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돌탑을 쌓는 오후
나도 쌓을 수 있겠다. / 돌을 쌓았습니다 / 넓고 편편한 돌을 모아 / 바닥에 놓고 그 위로 그보다 / 작은 돌을 쌓았습니다 / 모양이 탑이 되어갈 즈음 / 탑의 감정은 소원을 비는 / 사람의 마음보다 높았습니다 // 간밤에 이국에서는 눈이 / 내리고 이곳에서의 노을은 / 붉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신호들의 / 불빛 같은 그 빛을 넘으면 / 돌탑이 무너지듯 우리 몸이 / 부서지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 발을 헛디디면 돌아오지 못하는 / 지옥 같은 삶이 거기 있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을 보고 내 손을 / 비틀었습니다. 탑은 무너져 내리고 / 나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 탑과 사람의 손을 이어주는 다른 언어 / 끊어져 닿을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은 / 어떤 말로도 이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탑을 집어 들 손마저 / 사라져 버린 게 되었단 말인가요 / 보이지 않는 돌탑을 보인다는 구실을 / 붙잡고 밤을 새야 한단 말인가요 잠깐 나가본 바깥은 추웠습니다. 얼굴에 느껴오는 찬기가 정신을 번쩍 깨웠습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은 나무 밑, 듬성듬성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난 곳에 모여있는 참새떼였습니다. 연신 부리로 땅속을 파헤치는 걸 보니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배가 고픈가? 그래서 떨어진 나무 열매를 쪼고 있는 걸까? 바쁘게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연신 부리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마리 다람쥐가 어딘가에서 뛰어나와 새무리를 헤쳐 놓았습니다. 겅중 뛰어오른 다람쥐의 무례함으로 새들은 재빨리 옆 가지로 날아갔습니다. 온종일 새들은 그렇게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무리 지어 날아가다가도 땅으로 내려와 부리로 먹이를 찾아냅니다. 깜짝 등장한 다람쥐는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참 한가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 탑을 자꾸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맹목적인 이유를 들어 탑의 꼭대기를 올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건가요. 쌓은 후 무엇인가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행복감에 빠져드는 건가요? 그래서 다 쌓은 탑을 두고 무엇인가 미련이 생겨 그 옆에 또 다른 탑을 쌓고 있는 건가요? 그렇게 몇 개씩 쌓아 올리다 보면 인생이 허락한 시간은 저물고 있을 텐데요. 모르셨나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 말도 안 되는 말 같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한 말이라 스스로도 놀라버리기도 하는 신기한 말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의 축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바라보면 가능하기도 한 시간. 그래서 우리는 하루해가 지고 서쪽 하늘에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의 황혼을 하루해로 말하지 않던가요. 시간은 촘촘한 간격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뇌는 그 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순간의 풍경이 오래 잊히지 않는 이유도, 짧은 시간 이루어졌던 어떤 일은 내 일생을 통해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시간을 조절하는 반증이 아닐까요. 한가히 돌탑을 쌓고 있는 이 순간이, 참새떼가 흙을 부리로 파헤쳐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이 장면이, 불현듯 나타난 다람쥐 두 마리가 나타나 나와 참새 떼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이 오래 마음에 잊히지 않는 기억의 방에 저장된다는 것은 내 손으로 쌓아 올린 탑의 감정이 사람의 감정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조차 멈추게 한 한가한 오후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까지 풍경으로 어우르는 멈춘 시간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부리로 먹이 부리로 땅속 찬기가 정신
2025.12.22.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