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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스파게티 키스, 영화사에 남다

강아지 두 마리가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한 접시를 함께 먹다가 면발 끝에서 뜻밖의 입맞춤을 하게 된다. 두 캐릭터의 감정과 친밀함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한 번쯤 보았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로맨틱 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레이디 앤 더 트램프(Lady and the Tramp)'가 개봉 70주년을 맞이했다.     이 영화는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와이드 스크린) 포맷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이었지만 1955년 개봉 당시, 영화관들은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새로 도입하고 있었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와이드 스크린을 활용해 풍부한 배경과 장면 구성, 그리고 캐릭터의 자연스럽고 세밀한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거의 20년에 걸친 구상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제작은 1930년대 후반부터 기획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과 디즈니 측의 우선순위 때문에 지연되다가 1955년에 완성되었다. 3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는 선전영화 제작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1930년대 말, 디즈니 스튜디오의 캐릭터 디자이너 조 그랜트는 자신이 키우던 코커스파니엘 '레이디'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직장 보스 월트 디즈니에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초반에는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디즈니는 이 아이디어를 버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장편 애니로 구상하게 된다.   이 영화는 디즈니의 고전 중에서도 특히 로맨스와 따뜻한 가족애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거나 오마주된 명장면들이 많아 디즈니의 아이코닉한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레이디는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코커스패니얼 반려견으로 주인인 짐과 다이애나 부부의 보호 아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주변에는 사이와 앰이라는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 있다. 이들과 작은 갈등을 빚는다.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나면서 레이디의 삶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레이디는 아기에게 관심이 집중된 주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이 틈을 타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 사고를 내고 레이디는 억울하게 야단을 맞고 집에서 쫓겨난다.     레이디는 거리를 방황하다 거리의 개 트램프를 만난다. 트램프는 레이디에게 거리 생활의 즐거움과 자유를 알려주고 둘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레이디는 처음엔 거리 생활이 낯설지만 트램프와 함께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둘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나눠 먹다가 면발 끝에서 입맞춤하게 된다.     트램프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개 잡는 곳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레이디는 트램프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용감하게 나서고 서로의 신뢰가 깊어지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트램프는 레이디를 다시 찾아온 짐과 다이애나 부부의 도움으로 구조되고 식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레이디와 가정을 이루어 4마리의 부모가 된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강아지들을 통해 용기, 우정,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사회적 갈등과 계급 차이를 은유적으로 담아내면서 어린이에 국한되던 애니메이션 관객층을 성인층으로까지 확장하며 애니메이션 영화의 상업적 경쟁력을 높였다. 이전 디즈니 작품들은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단순히 귀여운 강아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스파게티 키스신 등 성인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로맨스를 가미한 것이 주효했다.     스토리 초안은 훨씬 어두운 버려진 개의 이야기였다. 구상 단계에서 트램프가 영원히 거리로 돌아가는 엔딩도 검토됐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희망적인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사랑과 가족애를 강조하는 따뜻한 이야기로 전면 수정하였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명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거리의 개 트램프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레이디와의 로맨스가 중심축이 이루었다.     초기 구상에서는 레이디가 질투심 많고 투덜대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레이디가 개 보호소에 오래 머물며 더 많은 개가 입양되지 못해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대폭 축소되었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족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전환하면서 5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러브 스토리로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영화사에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지만 애초에 월트 디즈니는 스파게티 키스신을 삭제하려고 했다. 월트 디즈니는 개들이 파스타를 나눠 먹는 게 우스꽝스럽고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시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여주었고 월트 디즈니가 마음을 바꿔 이 또한 영원한 명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레이디와 트램프는 동물 캐릭터임에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표현하도록 설정되었다. 꼬리, 귀, 눈, 몸짓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섬세한 연출은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유한 보수적 가정에서 보호받는 삶을 살아온 레이디는 세상 물정엔 서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충직하다. 반면 '부랑자'라는 뜻인 담긴 이름의 트램프는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떠돌며 살아가는 믹스견으로 위험을 피하는 법과 세상의 룰에 능숙하고 레이디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애니메이션에서도 현실적 인간 사회를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후 여러 매체와 애니메이션에서 거리 개와 집 개의 대비가 반복되는 패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레이디에게 누명을 씌우는 쌍둥이 고양이 사이 앤 엠은 오랫동안 동양인에 대한 고정 관념적 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 2019년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에서는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장면과 노래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랑에 빠진 두 마리의 아주 다른 강아지들의 이야기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손으로 그린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의 감성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영화사에 남아 있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스파게티 영화사 애니메이션 영화 애니메이션 관객층 디즈니 스튜디오

2025.08.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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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사랑, 영화사의 전설이 되다

사랑, 연인이라는 통상적 단어가 이들 사이에서는 금기어가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에서 만난 두 남자의 원초적 시선이 그 사랑의 시작이었다.     2005년 대만 출신의 거장 이안 감독이 애니 프루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 영화화한 ‘브로크백 마운틴’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06년 아카데미상에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최다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해 작품상이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닌, ‘크래쉬(Crash)’로 선정된 것은 역대 아카데미상 최대 오점 중 하나로 거론된다.     영화가 발표된 2005년 당시,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동성애를 주된 서사로 다룬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파격적인 시도였다. 특히 ‘서부극’이라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 장르에 동성애 코드를 접목한 것은 보수적 성향의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특정 소수자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과 상실, 그에 따른 고뇌 등 비극적인 감정으로 접근했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했고 관객들을 동성애 커플의 감정선에 깊이 공감하게 하여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와이오밍은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고, 동성애 행위가 발각되면 폭력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60년대 와이오밍의 브로크백 마운틴의 양 떼 방목을 위해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이 채용된다. 이들은 낮에는 초원으로 양들을 몰아 풀을 먹이고 밤에는 방목지 근처 텐트에서 잠을 자며 양을 돌본다.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사슴을 사냥해서 먹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지면서 잭과 에니스는 조금씩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들은 식사를 같이하는 등 하루 종일 함께 지내지만 서로 맡은 일이 달라 밤에는 각자의 텐트에서 따로 잠을 잔다. 둘은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취해버린다. 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에니스는 몸을 가눌 수 없어 땅 바닥에 담요를 덮고 누워 동이 트길 기다린다. 모닥불이 꺼지고 추위에 떠는 에니스를 잭은 텐트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옆자리에 누운 에니스를 뒤에서 포옹하는 잭의 돌발행동에 놀란 에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관계를 맺는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고 둘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며 더욱 친밀해져 간다.     사랑에 빠진 두 남자는 예상보다 일찍 철수하게 되면서 기약 없이 헤어진다. 에니스는 알마(미셸 윌리암스)와, 잭은 루린(앤 해서웨이)과 결혼해 자녀를 낳고 살아간다.     에니스를 잊지 못하는 잭이 4년 만에 찾아온다.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 키스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알마는 충격에 휩싸이고 두 남자의 관계가 지속하는 것에 절망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에니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알마는 에니스와 이혼한다.   20년 동안 이어진 잭과 에니스의 만남은 잭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맺음을 맺는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끔찍한 최후를 맞은 잭의 본가를 찾아가는 에니스, 가고 없는 잭의 방에 앉아 그를 그리워한다. 평생 자신을 감추고 억압하고 부인하며 살아왔던 에니스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 두 주연 배우를 포함한 전체 캐스팅의 뛰어난 앙상블 연기,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이 조화를 이룬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안 감독은 와이오밍의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그리기보다, 인간의 외로움, 갈망,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성을 서정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퀴어 영화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며 주류 영화계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영화로 영화사적 가치를 지닌다. 동성애라는 민감한 주제를 인간적 감정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다가섰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퀴어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동성애 영화가 특정 커뮤니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주제임을 증명하며 이후 퀴어 영화들이 더 넓은 관객층에 어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문라이트’ 등 다양한 퀴어 영화들이 발표되어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퀴어 영화의 위상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흥행 성공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진화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는 동기가 되었다. 최근 동성애 영화는 LGBTQ+ 스펙트럼 전반을 아우르며, 성을 남녀로 구분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지정받은 성을 스스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 무성애자를 뜻하는 ‘에이섹슈얼(Asexual)’ 등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특정 정체성이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세분된 이야기도 증가하고 있으며, 아시아 등 비서구권 영화에서도 활발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강렬하고 몰입 적인 연기는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저는 과묵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에니스의 고뇌하는 내면을 눈빛과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 완벽하게 표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저는 2008년 1월 뉴욕의 자택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다음 해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 사후에 남우조연상을 받은 최초의 배우가 된다.   제이크 질렌할 역시 에니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좌절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가는 불운한 남자 잭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미셸 윌리엄스와 앤 해서웨이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드넓은 와이오밍의 웅장한 자연 풍광, 그 속에 묻혀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고독함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 고독함이 없었던 들, 애초에 두 남자의 사랑은 싹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영화사 사랑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 행위 동성애 코드

2025.06.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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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다 버릴 껌 취급…영화사 최대의 핵무기 조롱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그리고 3일 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주도권은 더 이상 인류가 아닌, 핵으로 넘어간다. 그들은 신무기가 전쟁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점차 인류를 위협했고, 세상은 지금까지 멸망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에서 전쟁이 중단된 적은 한번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는 동안, 원로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그들에게 원자폭탄은 껌과 같은 존재이다.     올해로 개봉 60주년을 맞은 스탠리 큐브릭의 매스터피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연신 껌을 씹고 있다. 껌의 역할은 불안을 완화하는 일이다. 단물이 빠지면 뱉어 버리면 그만이다. 껌은 일회성이라는 본질에 반해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고 있을 때, 핵무기를 껌 정도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있던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인류 평화를 논한 결과다.   큐브릭 감독은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나면 뱉어 버리는 책임감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의 도구로 껌을 사용했다. 영화의 부제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걱정할 필요 없어. 폭탄 하나만 있으면 돼)은 큐브릭 감독이 인류사에 던진, 영화사상 최대의 조롱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허무주의, 절망과 광기에 대한 심화된 고찰이며 전쟁과 정쟁을 유머로 승화한 최고의 영화로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위기감이 고조되던 냉전 시대에 발표됐다. 그러나 핵에 관한 인류의 우려는 60년이 지났어도 본질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영화에 담겨 있는 메시지와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의 모든 설정은 큐브릭의 우스꽝스러운 상상에서 시작한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기반하지만 그 설정을 완전히 뒤틀어 버린다.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폭격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냉전시대 미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커티스 르메이는 “We're going to bomb them into the Stone Age”(폭격으로 석기시대로 되돌려 보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사일과 폭탄이 눈앞에 당면한 문제 해결의 최선책이라고 믿는 사람은 르메이 뿐만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공주의자 잭 D. 리퍼 장군은 전형적인 폭격 만능주의자다. 그는 성기능 장애의 원인이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불소로 미국 남성들의 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리퍼 장군이 난사하는 기관총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증류수와 빗물만 받아 마시는 그는 마침내 소련을 응징하기 위해 핵폭탄을 실은 폭격기를 발진한다.   리퍼 장군의 망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하는 나치 독일의 망명 과학자 스트레인지러브 박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우고 남녀 비율은 1 대 10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의 이러한 제안은 나치의 '히틀러 유겐트'를 연상케 한다. 나치는 제1제국을 신성로마, 제2제국을 독일제국으로 보고, 나치 지배의 제3제국 수립을 선포했다. 유소년과 청소년들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엘리트들을 양성한다는 '인류 계획'이었다.     큐브릭은 영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본질적으로 나치, 소련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희생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껌처럼 씹고 뱉으면 그만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인들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간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는 절대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 머플리미 대통령이 전쟁 상황실에서도 서로 싸우는 참모들에게 “Gentlemen, you can’t fight in here. This is the War Room!”이라는 대사를 던지는 장면은 상징하는 바 크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전쟁에서 아이러니를 찾고 비참한 코미디로 마무리된다. 영화가 최고의 정치 풍자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터 셀러스라는 위대한 천재 배우의 연기 때문이다. 출세작 ‘핑크 팬더’와 1인 다역으로 유명한 그는 3명의 중심 캐릭터 라이오넬 맨드레이크 영국군 장교, 머킨 머플리 미국 대통령 그리고 스트레인지 박사를, 돌아가면서 시니컬한 익살과 씁쓸함으로 연기해낸다.     영화는 핵이 폭발하는 몽타주와 함께 노래 ‘We’ll meet again'으로 끝이 난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를 우선시하는 자들이 전쟁 상황실에 모여 앉아 있는 한 전쟁은 반복될 것이다. 3차대전 이후 인류는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60년 전큐브릭이 경고한 인류의 섬뜩한 미래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핵무기 영화사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영화사상 최대 핵무기 개발

2024.02.0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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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영화사 MGM 인수 마무리…‘007’, ‘록키’ 등 확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지난 17일 영화사 MGM에 대한 인수 거래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 ‘프라임 비디오’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과 경쟁하고 있는 아마존은 전통의 영화 스튜디오인 MGM의 콘텐츠를 추가로 확보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MGM은 첩보액션 영화의 간판 격인 ‘007’ 프랜차이즈와 스포츠 영화 ‘록키’ 시리즈 등 4000여편의 영화 작품과 TV 드라마를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0년 영화·드라마 제작·배급사인 아마존 스튜디오를 자회사로 차려 오리지널 영화·드라마를 제작해왔다.   홉킨스 수석부사장은 “양질의 스토리를 창작해 들려줄 더 많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MGM의 직원, 창작자, 인재들과 함께 일할 것을 고대한다”고 말했다.아마존 영화사 인수 마무리 영화사 mgm 인수 거래

2022.03.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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