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좋은 것 중 하나는 하고 싶은 생각만 있으면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 볼 만한 미술관이 많고 높은 수준의 음악회도, 뮤지컬이나 연극 공연도 심심찮게 열린다. 지하철이 서울 시내, 서울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지방까지 안 닿는 곳이 없으니 차가 없어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LA에서도 다양한 문화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행사는 그리 많지 않다. 혹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하더라도 멀리 있고 운전을 잘 못 하니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내한공연’이라는 광고를 봤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무조건 봐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몇 달 후에 있을 공연을 위해 일찌감치 티켓을 예매했다. 티켓 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대신 다른 비용을 절약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집에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지하철을 몇 번 환승하며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 돔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객석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그 큰 공간에 상당히 많은 관객이 앉아 있었다. “못살겠다, 힘들다”는 아우성은 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 같았다. 한국은 식당이나 콘서트장 등 어디를 가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트럼프가 “한국은 머니 머신”이라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액을 올리겠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입이 벌어졌다.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장치와 무대 위에 오른 수백 명의 출연진에 내 눈을 의심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화려한 중국풍 의상과 세트는 실제 베이징 황궁을 연상케 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많은 작곡가의 작품들이 있지만 투란도트가 한국인들에게 특히 유명한 이유는 대표곡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 때문일 것이다. 아리아 네순 도르마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경기 내내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된 데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결승전 전날 전 세계에 방영된 ‘쓰리 테너 콘서트’에서 부르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의 유작으로 그가 작곡 중 숨지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마지막 두 장면은 푸치니의 스케치에 따라 제자에 의해 완성된 작품이다. 이에 관해 작곡가 푸치니와 지휘자 토스카니니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둘은 친한 사이였지만 다툼도 잦았다. 크리스마스 즈음 푸치니가 친구들에게 빵을 선물했는데 잘못해서 토스카니니에게도 보냈다.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보낸 줄도 모르고 그 빵을 먹어 버렸다.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에게 ‘크리스마스 빵, 잘못 보냈음’ 이라는 전보를 보냈고, 이에 토스카니니는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어 버렸음’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이 사건 이후 둘은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훗날 초연에서 토스카니니가 투란도트를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는 완성된 곡을 거부하고 푸치니가 작곡한 마지막 부분인 ‘류의 죽음’까지만 공연했다. 그리고 청중들을 향해 “이 오페라는 여기서 끝납니다. 원작자가 사망하여 뒷부분을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퇴장해 버렸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은 고대 중국의 베이징이지만 고증이 없는 판타지에 가깝다. 내용도 다소 진부하다. 하지만 용감한 왕자가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 흠모하는 왕자님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노비의 순수한 사랑, 냉담한 공주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 등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많이 알려졌지만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남자에 대한 혐오와 복수심으로 얼음같이 차가운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에게 청혼하러 온 남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다. 모두 맞추는 사람과는 결혼하겠지만 만일 맞추지 못하면 참수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남성이 그녀의 미모에 반해 도전했다가 참수형을 당하고 만다. 그 무렵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칼라프라는 용감한 왕자가 투란도트에게 한눈에 반한다. 수수께끼에 도전해 세 가지를 다 풀지만 투란도트는 분노하며 그와의 결혼을 거부한다. 칼라프는 만약 동이 트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기꺼이 죽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과 결혼해야 한다고 공주에게 역으로 제안한다. 투란도트는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칼라프 아버지와 노비인 류를 잡아 와 고문한다. 칼라프를 흠모하는 류는 모진 고문에도 그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자결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분노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공주를 아내로 맞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밝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공주는 결국 칼라프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둘은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이번 ‘투란도트’ 한국 공연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팀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만 볼 수 있었던 웅장한 오페라 무대를 서울로 옮겨왔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베로나 축제팀 100년 역사상 해외 공연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하니 이번 공연은 한국 오페라 역사의 한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적인 명작 오페라에 걸맞게 캐스팅도 초호화였다. 월드 클래스 성악가들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연기력, 아름답고 장엄한 오케스트라 음악은 관객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특히 트란도트의 하이라이트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현장에서 듣고 가슴에서 뜨거운 감동이 몰아쳤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출연진이 무대인사를 할 때 나도 오랫동안 손이 아프도록 손뼉을 쳤다. 목이 터져라 환호성도 질렀다. 순간 마음속에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한 아름 선물을 안은 듯 기쁨이 충만했다. 공연장을 빠져나오니 날은 저물어 어둑어둑해졌다. 10월 중순의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에 마음은 이탈리아 고대도시 베로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안고 서둘러 집에 오니 밤 12시였다. 마음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으나 이틀을 꼼짝 못 하고 집에서 쉬었다. 한국이 아무리 갈 곳이 많고 즐길 거리가 많으면 뭣하랴! 이제는 체력이 달리는걸.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 공주 투란도트 아레나 오페라 무대
2024.11.28. 18:00
파사데나장로교회(담임 최진영 목사)가 ‘이웃을 향한 문화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오는 27일(일) 오후 5시 30분,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가로의 결혼, 세비야의 이발사, 카르멘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오페라 명곡들이 연주되며, 아나운서 출신 소프라노 김종숙의 해설이 더해져 관객들이 오페라를 더욱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공연에는 남가주에서 활동 중인 오페라 주역 성악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소프라노 김주혜와 김시연, 메조소프라노 채주원, 테너 오위영과 전승철, 바리톤 권상욱이 각기 다른 음색과 개성 넘치는 목소리로 파사데나장로교회의 아름다운 공간을 울릴 예정이다. 또한, 김정아, 강희선, 한지인, 김원선으로 구성된 정상급 연주자들이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의 아리아’ 같은 명곡들을 현악 사중주로 새롭게 재해석해 깊은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파사데나장로교회는 지역사회와의 문화적 소통을 위해 다양한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이번 오페라 갈라 콘서트는 오페라 애호가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음악 속에 담긴 인간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이번 공연은 전석 무료로 진행되며, 선착순으로 입장할 수 있다. ▶문의: (213) 379-2527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게시판 오페라 오페라 명곡들 오페라 애호가 오페라 주역
2024.10.24. 20:28
1782년 영국에서 초연된 존 게이 극본, 페푸쉬 음악의 ‘거지 오페라’는 당시 런던 오페라 무대를 휩쓸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의 주된 소재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왕·영웅·귀족들의 일대기였는데, 이 작품은 당대를 살아가는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거지 오페라’가 나온 지 150년이 지난 1928년,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손잡고 이 작품을 번안한 ‘서푼짜리 오페라’를 만들었다. ‘거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서푼짜리 오페라’의 등장인물은 도둑질이나 사기, 매춘, 폭력, 부정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간들이다. 왕이나 귀족,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줄줄이 나오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신분이 엄청나게 낮아졌다. 신분이 달라졌으니 음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밑바닥 인생들의 노래가 왕후장상의 노래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이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들은 일단 부르기가 쉽다. 전문적인 성악훈련을 받아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와 사뭇 다르다. 멜로디도 그냥 평이하다. 그렇게 평이한 노래를 ‘잰 체하지 않고’ 부른다. 잘 부르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혼신의 힘을 절대로 기울이지 않고, 전혀 심각하지 않게, 통곡하거나 격렬하게 분노하지도 않고 남의 얘기하듯 부른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찬 당대 사회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마지막에 칼잡이 매키스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왕의 사신이 나타나 그가 사면됐음을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은 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여기서 브레히트는 매키스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냉철한 메시지를 던진다. 방금 보았던 해피엔딩은 실제가 아닌 환상이라고. 당신들의 삶에 ‘왕이 보낸 사신’은 오지 않는다고.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페라 이탈리아 오페라 오페라 아리아 그리스 로마
2024.09.30. 18:50
K발레와 오페라 공연을 실황으로 감상할 수 있는 상영회가 열린다.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은 서울 예술의전당(SAC)과 공동으로 3회에 걸쳐 ‘공연예술 콘텐츠 상영회 K발레·오페라 시리즈’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상영회는 예술의전당이 선별한 예술 콘텐츠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SAC 온스크린(SAC on Screen)’ 프로젝트다. 오는 22일 오후 7시 발레 ‘라 바야데르’, 9월 12일 오후 7시 오페라 ‘마술피리’, 10월 10일 오후 7시 창작 발레 ‘심청’ 등 세 작품이 차례로 상영된다. 시작 전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레와 오페라 전문가가 직접 작품 해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발레 ‘라 바야데르’는 고전 작품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발레 중 하나로 꼽히는 대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니버설 발레단이 고전 발레의 정수를 보여준다. 6시30분부터 한미무용연합(대표 진 최) 소속 발레리나인 케이티 페이 스미스씨가 작품 해설과 발레 시연을 진행한다. 18세기 후반 유럽 배경의 마술피리는 1791년 모차르트가 작곡한 대표적인 오페라다. 6시 30분부터 LA 마스터 코랄 단원이자 남가주에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규영 씨가 작품 해설을 진행한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발레 ‘심청’은 1986년 초연 후 전 세계 15개국 40여 개 도시에서 한국의 고전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인 창작 발레다. 정상원 LA한국문화원장은 “이번 발레 오페라 시리즈에서는 상영회 직전 전문가들이 영어와 한국어로 해설을 진행한다”며 “접하기 쉽지 않은 예술 장르를 쉽고 재미있게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상영회는 무료로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문화원 웹사이트(kccla.org)에서 할 수 있다. ▶주소:5505 Wilshire Blvd. LA ▶문의:(323)936-7141 이은영 기자오페라 발레 오페라 진수 유니버설 발레단 오페라 전문가
2024.08.11. 19:00
푸치니의 투란도트 오페라를 떠올리면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네슨 도르마 (Nessun dorma) 곡 하나뿐이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중간부터 시작되는 아리아 한 소절만 알고 있다. 어느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치도 도밍고가 즐겨 불렀고, 발레 수업 시간에도 센터 아다지오나 림바링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음악이어서 이 곡 하나만 친숙하다. 네슨 도르마 하나를 듣기 위해 일 년 전 미리 시즌티켓을 사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LA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공연장은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찼다. 오페라를 보러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다. 내 좌석에 내 이름이 쓰인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Dear Jean Choi, 투란도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여러분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2025년 시즌 티켓 좌석 예약을 기대합니다.’ 결국 티켓을 사라는 말이지만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감동이었다. 집에 돌아와 결국 나는 2025년 시즌 티켓도 예약을 하고 말았다. 푸치니의 12개 오페라 작품 중 라보엠, 투란도트, 토스카, 마농레스코, 나비부인 등은 알고 있다. 그중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푸치니가 미완성 작품으로 남긴 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제자인 프란코 알파고에 의해 1926년 초연이 됐다. 중국 황제의 딸인 얼음공주 투란도트와 그녀의 수수께끼를 푸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핑, 퐁, 팡 대신들의 재치와 익살스러운 모습,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는 시녀 류의 극적인 이야기가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특히 화려한 의상, 수많은 등장인물, 데이비드 호크니가 디자인한 환상적인 무대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작으로 공연 내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호크니는 89세의 나이지만 지금도 회화뿐만 아니라 아이패드, 판화, 카메라, 복제 등 다양한 수단과 매체를 탐구하고 즐기는 예술가다.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공연 내내 등을 꼿꼿이 세우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가슴이 꽁당꽁당 뛰는 것을 느끼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네슨 도르마를 들으며 호크니의 무대 배경 앞에서 춤을 추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글리사드 아라베스크 통베 파도브레 피루엣 안디당 턴’. 발레작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카르페 디엠(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라)’, 푸치니는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열린광장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 오페라 오페라 투란도트 얼음공주 투란도트
2024.06.27. 20:22
캄보디아 오페라 캄보디아 우물 오페라 공연
2024.03.14. 21:04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는 데카당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살로메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헤롯왕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은쟁반에 담아오도록 요구한 엽기적인 팜므 파탈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수많은 팜므 파탈이 예술작품에 등장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팜므 파탈이 치명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 시기는 데카당스 예술이 풍미하던 19세기 말이 아닐까 싶다. 데카당스는 쇠퇴 혹은 퇴폐라고 번역되는데, 난숙기의 예술 활동이 내용이나 형식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정상적인 힘을 잃고 지나친 향락주의나 탐미주의에 빠지는 세기말적 징후를 말한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예술사적으로 볼 때, 와일드의 ‘살로메’가 R 슈트라우스의 음악과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이 엽기적인 작품에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사실 낭만주의는 탐미주의와 데카당스로 상징되는 이 세기말 병(病)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낡은 도구였다. 이 오페라를 작곡할 당시 R 슈트라우스는 낭만주의를 넘어 모더니즘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서양음악을 지배해 온 조성(調性)의 굴레를 벗어던지고자 했다. 실제로 오페라 ‘살로메’에는 조성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서로 다른 조성이 동시에 등장해서 충돌하기도 하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조(調)가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듣기에 불편한 불협화음과 애매모호하고 신비한 화성으로 ‘살로메’의 세기말적 병폐와 탐미적 데카당스를 그렸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슈트라우스로부터 촉발된 음악의 모더니즘을 ‘알프스 저편에서 넘어온 음악의 성병(性病)’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절, 이런 ‘음악적 성병’ 말고 살로메의 성도착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과연 있었을까.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페라 살로메 오페라 작곡가 데카당스 예술 음악적 성병
2023.12.18. 22:13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중독자였다. 그는 도박하려고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 돈이 급한 나머지 헐값에 소설 판권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작가로 우아하게 살 수 있었던 그는 도박 때문에 평생 돈에 쪼들리는 비루한 삶을 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은 평생 도박판을 전전했던 작가의 경험담을 담은 것이다. 주인공 알렉세이의 심리나 도박판의 풍경 묘사가 그렇게 리얼할 수 없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데, 특히 알렉세이가 도박판에서 큰돈을 연달아 따는 대목은 읽기만 해도 기분이 짜릿해진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이 소설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오페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박판 장면이다. 알렉세이가 돈을 걸 때 음악도 숨죽인 듯 조용하게 흘러간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룰렛 기계의 움직임을 묘사한 야릇한 음향만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모두 거는 알렉세이의 대담함에 혀를 내두른다.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지고, 마침내 딜러가 숫자를 외친다.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알렉세이가 돈을 모두 딴 것이다. 음악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알렉세이와 사람들은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이 엄청난 행운이 가져다준 환희를 만끽한다. 도박꾼이 늘 그렇듯 마지막에 알렉세이 역시 무일푼이 된다. 친구가 저녁을 사 먹으라며 준 동전 몇 닢을 만지작거리며 전에 동전 몇 닢으로 대박을 터트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행운을 기대하며 도박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는 단호하기 그지없다. 파국을 예고하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굉음으로 단번에 오페라를 끝내 버린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하듯이.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페라 도박 평생 도박판 주인공 알렉세이 도박 때문
2023.12.04. 19:15
유명 아리아 '여자의 마음' 등 친숙한 멜로디 선사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최원휘 테너가 44년 역사의 애틀랜타 오페라 무대 주연으로 관객들을 찾아온다. 최원휘 테너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석사학위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치고 2013년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로 데뷔했다. 지난 2020년 시즌에는 꿈의 무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남자 주인공인 '알프레도' 역으로 열연, 뉴욕 옵저버 등의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국, 뉴욕, 독일 등 전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원휘 테너는 애틀랜타 오페라 2023-2024 시즌을 맞아 처음으로 애틀랜타 무대를 찾았다. 이번 시즌 그가 오르는 무대는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 4~12일 캅 에너지센터에서 공연한다. 최 테너는 리골레토 중 '만토바 공작(Duke of Mantua)' 역을 맡는다. 극 중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로 이 노래를 듣기 위해 리골레토를 본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아리아다. 최 테너는 공연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본인이 맡은 만토바 공작 캐릭터를 설명했다. "흔히 바람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주인공 질다와의 순수한 사랑도 갈망하는 등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이야기를 더 심층적이고 비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이라 많은 오페라 팬들이 좋아하죠." 그는 만토바 공작의 망나니 같은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다고 표현하면서도 "내 성격과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만토바 공작역을 맡는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 그러나 프로덕션마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제외하고는 해석, 연출, 극중 배경이 모두 다르다. 애틀랜타 오페라는 원작 리골레토의 시대 배경과 달리 1930년대의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이번 리골레토 공연에 대해 최 테너는 "사회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재해석된 점이 특징이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회 계층, 인간상 등 우리가 익숙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고 전했다. 리골레토는 이탈리아어로 공연되며,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최 테너는 한인 관객들을 위해 "리골레토의 전체 줄거리를 알고 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리골레토는 오페라 입문용으로 좋다"며 "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라이브 연주와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유쾌한 유머, 콘서트 못지않은 솔리스트의 아리아 등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꼭 맛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애틀랜타 오페라 측은 커뮤니티를 위해 10일 금요일 공연을 온라인에 실시간 무료 중계할 예정이다. ▶티켓= tinyurl.com/44rn4m5a, 스트리밍=stream.atlantaopera.org 윤지아 기자 애틀랜타 오페라 애틀랜타 오페라 오페라 무대 애틀랜타 공연
2023.11.02. 14:52
여름의 끝자락인 8월을 맞아 뉴욕 곳곳에서 다양한 무료 행사를 즐길 수 있다. 먼저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다채로운 음악과 뮤지컬 공연이 열린다. ◆브라이언트 파크 피크닉 퍼포먼스 시리즈=브라이언트 파크 퍼포먼스에서는 오는 18일 뉴욕 시립 오페라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25일 아코디언 연주 등을 즐길 수 있다. 시리즈의 일환인 ‘라이브 애프터 다크(Live After Dark)’행사는 매주 화요일 밤 공원 남쪽의 분수 근처에서 개최되며, 재즈 베이시스트 엔데아 오웬스와 밴드 쿡아웃이 1일, 베네수엘라 반돌라 연주자 마리아 곤잘레즈가 8일, 일렉트로어쿠스틱 스트링 듀오 ARKAI가 15일에 공연한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센트럴파크의 델라코테 시어터(Delacorte Theater)에서는 오는 6일까지 ‘햄릿’ 공연이 진행되고, 27일부터 9월 3일까지는 또 다른 세익스피어 작품 ‘더 템페스트(THE TEMPEST)’ 연극이 진행된다. 리버사이드 파크의 군인 및 선원 기념비에서도 오는 20일까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에 ‘마가렛:셰익스피어의 워리어 퀸’ 연극이 진행된다. ◆링컨센터 ‘서머 포 더 시티’=오는 12일 마무리되는 링컨센터 ‘서머 포 더 시티’ 시리즈에서는 모차르트 프라하 심포니의 클래식 연주, 오르케스타 브로드웨이의 쿠바 스타일 연주, 청각 장애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수화 연극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타임스스퀘어 라이브 시리즈=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타임스스퀘어 브로드웨이 보행자 플라자에서는 무료 콘서트와 DJ 파티, 코미디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서머 HD 페스티벌=메트의 서머 HD 페스티벌이 오는 25일 링컨센터로 돌아온다. 9월 4일까지 매일 밤 링컨센터 플라자에 2500개 이상의 좌석에 선착순으로 입장해 스크린을 통해 오페라를 즐길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춤을 즐길 수 있는 댄스 페스티벌도 열린다. 뉴욕시의 가장 오래된 댄스 페스티벌이자 다양한 안무가들의 춤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배터리 댄스 페스티벌은 오는 12일부터 18일까지 오후 7~9시 배터리 파크 시티의 록펠러 파크에서 개최된다. 가족들과 야외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도 있다. ◆센트럴파크 환경 보호 영화제=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공하는 센트럴파크 환경 보호 영화제에서는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4개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한다. ◆‘무비 위드 어 뷰’ 시리즈=브루클린 브리지 공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굿펠라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의 무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루프톱 필름=‘루프톱 필름(Rooftop Films)’은 8월 한 달 동안 뉴욕시 전역에서 ‘스타워즈’, ‘스크래퍼’ 등 자체 선정한 영화를 무료 상영한다. 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잔디밭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브라이언트 파크 퍼포먼스 시리즈
2023.07.31. 20:07
한인 테너 박종현(사진)씨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린데만 영아티스트 개발 프로그램에 발탁돼 이번 시즌 메트 무대에 데뷔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린데만 영아티스트 개발 프로그램은 오페라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1980년 탄생했고, 유명 국제 오페라 가수와 피아니스트 등을 양성해 왔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지난 18일 린데만 프로그램의 2023~2024 멤버를 발표했고, 박 테너가 여기에 포함됐다. 박 테너는 '마술 피리(The Magic Flute)'의 퍼스트 가드 역으로 메트 무대에 데뷔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발트 역할을 맡게 된다. 그는 최근 오페라 산 호세(Opera San José)의 '팔스타프(Falstaff)에서 펜턴 역을 맡았으며, 메롤라 오페라 프로그램에서 오페라 마적(Die Zauberflöte)의 타미노를 커버하기도 했다. 예일대 오페라 단원이기도 했던 그는 예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예일 오페라 갈라에 출연한 경력도 있다. 그 외 ▶메트 라폰트 콩쿠르 뉴잉글랜드 지역 2위 ▶프리미어 오페라 파운데이션 국제 성악 콩쿠르 3위 ▶대구 국제 성악 콩쿠르 장려상 ▶난파 전국 음악 콩쿠르 1위 ▶클래식 음악 잡지 콩쿠르 2위 ▶헤럴드 음악 콩쿠르 1위 ▶한국 성악 콩쿠르 3위 등의 수상 경력을 보유한 그는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성악 학위를 받았다. 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박종현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메트 오페라 박종현 테너
2023.07.20. 18:19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 방문했다가 오페라 가르니에 정면 파사드를 뒤덮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 얼굴에 놀랐다. 그가 모델인 남성 향수 ‘블루 드 샤넬’의 초대형 래핑 광고였다. 오페라 가르니에가 어떤 곳인가. 19세기 나폴레옹 3세 시절 설계돼 샤갈의 천장화를 비롯한 신바로크 양식의 장엄·화려한 내외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이 같은 문화유산급 건축물 전면을 샤넬 상업광고가 떡하니 메웠다. 측면엔 삼성 갤럭시 광고판도 웅장하게 서 있다. 천박한 상업주의라고 치부하기엔 샤넬과 오페라 가르니에 사이의 인연이 깊다. 샤넬은 이곳에 상주하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POB)의 공식 후원사일 뿐 아니라 메종 설립자인 가브리엘 샤넬(1883~1971) 때부터 발레 의상 제작에 헌신해왔다. 매 시즌 시작을 알리는 POB의 데필레(Defile, 행진) 때 새로 에투알(1급 무용수)이 된 단원은 샤넬이 제작한 의상과 티아라를 착용한다. 얼마 전 POB가 30년 만에 내한해 ‘지젤’을 선보였을 때도 샤넬은 특정 회차 객석을 일괄 구매해 VIP 고객을 들였다. 제품 가격을 수시로 올려 잠재 고객의 원성을 사는 이면에서 이 같은 메세나 활동으로 이미지 상쇄 효과를 누린다. 이득을 보는 건 오페라 가르니에도 마찬가지. 고풍스러운 건물 외관이 현대 명품 이미지에 힘입어 고루함을 벗어던졌다. 무엇보다 거액의 광고비를 받아 질 좋은 공연·전시, 문턱 낮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한다. 또 다른 프랑스 럭셔리 업체 루이뷔통이 지속해서 루브르 박물관과 패션쇼 등 협업을 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거액을 쾌척하는 것도 이런 ‘윈윈’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생기를 얻는 것은 덤이다. 아쉽게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선 이처럼 대담한 ‘윈윈’을 보기 어렵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규격과 내용 등이 엄격한 허가 및 신고대상인 데다, 특히 소위 ‘공공장소’라면 시민 정서가 걸림돌이 된다. 광화문 광장에 면한 세종문화회관의 관계자는 “공공건물에 상업광고를 하는 것은 거부감을 살 우려가 있고, 설사 공익광고라 해도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해 승인 허가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경쟁하듯 난립한 대형 간판들이 자아내는 ‘시각 공해’를 고려하면 서울 시내 공연장·미술관 외벽의 브랜드 광고는 시기상조일 것 같긴 하다. 다만 요즘 서울의 공간 이미지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게 ‘정치 현수막’이란 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해 12월 여야 합의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정당 현수막은 수량·규격·장소 제한 없이 보름간 걸 수 있게 됐다. 강혜란 / 한국 문화선임기자노트북을 열며 오페라 파리 샤넬 상업광고 파리 오페라 오페라 가르니에
2023.07.02. 17:21
1948년 1월 16일 서울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됐다. 일제강점기 시절 의학도였던 한 젊은이가 성악가의 꿈을 꾸며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해방 이후 의사로도 활동하며 국제오페라사를 창단하는 등 한국 오페라가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오페라의 선구자 테너 이인선(1906~60) 선생이다. 그때 한국 최초의 비올레타(춘희 주역)로 생애 첫 오페라 무대에 오른 이가 훗날 한국 오페라계의 대모라 불리게 된 김자경(1917~99) 선생이다. 1962년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된 이래 서울시 오페라단, 대구시립 오페라단, 광주시립 오페라단이 창단됐다. 최근에는 대전에도 시립 오페라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 성악계의 눈부신 성장을 이야기할 때 전국 각지에서 힘들게 오페라의 명맥을 이어온 민간 오페라단의 역할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2007년 120여 개의 민간 오페라단이 모인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가 설립됐다. 2010년에는 국내 최초의 오페라 페스티벌도 선보였다. 올해 12회 행사를 치른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매년 공모를 통해 전국적으로 공연단체와 작품을 선정하고, 제작환경이 녹록지 않은 민간 오페라단에 정부가 제작 예산의 일부와 대관 예산을 지원한다. 수준 높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장이자 페스티벌 조직위원장에 새롭게 선출된 조장남 이사장(호남오페라단 단장)은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권역별 개최와 후원회를 구성하여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재정기반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오페라 제작환경을 고려하여 본래 취지대로 문체부에서 직접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현주소는 열악한 편이다. 문체부 직접 지원 사업에서 2018년 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으로 전환되며 전체 예산 규모가 50% 삭감됐다. 지난해 예산이 4억5000만원에 그쳤다. 국립 오페라단의 한 해 예산이 120억원, 대구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산이 20억원인 것에 비하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다. 명성과 규모에 걸맞은 예산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 오페라는 올해로 73년이란 역사를 쌓아왔다. 그리고 종합예술로서 문화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뿌리는 서양음악이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도 유럽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왔고, 최근에는 전 세계 오페라 콩쿠르도 석권하고 있다. 흔히 오페라를 뮤지컬과 많이 비교하는데,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효율성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흥행 수치나 일시적인 파급 효과로 비교 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정부는 무엇보다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순수예술 사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 이를 요구하는 것은 예술인의 당연한 권리다. 국가가 참여하는 문화예술 정책은 당장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예술과는 다른, 미래를 위한 투자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오페라는 음악과 언어와 시각예술이 총망라된 복합예술이다. 정부는 오페라가 창출하는 문화산업 인프라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산도 보다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그나마 반 토막 난 예산 대부분이 산하단체 대관비로 지출되고, 오른쪽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겨 담는 듯한 현행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오페라 발전을 위해서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전국화가 꼭 필요하다. 음악계와 중앙정부, 지자체는 이제부터라도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윈원(win-win)으로 페스티벌을 지원한다면 재정적인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페라계의 대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순수예술의 기초 또한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믿는다. 강혜명 / 성악가(소프라노)기고 오페라 세계 대구시립 오페라단 호남오페라단 단장 민간 오페라단
2021.11.12. 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