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무침은 늘 반찬이라기보다 우리 집에서는 작은 추억 같은 것이었다. 예전에 어머님은 마켓에서 홍어가 좀 괜찮아 보이면 망설임 없이 사 오시곤 했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건데~” 어머님은 외아들을 향한 마음을 늘 음식으로 먼저 표현하셨다. 양념이 특별했다기보다 그 손길이 음식의 마지막 간이었다. “간이 어떻니?” 묻지 않아도 이미 딱 좋은 자리에 놓인 맛.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어머님이 알고 어머님이 해주신 것을 남편이 알아차리는-그 다정한 신호가 홍어무침 한 접시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음식 솜씨가 없는 편이라 특별한 음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 모임에 가면 테이블 어딘가에 놓인 홍어무침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직접 만들어 주지는 못해도 남편에게만은 꼭 챙겨 주고 싶어서 나는 늘 포장을 해 온다. “이건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거라 내가 싸갈게요.” 그 말은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작은 투고(Togo)박스에 담아 오는 일. 집에 와서 나는 당당하게 남편에게 차려준다. “당신의 최애 반찬 여기 있어.” 홍어무침은 남편에게 어머님을 떠올리는 입맛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오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두 모자의 추억을 조금 더 이어 붙이는 일이다. 음식은 정말로 그리운 사람을 불러오는 신호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맛과 냄새는 기억보다 먼저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을. 아이들이 타주로 대학을 갔을 때 마켓에서 ‘뿌셔뿌셔’라는 과자를 보면 괜히 발걸음이 멈추곤 했다. 라면땅 같은 그 스낵을 우리 아들이 참 좋아했다. 이제는 다 큰 아들이지만 그 과자를 보면 반짝이던 어린 시절 아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친정 부모님은 이북에서 오셔서 그런지 물냉면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입맛을 우리 딸이 꼭 닮았다. 사계절 내내 냉면이 있으면 먹는다고 하고 그중에서도 물냉면이 최애 음식이라고 말한다. 가끔 친구와 외식을 하다가 유난히 맛있는 물냉면을 만나면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다음엔 꼭 딸 데리고 와야지.’ 그 한 그릇을 딸에게도 먹이고 싶다. 맛있는 순간을 함께 나누며, 내가 느낀 ‘좋다’라는 마음까지 아이에게 조용히 건네주고 싶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한 끼의 음식 앞에서 나를 떠올릴까. ‘엄마가 해주던 맛’이라거나, ‘엄마랑 같이 먹던 맛’ 같은 이름으로. 아이들은 가끔 “엄마의 볶음밥이 제일 맛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이 고맙고,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어쩌면 아이들이 기대하는 건 완벽한 요리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써 준 시간과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맛은 대단한 레시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담은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화려한 한 상보다 자주 먹던 평범한 한 끼에서 더 오래 남는다. 이선경 / 수필가이 아침에 음식 음식 솜씨 우리 남편 우리 아들
2026.02.16. 18:21
이름은 마리아. 맨해튼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며 바지와 재킷 수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큰 눈이 인상적이었다. 주문을 받고 자기소개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을 끄집어냈다. 며칠 전 아니면 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하고 측은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25년 전 이야기라고 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심각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까 다음 주에 찾으러 오겠다고 나갔다. 그녀는 간호사로 남편은 투자은행에서 일했고 맨해튼 고급 빌라에서 살았는데 남편이 과로로 쓰러졌다. 치료를 받고 건강한 상태로 일했는데 일이 과중해 주말도 평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고 남편도 일을 즐기며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일을 줄이고 휴식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산소통을 끼고 살았는데 마리아도 간호사를 그만두고 남편 간호에 모든 정성을 다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깐 나간 사이에 남편이 침대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 뒤로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며 심한 우울증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마리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난 후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하고 자신에게서 불행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가 잘못하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답이 없는 질문을 반복하며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자책감과 죄책감에 빠졌다. 우울증이 우리 뇌에 부정적인 것만 유난히 잘 보이도록 만들어졌는가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평생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불행의 이유는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좋게 나왔을 때 행복한 사람은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일정 부분 자기반성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반성을 넘어선 자책을 하므로 우울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인생에서 겪는 대부분의 일은 나로 인해 생기기보다 외부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처럼 불행에 대해 자신 내부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일은 지진 피해를 보고 나를 탓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문제를 찾는 것을 태생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어디에 두고 바라볼지는 내 결정에 달렸다. 물론 남 탓을 많이 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나친 남 탓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행복한 일만큼 불행한 일이 넘치며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지 밖에서 찾을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다. 행복한 일은 나에게서 불행한 일은 외부에서 찾는 습관이 행복한 삶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행복해지는 데는 이렇게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만족하면 바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스님의 말처럼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지금 바로 행복의 계단을 올라타고 올라갈 수도 불행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 마리아가 올 때마다 항상 똑같은 말을 하는, 우리 남편 죽었다고 했던 가로 큰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싫어 오렌지를 내밀면서 맛있다고 내가 그녀의 말을 막아 버렸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불행 남편 간호 우리 남편 휴식 시간
2025.05.12.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