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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집단 접종, 그때 우리는 무엇을 믿었나

팬데믹 때였다.     동료 기자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LA 한인타운의 한 유명 한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신 접종 카드부터 보여주세요.”     비접종자라고 말하자 식당 주인은 “나가달라”며 서비스를 거부했다.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당시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눈총도 받아야 했다. 접종자들끼리 들릴 듯 말 듯 비접종을 이기적인 행위라며 한동안 수군거리기도 했다. 비접종이 해고 사유가 된다는 뉴스도 넘쳐났다. 그때마다 그런 광경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접종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문제 아닌가.   코로나 백신의 경우 급조되다 보니 임상 데이터가 부족했다. 그런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이라는 명목 아래 집단 접종을 강요하는 데 반감이 들었다.   전체주의적 발상이 팽배해지자 사고는 서서히 이분화됐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는 깡그리 무시됐고, 사회적으로 백신 접종만이 마치 유일한 이타적 행위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런 백신을 신생아를 비롯한 아동들에게까지 일괄적으로 접종하려는 행태를 보면서, 팬데믹 사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비접종을 당당하게 선택했던 이유다.   뒤돌아보면 코로나 시대의 백신 접종 정책은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정부도, 언론도 처음에는 “두 번만 맞으면 된다”고 했다. 군말 없이 팔만 내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급기야 브랜드가 다른 백신을 교차 접종하면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전례 없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백신을 섞어 맞기도했다. 이후에는 부스터샷을 맞기도 전에 4차, 5차, 그 이상까지 접종을 종용받았다.   백신 접종의 당위성이 사회 전반을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여러 의료 전문가들이 코로나 백신의 위험성을 지적했고,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논문들도 발표됐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검열되고 통제됐다.   당시 취재를 위해 코로나 백신을 승인한 식품의약국(FDA)과 접종을 권고한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90년부터 공동으로 운영 중인 백신부작용보고시스템(이하 VAERS) 자료를 살펴봤다. VAERS는 당시 코로나 백신 부작용에 대한 누적 데이터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90년 이후 다른 모든 백신과 관련한 사망자 수를 전부 합친 것보다 세 배 이상 많다.’     VAERS가 당시 코로나 백신 데이터에 대해서만 이례적으로 빨간 글씨로 명시한 문구였다.   그렇다면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 들여다봤다. 연방정부는 일반적으로 백신 부작용 피해자를 위해 ‘VICP(백신상해보상프로그램)’와 ‘CICP(피해보상대책프로그램)’를 시행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가 먼저 부작용에 대해 보상하는 VICP와 달리 CICP는 부작용을 주장하는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의학적 인과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법적 비용도 일체 개인 부담이다.   코로나 백신은 다른 백신들과 달리 VICP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였다. 즉, 부작용에 시달리는 일반인이 CICP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모든 입증 책임을 떠안은 채 승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코로나 백신 이면의 불편한 사실은 너무나 많이 존재했지만, 정부와 미디어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제공한 정보 속에서 대중의 판단력은 흐트러졌다.   최근 한국에서 코로나 백신에서 각종 이물질이 발견됐는데도 정부가 별다른 조치 없이 접종을 강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었다. 보류됐어야 할 백신이 접종된 건 무려 1420만 회 이상이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만 믿고 접종했던 이들은 이제야 현실을 직시하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묵인한 것인가.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개인은 없고 전체주의적 인식만 존재했던 팬데믹 시대를 떠올리면 쓴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우리가 그때 믿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장열 / 사회부장중앙칼럼 코로나 백신 백신 부작용 LA 로스앤젤레스 장열 미주중앙일보 중앙일보 LA 정은경 전체주의 백신 접종 부스터샷 백신 이물질 백신 팬데믹 코비드 백신

2026.04.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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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트라우마 통해 전체주의 비판

걷는다, 저항한다. 생존을 위해. 그러나 본질에서 죽음을 향한 행보다.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     권력 아래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고독하고 끝없는 길을 걷다 지쳐 쓰러진 불쌍한 영혼들과 함께 경험하는 고통의 롤러코스터!   '롱 워크(The Long Walk)'는 사소한 것조차 공포스럽게 만드는 풍부한 상상력의 작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흐만'이라는 필명으로 대학교 1학년때인 1967년 집필, 1979년에 출간한 킹의 사실상 첫 장편 소설이다.     극한 상황 속 인간성 해부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았다. 서바이벌 장르의 원조 격으로 자주 언급된다.     개봉 전부터 '헝거 게임'을 넘어서는 성인용 서바이벌 걸작이 될 것이란 기대를 안고 지난 12일 선보인 '롱 워크'는 '헝거 게임', '아이 엠 레전드' 등을 연출한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의 작품이다. 원작의 미니멀리즘과 음울한 분위기, 모호한 결말을 그대로 살렸고 킹 특유의 잔혹함, 심리적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처음부터 R등급으로 제작됐다.     가까운 미래, 전체주의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미국. 매년 5월 1일이 되면 '롱 워크'라는 국가 행사가 개최된다. 100명의 '불쌍한 영혼들'이 선택되어 동시에 걷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16세에서 18세 나이의 소년들, 그들 나름의 이유를 안고 걸어간다.   규칙은 간단하다. 시속 4마일 이하로 걷되 30초를 넘기면 경고를 받는다. 3회 경고 시는 즉시 총살! 멈추거나 도망가려 해도 바로 사살된다. 포기조차 할 수 없다.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끝까지 걷다 죽거나 1등으로 살아남는 것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승자는 원하는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 걷기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첫 탈락자들이 나오고 즉시 사살된다.   16세의 레이몬드 개러티(쿠퍼 호프만), 100명 참가자 중 한명이다. 그는 다른 참가자들과 동행하면서 우정, 경쟁,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인간성의 극한을 목격한다. 처음에는 참가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유를 부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치고 마음에는 두려움이 쌓인다.     생존자들은 걸으며 환각을 보거나 극도의 탈수와 배고픔, 심리적 붕괴를 겪게 된다. 레이몬드의 가장 가까웠던 친구 피터 맥브라이스(데이비드 존슨)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걸어가지만 결국 탈진으로 쓰러져 사살된다.   레이몬드는 치명적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군중의 환호가 들린다. 그러나 이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상태다. 생존 후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은 그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형체, 어쩌면 죽음일 수도 있는 환영을 보며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고독과 공포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영화는 그가 계속 걸어가는 모호한 장면으로 끝이 난다.   불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화 '롱 워크'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런데도 '걷기'라는 단순 행위에만 집중된 소설의 미니멀리즘은 작품이 지닌 특이성이다. 스릴러의 반전조차 기대할 수 없는 설정에서 영화는 2시간 남짓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 '헝거 게임'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답게 잔혹성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적이며 충격적으로 관객에게 큰 트라우마적 경험을 안겨준다. 걷기라는 행위의 단순함을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킹 특유의 공포를 연출해 낸다.   참가자 100명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다. 소년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배려하고 격려한다. 영화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년들의 심리적 변화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이어간다. 그들의 우정·자존심·연민은 끝내 무너지고 그들은 결국 체제에 의하여 몰락당한다.     '롱 워크'의 참가자들은 젊은 세대이며 그들이 목숨을 걸고 희생함으로써 사회는 안정을 유지한다. 16~18세 소년들만을 등장시킨 설정은 젊음이 체제에 의해 어떻게 소모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권력은 젊음을 소비재로 전락시키고 그 희생을 당연시한다. 이는 현실에서 전쟁터로 내몰린 청년, 경쟁 사회에서 소모되는 젊은 세대의 은유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전쟁 세대였던 킹이 집필 당시 경험한 시대 상황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다.   '롱 워크'는 단순한 생존 게임이 아니라 권력과 복종, 청춘의 허무함, 죽음과 인간 존엄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탐구한다. 권력이 설계한 통제 장치 아래 대중이 어떻게 폭력에 익숙해지고, 오락으로 소비되는지를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걷는 동안 국가 권력은 그 과정을 제도화된 규칙 속에서 관리한다. 사회 전체를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장치로 기능한다.   군중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가자의 고통과 죽음은 비극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구경거리와 오락으로 소비된다. 대중은 점차 폭력에 익숙해지고 그 과정에서 권력이 원하는 방식대로 길들여진다.   권력은 규칙을 만들고 젊은 세대는 희생양이 되며 대중은 방관자이자 소비자가 된다. 이 삼각 구조 속에서 인간성은 점점 지워지고 폭력은 통치의 일상적 도구가 된다.   레이몬드가 탈진 직전의 상태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로렌스 감독은 이 장면에서 다양한 촬영 기법을 활용해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배우들의 배우'로 불리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1967~2014)의 아들 쿠퍼 호프만의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그의 연기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극한의 환경에 내몰리는 주인공 역할 레이몬드 역을 맡아 그 심리적 혼란과 진정성을 담아낸 연기를 펼친다. 그와 그의 상대역 피터 맥브리스 역의 데이비드 존슨과의 케미 연기는 아마 올해 최고의 앙상블 연기로 평가받을 만하다.   영화는 결론부에 이르러서도 답을 주지 않고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마무리로 강한 여운을 남긴다. 스티븐 킹 특유의 '반 카타르시스적' 결말이다. 굴복하는 소년들, 희생된 젊음에 마음이 아프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전체주의 트라우마 트라우마적 경험 미래 전체주의 헝거 게임

2025.09.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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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블랙핑크와 전체주의

블랙핑크가 워싱턴에 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맞춰 걸그룹 블랙핑크의 워싱턴 공연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지만, 얼마 후 바로 ‘없던 일’이 됐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누락해 그렇게 됐는지는 본인들만 알 이야기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워싱턴 인사들은 백악관부터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미 짜인 투어 일정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특히 비용 부담이 문제였다. 한국 대기업을 포함해 민간 후원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법적 논란이 불가피했다. 사실상 백악관에 대한 뇌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 장소로 거론된 케네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이 모일 블랙핑크 팬을 수용할 공간도 없었지만, 국가적 대형 행사를 아무 절차없이 선정해 치렀다가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연방정부의 이해 충돌에 민감했다. 당장 이게 법적 문제까지 되진 않더라도, 다음 선거 때 공화당 측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얼마 전 한국에선 세계 잼버리 대회의 거듭된 파행에 대기업과 민간 대학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수십만 명분 음료를 지원하고 현장 환경미화엔 신입사원들까지 동원됐다. 모두 ‘국가 이미지 실추’라는 풍전등화 위기 앞에 자발적으로 나선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이들 연수원·기숙사에 잼버리 참여자를 수용하라고 통보를 했다. 식사나 시설 이용에 대한 아무 지침이 없었고 당국의 비용지원도 없다고 했다.   모두가 합심해 훈훈한 미담으로 끝나는 모양새지만, 정부가 민간의 역량을 제 주머니서 꺼내 쓰듯 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국가를 개인보다 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게 전체주의다.   정부가 보낸 공문 앞에 기업·대학들은 ‘안 하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한 번쯤 걱정했을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곳들은 뭔가 보험에 들어 놓은 기분일 수도 있다. 최소한 백악관이 블랙핑크 초청을 접으며 했던 ‘이해충돌’에 대한 고민이 한국 정부에선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필규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블랙핑크 전체주의 걸그룹 블랙핑크 워싱턴 공연 한국 대기업

2023.08.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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