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회사 근처에 음료 가게가 문을 열었다.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보바티 가게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곳에서 유명 인플루언서가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기꺼이 시간을 들여 줄을 섰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손바닥 반만한 케이크가 20달러 가까이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인플루언서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루언서라고 하면 보통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과 비슷한 지명도를 가진 유명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요즘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크리에이터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친구처럼 대화하며 제품, 서비스, 업체를 소개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를 유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올린 “이거 진짜 좋아요” 한마디가 광고 문구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이런 영향력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다. 인게이지먼트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에 대해 팔로워가 얼마나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좋아요나 댓글, 공유 같은 행위를 포함한다. 팔로워 수가 아무리 많아도 반응이 적으면 실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팔로워 수는 적지만 반응률이 높으면 더 가치 있게 평가된다. 최근 기업들은 팔로워 숫자보다 인게이지먼트 비율이 높은 인플루언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팔로워 수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 정도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특정 분야에 집중하고 팔로워와의 관계가 밀접해, 브랜드 입장에서는 광고효과 대비 효율이 높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의 뷰티 제품들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뷰티 브랜드들이 틱톡을 중심으로 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물이라는 진단이 많다. 이 외에도 식당 등 소상공인들이 주로 하는 업체들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서 매출 상승을 끌어낸 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팔로워 수를 조작하거나 가짜 계정을 동원해 인게이지먼트를 부풀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품을 소개해놓고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거나 판매 후 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많다. 인플루언서와 협업한 소상공인이 계약 조건이나 수익 배분 문제로 피해를 보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늘 또한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플루언서와 소상공인의 협업은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대신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브랜드나 소상공인은 제품 품질과 협업 조건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맹목적으로 추천을 따르기보다 ‘왜 이 사람이 이 제품을 권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플루언서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상생이 전제돼야 한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통해 작은 기업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자신과 맞는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디저트 가게의 긴 줄이 보여주듯, 소비자들은 이제 인플루언서의 한 마디에 움직인다. 인플루언서라는 문자 그대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이려면 결국 중심엔 신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