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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스파게티 키스, 영화사에 남다

Los Angeles

2025.08.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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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앤 더 트램프]
첫 와이드 스크린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20년 구상 끝 완성된 아메리칸 러브스토리
시대 초월한 로맨스와 모험 절묘하게 조화
스파게티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맨틱 장면 중 하나로,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패러디와 오마주가 끊이지 않고 있다. [Walt Disney Pictures]

스파게티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맨틱 장면 중 하나로,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패러디와 오마주가 끊이지 않고 있다. [Walt Disney Pictures]

강아지 두 마리가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한 접시를 함께 먹다가 면발 끝에서 뜻밖의 입맞춤을 하게 된다. 두 캐릭터의 감정과 친밀함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한 번쯤 보았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로맨틱 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레이디 앤 더 트램프(Lady and the Tramp)'가 개봉 70주년을 맞이했다.  
 
이 영화는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와이드 스크린) 포맷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이었지만 1955년 개봉 당시, 영화관들은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새로 도입하고 있었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와이드 스크린을 활용해 풍부한 배경과 장면 구성, 그리고 캐릭터의 자연스럽고 세밀한 움직임을 담을 수 있었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거의 20년에 걸친 구상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제작은 1930년대 후반부터 기획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과 디즈니 측의 우선순위 때문에 지연되다가 1955년에 완성되었다. 3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는 선전영화 제작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 포스터. [Walt Disney Pictures]

‘레이디 앤 더 트램프’ 포스터. [Walt Disney Pictures]

1930년대 말, 디즈니 스튜디오의 캐릭터 디자이너 조 그랜트는 자신이 키우던 코커스파니엘 '레이디'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직장 보스 월트 디즈니에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초반에는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디즈니는 이 아이디어를 버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장편 애니로 구상하게 된다.
 
이 영화는 디즈니의 고전 중에서도 특히 로맨스와 따뜻한 가족애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거나 오마주된 명장면들이 많아 디즈니의 아이코닉한 작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레이디는 부유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코커스패니얼 반려견으로 주인인 짐과 다이애나 부부의 보호 아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주변에는 사이와 앰이라는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 있다. 이들과 작은 갈등을 빚는다.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나면서 레이디의 삶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레이디는 아기에게 관심이 집중된 주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이 틈을 타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 사고를 내고 레이디는 억울하게 야단을 맞고 집에서 쫓겨난다.  
 
레이디는 거리를 방황하다 거리의 개 트램프를 만난다. 트램프는 레이디에게 거리 생활의 즐거움과 자유를 알려주고 둘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레이디는 처음엔 거리 생활이 낯설지만 트램프와 함께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둘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나눠 먹다가 면발 끝에서 입맞춤하게 된다.  
제작은 1930년대 후반부터 기획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과 디즈니사 측의 우선순위 때문에 지연되다가 1955년에 완성되었다. [Walt Disney Pictures]

제작은 1930년대 후반부터 기획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과 디즈니사 측의 우선순위 때문에 지연되다가 1955년에 완성되었다. [Walt Disney Pictures]

 
트램프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개 잡는 곳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레이디는 트램프를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용감하게 나서고 서로의 신뢰가 깊어지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트램프는 레이디를 다시 찾아온 짐과 다이애나 부부의 도움으로 구조되고 식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레이디와 가정을 이루어 4마리의 부모가 된다.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강아지들을 통해 용기, 우정, 그리고 사랑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사회적 갈등과 계급 차이를 은유적으로 담아내면서 어린이에 국한되던 애니메이션 관객층을 성인층으로까지 확장하며 애니메이션 영화의 상업적 경쟁력을 높였다. 이전 디즈니 작품들은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적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단순히 귀여운 강아지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스파게티 키스신 등 성인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로맨스를 가미한 것이 주효했다.  
 
스토리 초안은 훨씬 어두운 버려진 개의 이야기였다. 구상 단계에서 트램프가 영원히 거리로 돌아가는 엔딩도 검토됐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가 희망적인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사랑과 가족애를 강조하는 따뜻한 이야기로 전면 수정하였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명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거리의 개 트램프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레이디와의 로맨스가 중심축이 이루었다.  
 
초기 구상에서는 레이디가 질투심 많고 투덜대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레이디가 개 보호소에 오래 머물며 더 많은 개가 입양되지 못해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너무 우울하다는 이유로 대폭 축소되었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족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전환하면서 50년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러브 스토리로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영화사에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지만 애초에 월트 디즈니는 스파게티 키스신을 삭제하려고 했다. 월트 디즈니는 개들이 파스타를 나눠 먹는 게 우스꽝스럽고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시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여주었고 월트 디즈니가 마음을 바꿔 이 또한 영원한 명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레이디와 트램프는 동물 캐릭터임에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표현하도록 설정되었다. 꼬리, 귀, 눈, 몸짓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섬세한 연출은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유한 보수적 가정에서 보호받는 삶을 살아온 레이디는 세상 물정엔 서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충직하다. 반면 '부랑자'라는 뜻인 담긴 이름의 트램프는 자유분방하게 거리를 떠돌며 살아가는 믹스견으로 위험을 피하는 법과 세상의 룰에 능숙하고 레이디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애니메이션에서도 현실적 인간 사회를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후 여러 매체와 애니메이션에서 거리 개와 집 개의 대비가 반복되는 패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레이디에게 누명을 씌우는 쌍둥이 고양이 사이 앤 엠은 오랫동안 동양인에 대한 고정 관념적 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이유에서 2019년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에서는 고양이들이 등장하는 장면과 노래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다.  
 
사랑에 빠진 두 마리의 아주 다른 강아지들의 이야기 '레이디 앤 더 트램프'는 손으로 그린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의 감성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영화사에 남아 있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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