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을 얕잡아 ‘딴따라’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호칭이 무색할 만큼, 많은 연예인이 대중문화의 첨병 역할을 넘어 사회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후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399년)를 소환해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묻는다.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물음으로, 삶의 본질과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을 대중에게 던져 큰 공감을 얻었다. 아테네 출생인 소크라테스는 30세에 보병으로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를 맛봤다. 그후 아테네의 국운이 상승하여 인생을 풍미할 수 있었으나 스파르타 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소망은 땅에 떨어졌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 3 가지를 물었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둘째, 나의 앞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셋째, 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인생은 죽으면 그만인가. 심각하게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 나오다가 출입문 상단에 적힌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독일의 고전학자 니체(1844~1900년)는 “인간은 아직도 확정되지 못한 동물이다” 라는 말을 했다. 잉카문명의 신화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신화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3번씩이나 창조했다고 한다. 첫 번째, 진흙으로 만들었더니 아주 둔하고 미련하여 폐기했다. 두 번째로 나무로 만들었지만 거칠고 심술 궂어 폐기해버렸다. 세 번째로 붓대를 만드는 반죽으로 창조하였는데 너무 영리하고 교활했다. 신은 고민하다가 두뇌활동을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게 하여 오류에 빠지도록 하고 세상의 최종 비밀을 탐구 못 하게 하고 잘못을 범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시사한다. 니체의 말과 잉카 신화처럼,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미완성의 인간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순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1901~1970년)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여러 정당의 난립으로 법안 통과가 지연되는 ‘변비형 민주정치’를 겪은 후, 일당제를 선택해 모든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결국 국가의 영양실조를 초래하는 ‘설사형 민주정치’로 이어져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처럼 인간의 불완전성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인사가 만사”라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다. 불완전한 인간이 운영하는 시스템일지라도, 적재적소에 올바른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 소장열린광장 불완전 정치학 불완전성은 정치 불완전성과 오류 설사형 민주정치
2025.08.26. 20:12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결국 물러난 이유는 불법 도청이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거짓말 때문이었다. 닉슨에 이어 두 번째로 탄핵 대상이 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비슷했다. 성 추문이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거짓말이 사유가 됐다. 미국 최고 권력자에게 거짓말이 어떻게 치명상을 안기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선거판에서 상대 후보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는 논점을 흐려 피해 가는 대표적인 기술이 ‘거짓말쟁이’ 낙인찍기다. ‘세기의 대결’로 불린 10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TV 토론. 눈길을 끈 건 두 후보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이었다. 뜨거운 이슈인 낙태권 문제가 불을 댕겼다. 트럼프는 먼저 “해리스가 택한 부통령 후보는 임신 9개월 낙태도 괜찮고, 출생 후 죽임(execution after birth)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스는 “처음부터 말씀드렸듯 오늘 거짓말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맞받으며 “트럼프가 재선하면 전국적인 낙태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역공을 폈다. 트럼프 역시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정부 기관을 향해서도 ‘거짓말’ 공격을 퍼부었다. 이민자 폭증의 심각성을 거론하며 “그들이 주민의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내놨다가 진행자가 “FBI는 범죄가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고 짚자 “FBI의 사기”라고 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대지 않았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잘 알려진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저서 ‘리더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위정자가 ‘공포 조장’이나 ‘전략적 은폐’ 같은 유형의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맞을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대선 TV 토론은 후보의 자질과 품성,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다. 미 국민 6700만여 명이 시청한 TV토론에서 명확한 논거 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를 거짓말로 몰거나 사실관계를 비트는 허위 주장을 늘어놓는다면 책임 있는 국가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권위 있는 매체가 TV 토론에서 발언 하나하나를 팩트체크하는 것은 그래서다. NYT가 트럼프 발언 33건을 팩트체크한 결과 16건이 ‘거짓’으로 판단됐다. 해리스는 조사 대상 발언 8건 중 2건이 ‘거짓’으로 판정받았다. 이런 팩트체크 결과와 11월 5일 대선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형구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총국장글로벌 아이 거짓말 정치학 오늘 거짓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트럼프 발언
2024.09.15. 18:33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이 중국 방문에 나선다. 4월 7일까지 12일간의 일정이다. 중국 난징과 우한·창사·충칭·상하이 등 주로 장강(長江) 이남을 방문하며 베이징은 가지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을 피하겠다는 거다. 정치색을 빼겠다는 이야기다. 마잉주는 방중 목적을 ‘신종추원(愼終追遠·장례와 제사를 정성껏 모시다)’ 네글자로 압축했다. 그러고 보니 4월 5일이 청명절이다. 중국엔 ‘청명절엔 성묘를 하고 단오엔 종자를 싸며 추석엔 월병을 먹고 섣달 그믐날 밤엔 만두를 빚는다’는 말이 있다. 일년 사계절 중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해야할 게 조상의 산소를 찾아 돌보는 일이다.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마잉주는 1950년 7월 홍콩 까오룽(九龍)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마오쩌둥의 고향이기도 한 중국 후난성 샹탄(湘潭)현이다. 이곳에 할아버지 마리안(馬立安)이 잠들어 있다. 마잉주 부모는 홍콩을 거쳐 그가 두 살 때 다시 대만 타이베이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8년간 대만 총통으로 재직했던 그는 2015년 싱가포르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1분 20초에 걸친 ‘세기의 악수’를 나눴다. 자신의 재임 시기가 중국과 가장 평화롭고 가장 대등했다고 말한다. 총통 퇴임 후엔 대만 국가기밀보호법에 따라 대만을 벗어날 수 없다가 2021년 5월 규제가 풀렸다. 이제 코로나도 진정됐으니 대륙의 조상 묘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누나 셋과 여동생, 그리고 대만 청년 30여 명이 함께한다. 대륙 젊은 세대와의 교류로 양안(兩岸) 긴장을 누그러뜨리자는 취지다. 한데 대만 전·현직 총통 중 74년 만에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의 방중은 아무리 정치적 색채를 덜어내려 해도 그리되지 않는다. 그의 방중 자체가 올해 대만에 평화공세를 가하는 중국의 전략에 이미 편입된 느낌이다. 이달 초 중국 정협(政協)의 주석이 된 왕후닝이 대만을 끌어안기 위해 내세우는 카드가 바로 ‘중국 전통문화’다. 한 핏줄, 같은 문화를 강조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 집권 민진당 정부에 대항하겠다는 계산이다.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마잉주와 같이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는 대만 국민당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포석이기도 하다. ‘성묘 정치학’이란 말이 나온다. 그래서인가. 29일 해외 순방에 나서는 차이잉원은 미국 경유를 통해 미국과의 연대를 강조할 계획이다. 내년 초 대만 총통 선거는 벌써 막이 올랐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중국 정치학 성묘 정치학 대만 총통 대만 국가기밀보호법
2023.03.27.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