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손주들의 재롱에 심심치 않다. 얼굴을 맞대고 재롱을 보기도 하지만 멀리서 사는 손주들은 카톡으로 본다. 시간이 가면서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장난기를 부리는 손녀딸이나 아직 말은 못 하지만 눈빛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놈들 모두가 귀엽다. 제 어미가 식탁에 놓아준 간식을 통통한 고사리손으로 하나씩 집어먹는 모습이 진지하다. 가만히 보니 간식이 떨어질 때쯤에는 어린 마음에도 아껴먹듯이 천천히 집어서 오랫동안 먹는 것이다. 나도 유년 시절에 그러한 기억이 있다. 지금 마트에 가면 형형색색으로 포장된 간식거리가 즐비하다. 내 어릴 적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다. 옛날 간식거리는 누룽지나 찐 감자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시장에 가서 쌀튀밥을 튀어오거나, 집에서 검은콩을 볶아 주기도 했다. 어머니가 볶은 콩을 밥그릇으로 형제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면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그러다가 콩이 그릇 바닥에 깔리면 우리는 천천히 아껴 먹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내 볶은 콩이 먼저 떨어졌는데 다른 형제들은 여전히 먹고 있다면 매우 서운했다. 자연 콩이 떨어질 즈음에는 천천히 아껴 먹었다. 볶은 콩처럼 많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인생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인생 초반에는 한 그릇의 볶은 콩을 받고 즐겁게 먹던 아이처럼 삶의 끝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무진장으로 주어질 것 같은 인생이 정년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구의 부모가 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언제부터인지 시나브로 사라졌다. 대신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상을 당했다는 문자가 왔다. 가끔은 친구의 부인이 상을 당했다는 문자도 온다. 이제 12월도 끝나간다. 곧 새해 달력으로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의 동짓달이 남았을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남은 시간은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삶의 가치가 축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에 집착하는 대신,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해 본다. 열정이 이상을 사로잡던 젊은 날에는 눈에 보이는 명성을 향해 달려갔었다. 고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참고 미루면서, 싸움터의 용사처럼 삭막하게 살아왔다. 이제는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보이는 듯하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보듬어 주고 싶다. 세상 풍파를 견디어 오면서 서로가 받았던 육신과 마음의 상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함께하는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다.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을,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비난보다 이해의 눈으로 삶을 살고 싶다. 다가오는 새해는 나에게 몇 개 남지 않은 소중한 볶은 콩의 한 알이니까. 이효종 / 수필가이아침에 옛날 간식거리 육신과 마음 인생 초반
2025.12.22. 19:39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세상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너는 늦으므로 해서 나는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로 내 삶이 아름다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너를 기다렸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해도 기다림으로 설레던 시간은 축복이였다. 사랑했던 아름다운 시절도 꽃잎 송별되어 바람으로 흩어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과 미움, 후회와 미련도 절망과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며 조금씩 잊혀지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와 죽음의 시간이 오는 것처럼 나아갈 때와 멈출 때,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사랑할 때와 작별할 때, 마지막 손을 흔들어야 할 시간이 온다. 태어난 때가 있었으니 떠나갈 시간도 온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로 흐른다. ‘찰나’는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로, 산스크리트어 ‘크샤나(kṣaṇa)’의 음역이다. 1찰나는 약 0.013초에 해당하며 75분의 1초로 여긴다.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다. 찰나는 시간의 단위를 넘어 순간의 변화와 무상(無常)을 나타내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찰나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고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삶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명상을 통해 찰나의 순간에 집중하면 마음의 평화를 찿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나이 들면서 슬픈 일은 주변에 계시는 어른들이 돌아가시거나 병마와 싸우는 소식을 듣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늙어지면 사랑도 미움도 날개를 꺾는다. 세월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생의 순간마다 상채기를 내며 파국으로 달려간다. 돈. 명예, 권력, 지위, 가족, 친구, 사랑과 욕망이 지속되길 바라지만 잠시도 머물지 않고 찰나로 흐른다. 후회해도 떠나간 것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다. 무상은 모든 것이 덧없음을 의미한다. 살아있음과 죽음의 고통에서 진리를 찿기 원한다면 무상의 진리를 깨닫고 물처럼 흐르면 된다고 가르친다. 육신과 마음, 생사고락의 변화를 힘들게 붙잡으려 하지 말고 찰나의 변화에 몸을 맡기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나이듬과 늙음은 살아있다는 진리다. 변화를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라. 모든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에서 생성된다. 깨달음은 움켜쥐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놓았을 때 온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어느 것도 붙잡고 집착하지 말고, 마음과 육신을 한곳에 가두지 말고 해방시키면, 고통과 행복,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돌아오지 못하는 강가에 혼자 서 있어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슬프지 않다. 다정한 손길로 나의 모습을 보듬고 쓰다듬는 것은 찰나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고 마지막 숨을 쉴 때가지 목숨을 소중하게 사랑하고 아끼면 생명은 찬란한 축복이고 선물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육신과 마음 불교 가르침 불교 용어
2025.06.17. 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