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즐기며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바깥은 영하 7도의 차가운 날씨인데도 찬란한 햇빛을 머금은 하늘 전부가 쏟아진다. 나만의 공간인 책상 앞에는 남동쪽으로 난 두 개의 창문을 뚫고 눈 부신 햇살이 떼창으로 몰려온다. 창밖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실물의 크리스마스트리(Holly Tree)가 붉고 화려한 열매로 온갖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도 오늘과 같은 축복의 기회를 맘껏 즐기고자 신명이 났다. 갑자기 나무 한 줄기가 휘청댄다. 둘러보니 다람쥐 한 쌍이 신나게 장난치며 나에게 즐거운 아침을 선물한다. 아!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다. 행복한 아침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키가 큰 나무들이 많아 지난 11월에 폭풍과 눈사태가 염려되어 큰 나무 6그루 이상을 베어냈다.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그런대로 상록수와 나목이 겨울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지켜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참 신기하다! 12월 말이었던 지난주만 해도 정신없이 분주하고 시간에 쫓기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단 며칠 사이 새해라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생활에서는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벌써 차량이 많아지고 학교 버스 천국이 된다. 10월 말이면 핼러윈, 11월엔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벌써 와있다.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중대한 의식이 되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이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연말을 보내고 나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몸과 마음에서 기와 진이 다 빠져나가고 몸살을 앓게 된다. 준비의 여부와 상관없이 새해는 벌써 우리보다 먼저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새해 아침에 찾아온 고요, 고요는 평화를 부르고 평화는 내 마음에 평온을 부른다. 1월은 2월 속으로 질주할 것이다. 모두 몸을 움츠리며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꾸역거리게 된다. 이때다. 1월은 나에게 집중하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겨울나무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겨울잠만 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토록 거칠고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견디기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뿌리들은 지하조직에서 연락망을 통해 상생의 길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겨울만 잘 견뎌보자고 서로 어깨를 껴안고 있을 것이다. 오는 봄에 피울 꽃과 잎을 생각하며 이 추운 겨울에 죽을힘을 다해 버텨보자며 서로 위로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면 겨울은 참으로 따뜻한 계절이다. 야외생활을 하다 보면 시선과 관심이 분산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주위에 널려있는 물건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이들을 한 번씩 시나브로 연상해 본다. 평소 지나쳤던 시선에 애정을 담아본다. 올해의 작은 소망을 다짐해 본다.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고 섬세하고 예리하고 곱게 나 자신을 연마하고 싶다. 나의 오감을 존중하고 음미하며 나에게 이 감각을 선물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삶이란 고귀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묵과할 수 없다.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천천히 관심을 두고 바라보고 들어주어 그들만이 품어내는 향기를 음미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정제하고 싶다. 원석에서 최고의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를 정제하듯, 백지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을 담아내는 노력, 생의 최고 걸작은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없이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새해 아침 고요한 시간을 맞아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시간 시간 자신 새해 아침 주위 사람들
2026.01.26. 22:16
걸어갈 수 있는 길만을 고집하는 나로서는 강 건너 뉴저지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집을 꾹 누르고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뉴저지’라며 전날 밤부터 나를 다독였다.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입은 남자가 서브웨이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코비드불라 불라. 차이나로 돌아가.” 외친다. 재수가 나쁘면 이 남자에게 얻어터져 난 오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두려웠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기면 그의 시선을 더 끌어 악화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림자처럼 그냥 그대로 숨죽여 앉아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도 꽤 있다. 조금은 안심이지만, 내가 얻어터질 때 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들 카메라를 들이대기나 할 것이다. 한동안 나를 향해 욕하던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려는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엄마, 위험한 느낌이 들면 도망가요. 엄마는 작고 약해 보여 타깃이 되기 쉬워요. 무조건 뛰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평소에 아이들의 잔소리가 나를 벌떡 일으켰다. 그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급히 갔다. 그는 자리에 도로 앉더니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멈추지 않고 쉰목소리 떠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오히려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그와 나를 보는 듯 즐기는 분위기다. 지하철이 멈췄다. 후다닥 빠져나왔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늙은 내가 사라진다면 남편은 젊은 여자 만나 흥미진진한 삶을 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낡은 차 폐차시키고 새 차로 갈아탄 느낌이겠지? 아이들도 잠시 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를 잊을 것이다. 인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오늘 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집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지킬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내 자리를 누군가 차지할 수 있다. 내 사후의 일을 누가 어떻게 결정해도 죽은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 그런 여자가 존재했었냐며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나 없이도. 누군가는 이 여자 우울증 걸렸나 하겠지만, 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여자 우울증 악화 현상 주위 사람들
2023.05.05. 17:48
천정이 높고 넓은 창고에서 사람들이 둘러앉아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 선생님이 퇴근하면서 나보고 뒷정리하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과 잡담하느라 뒷정리가 더뎌지는 와중에 옆방에서 친구가 도와달란다. 친구를 도와주고 돌아오니 전등불을 꺼 놓고 모두 떠나고 없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퍼붓는다.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번갯불로 더듬으며 버릴 것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정리한다. 일 진행이 느려서 마음이 조급하다.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움이 엄습했다. 평상시 내 주위환경과 너무 다르다. 비정상이다. ‘이건 내가 처한 현실 세계가 아니야.’ 눈을 떴다. 불안하거나 복잡한 일상을 만들지 않고 피해 가려고 애쓰는 나로서는 꿈이라는 것을 꿈속에서 알아차렸다. 너무 좋아도 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꿈속에서 직감적으로 안다. ‘이건 꿈이야. 이렇게 좋을 수가! 깨지 말고 좀 더. 조금만 더’ 하는 순간, 그야말로 깨어진 꿈이 된다. 누군들 좋아하련만, 나는 복잡한 것을 질색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자면서도 꿈이라고 깨닫고 깨어나듯이 현실에서도 가담하지 않는다. 물론 여간해서는 끼어들지도 않지만, 간단한 일이겠지 하고 가담했다가도 뭔가 엉기는 분위기가 되면 발을 뺀다. 간단해야 반복하기 쉽다. 재미까지 보태진다면 더욱더 오래 하며 즐길 수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불평불만 없이 죽~ 아주 오랜 기간 재미 붙여서 한다. 간단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없어서다. 그래서 혼자서 하는 일을 선호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셋만 모이면 패가 갈리듯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물론 리더를 잘 만나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리더가 능력이 있어도 주위에서 초 치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비틀기를 즐기는 인간은 앞장서서 시작도 잘하고 일이 잘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주도권을 쥐려고 혼란에 빠뜨린다. 복잡한 것을 질색하는 내 성격에 보조라도 하듯 팬데믹 핑계로 사람들을 멀리하며 혼자서 평화로운 삶을 즐겼다. 그런데 바이러스를 감기 정도로 취급하는 요즈음 다시 주위에서 번잡한 일들이 꿈틀대서 그런 개꿈을 꾼 것 같다. 3년이란 격리 기간을 잘 적응했다. 팬데믹 이전으로는 돌아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유튜브나 구글을 통해 각자의 문제나 외로움을 해결하기 쉬운 세상도 한몫한다.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을 만나도 남의 제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지적질하면서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뒤틀지 않게 오지랖 떨지 말아야지 스스로 다짐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제사 기간 재미 격리 기간 주위 사람들
2022.10.21. 18:04
얼마 전 오피니언 글에서 남의 말을 경청하면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지식도 늘어난다는 글을 읽었다. 100퍼센트 공감하는 말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된다. 또한 경청하는 자세,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가 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과 말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을 해왔다. 그런 다툼을 조용히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말로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싸웠던 때를 돌이켜보면 항상 상대와 내가 각자의 말을 많이 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경우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거나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나의 말을 주로 들었을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아끼거나 둘 중 한 명이 말을 양보해 많이 하지 않으면 싸움은 생기지 않는다. 매번 대화를 할 때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듣기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렇지만 잘 실행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상대가 말 할 때 잘 듣고 있지만 어느새 내가 주로 말을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 경우에 말을 한다고 표현하지만 일방적으로 내가 ‘떠들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내용을 길게 늘어 놓거나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끝없이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듣고 있는 상대방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제를 하려고 해도 천성적으로 과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매일 아침 결심을 한다. 오늘은 말 하는 날이 아니라 듣는 날이라고. 하지만 퇴근해 집으로 돌아 올 때면 오늘 한 말로 후회를 한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참지 못하고 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도 결심을 하겠지만 지킬 자신은 없다. 정성일·LA독자 마당 경청 아침 결심 자기 주장 주위 사람들
2022.04.21. 18:31
마스크를 쓰지 않은 무리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둘러쌓다. 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다 잠에서 깨어났다. 새벽 2시다. 복식호흡 몇 번 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잠이 또 깼다. 재작년에 96세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새벽 3시면 잠에서 깨셨다. 늦어도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드셨으니 적어도 6시간은 주무셨다. 문제는 본인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늘 불면증약을 달고 다니시며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 9시에 자서 3시에는 일어났는데 주무실 만큼 주무시지 않았나요?”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 어찌 잠을 충분히 잤다는 게냐?” “그러면 더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세요.” “난 9시엔 졸려서 더 늦게는 자지 못한다.”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나 심심해서 전화했다.” “TV 보세요. 요즈음 한국 연속극 재미있는 것 많이 하잖아요.” “난 TV는 재미없다.” ‘책이나 읽으세요’라고 말하려다 도로 삼켰다. 바쁜 나를 붙잡고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셨다. 선인장을 닮은 나는 가시로 콕콕 찌르듯 까칠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10여 년 넘게 듣는 똑같은 소리 더는 못 듣겠어. 심심한 네 엄마 먼저 전화해서 시원하게 속풀이 해드려.” “내가 도리도리라도 하며 엄마 심심풀이 땅콩 하라고.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밥하고 빨래뿐이 달리 소일거리가 없는 엄마를 걱정하셨나 봐.” 평생 하던 일을 멈춘 시어머니는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 걸었다. 자식들은 물론이고 주위에 친분 있는 분들에게도 자주 전화하다가 “전화 좀 고만해요”라고 꽥 지르는 소리까지 들으셨다. 시할머니 시집살이, 6·25 전쟁 그리고 집 떠나 평생을 사셨던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곱씹으시다가 섭섭함이 복받치면 침대에 돌아누워 벽을 바라보고 훌쩍이셨다. 긴 밤은 무섭고 낮은 지루했던 시어머니는 ‘빨리 죽어야지’를 수시로 내뱉으셨다. 요즈음 컴퓨터를 할 줄 아는 나이 든 분들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를 생활에 응용하느라 바쁘다. 아니면 종교에 빠져 성경책을 읽거나 기도하며 바삐 사는 분도 많다. 허위정보 유튜브일 수도 있고 종교의 노예로 현실 도피일 수도 있지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주위 사람들은 들볶이지 않는다. 인생에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으로 결정된다.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남편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 아이들 또한 운 좋게 잘 만났다.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다. 진정으로 감사하다면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그들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고독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가족의 시간과 에너지를 축내지 않게 나 자신의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지 다짐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엄마 심심풀이 시할머니 시집살이 주위 사람들
2022.02.11. 18:59
친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더니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 초기란다.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치매는 시니어들이 기피하는 병 중 하나인데 내 친구가 그렇다 하니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80이 넘으면 4명 중 하나가 치매라는 통계가 있으니 걱정이 안될 수 없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가 아닌가. 아직까지 치매를 고치는 약은 없지만 증상은 늦출 수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귀한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100세가 넘은 어느 수녀님의 일상에 대한 얘기다. 너무도 정정하고 또렷한 기억들, 젊은 사람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던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궁금했던 의료진들이 뇌를 검색해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분의 뇌사진은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임을 보여주었다. 이분의 뇌가 이 지경인데 어떻게 그렇게 현명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수녀님을 늘 부지런했던 분으로 회고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하셨던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뇌만 우리의 일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팔다리, 손가락도 기억을 한다. 훈련을 통해 기억된 행동은 머리가 못 따라가도 숙련된 행동으로 일상생활에 나타난다고 한다. 뇌는 바보라 진심으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구별 못하고 웃을 때마다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한다. 이 설을 기반으로 웃음치료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가. 늘 웃으면서 기뻐하며 살 때 치매도 멀찌감치 달아나고 만다. 욕심, 원망, 시비는 다 내려놓고 웃으며 살 때 우리의 인생은 밝아진다. 이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노영자 / 풋힐랜치독자 마당 치매 팔다리 손가락도 욕심 원망 주위 사람들
2021.11.07.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