈꾸던 작은 무엇을 시작하는 용기가 행복이다.     뉴저지에 사는 둘째 딸이 어린 손주 둘 데리고 다니러 왔다. 집 떠난 자식은 내 새끼가 아니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오는 날을 기다리고 체크 마크 하며 가는 날을 셋다. 할머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생활 방식,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다른 두 집이 한솥밥 먹으며 달그락 소리 안 내고 버티는 것은 기적 같은 사랑이다. 4월에 왔다 갔는데 두 달 만에 또(?) 왔다. “자주 올게요. 어머니 외롭지 않게”라는 말에 “난 정말 안 외로워. 자주 안 와도 돼”라고 소리칠 뻔 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매달려 얼마나 부대꼈는지 몸살 기운이 돈다.     행복 지수는 순전히 개인 몫이다. 가정, 가족, 단체, 국가별로 통계 낼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돈 벌 궁리, 사업 확장할 계획은 지나간 옛 이야기, 자식들에게 줄려고 근검절약 하는 건 가난한 바보행진, 착한 척, 잘 사는 척, 잘난 척, 이쁜 척, ‘척의 가면’ 벗고,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 뽑아 건강식 해먹고, 사회적인 허울 좋은 올가미에서 벗어나 나를 위해 사는 소소한 즐거움.     행복은 소리 소문 없이 자유란 이름으로 새벽을 연다. 자유는 이슬에 젖어 상큼한 향기로 다가온다. 떠나는 딸의 차를 향해 ‘자유’란 이름으로 손을 흔든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자유 이름 모지스 할머니 행복 지수 육체노동 체력

2023.07.1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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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내 이름은 예쁜 할매

언제부턴가 나보다 나이 많은 정희씨가 ‘예쁜 할매’라고 나를 부른다. 내가 ‘정희씨’라고 부르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정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할망구가 된 아내를 청춘 시절처럼 이름 부르는 게 듣기 좋다.     한인회를 도와 준 총무는 세월이 지나도 ‘민경’이라 부른다. 이름을 부르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애칭은 더 살갑다. 나를 ‘왕따까리’라고 부르는데 기분 좋다. 한번 붙으면 안 떨어진다는 뜻이라나. 세월은 늙어도 정은 늙지 않는다.     마트에 장보러 가면 나이 들어 보이는 어른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등이 꾸부정한 사람, 동작이 어둔하고 느린 사람을 보면 긴장해서 허리 꼿곳이 세우고 걷는다. 산소통을 끌거나 휠체어 탄 사람을 만나면 저 노인의 계절도 ‘한때는 건강하고 싱싱한 여름이였겠지’라고 슬픈 생각을 한다.   나이 들면 나이값 하는 게 좋다. 더덕더덕 화장 진하게 하고, 젊은 애들처럼 긴 머리 풀어 헤치고, 핏줄이 드러나는 쭈글쭈글한 다리를 용감하게 드러내는 초미니 바지 입은 늙은 할머니가 지나가면 곱게 늙어야지 생각한다.     공원이나 샤핑센터에서 다정히 손잡고 걷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를 보면 혼자 미소 짓는다. ‘잘 늙었구나’ 싶어 보기 좋다. 우아하면 늙어도 아름답다.   미국에 온 뒤 아트센터에서 동양화를 가르쳤다. 내 나이 스물 다섯, 학생들은 대부분 할머니뻘 되는 분들이고 나는 물 오른 버드나무처럼 싱싱했다. 콩글리쉬 영어로 더듬거리며 수업했는데 깎듯이 선생 대접하며 손녀처럼 사랑해 주었다. 강의하는 동안 영어 실력도 늘어났고 서양요리법을 전수받는 행운을 얻었다.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배움은 희열과 희망을 준다.   학생 중에 에밀리와 조이스를 기억한다. 에밀리는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빗은 은백색 머리에 정숙하고 온유한 몸가짐, 따스하고 다정한 말로 수업의 격조를 높였다. 나이 들면 에밀리처럼 멋진 할머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조이스는 공군부대 전투기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 CEO다. 대나무 획을 긋는 필력과 난초의 여리지만 강인한 힘에 매료돼 강의신청을 했다며 스트레스 푼다는 핑계로 포도주를 들고 와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이스는 딸을 성추행한 첫 남편과 이혼하고 귀향해서 맨 손으로 기업을 일으킨 여장부다. 사업이 자리잡자 매니저에게 프로포즈 해서 사장 만들고(?) 결혼해서 잘 산다. 파란만장한 삶을 모질게 견뎌내고 우뚝 선 여장부는 늙어도 늠름하다.   ‘내 이름은 빨강’은 200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만 파묵의 일인칭 소설로 등장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죽여지고 우물로 버려진 사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오스만제국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목소리들이 겹쳐지며 작가는 빨강이 가진 의미를 빨강 본인의 목소리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사람은 자기 이름, 자신의 색깔로 산다. 누군가 미소 띄며 당신의 이름 불러주면, 주름진 얼굴에 예쁜 애칭을 붙여준다면. 용기와 결단에 박수 보내며, 나이값 타박 대신 포용으로 감싸주며, 아픔 견뎌내고 당당하게 살아온, 처진 어깨 안아주면, 하얀 손수건에 달린 명찰의 이름 석자로 남은 세월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지켜보던 측백나무는 너무나 푸르렀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이름 할매 자기 이름 나이값 타박 나이 스물

2023.06.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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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신생아 이름 중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연방통계청이 9일 발표한 2021년도 신생아 이름 탑 10에서 남자 아이의 이름으로 노아(Noah)라는 이름을 선택한 수는 2393명, 여자 아이 이름으로 올리비아(Olivia)라고 선택한 수는 2032명이었다.   남자 아이 이름 탑20위를 보면, 노아에 이어 리암(Liam), 윌리엄(William), 레오(Leo), 벤자민(Benjamin), 씨어도어(Theodore), 잭(Jack), 토마스(Thomas), 로간(Logan), 올리버(Oliver)가 10위에 들었다. 제이콥(Jacob), 루카스(Lucas), 제임스(James), 네이던(Nathan), 이던(Ethan), 잭슨(Jackson),  오웬(Owen), 아담(Adam), 헨리(Henry), 펠릭스(Felix)가 20위 안에 올랐다.   여아는 올리비아에 이어 엠마(Emma), 샬롯(Charlotte), 아멜리아(Aemlia), 에바(Ava), 소피아(Sophia), 클로에(Chloe), 미아(Mia), 밀라(Mila), 아일라(Isla)가 10위 안에 들었다. 그 뒤로 앨리스(Alice), 소피아(Sofia), 릴리(Lily), 조이(Zoe),  엘라(Ella), 에벌린(Evelyn), 챨리(Charlie), 엘리에(Ellie), 아비게일(Abigail), 노라(Nora)가 20위 안에 들었다.     2020년에는 선호되는 남자아이 이름이 리암, 노아, 윌리암, 벤자민, 레오 순이었다. 여자아이는 올리비아, 엠마, 샬롯 아멜리아 소피아 순이었다.   노아라는 이름은 1991년에 300위권 밖이었고, 1997년까지도 50위권 밖이었지만, 1998년부터 50위 안에 진출했고, 2005년부터는 10위권 안에 들었다.   올리비아라는 여아 이름은 1991년 60위권 밖에서 출발해 2001년도 10위권 안에 들었고, 이후 1위를 여러 번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표영태 기자이름 캐나다 남자아이 이름 여아 이름 캐나다 신생아

2023.05.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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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목련이, 개나리가 피고 홍매화 꽃눈 방울처럼 달렸습니다 봄 하늘 바라보다 눈물이 맺힙니다 수척해진 얼굴, 내 탓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애간장 아랑곳 없이 봄은 늦게, 느리게 오고 있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호수는 아름다워 닿을 수 없는 그곳엔 종일 달빛 마음 출렁이고 예상 못한 일들, 바람 불듯 일어나기도 하고 꽃 지듯 사라지기도 하였지요 푸른 호수와 푸른 하늘이 붙어버린 저녁 서로의 안부를 묻기엔 너무 멀리 흘렀나 봅니다     꽃 지듯, 나뭇잎 떨어지듯, 아무 일도 없었듯이 세월 지나 덤덤히 목련이 피고   목련이 떨어질 즈음 나도 없겠지요   살다 보면 눈물이 마르도록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되어 있을 터이니   안국역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차마 무겁습니다   별이 무수리 떨어져 안기는 밤 멀리서 바퀴 소리가 나를 지나쳐 웁니다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듯 서쪽하늘의 노을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분주함 속에서 저녁 한때 깊숙히 의자에 몸을 맡긴 채 고요히 내려앉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서서히 노을이 지고 고요가 잠겨옵니다.   하늘 빛이 옅은 붉은빛으로 변해가다 어느 사이 하늘은 옅은 보라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노을 빛은 천상의 색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신비한 빛입니다. 노을빛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귀에 가득했던 분주한 소리들이 하나 둘 지워지고 이제 들리는 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보금자리 찿아 날갯짓을 펴는 새들의 노래가 간간이 들려오고 바람에 젖는 풀들의 나즈막한 속삭임이 들립니다. 나는 지금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고요 속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졸리운 듯 들리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며, 내 안에 흙탕물이 서서히 침잠하는 고요 속에서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높아지기에 턱없이 작은 우리이기에 오히려 낮아지는 동작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깊어지기 위해 넘어짐과 상처와 경솔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실수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를 향한 용서가 우선되야합니다. 그런 후에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바로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노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언제 그 이름이 내 마음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와 시간과 환경과 풍경이 바뀔 때마다 그 이름은 풍선처럼 내속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이름 하나 품고 노을 속으로 깊어 가자면 나뭇가지 사이 반짝 보이는 얼굴과 바람에 실려온 반가운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렵니다.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는 미어지는 아픔을 행복이라고 아직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름 이름 하나 달빛 마음 바퀴 소리

2023.04.1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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