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마무리하고 2026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 해를 돌아보며 묵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기후재난과 분쟁, 경제 불안이 동시에 이어진 한 해였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지탱한 것은 결국 시민사회와 지역 공동체의 연대였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위기를 마주했고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2026년에는 어떤 책임과 역할을 가져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25년은 시작부터 우리에게 위기의 현실을 다시 일깨웠다. 1월7일, 남가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발생한 산불은 시속 100마일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며 수천 채의 건물을 소실시켰다. 1월 내내 이어진 남가주 산불은 25명 이상의 사망자와 20만 명 이상의 대피자를 발생시켰고, 지역사회는 한순간에 재난 앞에 노출되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 전, 7월 텍사스 힐컨트리에서는 새벽 폭우로 강이 범람하며 135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홍수 참사가 발생했다. 예상 불가능한 기후 패턴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일상적 위험이 되고 있다. 기후재난 못지않게 분쟁의 상처도 깊었다. 수단 내전은 장기화되면서 1200만 명 이상이 난민·국내 실향민이 되었고, 식량·의약품·안전 등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동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엘니뇨로 인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기준 5000만 명 이상이 식량 불안 상태에 직면해 있다. 이 수치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오늘도 생존을 위해 도움을 기다리는 수많은 얼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시민사회와 지역 공동체의 힘이다. 정부의 대응이 아무리 빨라져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늘 시민들이었다. 남가주 산불 당시에도 각 지역 한인회, 교회, 비즈니스 커뮤니티가 발 빠르게 움직여 피해 가정을 돕기 위한 모금과 임시거처 제공, 물품 지원을 조직했다. 제도가 도착하기 전에 가장 약한 이들을 지탱한 것은 결국 이웃의 손이었다. 굿네이버스를 비롯한 인도주의 단체들도 이러한 현장에서 쉼없이 대응해왔다. 정부 기능이 취약한 제3세계에서는 특히 NGO의 역할이 더 절실하다. 굿네이버스는 말라위 남부·중부 지역의 극심한 가뭄 속에서 생계가 무너진 가구에 긴급 식량과 영양 지원을 제공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기업·지역정부와 협력해 폐기물 리사이클링 센터를 설립하며 환경과 생계를 동시에 살리는 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지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재난 이후에도 지역이 다시 서도록 돕는 지속 가능한 투자다. 미주 한인사회 역시 올해도 예외없이 나눔과 연대에 나섰다. 재난 피해 모금, 지역사회 취약계층 지원, 국제 구호 참여까지 곳곳에 한인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우리는 위기 앞에서 ‘누군가가 하겠지’가 아니라, ‘내가 먼저 해야 한다’고 행동하는 공동체다. 이 정신이야 말로 미국 사회 속 한인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자산이다. 2026년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정답은 거창하지 않다. 서로를 향한 손길, 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인간다운 응답이다. 기후위기와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한, 세상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2026년에도 그 희망의 기록을 함께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김재학 / 굿네이버스 USA 본부장구호 현장에서 희망 기록 지역 공동체 지역 한인회 남가주 산불
2025.12.09. 18:46
가을의 공기가 한층 차가워졌다. 한가위 보름달이 저물고, 이제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이 다가오고 있다. 두 명절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시작되었지만, 모두 감사와 나눔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품고 있다. 추석은 풍요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명절이었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한가위를 맞아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이웃에게 음식을 건네며 정(情)을 나눴다. 이 마음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교회와 한인단체, 그리고 개인 후원자들이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지역사회의 따뜻한 밥상을 채워가는 일은 우리 민족이 가진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또한 ‘함께 나눔으로 감사한다’는 정신에서 시작되었다. 인디언과 청교도들이 첫 수확을 나누었던 이야기처럼, 오늘날에도 전국 곳곳에서 지역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인과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 급식과 식품 나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남가주에서는 1월의 대형 산불이 진화된 이후에도 최근까지 폭우와 산사태 위험은 이어지고 있다. 산불로 훼손된 산비탈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여러 지역이 침수되고, 100가구 이상이 대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가정들의 심리적 후유증과 주거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지역 단체들은 긴급 구호 물품과 상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재난이 단지 ‘불이 꺼졌다고 끝나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처럼 현장의 복구와 치유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정부보다 시민단체와 지역 공동체의 손길이다. 굿네이버스를 비롯한 인도주의 단체들은 미국 내에서는 재난 피해 가정 지원과 쉼터 운영을, 해외에서는 기후위기 대응과 식량 구호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전 세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약 2억 9000만 명에 이르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분쟁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200만 명 이상이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수단 내전으로 인한 난민은 이미 1300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동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엘니뇨로 인한 가뭄과 홍수가 이어지며 수천만 명이 식량 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만 해도 5000만 명 이상이 기후 충격으로 인한 식량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특히 말라위·잠비아·모잠비크 등에서는 작물 수확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위기다. 국제사회와 시민단체의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나눔의 실천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책임이다. 한가위의 달빛 아래 나누었던 따뜻한 마음이 이제 곧 다가올 생스기빙의 식탁 위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 감사와 나눔은 국경을 초월한 보편의 언어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풍요로워지는 길이다. 명절의 의미가 가족의 식탁을 넘어, 지구촌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확장되길 바란다. 올해 생스기빙에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작은 나눔이 또 다른 희망을 만들 것이다. 김재학 / 굿네이버스 USA 본부장구호현장에서 추수감사절 지구 나눔 행사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지역 공동체
2025.11.1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