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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나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단발머리 시절, 라디오에서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시계바늘이라.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라고, 외치듯이 부르던 노래가 노력하지 않아도 귀에 탁 박히도록 유행한 적이 있었다.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소재로 했던 노래… 드디어 이번에 제대로 읽어보게 되었다. 며칠 후면 처음 가보는 남프랑스 여행에 대한 예의이기도… 혹은 로맹가리 책을 두 권이나 국제 우편으로 뉴욕에 보내주셨던 로맹가리 전문 번역가를 만나기 전의 예의이기도 했으려나…   두 번의 특별한 결혼, 그리고 헤밍웨이처럼 스스로 삶을 마감한 특별한 이력을 갖춘 프랑스의 대표 소설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1975년 출판한 이 책은 1970년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무슬림 고아 소년 모모를 주인공으로 한다.   매춘부 출신이지만, 어느 새벽에 호출이 되었다가 그 길로 홀로코스트에 끌려가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트라우마를 지닌 유대인로자 아줌마는 자신 삶의 부채의식을 의지할 곳 없는 매춘부의 어린아이들을 돌봐준다는 선의로 연명하면서, 다른 아이는 몰라도 모모만큼은 지원이 끊겨도 꼭 돌봐주겠다는 의지가 선명했다.     소설 초반부에는 열 살 소년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 열네 살, 사춘기 소년이었던 모모는, 친아버지가 매춘부와 사랑에 빠져 그를 낳았으나, 의처증으로 친모를 살해한 후, 정신병원 치료를 받다가 심장병으로 인한 죽음을 앞두고 팽개쳐뒀던 아들을 찾으러 오면서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모모를 잃지 않으려던로자 아줌마가 유대인 소년 모세를 친아들이라며 거짓 소개하는 바람에,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친아버지는 종교적 충격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그리워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세상 최고의 사랑을 주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상의 위로자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던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요양원에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다른 이들의 주장을 뒤로한 모모는 그녀가 요양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점을 잊지 않고, 그녀의 아지트인 지하의 세계로 그녀를 데리고 내려가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끝까지 아름답게 임종을 지켜준다는 것이 책의 줄거리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물론 가족이라는 가장 끈끈하고도 기본적인 단위에서 시작되어, 가족들만 잘 먹고 잘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길에서 만난 타자, 완전한 타인으로부터도 더 끈끈한 삶의 원동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남다른 소소함으로 말해주는 소설이었다.     사회적인 약자로, 매춘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 마약, 절도, 상해 등으로 삶이 얼룩져 있지만, 갱생의 삶을 지향하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건물을 두 발로 오르락거리며 사는 중에도, 이웃들과 진심으로 위로와 사랑을 나누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언뜻, 혈연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도 오버랩이 됐다. 꼭 가족 간이 아니어도 사랑은 주고받을 수 있는 ‘내 안의 기적’임을 보여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멘토로 여기며 많은 인생 질문을 해왔던 동네어른, 하밀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모모가 질문을 한다.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그때, 부끄러워하며 “사실… 그렇단다.”하고 대답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모모가 울음을 터뜨리며 뛰어나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작가가 역설적으로 우리 삶의 치명적 실수,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부단히 바쁜 척, 별일 없는 척, 잘 살아가는 척 달려가는 우리에게 넌지시 건네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는 정말…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사랑 아자르 로자 아줌마 유대인 소년 대표 소설가

2025.07.15. 18:00

[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와 약초 사이

“인생의 의미가 뭐에요?” “의미는 없어.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져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다를 게 없다. 너를 지켜주는 어떤 존재도 없으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일곱살 소녀가 친아버지로부터 이 대답을 들은 지 20년 뒤, “우리는 다만,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라는 유명 천문학자 닐 타이슨의 말을 들었을 때, 폐부에서 회오리치던 차가운 충격을 옮길 단어는 그녀에게 없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 소녀, 룰루 밀러는, 곱슬머리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잠시 행복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그를 잃고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어떤 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19세기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오래된 책에서 발견하고는, 그는 ‘왜 절망하지 않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과학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옛 과학자의 삶을 조망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넌픽션 에세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의 초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궁금했다. 별들의 이름을 외우고, 꽃과 식물 수집, 지도 만드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던 평범한 데이비드가 강과 호수를 누비며, 세계 어류의 5분의 1을 당대 인류에게 알리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점에서도 놀랬지만, 그가 스탠퍼드 대학 초대 학장으로 일하던 1906년, 30년 동안 모아왔던 유리병 속 물고기 표본들이 강도 7.9의 대지진으로 박살 났을 때, 망연자실,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 널브러진 물고기에 바늘로 이름표를 꿰매 붙이면서 다시 표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던 그에게서 불굴의 기개,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지진이 전하는 명백한 메시지에 대차게 도전하는 그가 과연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인가.     그러나, 그 불굴의 기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폭력성으로 변질하여 나타난다. 그가 물고기들을 잡을 때 보여준 잔인성에서. 그리고, 당시 미국을 강타했던 우생학(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는 학문)을 맹종했던 점에서. 그리고, 자신을 해고하려던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의 부인인 제인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드러난 점에서까지. 저자는, 데이비드의 초긍정적 삶의 태도가 강박적 자기기만에서 나온 ‘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데이비드가 오매불망 몸 받쳐 분류했던 ‘어류’는 사실상 우리 인류가 붙여놓은 이름일 뿐, 본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여러 검증으로부터 확인하게 된다.     구원인 줄 알았는데 폐악으로 드러나는 일은 도처에 비일비재하겠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혹은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두껍지도 않은 분량인데, 전에 만나본 적 없는 글 구성으로 방대한 양의 생각 거리를 주는 점에 말할 수 없이 매료되었으나, 특별히 두 가지 점에서 40대의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첫째, 데이비드가 범했던 우생학적 처벌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으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느 두 사람을 저자가 찾아내면서, 그냥 잡초인 듯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약초가 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을 긍정하게 되는 점. 둘째는,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경계선도, 사다리도 없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국,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아버지의 철학이 ‘누구든 각자는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사실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는 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는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저자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글이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잡초 약초 과학자 데이비드 물고기 표본들 약초 사이

2025.03.25. 21:50

[이 작품과 만나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한 해를 정리하고 맞는 이 때는 더욱 그러하지만, 일생동안 가장 자주 만나는 화두가 ‘사랑’이 아닐까…문학, 영화, 음악, 미술 등 수많은 장르의 주제가 사랑이며, 사랑은 우리 삶 근본 가치의 최대치라 생각 될 만큼 저변에 널리 깔려있다. 그래서 누구나 잘 알 것 같은 사랑의 인식이 실은 상당히 왜곡되어있다고 주장한다면…? 음악가, 건축가, 의사가 되기 위해 기술을 배워야하는 것처럼 ‘사랑’도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이에 관해 명료한 답을 적은 책이 있으니, 유태계 독일출신의 미국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1956년 출간한, 사랑에 관한 최고의 지침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다.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라 한다.   1차 세계대전의 1914년, 열 넷의 나이에, 왜 인류는 서로 안 싸우면 안 되는가를 고민하다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접하면서 답을 찾기 시작한 저자가, 두 사람 사상의 많은 부분을 응용하며, 사랑은 기술인가, 사랑의 이론, 현대 서양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사랑의 실천 등 네 개의 장으로 책을 완성했다.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을 만큼 공감도가 높으며, 책을 덮을 때는 ‘사랑이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법’이라는 주제에 완전히 긍정하게 되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상의 문제라 가정하며, 성적매력으로 친밀해져서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 사랑에 머무르는 상태를 혼동하는 등의 세 가지 이유로, 사랑의 ‘기술’을 배울 것이 없다는 태도이지만,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며,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는 또한, 현대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태어나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될 것에 대한 인식, 생명의 덧없음과 고독에 대한 인식, 자연 및 사회의 힘 앞에서 무기력함의 인식 등으로 견디기 힘든 분리감에 내몰린데다가, 물질적 안락과 퍼스낼러티 시장에서 성공하려는 갈망에만 자신이 바쳐져, 인생에 다른 건 없다는 허무감에 빠져 살고 있다고 진단하는데, 그러나 그러한 치명적 상황속에도 해법은 있으니 전생애에 걸친 사랑을 향한 꾸준한 ‘훈련’과 ‘정신집중’으로 ‘지금’을 사는 것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사랑은 기술이라고, 자연스레 가르쳐준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어 본 책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게, 새해에는 나도 내 안에 살아있는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를 이웃에게 ‘줄 수있기’를 소망해본다. 박영숙 / 시인이 작품과 만나다 사랑 에리히 붕괴 사랑 에리히 프롬 무기력함의 인식

2023.01.0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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