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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선물이라는 이름의 기억

Los Angeles

2025.12.29 18:19 2025.12.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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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 수필가

이정숙 / 수필가

연말이다. 매년 이맘때면 친척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연례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마련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작년 선물을 하나씩 떠올리며 올해는 누구에게 어떤 선물이 좋을지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며 준비하게 된다.
 
각각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하고 교환이나 환불할 수 있는 물건을 골라 포장하여 우체국을 통해 보낸다. 같은 방식으로 내게 전해지는 선물은 성탄일 아침에 풀어본다. 때로는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성가신 물건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로 기쁨이 더해지길 바라며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 웃어른이 올해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일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이메일로 전해왔다. 자본주의 극대화를 돕는 경제행위를 끝내자는 이유도 포함돼 있었다.
 
내게 맞지 않은 기성품을 입는 듯 마땅치 않았던 성탄절 행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량 생산된 상품은 소비자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 마케팅으로 성탄절을 앞둔 매출은 일 년 중 최고를 기록하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론을 앞세우며 소비를 부추겨 온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까운 사람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작은 선물까지 금지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거실 한쪽에 첼로가 세워져 있었다. 궁금해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는 “내 손발이 되어 24시간 같이 있던 사람이 언제 나가서 저 악기를 사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떨린 목소리와 촉촉해지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미술을 공부했던 어머니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첼로를 배우고 싶었지만 다섯 아들을 키우며 살림을 돌보는 사이 세월은 흘렀다. 해보지 못한 아쉬움을 알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첼로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몇 차례 수업을 받아보려 했으나 노인성 손가락 관절 통증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첼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내 남편 차지가 되었다. 내가 받은 선물도 아니건만 첼로를 볼 때면 두 분의 애틋한 크리스마스 사랑 이야기가 생각나 마음이 훈훈해진다.
 
나에겐 이맘때면 집에서 담은 김치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 가끔 마켓에서 김치를 사다 먹는 내게는 귀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나 역시 몇몇 이웃이나 친구에게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크리스마스 즈음에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고받는 선물은 단순히 소비를 조장하는 일이 아닌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일이 아닐까.  
 
선물을 주고받지 말자는 집안 어르신의 지엄하신(?) 분부가 있긴 하지만, 나는 올해도 이웃에게 줄 내 방식의 작은 선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선물 속에 들어있을 주는 이의 따뜻한 마음,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될 성싶어서이다.

이정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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