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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좋아요’보다 진심이 통해야

지난해 회사 근처에 음료 가게가 문을 열었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보바티 가게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유명 인플루언서가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을 들여 줄을 섰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손바닥 반만한 케이크가 20달러 가까이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인플루언서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루언서라고 하면 보통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과 비슷한 지명도를 가진 유명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요즘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크리에이터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친구처럼 대화하며 제품, 서비스, 업체를 소개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를 유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올린 “이거 진짜 좋아요” 한마디가 광고 문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런 영향력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인게이지먼트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 대해 팔로워가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좋아요나 댓글, 공유 같은 행위를 포함한다. 팔로워 수가 아무리 많아도 반응이 적으면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팔로워 수는 적지만 반응률이 높으면 더 가치 있게 평가된다. 최근 기업들은 팔로워 숫자보다 인게이지먼트 비율이 높은 인플루언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팔로워 수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 정도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팔로워와의 관계가 밀접해, 브랜드 입장에서는 광고효과 대비 효율이 높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의 뷰티 제품들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뷰티 브랜드들이 틱톡을 중심으로 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물이라는 진단이 많다. 이 외에도 식당 등 소상공인들이 주로 하는 업체들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서 매출 상승을 끌어낸 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팔로워 수를 조작하거나 가짜 계정을 동원해 인게이지먼트를 부풀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품을 소개해놓고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거나 판매 후 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많다. 인플루언서와 협업한 소상공인이 계약 조건이나 수익 배분 문제로 피해를 보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늘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플루언서와 소상공인의 협업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대신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브랜드나 소상공인은 제품 품질과 협업 조건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맹목적으로 추천을 따르기보다 ‘왜 이 사람이 이 제품을 권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플루언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상생이 전제돼야 한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통해 작은 기업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자신과 맞는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디저트 가게의 긴 줄이 보여주듯, 소비자들은 이제 인플루언서의 한 마디에 움직인다. 인플루언서라는 문자 그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려면 결국 중심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조원희 / 논설실 기자기자의 눈 진심 인게이지먼트 비율 뷰티 제품들 제품 품질

2025.11.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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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바이든의 ‘진심’…하루가 다른 정세가 던지는 숙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겨냥한 ‘독재자’ 발언이 나오자 중국의 반응은 신속했고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정치적 존엄을 엄중하게 침범한 것으로 공개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맹비난했다.   해당 발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중국 정찰 풍선의 미 영공 침범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무엇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은 독재자들에게는 큰 창피”라고 했는데, 시 주석이 정찰 풍선 건을 잘 몰랐을 거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시 주석을 두둔하려는 뜻으로 들리는 얘기였다.   하지만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보는 바이든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은연중 드러난 바이든의 ‘진심’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방중을 계기로 관계 개선의 첫발을 떼는 듯했던 미·중 관계는 다시 급제동이 걸렸다.   발끈한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내 반응은 무덤덤하다. 오히려 “바이든이 틀린 말이라도 했느냐”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의 베단트 파텔 수석부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일부 차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발언이 더 이상 해명되거나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별문제가 없으니 더 해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 언론의 이목을 끈 건 발언 내용보다 ‘타이밍’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성과를 놓고 “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평가하며 “미·중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다음 날 독재자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다. 관계 안정화에 뜻을 같이하고 고위급 대화 채널을 재개하기로 한 양국의 노력에 역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이 미·중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거라는 시각이 다수다. 발끈했던 중국 외교부가 당일 저녁 홈페이지의 대변인 브리핑 전문에서 ‘독재자’ 관련 질문과 답변을 갑자기 뺀 것도 묘한 느낌을 준다. 양국이 며칠 전 공감대를 이룬 ‘충돌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 차원의 조치로 읽힐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대한민국 외교가 취해야 할 스탠스다. 치열한 경쟁 와중에도 국익 앞에 대화와 소통을 모색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고민을 던진다. 국제 정세가 복잡하고 어지럽게 전개될수록 치밀하고도 유연한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외교가 필요한 때다. 김형구 / 워싱턴총국장J네트워크 진심 정세 독재자 발언 국제 정세 외교부 대변인

2023.06.26. 18:57

[글로벌 아이] 총에 대한 진심

한 초등학생이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며 “엄마가 개학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며 자랑한다. 또 다른 학생은 새로 산 바인더를 들어 보이며 “문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며 웃는다. 그러다 총소리가 나더니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고 한 학생이 복도로 달려나온다.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운동화를 가리키며 “새 학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학생은 꼭 원했던 선물이라며 스케이트보드로 교실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도망친다.   새로 산 가위를 쥐고 문 옆에 기대있는 아이, 피를 흘리는 친구에게 새 양말을 벗어 묶어주는 아이, 화장실에 숨어 새로 산 휴대전화로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아이 모두 “유용한 새 학기 선물이 됐다”고 말한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뚜벅뚜벅 발소리로 마무리되는 이 영상은 “새학기가 시작됐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미국의 학교 총기사고를 막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샌디 훅 프로미스가 만든 영상이다. 10년 전 어린이와 교직원 26명이 숨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유가족 등이 이 단체를 설립했다. 특히 이들의 홍보전략이 화제가 됐는데, 2019년에 9월에 나온 이 영상은 8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은 그치지 않았고, 지난달에는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유밸디 초등학교 참사가 발생했다.   총기규제와 관련한 여론조사는 항상 미스터리다. ‘총기 구입시 신원조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국적으로 항상 80~90%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이를 법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찬성표는 각각 50%와 63%로 간신히 통과됐다. 민주당 우세 지역인데도 그랬다. 함께 추진한 메인주에선 48% 찬성에 그쳐 무산됐다.   뉴욕타임스는 유권자들이 총기 규제에 찬성해야 할 것 같은 암묵적 압박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이들이 전미총기협회(NRA)의 막대한 로비, 상원의 60% 지지를 받아야 하는 필리버스터의 벽 등을 탓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민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에선 다시 한번 총기규제 법안 처리가 시도된다. 하원에선 표결이 이뤄졌고, 상원에선 여야간 협상이 한창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총 맞을 걱정하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에서 총기 규제는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 김필규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글로벌 아이 진심 총기규제 법안 초등학교 총기 학교 총기사고

2022.06.12. 17:43

[J네트워크] 총에 대한 진심

한 초등학생이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며 “엄마가 개학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며 자랑한다. 또 다른 학생은 새로 산 바인더를 들어 보이며 “문서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며 웃는다. 그러다 총소리가 나더니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고 한 학생이 복도로 달려나온다.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운동화를 가리키며 “새 학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학생은 꼭 원했던 선물이라며 스케이트보드로 교실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도망친다.   새로 산 가위를 쥐고 문 옆에 기대있는 아이, 피를 흘리는 친구에게 새 양말을 벗어 묶어주는 아이, 화장실에 숨어 새로 산 휴대전화로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아이 모두 “유용한 새 학기 선물이 됐다”고 말한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뚜벅뚜벅 발소리로 마무리되는 이 영상은 “새학기가 시작됐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미국의 학교 총기사고를 막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샌디 훅 프로미스가 만든 영상이다. 10년 전 어린이와 교직원 26명이 숨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유가족 등이 이 단체를 설립했다. 특히 이들의 홍보 전략이 화제가 됐는데, 2019년에 9월에 나온 이 영상은 8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교내 총기난사 사건은 그치지 않았고, 지난달에는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유밸디 초등학교 참사가 발생했다.   총기규제와 관련한 여론조사는 항상 미스터리다. ‘총기 구입시 신원조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국적으로 항상 80~90%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네바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이를 법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찬성표는 각각 50%와 63%로 간신히 통과됐다. 민주당 우세 지역인데도 그랬다. 함께 추진한 메인주에선 48% 찬성에 그쳐 무산됐다.   뉴욕타임스는 유권자들이 총기규제에 찬성해야 할 것 같은 암묵적 압박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이들이 전미총기협회(NRA)의 막대한 로비, 상원의 60% 지지를 받아야 하는 필리버스터의 벽 등을 탓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민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에선 다시 한번 총기규제 법안 처리가 시도된다. 하원에선 표결이 이뤄졌고, 상원에선 여야간 협상이 한창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총 맞을 걱정하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에서 총기 규제는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 김필규 / 워싱턴특파원J네트워크 진심 초등학교 총기난사 총기규제 법안 초등학교 참사

2022.06.09. 18:27

[수필] 진심이 담긴 배려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다   장애 때문에   받는 차별이   더 큰 문제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 올해의 남우주연상 후보인 윌 스미스가 부인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를 보던 크리스 록은 탈모증으로 머리를 밀어버린 스미스의 부인을 향해 ‘지아이 제인’ 2편을 보고 싶다며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 순간 격분한 스미스는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록의 뺨을 때렸다.     록이 스미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여론은 스미스에게 불리하게 흘렀다. 원인 제공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었는데 상처를 후빈 설봉(舌鋒)은 날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느낌이었고 검봉(劍鋒)을 휘두른 쪽에 비난의 추가 기우는 것을 보며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미국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낙동강 600리가 유유히 흐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 허리를 살짝 틀어 물길을 낸 남도의 소도시에서 초등학생 시절의 끝자락을 보냈다. 오래 끌던 휴전협정이 조인되어서 마침내 전장에 포성은 멈췄지만 포연은 여전히 자욱한 피란지의 샛강에서 다슬기를 줍고 물장구를 치며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 서울로의 환도 소식은 까마득했지만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고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 그토록 근심 걱정 없는 우리에게도 학교에 가면 명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 학급에 장애아가 한 명쯤은 있었는데 우리 반엔 두 명의 여학생 장애아가 있었다. 한 친구는 한쪽 다리가 많이 휘어서 걸음걸이가 불편했고 한 친구는 한 쪽 눈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놀리면 엄격한 담임 선생님에게 남자아이들은 막대로 엉덩이를 세 대씩 맞았고 여학생들은 눈물이 쏙 빠지게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10대 초반의 철부지들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을 무늬만이라도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식의 밑바닥에 이미 장애인은 하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자녀의 혼사를 앞둔 집안에서는 장애 형제자매를 숨기기에 급급했고 식구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다. 천막 교실 바닥에 책걸상 대신 가마니가 깔린 엉성한 학교에서도 담임 선생님의 규율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엄하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우리들은 선생님을 따라 장애아에게 위장된 배려를 베풀기 시작했다. 누가 장애아 친구를 조롱이라도 하면 떼를 지어 그를 규탄하고 온 반이 나서서 장애 친구 편을 들었다.     그렇게 집단 위선이 모르는 새에 쌓여가던 무렵, 반에서 일이 터졌다. 다름 아닌 장애아 두 친구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한 명이 눈을 놀렸고 다른 애는 불편한 다리를 조롱했다는데 학교가 떠나가라 울어대는 두 친구를 붙들고 일의 발단과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은 담임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두 친구는 일주일이 넘도록 결석했고 두 집 부모만 번갈아 학교에 다녀갔다.     온 반이 패닉에 빠졌다. 어느 쪽이건 가담해서 편을 들어야 하는데 어느 편을 들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채 여물지 못한 위선은 방향을 잃었다. 어수선하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일의 실마리가 풀렸다. 험한 말을 누가 먼저 내뱉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폭력을 쓴 쪽이 밝혀진 것이다. 눈이 불편한 친구가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먼저 밀쳐서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가담할 편을 결정할 수 있었고 비난할 대상이 정해진 것에 안도했다.     시상식 폭행 사건을 일으킨 윌 스미스에게 10년간 시상식 참석을 금지하기로 했다는 아카데미의 처사가 가혹하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철없던 우리도 비수로 찌른 것에 못잖은 양편의 설봉은 슬그머니 잊어버리고 검봉을 휘두른 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지 않았던가. 우리가 쏘아 올린 비난의 화살을 맞고 학교를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장애는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다 장애 때문에 받는 차별이 더 큰 문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 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어 간다고도 한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바뀌어야 장애인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다.   박유니스 / 수필가수필 진심 장애아 친구 규율과 장애인 여학생 장애아

2022.05.26. 19:10

[노트북을 열며] 그가 메타버스에 진심일지라도

 77분간의 원맨쇼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지난달 28일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겠다”며 공개한 영상 얘기다. 그는 따사롭고 쾌적한 (가상의) 저택에서 메타버스(metaverse)의 풍요를 말했다. 가상·증강 현실(VR·AR) 기술로 쌓아올릴 초월의 세계.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감을 더 깊이 느낄 것이며, 물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저커버그가 말했다.   내부고발자의 폭로, 정부의 압박, 대동단결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조직. 페이스북이 메타가 된 배경이다. 혹시,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창업 18년차 이 회사는 매출의 90% 이상을 데이터 기반 디지털광고로 벌지만, 미래는 밝지 않다. 올 4분기 실적부터 애플의 iOS가 사용자 데이터를 차단한 효과가 반영돼, 광고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고 스스로 전망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위기는 메타의 서비스가 늙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엔 없는 젊은 피가 틱톡·로블록스·제페토엔 바글바글하다. 발표 사흘 전 저커버그는 “앞으로 회사는 ‘젊은 어른들(young adults, 18~29세)’의 북극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가 노리는 건 그런 아이템을 사는 젊은 소비자들의 ‘어떤 욕망’이다. 인정받고 싶고(페이스북) 과시하고 싶은(인스타그램) 사람들의 욕망을 태워 SNS 제국을 세운 그들이다. 저커버그 발표 속 그 멋진 저택에서 친구들과 파티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메타버스는 초월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원룸에서 츄리닝 입고 사는 현실은 어쩌지 못하지만 말이다.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흐름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이걸 꿈꾸는 이들이 있었고, 기술발전으로 최근 실현 가능성이 부쩍 커졌다. 다만, 저커버그의 꿈에 우리 모두 지나치게 들썩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광고판이 필요한 기업의 전략이라면, 더 냉정하게 기회를 따져볼 때다. 사실, 메타버스를 구현할 핵심 기술인 VR만 해도 갈 길이 멀다. ‘VR은 부잣집 자식 같은 기술’(The rich white kid of technology, 데이비드 카프 조지 워싱턴대 교수)이란 표현처럼, 냉정한 평가없이 잘할 때까지 기회를 주니 VR이 연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커버그의 메타버스에 대한 진심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가 우주여행에 진심이듯, 코딩을 처음 배운 중학생 때부터 순간이동 기술을 선망했다는 메타 CEO의 꿈도 진심일 테다. 다만, 그는 차등의결권이란 수퍼 파워를 가진 메타   의 1인자이고(이미 그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다!), 원룸 츄리닝 생활의 팍팍함과는 거리가 멀다(포브스 부자 순위 10위 이내). 또 페이스북 사례를 보건대, 그가 새로운 놀이터에 생길 문제에 책임질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냉정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박수련 / 한국 팩플 팀장노트북을 열며 메타버스 진심 사실 메타버스 순간이동 기술 원룸 츄리닝

2021.11.07. 18:44

[J네트워크] 메타버스에 대한 ‘진심’

 77분간의 원맨쇼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지난달 28일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겠다”며 공개한 영상 얘기다. 그는 따사롭고 쾌적한 (가상의) 저택에서 메타버스(metaverse)의 풍요를 말했다. 가상·증강 현실(VR·AR) 기술로 쌓아올릴 초월의 세계.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감을 더 깊이 느낄 것이며, 물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저커버그가 말했다. 발표에선 수시로 홀로그램과 순간이동이 튀어나왔다. 소년처럼 들뜬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있자니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 했다. ‘그래, 우리 마크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내부고발자의 폭로, 정부의 압박, 대동단결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조직. 페이스북이 메타가 된 배경이다. 혹시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잘나가던 메타의 광고사업에 새로운 땔감이 절실해졌기 때문 아닐까 싶다. 창업 18년차 이 회사는 매출의 90% 이상을 데이터 기반 디지털광고로 벌지만 미래는 밝지 않다. 올 4분기 실적부터 애플의 iOS가 사용자 데이터를 차단한 효과가 반영돼, 광고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고 스스로 전망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위기는 메타의 서비스가 늙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엔 없는 젊은 피가 틱톡·로블록스·제페토엔 바글바글하다. 발표 사흘 전 저커버그는 “앞으로 회사는 ‘젊은 어른들(young adults, 18~29세)’의 북극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블록스나 제페토에서 비싼 한정판 구찌 아이템이 완판되는 걸 지켜봤을 그의 허기가 느껴진다.   메타가 노리는 건 그런 아이템을 사는 젊은 소비자들의 ‘어떤 욕망’이다. 인정받고 싶고(페이스북) 과시하고 싶은(인스타그램) 사람들의 욕망을 태워 SNS 제국을 세운 그들이다. 저커버그 발표 속 그 멋진 저택에서 친구들과 파티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메타버스는 초월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원룸에서 츄리닝 입고 사는 현실은 어쩌지 못하지만 말이다.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흐름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이걸 꿈꾸는 이들이 있었고, 기술발전으로 최근 실현 가능성이 부쩍 커졌다. 다만 저커버그의 꿈에 우리 모두 지나치게 들썩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광고판이 필요한 기업의 전략이라면 더 냉정하게 기회를 따져볼 때다. 사실 메타버스를 구현할 핵심 기술인 VR만 해도 갈 길이 멀다. ‘VR은 부잣집 자식 같은 기술’(데이비드 카프 조지 워싱턴대 교수)‘이란 표현처럼, 냉정한 평가없이 잘할 때까지 기회를 주니 VR이 연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커버스의 메타버스에 대한 진심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가 우주여행에 진심이듯, 코딩을 처음 배운 중학생 때부터 순간이동 기술을 선망했다는 메타 CEO의 꿈도 진심일 테다. 다만 그는 차등의결권이란 수퍼파워를 가진 메타의 1인자이고(이미 그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다!), 원룸 츄리닝 생활의 팍팍함과는 거리가 멀다(포브스 부자 순위 10위 이내). 또 페이스북 사례를 보건대, 그가 새로운 놀이터에 생길 문제에 책임질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냉정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박수련 / 한국 중앙일보 팩플 팀장J네트워크 메타버스 진심 사실 메타버스 순간이동 기술 메타 ceo

2021.11.0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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