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남쪽 끝자락에 워싱턴 불러바드가 있다. LA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도로는 커머스, 컬버시티, 피코 리베라, 그리고 위티어 등과 연결되는 긴 도로다. LA는 도시로 성장하면서 도로명에 대통령(워싱턴, 아담스, 제퍼슨)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LA가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을 도로 이름으로 사용한 것은 1853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시절엔 워싱턴 불러바드가 아니고 워싱턴 스트리트로 불렀다. 1860년대 신문 기사에도 워싱턴 스트리트가 언급됐다. 하지만 당시 도로 주변은 한산했다. 건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기면 번성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186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LA 개발 계획 지도에도 도로명에 여러 대통령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계획이 변경되거나 도로 계획 자체가 취소되기도 했다.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 그의 이름을 딴 시설물이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다. 정식 명칭은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다. 서부에는 워싱턴주가 있다. 워싱턴주는 미국의 32번째 주로 처음에는 의회에 주명을 컬럼비아 테리토리(Territory of Columbia)로 신청했으나 워싱턴 DC가 있어 워싱턴주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는 총 3144개의 카운티가 있는데 그중 31개가 워싱턴 카운티다. 또 워싱턴이라는 이름의 시와 타운도 84개에 달하며, 다른 명칭과 함께 사용되는 도시까지 합하면 127개 이상이다. 워싱턴으로 명명된 산은 최소 15개 이상이며, 강과 호수, 그리고 운하에 워싱턴의 이름을 사용한 곳도 최소 10곳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전국의 워싱턴 도로는 약 9535개로, 사람의 이름을 딴 도로로는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AI(인공지능)의 답변에 따르면 미국 내 거의 모든 도시에 워싱턴 도로가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도 워싱턴 불러바드가 있다. 이처럼 워싱턴 대통령이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그는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설계자다. 헌법만 있었던 시절 워싱턴은 국무회의 운영, 외교 정책, 국가 통합 등 미국의 정치 제도를 설계하고 시행했다. 둘째, 그는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식민지 시절 미국이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워싱턴은 보급 부족, 탈영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영국군을 격퇴한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셋째, 그는 탁월한 인품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다. 그의 겸손과 정직은 여러 일화에서 드러난다. 그는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었지만 겸손한 지도자였고. 병사들의 안전과 승리를 간구했던 인물이다. 넷째, 그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지도자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워싱턴은 왕이 될 기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다. 독립 전쟁이 끝날 때 그는 모든 국민이 추앙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왕으로 추대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군대 통수권을 반납하고 낙향했다. 이런 그의 행동은 왕 중심이었던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그는 절대적인 지지 속에 2기 임무를 마쳤지만 3선 출마는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났다. 이것이 미국 대통령의 2회 연임 제한의 기틀이 됐다. 미국 역사는 워싱턴을 ‘전쟁 중에도 첫째였고, 평화 시에도 첫째였으며, 국민의 마음에도 첫째(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 of his countrymen)’라고 추앙한다. 지난 16일은 대통령의 날이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생일(2월 22일)을 기념하기 위해 1879년에 제정됐다. 이후 2월 12일이 생일인 에이브러햄 링컨 등 여러 대통령을 기념하는 날로 확대됐다. 1960년대 후반 통과된 ‘월요일 공휴일법(Uniform Monday Holiday Act)’에 따라 2월 셋째 월요일로 고정되었다.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두르는 부박(진부하고 천박)한 정치인이 많은 요즘,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워싱턴을 생각하니 더 울적해진다. 워싱턴이 그리운 세월이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길 위의 인문학 대통령 워싱턴 워싱턴 대통령 워싱턴 컬럼비아 워싱턴 스트리트
2026.02.24. 18:41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4년, 4년, 도합 8년,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그 당시 조지 워싱턴은 국민으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워싱턴은 3선, 4선도 무난하게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워싱턴이 계속 대통령을 하다가 독재자가될까 봐 두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워싱턴은 두 임기(8년)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물러남이 엄청나게 훌륭한 일이었다. 이게 전통이 되어서 미국의 대통령은 두 임기뿐이다. 엄청 훌륭한 일이 또 생겼다. 베네딕토 16세는, 77세, 2005년 4월에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8년 후, 85세, 2013년 2월에 교황직에서 스스로 사임했다. “고령인 데다가…,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최근 몇 달 동안 심신이 쇠약해지면서 제게 맡겨진 이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던 것이다. 어느 누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싶어 하겠는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온갖 악랄한 짓을 하는 이 세상에! 정적들을 죽이고, 그리고 국민을 탄압하면서, 독재하려고 하는 판국에. 그렇구나,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 그래 맞아, 권좌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이 어려운 일!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엄청 훌륭한 일’이라는 것은 나는 깨달았다. 교황은 물러난 후, 9년 동안 바티칸 내 에클레시아 수도원에서, 매일 기도와 책을 쓰면서 조용하게 살았다. 죽기 몇 시간 전에, “주님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간호사가 전했다. 베데딕트 16세 교황이 8년 정치하고 물러났기에, 다음 교황들도, 이분의 본을 따라, 교황들이 10년 정도 정치를 하고서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 대부분의 고통과 가난과 부패는 독재자의 횡포에서 생긴 것이다. 독재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고 입으로는 마구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은 자기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어떤 독재자들은, 남의 나라까지 먹고 싶은 탐욕에, 옆 나라를 침공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만약 독재자들이, 워싱턴 대통령처럼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처럼, 몇 년간 정치하고 자발적으로 물러난다면? 그 나라는 보다 더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을 보라. 지금 수많은 세계의 굶주린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한다. 왜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하는가? 미국은 부자이고 그리고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왜 그런가? 수많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에는 독재자가 없다. 독재자가 없는 대신에, 그 자리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없기에 부패가 없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고 계속 최강의 나라가 되어 갈 것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은퇴를 보고서, 고려말 나옹선사(1320~1376)의 시가 생각이 나서 여기에 적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조성내 /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삶의 뜨락에서 워싱턴 대통령 초대 대통령 대통령 자리
2025.06.03. 17:45
250년 46대에 이르는 미국 대통령 중 존경받는 대통령 셋을 꼽으면 국부 격인 조지 워싱턴, 2차대전 승리를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는데 그중에 제일은 링컨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남북전쟁이라는 험한 대가를 통해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더 큰 그의 업적은 지금의 통일된 미합중국(USA)이라는 국가형태의 완성과 연방 구성원으로서 각 주(state)의 위치와 사명을 힘과 제도로 명확하게 확립한 대통령이어서다. 사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16대 링컨까지의 미국은 The United States are America 즉 복수형 시대로 ‘주’는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해체 또는 연방탈퇴가 가능한 느슨한 연합체 국가였다면 링컨 이후 오늘날 미국은 The united States is America. 단수형으로 ‘주’는 미국이라는 국가를 이루는 운명공동체이자 연방을 지탱하는 기둥이자 주체가 됨을 명확히 자리매김한 대통령이 링컨이다. 그런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풍성하고 이력 또한 화려하지만 전체 삶에서 아픔과 실패가 많았다. 두 번의 사업 실패로 빚을 갚는 데만 17년이 소요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개인사적으로 그는 9살에 어머니를 잃었는가 하면 19살에는 시골 외딴 통나무집에서 외롭게 살며 엄마처럼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냈던 누이를, 26살에는 약혼녀를, 41살에는 차남 에드워드를, 53살에는 삼남 윌리엄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정치 여정도 불운했다. 20세가 되던 1832년 도전한 일리노이주 의원 선거에서 13명 중 8위로 낙선한 뒤 2년 뒤 주의원에 당선, 정계 입문이 무난하나 했으나 1840년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에 낙선한다. 그리고 1844년 연방하원에 도전하였으나 공천 관문에서 좌절을 맛보았고 1846년 37살에 간신히 연방하원에 당선, 워싱턴 중앙 정치 무대에 무난히 등단하나 했다. 그러나 1855년 상원의원 낙선, 1856년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 낙선, 1858년 상원선거에 낙선하는 등 10번의 선거에서 무려 7번이나 실패하므로 ‘낙선의 아이콘’으로 회자하기도했다. 그러나 1860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을 반석 위에 세우라는 창조주 하나님의 엄명을 받는다. 실패의 아픔과 설움을 통해 정금 같이 다듬어지고 주옥같이 빛나는 진가를 유권자들이 알아봤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한국 정치인 중 당선이 불확실한 곳을 찾아 도전하므로 ‘바보’ 소리를 듣곤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로 삼았고 그의 저서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란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요소를 바로잡아 극복하는 행위다’라고 적혀있기도 하다. 성경에서 아모서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훈계하였다. 종합하면 좋은 정치는 조화하며 순리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1860년대 미국은 정치 부재의 시대다. 남에서 시작된 물은 파도처럼 역류했고 북에서 흐르는 물은 정의를 빙자한 탁수로 오염되고 치열했다. 이 마른 대지 같은 미국에 링컨이 어떻게 물을 대고 평온한 지류를 형성케 했는지는 다음 회에 나열해보고자 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노예해방 링컨 링컨 대통령 대통령 선거인단 워싱턴 대통령
2023.06.09.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