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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벽에 갇힌 90%의 목소리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재외선거가 종료된 지금, 우리는 다시금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되새기게 된다. 재외선거 투표율은 79.5%로 얼핏 보기에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수치의 기저에는 착시가 존재한다.     실제 재외선거권자는 약 197만 명이지만, 그중 단 13%만이 선거인으로 등록했고, 최종 투표자 수는 20만여 명에 불과했다. 전체 재외국민 중 단 10%만이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숫자가 말해주듯, 이는 실질적인 투표율이 아니라 등록자 대비 투표율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도다. 현재 재외선거는 사전 등록과 지정 공관 현장 투표라는 이중의 진입 장벽이 있다. 현장 투표만 허용한 채 유권자들에게 최대 수백 마일을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현재 시스템은 현실을 외면한 설계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콜로라도·텍사스 등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은 투표를 위해 최소 4~6시간 이상 운전하거나 아예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LA총영사관 투표소까지 왕복 12시간을 운전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우편 혹은 온라인 투표 도입 논의는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와 정치권은 보안, 기술 등의 문제를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다. 물론 모든 선거를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외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하여,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자는 요구다.     다수 국가가 온라인 국민투표나 해외우편투표를 시행 중이고, 한국 내에서도 전자 투표 시스템이 정당 경선에까지 쓰이고 있다. 결국 문제는 의지다.   제도 개선이 이뤄졌더라면 이번 대선의 투표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재외국민들이 한국 내 유권자들처럼 손쉽게 투표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 77.1%를 재외선거 유권자에 대입한다면 최대 150만 명 이상이 참여할 수도 있었다. 충분히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규모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간 표차는 24만표였다. 재외선거 150만 표심은 이번 대선에서 보수 후보간 단일화 전략의 타이밍을 앞당길 충분한 명분이 됐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단일화 협상에 있어 재외선거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많은 언론이 단일화의 ‘마지노선’을 사전투표 전날인 5월 28일로 설정했지만, 재외선거가 5월 20일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단일화 시한은 그보다 훨씬 빨랐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 정치권은 “재외선거는 전체 유권자의 1%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이는 유권자 규모만으로 표의 가치를 재단하는 시대착오적 태도다.   만약 단일화가 재외선거 이전에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구도에 균열을 낼 실낱같은 기회는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재외국민들의 표심에서 시작될 수 있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가 보다 활성화됐더라면, 정치권 역시 이 표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단일화 논의도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재외선거의 현실은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재외국민은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결코 ‘2등 유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동등한 한 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각성과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목소리 장벽 재외선거 투표율 재외선거 유권자 현재 재외선거

2025.06.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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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민, 장벽 높이는거보다 '이것' 먼저 해야..

 불법이민 장벽 불법이민 장벽

2024.07.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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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베를린 장벽’과 표현의 자유

몇 주 전에 한국을 다녀 왔다. 1가·2가·3가·4가…충무로·청계로·삼일대로…. 길 이름이 쓰인 깨끗한 표시판들이 신호등과 함께 친절하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묵고 있는 호텔을 멀리 돌아서 찾아가기도 했다. 금방 눈에 띄고, 쉬이 보여야 할 반짝이는 하이라이즈 호텔이 내 눈에는 금방 보이지 않는 적이 많았다. 나의 인지력이 감소한 것일까. 서울이 너무 번화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이었을까.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깨끗했다. 주위의 조경도 아름다웠다. 청계천을 따라 산책로를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청계천과 평행한 인도(人道)로 올라와서 길을 따라 걷다가 ‘베를린 광장’이라는 곳에 다다랐다. 세 개의 시멘트 판 ‘베를린 장벽’과 독일을 상징하는 곰, 100여 년 된 독일 전통의 가로등이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전시품이 두 개의 큰 길이 가로지르는 코너에 있었다.   화려한 한국 서울의 도심지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약간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는 오래된 시멘트 판으로 어른 키의 두 배 정도로, 폭은 1.2m, 두께는 0.4m로 바닥이 L자형이었다. 둔탁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에 의하면, 원래 어떤 부분은 5 정도로 높다고 한다.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길이 165Km 길이의 장벽을 잘라서 여러 나라에 선물로 보내거나 팔았다. 미국에는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Diplomacy)과  LA카운티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어느 호텔의 남자 화장실에도 있는데,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 왜 화장실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를린 장벽’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소련이 관할하는 동독일(東獨逸)과 미국, 영국, 프랑스가 관할하던 서독일로 양분되면서 생기게 되었다. 베를린시는 동독 지역에 있는 큰 브란덴부르크주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독재로 약 350만 명의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동독 정부는 1961년부터 1980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서 시멘트 200만 톤과 강철 70만 톤을 부어 이중의 ‘베를린 장벽’을 세워서 탈출을 막았다. 두 벽 사이는 장갑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나는 ‘베를린 장벽’을 두 번 보았다. 5년 전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을 보러 갔다가 처음으로 개선문 옆에 설치된 장벽을 보았고, 이번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청계천 근방에 있는 ‘베를린 광장’이라는 곳에서 본 것이다.     함께 자리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과 ‘베를린 장벽’의 일부는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다. 분단의 극복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두 역사적 전시물은 각각 다른 세기에 세워졌다. 양분된 독일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은 베토벤 심포니 9번을 그곳에서 연주했다. 케네디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이 냉전 시기에 이곳에서 역사적인 연설도 했다. 이러한 분단의 세상이 올 줄 모르고 JS 바흐는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를 작곡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서독 쪽 벽면에는 분단되어 못 보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또는 평화를 염원하는 그라피티 낙서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러나 동독 쪽은 아무런 낙서 없이 깨끗한 벽면으로 남아 있었다.     한국에 기증된 ‘베를린 장벽’을 페인트 스프레이로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삼류 의류업체의 창업주라 했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례도  읽어 보았다. 요즘 환경보호단체가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외에 호주, 독일 등 유명 박물관에 전시된 명화들에 음료수나 음식물을 끼얹어 세상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는 아니다.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를 쓴 JS 바흐는 뭐라 말할까. ‘이건 아니지~~~!’ 할 것 같다. 전월화 / 수필가수필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동베를린 주민들 베를린 광장

2022.12.08. 18:57

[J네트워크] 1인치 장벽을 넘는 또 다른 방식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원작에는 없는, 하지만 퍽 인상적인 설정이 나온다. 연극 연출가 겸 배우인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다.     히로시마 연극제의 초청을 받은 그가 현지에 두 달간 머물며 준비하는 작품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 팬들에게 친숙한 작품인데, 가후쿠의 연출은 오디션 장면부터 독특하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온 배우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각자에게 가장 편한 언어로 맡고 싶은 배역의 대사를 선보이게 한다.   이런 다중언어 공연 장면은 영화 초반에도 잠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무대 위의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하고, 뒤편 스크린에는 관객을 위해 두 언어가 자막으로 흐른다. 두 배우의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다른 언어로 연기한다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가후쿠다.     그의 이런 작업 방식은 주변에도 널리 알려진 듯, 영화 속에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자막이라는 1인치 정도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2년 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면서 한 말이다.   ‘기생충’은 미국 관객들이 자막을 읽어야 하는 외국어 영화를 싫어한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인 화제작이 됐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연극이라고 자막과 함께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다중 언어는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연극배우들은 지루한 대본 읽기를 반복한다. 모르는 언어로 상대가 읽는 대사를 듣고, 자신의 언어로 대사를 읽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의 연기가 강렬하게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를 경험한다.   연극배우들은 사실 이 영화의 조연일 뿐. 이 영화는 크나큰 상실과 고통을 겪고 소통의 장벽 안에 자신을 가둬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연극 연습을 하던 배우들이 그랬듯, 단순하고 반복적인 교류 끝에 마치 방언 터지듯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 놓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한다. 뛰어난 영화감독은 어쩌면 인간의 감정에 대한 좋은 통역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공동각본가이자 연출자인 하마구치 류스케가 바로 그런 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본래 부산에서 촬영할 뻔했다. 감독은 가후쿠가 부산의 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준비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로케이션이 힘들어지자 지금처럼 히로시마로 바꿨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 짧게 등장하는 한국 장면은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준다.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J네트워크 장벽 방식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다중언어 공연 히로시마 연극제

2022.01.13. 19:03

[영화몽상] 1인치 장벽을 넘는 또 다른 방식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원작에는 없는, 하지만 퍽 인상적인 설정이 나온다. 연극 연출가 겸 배우인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다. 히로시마 연극제의 초청을 받은 그가 현지에 두 달간 머물며 준비하는 작품은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연극 팬들에게 친숙한 작품인데, 가후쿠의 연출은 오디션 장면부터 독특하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온 배우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각자에게 가장 편한 언어로 맡고 싶은 배역의 대사를 선보이게 한다.   이런 다중언어 공연 장면은 영화 초반에도 잠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다. 무대 위의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하고, 뒤편 스크린에는 관객을 위해 두 언어가 자막으로 흐른다. 두 배우의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다른 언어로 연기한다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가후쿠다. 그의 이런 작업 방식은 주변에도 널리 알려진 듯, 영화 속에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자막이라는 1인치 정도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2년 전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면서 한 말이다. ‘기생충’은 미국 관객들이 자막을 읽어야 하는 외국어 영화를 싫어한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인 화제작이 됐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연극이라고 자막과 함께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다중 언어는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연극배우들은 지루한 대본 읽기를 반복한다. 모르는 언어로 상대가 읽는 대사를 듣고, 자신의 언어로 대사를 읽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의 연기가 강렬하게 어우러지는 놀라운 케미를 경험한다.   연극배우들은 사실 이 영화의 조연일 뿐. 이 영화는 크나큰 상실과 고통을 겪고 소통의 장벽 안에 자신을 가둬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연극 연습을 하던 배우들이 그랬듯,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한다. 뛰어난 영화감독은 어쩌면 인간의 감정에 대한 좋은 통역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공동각본가이자 연출자인 하마구치 류스케가 바로 그런 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본래 부산에서 촬영할 뻔했다. 감독은 가후쿠가 부산의 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준비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로케이션이 힘들어지자 지금처럼 히로시마로 바꿨다고 한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장벽 방식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다중언어 공연 히로시마 연극제

2022.01.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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