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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돌탑을 쌓는 오후

Chicago

2025.12.22 12:32 2025.12.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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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쌓을 수 있겠다. / 돌을 쌓았습니다 / 넓고 편편한 돌을 모아 / 바닥에 놓고 그 위로 그보다 / 작은 돌을 쌓았습니다 / 모양이 탑이 되어갈 즈음 / 탑의 감정은 소원을 비는 / 사람의 마음보다 높았습니다 // 간밤에 이국에서는 눈이 / 내리고 이곳에서의 노을은 / 붉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신호들의 / 불빛 같은 그 빛을 넘으면 / 돌탑이 무너지듯 우리 몸이 / 부서지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 발을 헛디디면 돌아오지 못하는 / 지옥 같은 삶이 거기 있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을 보고 내 손을 / 비틀었습니다. 탑은 무너져 내리고 / 나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 탑과 사람의 손을 이어주는 다른 언어 / 끊어져 닿을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은 / 어떤 말로도 이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탑을 집어 들 손마저 / 사라져 버린 게 되었단 말인가요 / 보이지 않는 돌탑을 보인다는 구실을 / 붙잡고 밤을 새야 한단 말인가요
 
[신호철]

[신호철]

잠깐 나가본 바깥은 추웠습니다. 얼굴에 느껴오는 찬기가 정신을 번쩍 깨웠습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은 나무 밑, 듬성듬성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난 곳에 모여있는 참새떼였습니다. 연신 부리로 땅속을 파헤치는 걸 보니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배가 고픈가? 그래서 떨어진 나무 열매를 쪼고 있는 걸까? 바쁘게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연신 부리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마리 다람쥐가 어딘가에서 뛰어나와 새무리를 헤쳐 놓았습니다. 겅중 뛰어오른 다람쥐의 무례함으로 새들은 재빨리 옆 가지로 날아갔습니다. 온종일 새들은 그렇게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무리 지어 날아가다가도 땅으로 내려와 부리로 먹이를 찾아냅니다. 깜짝 등장한 다람쥐는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참 한가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 탑을 자꾸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맹목적인 이유를 들어 탑의 꼭대기를 올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건가요. 쌓은 후 무엇인가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행복감에 빠져드는 건가요? 그래서 다 쌓은 탑을 두고 무엇인가 미련이 생겨 그 옆에 또 다른 탑을 쌓고 있는 건가요? 그렇게 몇 개씩 쌓아 올리다 보면 인생이 허락한 시간은 저물고 있을 텐데요. 모르셨나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 말도 안 되는 말 같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한 말이라 스스로도 놀라버리기도 하는 신기한 말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의 축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바라보면 가능하기도 한 시간.
 
그래서 우리는 하루해가 지고 서쪽 하늘에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의 황혼을 하루해로 말하지 않던가요. 시간은 촘촘한 간격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뇌는 그 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순간의 풍경이 오래 잊히지 않는 이유도, 짧은 시간 이루어졌던 어떤 일은 내 일생을 통해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시간을 조절하는 반증이 아닐까요.
 
한가히 돌탑을 쌓고 있는 이 순간이, 참새떼가 흙을 부리로 파헤쳐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이 장면이, 불현듯 나타난 다람쥐 두 마리가 나타나 나와 참새 떼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이 오래 마음에 잊히지 않는 기억의 방에 저장된다는 것은 내 손으로 쌓아 올린 탑의 감정이 사람의 감정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조차 멈추게 한 한가한 오후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까지 풍경으로 어우르는 멈춘 시간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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