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트렌드] 탈종교 사회 속 종교의 생존
한때 종교는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삶의 의미, 윤리의 기준, 공동체의 질서, 죽음 이후의 질문까지 종교는 인간 존재의 거의 모든 영역을 설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회는 스스로를 “탈종교(post-religious)” 사회라 부른다. 교회·사원·성당의 출석률은 줄어들고, 종교적 언어는 공적 담론에서 점점 밀려난다. 이 현상은 흔히 “믿음의 쇠퇴”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믿음이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기능이 이동한 시대’로 이동 중이다. 탈종교 사회의 가장 큰 오해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의미에 대한 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다만 그 의미를 제공하던 기존 종교의 독점적 위치가 무너졌을 뿐이다. 과거 종교는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했다. 첫째, 구원 서사로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째, 공동체 정체성으로 나는 누구에 속해 있는가, 셋째, 윤리적 나침반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탈종교 사회는 이 기능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영역으로 분산시켰다. 심리학은 구원의 언어를 대신했고, 정치와 이념은 정체성을 제공했으며, ESG·인권·환경 담론은 새로운 윤리 체계가 되었다. 종교가 비워진 자리를 문화·정치·기술이 채운 것이다. 종교의 위기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위기다. 오늘날 종교가 직면한 위기는 교리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전달 방식과 관계 구조의 위기다. 탈종교 사회의 개인은 더 이상 소속되기 위해 믿지 않는다. 대신 공감되면 참여하고, 의미가 없으면 떠난다. 특히 MZ 세대들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는 소비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존재 방식의 변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절대적 권위를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경험적 진정성을 신뢰한다. 설교가 옳은가보다, 그 말이 내 삶을 실제로 설명해 주는가가 중요해졌다. 탈종교 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천국행 티켓을 독점하지 않는다. 대신 종교가 다시 주목받는 지점은 삶의 해석자로서의 역할이다. 기술과 자본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안전해졌지만, 불안, 소외, 고립, 우울, 정체성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때 종교는 답을 강요하는 대신, 질문을 함께 견디는 공간이 될 때 힘을 얻는다. 탈종교 사회에서 종교는 설명하는 기관이 아니라 동반하는 공동체로 재정의된다. 살아남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대형 시스템보다 얼굴이 보이는 관계, 프로그램보다 사람 중심의 구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통적 종교 용어를 고집하기보다, 일상 언어로 의미를 번역해야 한다. 도덕적 우월감을 포기하여 답을 소유한 집단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집단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고통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를수록 신뢰를 얻는다. 탈종교 사회는 종교의 종말이 아니라, 종교 독점 시대의 종말이다. 이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종교는 더 작아질 수 있고, 더 느려질 수 있으며, 덜 화려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진실해질 가능성도 함께 갖는다. 기술이 발전되고 세상이 혼란해도 “너는 여전히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종교만이, 다음 시대에도 남게 될 것이다. [email protected]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사회 종교 오늘날 종교가 대신 종교가 종교적 언어
2026.01.12.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