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텍사스주 그레이프바인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현장은 일부 언론이 묘사한 ‘동력을 잃은 우파의 집결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분위기는 분명 뜨거웠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주류 언론은 이러한 본질을 전달하기보다, ‘보수 몰락’이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출 단편적 장면을 찾아내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CPAC 불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이를 곧바로 행사 규모 축소나 영향력 약화로 연결 지었다. 그러나 그의 불참 배경에는 현재 진행 중인 이란 전쟁이라는 중대한 변수가 있었다. 군 통수권자가 지지층의 환호가 예상되는 정치 행사 대신 백악관에서 국정 운영에 집중하는 것은 상식적인 선택에 가깝다. 오히려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축제 분위기의 행사에 참석했다면, 이들은 ‘전쟁 중 유희’라는 비판을 쏟아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이 채웠다. 토드 블랑쉬 법무장관 권한대행, 톰 호먼 국경 차르,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정책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CPAC이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현재 미국 보수 진영의 정책이 논의되고 공유되는 ‘정치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주류 언론의 왜곡은 현장 묘사에서도 두드러졌다. 뉴욕타임스는 보수 성향 유튜버 닉 셜리가 연단에 섰을 당시 좌석 일부가 비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젊은 보수의 쇠퇴’를 언급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연말 미네소타 복지 사기 사건을 폭로하며 혜성처럼 떠올랐다. 셜리는 지난달 26일 두 차례 무대에 올랐다. 대담 참여를 위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객석은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그는 기립박수와 함께 이날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이후 행사 마지막 순서로 다시 무대에 섰을 때 일부 좌석이 비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일정 끝에 일부 관객이 자리를 뜬 상황을 전체 흐름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특정 장면만을 부각해 전체를 규정하는 방식은 사실 전달이라기보다 ‘확증 편향’에 가깝다. 이번 CPAC에서 발표된 비공식 여론조사 ‘스트로 폴(straw poll)’ 결과는 그동안 주류 언론이 보수층 여론을 어떻게 다뤄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스트로 폴은 보수 핵심 지지층의 인식을 가늠하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올해 조사에서는 CPAC 참가자 1630명 가운데 89%가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가 발표되자 현장에서는 환호가 이어졌다. 이러한 현장의 모습은 그동안 주류 언론이 마가(MAGA) 지지층 분열이라는 서사에 집중한 것과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줬다.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공론의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주류 언론은 사실 전달보다 특정 해석을 강화하는 데 더 익숙해진 모습이다. 보수 진영의 전통 있는 행사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보도는 결국 정치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언론 스스로 신뢰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확인한 보수 진영의 에너지는 여전히 강했다. 주류 언론이 외면한 것은 보수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이 받아들이기 불편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언론은 단편적 장면이 아닌 전체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김경준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보수정치행동회의 왜곡 주류 언론 트럼프 대통령 정치 행사
2026.04.05. 19:02
이경원 기자는 미주 한인 최초의 주류 언론 기자다. 그는 지난해 3월, 향년 96세의 나이로 가주 새크라멘토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단순한 이력이나 직함이 아니라, 한 사건을 끝까지 파고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기자는 1928년 6월 1일 경기도 개성(당시 행정구역)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인 이형순 지사의 아들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며 성장했다.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50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서는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이후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과 함께 언론 실무 경험을 쌓아 1951년에는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언론 담당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56년 이 기자는 테네시주 킹스포트의 주류 일간지에 기자로 입사했다. 아시아계 이민자로서는 최초였다. 이후 찰스턴 가제타로 자리를 옮겨 남부 지역의 민권 운동과 빈곤 문제, 애팔래치아 지역 탄광 광부들의 진폐증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당시 그의 탐사 보도는 지역 권력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현장을 벗어나지 않고, 사회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기사로 기록했다. 1970년 이 기자는 새크라멘토 유니온으로 이직했다. 사건 담당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가주 공직사회의 오래된 관행과 재정 운영 구조를 추적했다. 주정부와 의회의 예산 집행, 계약 구조, 특혜성 관행을 파헤친 연속 보도는 주류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탐사 보도로 그는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며 언론계에서 영향력 있는 탐사 기자로 평가받았다. 이후 그가 맡게 된 사건은 그의 기자 인생에서 가장 길고 치열한 취재로 이어졌다.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갱단 살인 사건으로 한인 청년 이철수가 체포됐다. 당시 만 18세였던 이철수는 백인 관광객 목격자의 증언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종신형 또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기자는 사건 기록과 재판 과정을 취재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범행은 대낮에 벌어졌지만, 유일한 목격자들은 아시아계 인물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고, 체포 과정에서는 이철수가 ‘중국인’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 곳곳에서 의문이 드러났다. 그는 이 사건을 단발성 기사로 끝내지 않았다. 새크라멘토 유니온 기자로서 5년 동안 100여 차례, 120회에 가까운 연속 보도를 이어갔다. 재판 기록을 뒤지고 증언을 검증하며 수사 과정의 허점을 하나씩 기사로 공개했다. 이 기자의 기사는 신문 지면을 넘어 복사돼 사회복지사와 학생, 지역 인사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한인 사회를 넘어 중국계와 일본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공동체 전반으로 이철수 구명 운동이 확산됐다. 이는 아시아계가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연대한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결국 이철수는 다시 재판을 받았고, 10년의 옥살이 끝에 석방됐다. 한 기자의 집요한 취재가 사형수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할리우드 영화 ‘트루 빌리버’로 제작됐고, 구명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리 이철수(Free Chol Soo Lee)’는 2003년 에미상을 받았다. 이철수 사건 이후 이경원은 한인 사회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79년 그는 LA에서 최초의 한인 영자신문 ‘코리아타운 위클리(Koreatown Weekly)’를 창간했다. 주류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던 한인 사회의 이슈와 목소리를 영어로 기록해 주류 사회에 직접 전달하기 위한 시도였다. 1992년 4월, 로드니 킹 폭행 사건과 관련해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죄 평결을 받자 LA 전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폭동 과정에서 2000곳이 넘는 한인 소유 상점이 피해를 입었고, 이는 시 전체 피해의 절반에 달했다. 한인타운은 폭동의 중심에 놓였다. 당시 그는 간암과 위암을 겪은 뒤 간이식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병상에서 폭동 전후의 상황과 한인 사회가 처한 현실을 영어 기사로 기록하도록 지휘했다. 한인 상점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 배경과 흑인 사회와 한인 사회 사이에 누적돼 온 긴장, 이를 단순한 인종 갈등으로 묘사하는 주류 언론 보도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폭동 이후 그는 주류 언론이 한인 상인을 ‘탐욕적이고 무례한 이민자’로 단순화해 묘사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한인 사회 내부의 목소리와 경험을 외부 사회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고, 폭동을 둘러싼 복합적인 원인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이 기자는 NBC 방송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UC 데이비스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도 나섰다. 1987년 그는 ‘북가주 한인 언론인 협회(KAJA·Korean American Journalists Association)’를 공동 창립했다. 한인 언론인들이 서로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였다. 그의 이름을 딴 이경원 리더십 센터는 현재도 LA 한인타운에서 운영되며 차세대 리더 교육과 장학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자는 미 언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워싱턴DC 교외 알링턴 언론 기념관과 언론박물관 뉴지엄(Newseum)에 등재됐다. 그는 20세기를 빛낸 500명의 미국 언론인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계 기자로 선정됐다. 평등·인권·정의 구현에 앞장선 공로로 2007년 미국 정의증진재단이 수여하는 정의상을 받았고, 아시아아메리칸저널리스트협회 최초로 종신 업적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2003), 미주동포재단 자랑스러운 한국인상(2006) 등을 받았다. ━ ☞ 이경원 기자는… 지난해 3월 8일 가주 새크라멘토에서 별세했다. 향년 96세.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테네시주 킹스포트 타임앤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찰스톤 가제타와 새크라멘토 유니온에서 활동하며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한인 최초의 영자신문 ‘코리아타운 위클리’를 창간했다. 북가주 한인 언론인 협회(KAJA)를 공동 창립했으며, NBC 방송 고문과 UC 데이비스 저널리즘 강사로 활동했다. 생전 국민훈장 동백장과 정의증진재단 정의상을 받았다. 정윤재 기자이경원 한인 사회 구조 미주 한인 주류 언론
2025.12.31. 20:39
무죄 평결로 막을 내린 카일 리튼하우스 사건은 주류 언론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글렌 그린월드는 현재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다. 퓰리처상 최고 영예인 공공서비스상을 가디언지에 안겨준 인물이다. 그가 지난 19일 리튼하우스가 무죄 평결을 받은 직후 언론계에 일침을 가했다. 그린월드 기자는 “전세계 언론 매체가 죽은 사람들이 백인임에도 ‘흑인’이라고 반복 보도했다. 이는 미국 언론이 리튼하우스를 ‘백인 우월주의자’로 몰아가며 오도한 결과”라며 “미국 언론에 속은 매체들은 희생자를 당연히 흑인으로 여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이 언론에 속았다. 오보는 집단적으로 생산됐다. 한국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미 법원, 자동소총으로 흑인 2명 살해한 백인 청년 무죄’ ‘흑인 2명 총격살해한 백인 10대 무죄 방면’ ‘무죄평결 받은 흑인 시위대 발포자 리튼하우스’ ‘흑인 시위대에 총 겨눈 백인 청소년 무죄’ ‘흑인 시위대에 발포, 2명 사망케 한 백인 청소년’ ‘흑인에 총 쏜 10대, 트럼프 지지자’. 실제 일부 한국의 언론사들이 이번 사건을 두고 보도한 기사 제목들이다. 심지어 평결 후인데도 ‘흑인’과 ‘백인’의 구도에서 보도했다. 이건 오역이 아니다. 사건의 기본 내용조차 모르고 그대로 번역만 한 결과다. 더 심각한 건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리튼하우스 사건을 그럴싸하게 분석까지 한 기사도 있었다. 단순 번역은 죄가 없는가. 그렇다면 원죄를 주류언론에 묻는다. 뉴욕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미란다 디바인은 17일 ‘카일 리튼하우스에 대한 10가지 악랄한 거짓말이 드러났다’는 글을 썼다. 사건을 오도한 주류 언론의 보도 내용을 도마에 올렸다. 전자는 주류 언론의 보도 내용이고, 후자는 공판 과정 등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디바인은 ▶리튼하우스가 두 명의 흑인 BLM 시위자를 죽임/ 희생자는 모두 백인 ▶(총을 쏘려고) 일부러 주경계선을 넘어옴/ 리튼하우스는 친지, 친한 친구가 모두 커노샤카운티에 살고 있고, 직장도 그곳에 있었음 ▶총(AR-15)을 주경계선을 넘어 반입함/ 총은 커노샤카운티에 사는 친한 친구의 아버지 집에 보관해 왔음 ▶총기를 불법소지했음/ 위스콘신 주법은 17세의 총기 소지를 허용 ▶리튼하우스의 어머니가 아들을 폭동 현장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줌/ 당시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일한 뒤 집에서 자고 있었음 ▶“총을 쏘려고 시위대를 찾아다니는 총격범이다”/ 당시 상황을 전하던 MSNBC 뉴스 진행자 조 스카버러가 “주 경계선을 넘어온 17세 소년이 뛰어다니며 시위대를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있다”며 왜곡한 말 ▶조 바이든은 리튼하우스를 ‘백인 우월주의자’로 명칭함/ 연방수사국(FBI)이 전화기록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었음 ▶리튼하우스가 ‘프라우드 보이즈’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백인 우월주의 손 표시를 했음/ 어머니와 함께 바에 갔다가 사람들과 사진을 찍던 중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한 것을 두고 백인우월주의자로 매도됨 ▶지문을 감추기 위해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있었음/ 리튼하우스는 당시 부상당한 시위대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장갑을 끼고 있었음 ▶담당판사 브루스 슈뢰더는 인종차별적 트럼프 지지자로 피고 측에 편향된 인물/ 슈뢰더 판사는 민주당 주지사가 임명했고 위스콘신주 민주당 상원의원 출마 등의 내용을 지적했다. 비단 이번 사건 뿐인가. 주류 언론이 사안을 오도한 건 한 두 사례가 아니다. 주류 언론에만 의존해 정보를 수용하고 사안을 인식하다가 자칫하면 인지왜곡에 빠질 수 있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 칼럼 진실공방 재판 흑인 시위대 시위대 발포자 주류 언론
2021.11.29.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