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 색으로 피어납니다 // 어제는 파란색 / 푸른 하늘 / 연 꼬리 길게 늘어뜨린 / 흰 바람이었습니다 / 밤새 별들이 울다 간 / 꽃잎 흩어진 아침 / 전혀 회색입니다 / 오늘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 침묵입니다 / 혹 내일은 / 색깔을 되찾고 싶습니다만 / 초록으로 돌아갈 겁니다 / 숨이 트이는 곳 / 꽃봉오리 터지는 곳에 / 귀 기울이겠습니다 // 나의 하루는 / 색으로 칠해집니다 // 빌딩의 숲속에서 / 꺼지지 못하는 / 당신의 창을 찾아 / 초록이 자랄 수 있게 / 숲의 향기 스밀 수 있게 / 잠 못 이루는 창 / 닦아드리겠습니다 / 칠하고 덧칠함으로 / 껴지고 꺼짐을 반복하면서 / 당신과의 거리 좁혀가면서 /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 붉은 노을로 지겠습니다 / 나를 다 드려도 / 샘이 되지 않는 당신 앞에 / 뜨겁게 물들어 가겠습니다 하루가 색으로 피어난다? 색으로 칠해진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러다 혼자 피식 웃었어요. 허리를 구부렸다가 펄쩍 뛰어보기도 하였죠. 혹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혀를 차며 바라보았겠죠.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참 안됐다고요. 그럼에도 그건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눈에 비친 어떤 풍경도 색을 띠지 않는 사물과 사람을 담고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될 수 있지요. 세상의 모든 화가의 눈엔 평범한 사람들 눈에 스치는, 사라지는 색 그 이상의 강렬한 색들이 보이겠지요. 그저 평면적인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에 감정이 섞여 버무려진 움직이는, 살아나는 색들이 쿵 하고 가슴에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을 색으로 칠하고 이야기를 그리고 그 안에 사유를 담으니, 말이에요.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내 안엔 온통 일, 일, 일의 중독이 돼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하루가 다 가도록 고개 들어 그 아름다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빈들 가득히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의 유희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야생화의 신비로움도, 쉼도 없이 밀려오는 광활한 미시간 호수의 파도도 그것을 자라게 하신 그분 손끝의 사랑 때문이지요. 우리 이제 그 손끝을 따라 하루를 시작해요. 우린 썩어갈 것들을 쫓아 발끝만 바라보고 많은 날을 살았어요. 우리에게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이제 하늘을 보며 살아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무에 새순이 언제 피었는지, 그 색이 연두였는지 핑크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요.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잎들이 수북이 가지를 덮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고개 들어 나무를 바라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적이 없으니까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나요. 얼마나 작은 꽃봉오리가 꽃잎을 서로 붙들고 땀 흘리며 견디어 냈는지 기억하시나요? 스쳐 간 기억조차 아물거리니 생각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오늘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의 색들을 기억하기로 해요. 그 색들 앞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따뜻한 언어로 담아주면 어떨까요. 적어도 창조주의 손길을 다만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며 사는 것이 그분에 대한 바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시를 쓴다고 이름 석 자에 시인이란 호칭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어요. 아니라고 나는 아직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요. 뒤돌아 오면서 나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은 시인입니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순수와 열정을 회복해야겠어요. 하루가 어둠의 색으로부터 찬란한 빛의 색으로 피어나는 언덕에 다시 서겠어요. 당신의 손끝이 잠들은 씨앗들을 깨운 빈들의 기적 한가운데서, 당신의 긴 호흡을 느끼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인 화가 미시간 호수 그분 손끝
2025.08.04. 14:04
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게 되는 자리가 있지 누군가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오네 잎사귀 위 흐르는 푸른 핏줄 따라 가지마다 꾹꾹 찍어 쓴 편지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남겨두고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호흡은 거칠었지만 향기로와서 저녁 햇살 되어 녹아져 오네 벽 하나 사이 아픈 소리가 되어 오네 손을 스치는 들풀의 이야기 소리내 우는 강 너의 자리에 서면 들리는 노래 물방울처럼 모아지는 그 깊은 울음을 누가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누구나 누운자리가 하나 있지 서로를 부르다 사라지는 자리가 있지 비껴간 그림자는 허공에 달려 저녁이 되면 로즈힐 묘지로 오네 마음 한 구석 걸친 노을마져 떠나간 누이의 뒷 모습 같아서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든 Ross Hill 묘지에는 정겨운 묘비 세걔가 있다. 시카고에서 10년 전 이곳에 먼져 누우신 어머니의 작은 묘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한국 선산에서 이장해온 아버지의 묘가 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묘는 큰 누이의 묘이다. 누이의 묘는 가장 늦게 한국의 교회묘지에서 이장되어 이곳에 안치되었다. 세개의 작은 묘비가 나란이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한낮의 햇살에 일광욕을 하고 어쩌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옆자리의 정다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으리라. 배고픔도 잊은채 바람에 눕는 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꽃봉오리의 개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들릴 때마다 마음이 참 좋다. 한꺼번에 보고싶은 부모님과 큰누이까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큰누이 묘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누이 얼굴이 바람결에 정겹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꾸 쓰러지셨다. 그때 누이는 고등학생 3학년이었지만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셨다. 약한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아래로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하나를 위해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중압감에 잠못 이루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중 2대 국회 도서관장으로 발탁되셨다. 청렴결백 하셨던 성품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을 사과궤짝 밑바닥에 넣어 청탁 온 사람을 꾸짖어 돌려보냈다 하셨다. 물질에 관심이 없으셨기에 모아둔 돈도 없었고 그저 집 한채 남겨 놓으신 게 다였다. 큰누이는 대전역전에 큰 병원을 운영하시는 큰아버지에게 대학 진학을 상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는 냉냉한 반응이었다. 누이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되었다. 큰 용기를 내어 찿아간 마지막 희망이 좌절되었다. 누이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없었다. 누이는 힘든 세상에 홀로 내몰려 끝내 피지못하고 스스로 꺾여진 꽃봉오리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이를 먹어 그 때 누이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누이의 소매를 붙잡고서라도 막았을 것이라고. 대전 큰 아버지를 찿아가 눈물로 호소했을 것이라고. 이제 환하게 피어날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로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안고 힘든 나날을 보냈으리라. 어느날 짧은 편지 한통을 남기고 스스로 꽃대를 꺾어버리고 말았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얼마나 쓸쓸했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초등학생이 아닌 노년이 되어 스무살 누이를 마주하고 있다. 누이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바람에 풀잎을 흔들었다.누이는 아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처진 어깨를 따뜻이 안아줄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누이의 묘위에 걸친 노을이 천사의 큰 날개가 되어 내게로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로즈힐 로즈힐 묘지 아버지 이야기 누이 얼굴
2025.07.28. 14:16
지쳐 잠드는 것이고 / 흔들려 깨어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 단어를 주워 짜맞추는 게 아니라 / 가슴을 치는 일을 받아 적는 일이다 / 깨달음을 위해 애쓰기보다 / 길을 걷다 눈에 띈 들꽃을 /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다 / /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 쓰여지는 것이다 / 지나온 걸음 속에서 /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 그저 흥얼거리는 것이다 / 사랑과 그리움, 절망을 / 아파하고 안아주는 일이고 / 널 보내지 못한 나를 꾸짖는 일이다 / 세상을 향한 날 선 독백마저 오늘 / 부딪치며 넘어지며 살아가는 / 나에게 보내는 편지요 / 당신께 드리는 용서인 것이다 나는 침대 모퉁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아 한 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다. 누가 나를 누르거나 밀쳐 내는 것이 아닌데 나는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서 힘들게 잠을 청하고 있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비몽사몽 간에 한쪽 어깨가 저려 와 몸을 뒤척이다 결국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 소리를 듣는 순간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다시 침대에 누웠다.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고 있다. 잠깐 일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절박한 상황을 매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천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긴 시간을 짧게, 또 짧은 시간을 길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견디어낸다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하루를 견디어내고 한 계절을 견디어내야 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나이를 견디어내야 했고 내 삶에 갑자기 찾아와 귀 기울여야 할 것들에 대해 응답해야 했다. 어느새 피어난 들꽃, 흔들리는 풀잎의 춤사위에, 무심히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에 눈을 떠야 했다. 밤하늘 별자리를 세다 잠들고 싶었다. 깨어있는 새벽엔 그리운 이름을 부르기도 하면서 견디어 내야 했다. 내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어제는 중앙대학원 이창봉 교수님의 첫번째 시 창작 강의가 있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초리와 교수님의 진지한 열강에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내 안의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 안에 세계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시는 절박한 필요에서 나와야 한다. 사물과 존재의 본질을 깊이 보게 될 때 시는 탄생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은 시의 원천이 되고 내면으로 향하는 고독이 시가 되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삶과 죽음은 하나다.‘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경험해야 할 존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내면의 성찰과 예술의 원천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사물을 정성스럽게 바라보면 단순한 대상도 깊은 존재의 신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에, 우주에 존재의 근원과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는 창조주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손길을 알아차리는 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워도 가슴 저리는 시 한 구절에 새벽을 맞는다. (시인, 확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침대 모서리 침대 모퉁이 근원과 우주
2025.07.21. 13:16
빈들의 하루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당신 앞에 서 있는지 아마 모르시겠죠 긴 세월, 먼 길을 돌아 당신 등에 기대어 있는지 잊으셨나요 어제의 어깨 위로 지나가는 바람결 따라 당신의 마음을 훔치고 어느 세월 여기에 왔어요 잠들은 태고적 고요, 공룡의 실루엣 처럼 정지된 하늘과 땅 사이 발끝 닿지 않은 심층까지 미지의 세상에 뿌리 내려 순백의 빛으로 오는 아빠 어깨같이 듬직한 당신 내 말만 쏟고 돌아 갑니다 둥굴고 넓은 당신 품 심장 소리에 살아납니다 나무는 하늘을 받들고 하늘은 나무를 안고 하루가 지고 있다. 너른 들녘엔 반딧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찬바람에 푸릇푸릇 들불의 흔들림이 마치 온 들이 손을 잡고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어둠은 점점 내려앉아 하늘과 나무의 경계는 사라지고 창밖은 검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고요한 정적이 내리고 있다. 하루가 저물듯 하루가 온다. 어제의 나무가 새날을 맞이하고 어제의 새들이 보금자리에서 깨어나 아침을 노래한다. 하늘은 구름과 어제와 다른 바람을 품고 밝아오고 있다. 나무의 끝까지 들은 손을 뻗어 하늘을 부르고 하늘은 아침을 바람에 실어 나무의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헨델의 파사칼리아의 선율이 피아노 건반을 미끄러지듯 타고 잠든 세상을 깨운다. 52개의 하얀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을 고르며 가늘고 긴 섬세한 손이 밝아오는 길로 마중 나간다. 모든 생명체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시계의 초침같이 세미한 걸음으로 새날이 내 앞에 선다. 나무의 그림자처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라벤더 보라 꽃봉오리가 아침햇살에 굽어진 허리를 편다. 비가 잠깐 뿌렸는데 들과 나무숲과 하늘이 깨끗해졌다. 공기 속 먼지들을 흡수하고 숨이 깊어졌다. 하나님이 하늘 창문을 열고 아래 숲속을 바라보시다 잠깐 비를 뿌렸더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뿐이 아니다. 나무도 숨을 고르고 숲속 작은 벌레들도 꿈꾸듯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다닌다. 나도 그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한낮의 황홀 속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이쪽저쪽에서 생명의 환호성을 듣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게 주어진 24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은 생각만 하는 꿈처럼 살지 말자. 꿈을 현실처럼 살자. 작은 씨앗 속에 푸른 하늘과 바람과 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아 마침내 피워낼 한 송이 꽃처럼. 내 안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단어들, 문장들을 꺼내어 한 편의 시를 노래해 보자. 어디선가 날아와 발길을 인도해 주는 나비의 날갯짓 따라 나도 춤추듯 간다. 꿈꾸었지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감추어진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철마다 다른 얼굴을 내미는 들꽃의 속삭임에 취해 나만의 비밀의 정원을 걷고 있다.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너를 만나고 또 나를 만나고 싶다. 문득 호수가 보고 싶다. 밀려오는 파도의 하얀 부서짐이 내 귀에 들려온다. 기진했던 심장의 박동이 힘차게 살아나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하늘 창문 실어 나무 피아노 건반
2025.07.14. 12:24
AP통신의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 취재’를 지휘해 퓰리처상 수상을 끌어낸 ‘50년 외신 기자’ 신호철(영어명 폴 신·사진) 전 AP통신 기자가 지난 8일(한국 시간) 오전 10시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9일 전했다. 향년 85세. 1940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일고,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ROTC 1기로 임관해 통역 장교로 복무했다. 1965년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UPI통신을 거쳐 1986∼2003년 AP통신에서 활동했다. 퇴직 후에는 2015년까지 연합뉴스에서 영문 기자 재교육과 영문 기사 리뷰를 담당하는 외국어뉴스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격동 현대사를 취재하며 ‘폴 신’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필명을 날렸다. 고인이 외신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4대 통신사 말고는 서울에 외국 언론사 지국이 거의 없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한국을 알리려고 애를 쓰면서 ‘외신 기자의 거목’으로 불렸다. 한편,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닷새 동안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국의 비행기 폭격 등으로 피난민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당시 300명가량이 숨졌다. 고인이 이 사건을 보도(1999년 9월 30일)한 후 진상 규명과 배상 과정 등을 통한 후속 보도로 당시 AP통신 기자 3명은 퓰리처상을 수상(2000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신호철 완료 별세노근리 학살 외신 기자 시작 upi통신
2025.07.09. 20:22
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 찬찬히 너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있었네 // 잎사귀 위로 물방울 궅러 내리고 / 잔 가지마다 가득히 써 내려간 손 편지 / 서둘러 모아지는 빈자리마다 /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 너의 호흡은 향기가 되어 머물고 / 따뜻한 한낮의 햇살이 되어 녹아져 / 싸리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픈 소리가 되었지 / 감추어진 곳까지 속절없이 부딪혀오는 // 너의 손을 스치는 들풀의 누음도 / 너의 앞을 쉬지 않고 흐르던 강물도 / 먼 길 돌아 다시 만난다 해도 / 너의 깊은숨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 너의 서 있던 빈자리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 같아 / 서산에 걸친 노을처럼 / 비껴간 너의 그림자를 뒤쫓아 가네 나의 자리가 있고 너의 자리가 있다. 누군가의 자리에는 누군가의 자리에 어울리는 저만의 자리가 있다. 나무의 자리에는 나무가 있고 꽃의 자리에는 꽃이 있다. 넓은 들에는 들풀의 자리가 있고 흐르는 강에는 물결의 자리가 있다. 넓은 바다에는 밀려오는 파도의 자리가 있고 밤하늘에는 별들의 자리가 있다. 깊은 숲에는 새들의 자리가 있고 그 아래 덤불에는 들짐승들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땀을 흘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기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걸으며 넓은 세상을 마주하면서 위로받기도 하고 무상으로 내리는 선물 같은 햇살과 마주하며 치유되기도 한다. 너의 서 있는 자리에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나의 자리에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움직이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다. 다른 풍경을 마주하면서 생각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걸음이 느려지면서 나의 자리를 뒤돌아보게 되지만 이때 또한 내가 서있는 자리가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어떠한가. 나무는 나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보이는 줄기와 잔가지만큼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다. 그 뿌리가 너무 얕으면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마침내 쓰러지고 만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는 반면 치열하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서 있는 자리를 견고히 한다. 꽃들의 자리를 오래 버텨주기 위해,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식물은 꽃을 바치는 꽃대궁을 다른 줄기에 비해 단단히 자라게 한다. 그래야 무거운 꽃들을 꺾이지 않고 오래 지탱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대로 동식물은 그것들대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버티고 살아간다. 너의 서 있는 자리는 그만큼 중요하다 / 너의 버텨내는 아픈 소리가 들려올 때 / 나는 잠들었던 세포들을 깨운다 / 조금만 더 버티어보라고 / 마지막 힘을 모아보라고 / 저무는 노을을 향해 소리쳐본다 / 너의 서 있는 빈자리 / 비껴간 너의 그림자는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만큼 / 속절없이 부딪혀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잎사귀 위로 시인 화가 싸리문 사이
2025.07.07. 14:21
얼마 전 젊은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뒤를 편안히 뒤따라오며 전체를 아우르는 기타 반주 때문이었다. 행여 늦을까? 처져 있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의 염려를 무색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뒤를 받쳐주는 편안함을 느껴보았다. 삶의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삶의 고난 속에서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발끝에 힘을 모아 뛰어보기도 한다. 때로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나를 지으신 이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고무케 한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정원의 아침이 밝아올 때.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들, 가령 예를 들자면 작은 묘목, 잔가지를 많이 가진 나무, 스스로 씨를 뿌릴 줄 아는 들꽃들이지요.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잎을 펼치고 주먹만 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조용히 그들의 곁에 다가가면 반가움의 인사를 내 눈에 마구 쏘아대는 것이 아침햇살처럼 따스하다. 바람에 손을 흔드는 건지 잎사귀가 앞뒤로 팔랑거린다. 아침을 뒤따르며 저들의 걸음을 따라 한걸음 물러 걸어본다.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걸음은 바른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숨을 고르고 흘러가는 계절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행복은 다 나의 행복이 된다. 무슨 세상의 행복이 다 자기 행복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작은 꽃 한 송이 피어나는 데에도 몇 계절이 바뀌어야 하고 수많은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와야 한다. 꽃 한 송이 속에는 바람과 햇살과 밤하늘 별빛과 아침을 기다리는 그리움과 기대어 함께 자라고 피어나는 연민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시원함과 한나절의 목마름이 층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내게서 사라지는 날이 오면 나는 사라진 존재로 남겨질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앞에서 나의 숨이 거칠어진다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뒤돌아 계절을 배웅하면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건 찰나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그 시간 속에 펼쳐지는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세월을 탓하지 말자. 그 시간을 소중히 함께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 새 나의 손을 잡고 시간의 은밀한 첫 시작부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친밀한 손잡음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퀼트의 조각처럼 엮어 이어지는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나이 들면서 소중한 것 하나는 노동이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결과는 늘 정직하다. 헛되게 부풀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무풍선처럼 김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땀 흘리며 일 한 후 찾아오는 보람이랄까. 아니 행복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 정원에 호미 한 자루 들고 시작한 정원일은 정오를 훨씬 넘긴 후에야 허리를 편다. 소쿠리에는 한 움큼의 잡초와 시든 꽃가지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마른 잎사귀들로 가득하다. 불필요한 삶의 찌꺼기들도 광주리에 가득 걸러지는 아침을 맞이하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정원에서 당신이 보내준 것들을 가꾸다 어느 날 당신이라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 가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왔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밤하늘 별빛과 통기타 가수 묘목 잔가지
2025.06.30. 14:16
바람에 종이 인형처럼 마냥 휘날리더라 / 아무것도,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 바람에 밀려가는 네가 쓸쓸해 보이더라 / 걸음을 모아 하늘에 날려보내도 좋겠더라 // 바위에 부딛혀도 아프지 않더라 / 흩어지다 모아지고 또 산산히 부서지는데 / 세상을 잃고 춤추는 네가 서글퍼 보이더라 / 두손을 모아 호수에 담아도 출렁이더라 // 오늘 다짐하라던 서늘한 네 목소리 / 돌아서는 마음을 다잡아 나무 한그루 심었네 / 세월이 지나야 아름다워질 것들이 보이네 / 전나무 푸르름같이, 너의 깊어지는 눈망울 같이 // 내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보다가 / 후미진 곳에 꽃을 피운 네마음을 알겠더라 / 매일 가져야하는, 느껴야하는, 먹어야하는 /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고 귀하게 저무는 하루 //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 말할 수 없듯이 // 행복을 채워줄 수 없는 작은 것들로부터 /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이 내 작은 생각보다 / 크고 높은 곳으로 이끄심을 느끼네 // 슬픔과 괴롬 가운데 넘어진 너의 근심이여 / 큰것이 아닌 작은 사소함으로 부터 밀려오는 / 당신의 눈길, 그 평안의 길을 걸어야하네 / 일상의 일들이 신성한 순간으로 이어지는 길로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엔 전혀 감흥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 속엔 불만과 갈등의 요소로 가득 차 있기에 마음의 눈을 뜨고 그 풍경을 내안의 평안으로 기쁨과 경이함으로 마주할 시간을 순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 속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마음으로는 아름다음이라는 고요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비관론자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스스로를 어둠의 나락으로 내몰 때도 있다. 일정기간 주어진 삶의 순간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늘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찿아옴에는 이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삶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터로 가야 하고 온종일 일한 후에도 쉬지 못하고 part time 일을 해야 한다면 그 마음 속엔 쉬고 싶고 눕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고 또 포근한 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는 내일을 위하여, 조금 나은 미래의 삶을 누리기 위해 이 모든 순간을 참으며 노력한다. 만약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하자. 그 후에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풍족한 삶을 위해 끊임없는 그의 사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쯤에서 그의 삶을 복귀할 필요를 느껴야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물음 앞에 겸허히 서야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담장 후미진 곳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 한송이가 길가던 그를 멈춰 세웠다면 그때 그의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한 순간을 마음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삶의 아픔은 치유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산다는 말은 그의 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품고 산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see와 watch의 차이, hear와 listen의 차이를 알게 되면 우리 모두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있어서 볼 수 있는,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관심을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의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귀가 있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소리를 찿아내는 순간들이 잦아질 때 삶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 슬픔이 깊을수록 그 속에서 행복의 씨앗들을 찿을 수 있는, 아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밝아올 새벽의 먼동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전나무 푸르름 나무 한그루 종이 인형
2025.06.23. 13:28
길가에 떨어진 작은 씨앗이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바람아 나를 날려 저 언덕 너머로 옮겨줄 수 있겠니? 그곳은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비옥한 땅이거든. 나도 그곳에서 꽃피우고 싶어." 바람은 씨앗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래 남풍이 불 때 너를 안아 저 언덕 너머로 옮겨줄게." 며칠이 지나자, 남풍이 불어왔습니다. 씨앗은 그동안 허기와 추위로 부쩍 야위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안간힘을 쓰며 견디었는데 드디어 남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어깨를 펴고 다리를 한데 모으고 비상할 준비를 마쳤는데 바람은 씨앗을 언덕 너머로 옮겨주지 않았습니다. 밤이 다시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하늘에 온통 먹구름이 끼더니 굵은 빗방울이 밤새 쏟아졌습니다. 기진맥진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엔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리 받히고 저리 받히며 온몸엔 멍이 들어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넋을 놓고 큰 돌멩이에 기대어 있는데 바람이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 너를 찾을 수가 없었잖아." “나는 너만 기다렸는데 밤새 쏟아진 비에 잠깐 정신을 잃었나 봐.” 미안함에 상처 난 얼굴을 붉히며 씨앗은 얼굴을 들었읍니다. 오늘도 씨앗의 꿈은 여전합니다. 언젠가 손바닥만 한 양지에서 꽃 한 송이 피워내기를 바랐습니다. 입술을 꼭 다물고 끝까지 견디어내면 꼭 좋은 일이 자신에게 올 거라는 희망을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눈앞엔 어른거리는 따뜻한 양지가 포근하게 그려질 뿐입니다. 저녁노을 진 풍경이 눈에 비치고 들녘의 숨소리가 깊어질 때였습니다. 바람은 남풍을 몰고 와 나를 번쩍 안아 하늘로 나르더니 모두 깊이 잠든 언덕 너머로 나를 옮겨 주었습니다. 삐죽삐죽 올라온 들풀들 사이로 발을 뻗었습니다. 밀려오는 나른함과 행복감에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적막과 고요함 속에 길들어 있던 씨앗은 마음 속에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세미한 음성의 주인은 햇빛이었습니다. “이제 꽃을 피울 수 있겠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찾아온 감사와 행복의 시간이 몰려왔습니다. 조금은 서툴어도 그 은혜의 시간에 뿌리를 내리려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행위보다는 내가 먼저 죽는 씨앗이 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내 양분을 뿌리로 뿌리로 내렸습니다. 진짜 행복은 지금부터입니다. 산산이 부서졌던 곳으로부터 작은 씨앗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제와 다른 새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들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그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우리는 누구입니까? 자신을 버려 싹을 내는 작은 씨앗 한 톨보다 못 한 인생이라면 우리의 모난 모서리는 얼마나 더 깎여야 하나요."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여봅니다. 영혼의 봄날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봄은 향기로운 몸짓으로 다가와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불편했던 서로의 거리를 좁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작은 씨앗도, 부서지기 쉬운 우리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봄날도 정겹습니다. 이제 막 터질 듯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가 모두에게 기적처럼 펼쳐진다는 것은 생명이 있는 모두에게 가슴 저미며 맞이해야 할 사실 아닌가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이야기 씨앗 이야기 적막과 고요함 시인 화가
2025.06.16. 14:49
마음속에도 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부터 한낮까지 젖어오는 꿈으로 팔을 뻗어보아도 하늘 가득 젖어오는 창가에 비 하염없음 만으로 잠겨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여 동그란 잎사귀 비에 젖어가는 제 몸의 무게에 고개를 떨구는 두 손을 모아 지탱해 주어도 하염없이 뿌리치고야 마는 혼탁한 언어를 지우며 젖어오는 그늘 틈새 얼굴을 내밀어도 저물어가는 어둔 길을 걸어도 보이지 않게 밑줄을 그어도 펄떡이는 새의 심장으로 날아와 눈물로 길게 적어 내리는 편지 흘러내리다 지워지기도 하는 당신이 보내온 창가에 비 Chopin - Spring waltz(Mariage d’ Amore)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있다. 모든 게 정지된 정원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길게 자란 하얀 데이지, 보라색 제비꽃들이 산들 흔들리고 있다. 창문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그 긴 자국을 연신 지우고 있다. 빗물은 다시 너에게 보내는 한 줄의 연서같이 자꾸 내 마음을 적어 내린다. 내리는 비에 무거워진 나뭇잎들은 한 결로 고개를 떨구고 고해를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세상은 그다지 어둡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시간의 틈새를 살피다 보면 마음에 전해오는 따뜻한 숨결도 있고,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촉촉한 눈길도 있다. 그래서 지친 밤을 보내고도 아침을 맞이하는가 보다.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도 창가의 비를 바라보고 있나요. 그 비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되어 마음으로 흐르는 강이 되어 오고 있나요. 비를 맞아본 적이 있다. 처음엔 비에 옷이 젖고, 그 후엔 온몸이 비에 젖어간다. 얼마 후 마음 속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마음도 비에 젖어간다. 가랑비는 가랑비대로, 보슬비는 보슬비대로, 소나기는 소나기대로 온몸과 마음에 사뿐히 때론 세차게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젖어드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얼마 후면 감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몸과 마음까지도 비에 젖어갈 것이다. 창가에 앉아 비 오는 뒤란을 바라보고 있다. 장대 같은 나무도, 작은 묘목도,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이 조용히 움직임 없이 비를 맞아내고 있다. 무거워진 가지가 아래로 처지고, 작은 묘목의 잎들도 빗방울을 담아낸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 새들의 놀란 가슴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접었다. 나도 창을 사이에 두고 비에 젖어드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창가에는 빗소리와 함께 피아노의 청아한 멜로디가 들려오고 창가에 비는 마음에 젖어오는 시간을 소환하고 있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깝게 붙어 있단 생각이 든다. 사랑의 마음 속에 한톨의 미움도 없을까? 미움의 마음 속엔 한 조각의 사랑도 없을까? 사랑 속의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다. 미움 속의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사실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미움의 정의를 나 스스로 정해놓으면 사랑 속 미움의 순간을, 미움 속 사랑의 조각들을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순간을 시계 초침같이 내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비가 내리는 아침부터 낮까지 시간에 따라 지워지기도 하고 다시 생겨나기도 하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 그 소중한 순간들, 그리고 지울 수 없이 마음에 깊게 새겨진 풍경들을 이제 기억해 내야 함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의 조각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조각 사랑 온몸과 마음 피아노 연주
2025.06.09. 12:46
그래요 / 당신은 맘껏 이뻐도 됩니다 / 오늘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어요 / 갈림길에선 주저 없이 / 바위고개 진달래 꽃무덤 가로 / 개나리 펄펄 날리는 언덕 너머로 / 그리움 묻어나는 어느 봄날 노래하며 / 지워도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그리며 / 진달래 붉게 핀 아픈 언덕 넘었어요 그럼요 / 당신은 맘껏 뽐내도 됩니다 / 온 땅이 살아나는 생명으로 가득해요 / 새순이 아기 손처럼 꼬물거려요 / 붉어진 꽃망울은 또 얼마나 서글픈지요 / 눈물방울이 막 떨어지려 해요 / 저만 그런가요 / 지난 일들이 봄날의 책장을 넘겨요 / 잊혀진 얼굴들이 꽃처럼 피어나요 / 목련이 지면 어머니 무덤가로 갈 거예요 / 파릇하게 솟아난 잔디에 누워 / 어린 누이 손에 봉숭아 붉은빛 손톱에 물들이던 / 갸륵한 봄날 베개 삼아 잠들 거예요 봄기운이 뒤란에 찾아들면 즐겁고 행복해진다. 무채색의 정원이 연두와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다. 어느 사이 한 움큼씩 자라나는 싹들을 보기 위해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느 구석, 어느 틈엔가 손톱만큼씩 자라나는 잎들의 키재기와 단단하게 맺혀있는 꽃봉오리들이 힘을 빼고 꽃을 피우려나 궁금해진다. 커피를 내리고 김이 나는 커피잔을 들고 뒤란의 꽃들과 눈인사를 한다. 이슬에 젖은 눈망울엔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또르르 굴릴 것 같은, 떨굴 것 같은 아이리스. 밤새 부쩍 자란 잎들을 쓰다듬으면 바람에 흔들리며 반가워하는 나뭇가지들을 보듬어준다. 눈길 가는 곳마다 어제보다 더 넓고 높게 살아나는 것들로 가득한 뒤란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보금자리로 한 작은 수목원이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뒤란의 새벽은 고요하고 그윽하기만 하다. 가까운 곳에서, 저만치 나무 틈 사이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나무와 작은 묘목들의 잠을 깨운다. 그렇게 정원에서의 하루는 어제와 다름없이 시작되고 있다. 한여름 늦게 피는 게으른 꽃들도 있고 봄의 전령처럼 이른 봄에 피었다 지는 서글픈 꽃 생도 있다. 이르면 이른 기대로 늦으면 오랜 기다림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Chicago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4월에도 눈이 내린다. 한국에서는 꽃이 만발하여 꽃구경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이곳 시카고에는 이제야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때론 오월에도 서리가 내려 막 피어난 꽃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움츠린 모든 것들이 허리를 세우는 봄날의 풍경은 겨우내 위축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너도 할 수 있어. 허리를 펴! 나를 따라 깊게 숨을 들이마셔야지. 꿈꾸지 않으면 그 꿈은 네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꿈과 현실은 가깝지도 않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아. 중요한 건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매일 눈을 뜨면 생각하고 걷고 그 꿈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꽃들과의 대화는 깊어만 간다. 나의 정원에 대한 꿈은 이 집에 이사 오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정원을 가꾸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 부지런히 움직여도 안 되고 너무 게으름을 피워도 안 된다는 진리 같지 않은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도 때가 있듯이 정원을 가꾸는 일에도 그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할 일을 급한 마음에 먼저 하면 후에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먼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면 그 시기를 놓치게 되어 하고 싶어도 손을 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 정원을 가꾸는 일조차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내면에 기쁨과 고요를 가꾸는 일이 정원의 묘목과 꽃밭을 가꾸는 일과 매우 닮아 있다. 며칠만 무관심하면 어디서 자라났는지 잡초가 쑥쑥 올라온다.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도 매일 내 안에 자라는 잡초를 뽑아주고 묘목을 심고 꽃씨를 뿌리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도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꾸는 작은 행복,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봄날 베개 기간 정원 바위고개 진달래
2025.06.02. 13:37
양지가 좋다 따뜻한 햇살이 좋다 머문 고요가 좋다 아득한 시간이 좋다 어디에서 가질 수 없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저 누리라고 펼쳐놓은 하늘이 보내준 선물 나뭇가지로 땅에 쓴다 나 말고 다른 이름을 그 이름 부르다 양지에 앉아 운다 ‘선물’을 선물하세요 커피잔이 버거우신가요. 두 손으로 가지런히 들어 마시는 모습. 예식을 치르듯이 향을 마시는군요. 커피는 향으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 향기가 가만가만 퍼져가요. 양지쪽을 바라 보고 있어요. 며칠 전 심은 LOBELIA가 짙은 보라색 꽃들을 잔뜩 피워놓았네요. MIDNIGHT BLUE라고도 불리는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몇 해 전 내게 선물처럼 다가왔지요. 제철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모종을 거의 얻다시피 가져와 매일 물을 주고 영양분을 뿌려주며 애지중지 키웠더니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모종은 상태가 좋아지고 원기를 회복했는지 한 아름의 새끼손가락만 한 꽃들을 피워주었지요. 선물이란 아마도 이런 것인가 봅니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는 이의 내리사랑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모종은 활짝 꽃을 피워 마음의 깊은 위로와 잔잔한 선물이 되어주었어요. 사람의 상처 난 몸과 마음도 다를 리 없겠지요. 누군가 사랑의 손길과 끊임없는 관심은 죽을 목숨도 살려내고 상한 마음도 회복되어 마음 밭에 꽃들을 피운다 해요. 올해는 싱싱한 LOBELIA 모종을 잔뜩 사다 덱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심어주었지요. 선물은 그런 것이에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양지의 느낌같이 따뜻하게 번져가는 그 무엇 같아요. 나는 지금도 양지가 좋아요. 양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요. 무언가를 만들어가게 하는 모티브를 만들어줘요. 그래요,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낯선 간이역에 내려질 거예요. 기차는 떠나고 쓸어내리는 생각에 당황하게 될는지도 몰라요. 철로를 따라 다시 걸어야 하나? 환승할 열차를 기다려야 하나? 많은 사유가 나에게 혼돈을 줄지 몰라요. 이때에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사람과 풍경과 이야기를 내것처럼, 내 시간처럼, 나의 정원처럼 가지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내 몫이 아닌 덤으로 사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거에요. 기적소리는 숲에 묻히고 이제 하늘이 선물처럼 뉘어져 내게로 와요. 3인 3색 시집 〈선물〉이 8일 전 한국의 각 서점에 뿌려졌다는 소식이 출판사 달아실로부터 전해왔어요. 기대하지도, 꿈꾸지도 않았던 시 에세이 부문 주간 베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이 교보문고로부터 전해왔고요. 기쁘다기보다 일 년을 고민하고 6개월을 땀 흘린 시간에 대한 보상 같은 따뜻한 선물이었어요. 다음 주간도 기대가 돼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아요. 이미 나에겐 큰 선물이었어요. 연이어 전해온 선물이 도착했네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가 한 번쯤 꿈꾸어볼 만한 현대시학에서의 원고 청탁계약서가 도착했어요. 아직 원고 마감일이 남아 있어 보내야 할 시를 고민해야겠어요. 선물이 봄비같이 내리고 안개 너머로 오네요.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바람처럼 지나가겠죠. 하지만 선물의 따뜻한 기억은 잊힐 리 없어요. 그간 수고하고 고생한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어요. 선물 고마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선물 신호철 lobelia 모종 이의 내리사랑 원고 청탁계약서
2025.05.19. 13:53
눈을 뜨니 새벽 4시. 아직 밖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데. SNS에선 반가운 소식들이 태평양을 건넌다. 마른 땅에 빗물이 고이듯 오랫동안 담겨 있던, 내 속에 메어 있어 주변을 떠나지 못했던, 내 것이 아닌 양 툭 맡겨져 있던 일들이 한꺼번에 풀어져 내린다. 2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직 검푸른 하늘을 본다. 커피를 내리고 눈을 비비고 앉아 〈선물〉이란 시화집과 마주하고 있다. 아직 손에 쥐어지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책장을 넘기며 시를 담고, 그림과 사진을 간간이 포개어가며 시작과 끝까지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시화집. 잔잔한 숨결과 마음의 따뜻한 시간들이, 다른 배경과 환경 속에서 자란 목소리들을 조율하여 만든 삼인 삼색의 시화집, 푸른 마음들에 인생의 희로애락의 갖은 양념을 버무려 국 끓이듯 오래 달구어낸 선물 같은 〈선물〉. 더운 심장 소리가 들리고, 느껴진다. 오랜 시간 함께 달려오면서 거침없이 가까워졌던 그 순간들이 사랑스럽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빈들에 들꽃이 소리 없이 피어나듯이. 작은 실개천이 모아져 조용히 강물을 이루고 마침내 너른 바다에서 만나게 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겨 있는 놓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시로 모아서.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사진들의 사유들을 모아서, 푸른 하늘이 붉은 노을로 바뀔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던 자연이 던지는 묵직한 물음에 대답으로 표현된 그림일기 같은 그림들을 모아서 시화집 〈선물〉이 태어나게 되었다. 내게는 세 번째 시집이 된 셈이다. 이 세 번째 시집 〈선물〉이 특별했던 이유는 개인 시집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세 명의 시인이 각자 다른 배경과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목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하모니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였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집을 준비하는 서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집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면서 놓지 않았던 한가지 “시 앞에서 부끄럽지 말아야지.” 느슨해지고 편해지려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조율하여 우리의 소리를 내고 싶었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과 결이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통하는 점이 많았다. 시를 대하는 태도나 앞으로 시인이 걸어가야 할 방향과 지향점이 같았다. 결국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매일 시인의 삶을 살아야 함에 겸허하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3인이 시카고와 서울의 가교를 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을 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물의 의미는 대가 없이 그냥 주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다. 그 대상의 폭도 더 가깝게 내가 나에게 잘 살았다고 주는 선물, 그리고 당신에게 잘 견뎌냈다고 주는 선물, 삶의 무게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들꽃 한 아름 건네주며 뜨겁게 안아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올 7월 중순 시카고 시 창작 아카데미를 위해 시카고에 오실 중얼거리는 양반(이창봉 교수, 시인)과, 날개 달린 별똥별(지향 디자이너, 시인)과, 구름 모자 쓴 황소(신호철 화가, 시인)의 3인 3색의 콜라보 시화집 〈선물〉. 사랑과 위로가 담긴 시집 〈선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보내는 사랑의 편지 〈선물〉. 말로 전하는 포옹, 귀로 전하는 〈선물〉. 선물 같은 〈선물〉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인 화가 중순 시카고 숨결과 마음
2025.05.12. 13:03
내 안에서 좁아지는 길을 본다 / 길이라는 원형의 두 축 / 사랑과 쉼이면 더 바랄 것 없다 / 바람이 실어다 주는 진심은 /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닦아도 닦아지지 않아서 돌담을 쌓고 길을 내는 오늘도 / 한 걸음 두 걸음 거친 숨 몰아쉰다 / 온기로 점점 채워지는 몸 / 소실점으로부터 점점 다가오는 길 속마음 모른 척 외면하여도 / 길의 반대편은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 마음에 짚이는 순서대로 양지에 심고 / 그 밑에 산처럼 누워보기로 한다 / 어디선가 까막까치 날아오르고, / 노란 생강나무 꽃 아련히 피어나는데 / 시간에 감겨 태엽처럼 구부러지는 길 빠르게 흐르는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 발끝으로 시간을 길게 펴 *적바림하고 / 긴 호흡으로 숲의 위까지 사랑해 본다 / 하루가 아니라 겁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걸음이 되고야 마는, /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새겨지고야 마는 / 내 안에 점점 좁아지는 *천둥지기 길, *적바림: 짧게 요지를 적음, *천둥지기: 외딴곳 살이 오르는 나무숲을 지나 낮게 드리운 풀섭을 끼고 걷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이 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얹어 더 선명하게 길을 다지며 간다. 온갖 초록들이 대지로부터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새삼 신기할 것도 없는 풍경이 오늘은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짐승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며 애태웠던, 맵새가 날개를 접고 머물렀을 상수리나무 깊은 가지 안에, 보금자리마저 감출 곳이 없이 드러나는 푸른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봄날의 숲정이길을, 하얀 날개를 펴고 접으며 가쁘게 오르는 흰나비의 길을, 봄을 마시며 걷는다. 일생을 걸어도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길. 그 길 위에서 생각한다. 내가 길을 선택하는 것인지 길이 걷고 있는 나를 손짓하는 것인지. 두 길이 만나 한 길이 되기도 하고 한 길이 갈라져 두 길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의 가는 길과 다르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길을 평가해서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 길이란 다만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 말자. 어쩌면 그 길이 바로 당신이 지금까지 찾고자 했던 것을 만나게 해줄 유일한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의 인생길을 꽃길만 걸으라 말할 수 있는가. 어찌 봄날같이 평탄하고 기쁜 날만 걸으라고 말하겠는가. 때로는 가시밭길을 걸을 때도 있고, 걷기 힘든 진흙탕 길을 걸으며 온몸이 더럽혀질 때도 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길 같지 않은 길을 걸으며 온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 않았던가. 길을 걷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서로의 길을 위해 떠나는 그를 위해 축복의 손을 들기도 한다. 나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그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지기도 한다.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 없음에도,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우리는 오늘도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이 휘어져 길의 끝을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도 결국 사람의 걸음이 되어야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되어야 하는 그 길 위에서 후회 없는 길을 걸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래서 나를 지으신 이의 부름에 뒤돌아보지 않는 후회 없는 발걸음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시인, 화가) 신호철천둥지기 신호철 시인 화가 이의 부름
2025.05.05. 13:03
잎도 꽃이다 뒤뜰에 막 피어난 연둣빛 잎들이 꽃같이 아름답다. 떠 오르는 아침 햇살에 이슬을 머금은 잎들이 반짝 빛을 발한다. 연두라고 꼭 잎이 되어야 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피어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색이든 꽃처럼 아름답다. 사실 연둣빛 꽃들도 보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매력이 있다. 잎도 꽃이라는 논리 앞에 부딪혀보자. 생각을 조금 바꾸면 어렵지 않게 수긍이 되는 이야기이다. 잠깐씩 뒤란이 궁금해지네 피어나는 잎의 행진을 잎은 꽃보다 아름다워 잎은 오래오래 견디다 노랑, 주홍, 빨강, 갈색의 꽃으로 다시 태어나지 잎으로 피었다 꽃으로 지고 한번 태어나 두 번 살고 가네 거짓말이 아냐, 사실이야 너와 나의 삶도 진행형이지 얼마나 더 붉게 타오를지 산도 모르고 바다도 모르지 얼마나 뜨겁게 살다 갈지 다만 지켜볼 일이야 잎도 한 계절 꽃처럼 산다 잠깐 피었다 지는 꽃보다 더 오래 곁에 머무를 수 있지 붉게 물들어 가슴에 스미어 집도 짓고 내 안에 살게 되지 ‘My diary’란 연작으로 오랫동안 그려왔던 작은 소품들이 두 번째 시화집 〈물소리 같았던 하루〉에 시와 함께 출판되리라곤 오랜 미국 생활을 통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잎도 꽃이다.”라는 나만의 독백이 현실이 된 셈이다. ‘칠십 편의 시 노래와 오십 편의 그림 편지를 가지고 돌아온 시카고의 시인’이란 소제목과 함께 소개되었던 표지에는 보라색 밤하늘 보름달이 떠 있는 노을 진 들녘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년의 머리 위로 꽃들이 자라고 있고 푸른 잎들이 그 꽃들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꽃은 달을 올려다보고 달은 꽃을 내려다보는데 소년의 시선은 앞만 바라보고 있다. 푸른 밤하늘이 스며든 푸른 눈가엔 기다림과 그리움을 이겨내려는 순연한 세계가 있다. 그 소년, 아니 청년이라고 하자. 그는 일주일에 삼일 Brown line의 전철을 Kimball 역에서 타고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SAIC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담아야 했다. 내려가는 시간 내내 운전하지 않는 자유로운 두 손과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고 몰입하는 사고가 스케치북에 묘사되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그림 편지는 바로 그곳에서 구상되었다. 새로운 곳, 낯설은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풍경은 그림일기의 소재로는 당연히 일품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청년이 어른이 되었다. 번득이는 예지도 순발력 있는 말투도 사라졌지만, 간간이 깨어난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자리에 눕는 마지막 한점을 이어 위로가 되어주던 시 노래 20편과 10장의 그림일기를 가지고 친구 2명과 책을 엮었다. 잎도 꽃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바람이 결실해 세 번째 시집이 오늘 세상에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듣게되었다. 낯선 거리를 걷다 우연히 미술 재료를 파는 Blick art supply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코걸이를 한 친절한 점원의 안내로 큰 탁자의 서랍장 안에서 도톰 하고 러프한 감촉을 지닌 큰 사이즈의 Watercolor paper를 접하게 되었다. 스케치북의 작은 사이즈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꼭 갖고 싶었던 22“x30”의 큰 사이즈였다. 종이 10장과 물감을 사가지고 나오면서 오래전 SAIC 교내 매점에서 종이를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결국 돈이 모자라 한 장만 사가지고 나오면서 느꼈던 쓸쓸함이, 그러면서도 그 종이에 그려질 기대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이 내게 느껴져 왔었다. 난 오늘 시간을 거슬러 그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마음껏 그려 보기로 하자. 풀도 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잃지 말고. 우리 앞에 모든 풀은 꽃으로 피어날 거니까. 그 피어난 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랑을 건네 줄거라 믿어. 어깨를 펴고 푸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너의 젊음과 나의 평안함으로 정지된 지구를 밀어 보는 거야.” 어쩌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잎도 꽃이다”를 실현시킬 또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잎이 꽃처럼 새록새록 피어나는 어느 봄날을 걸으며 나는 나에게 말하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카고 다운타운 보라색 밤하늘 오늘 시간
2025.04.28. 13:45
부활,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파아란 하늘을 닮은 푸르른 계절 다가서 보면 마르고 긴 가지마다 동그랗게 아픈 싹 움트고 그렇게 아픈 봄날을 사랑해 송송 맺히는 땀방울 더 외로워야 더 그리워야 너를 만날 수 있지 한밤을 지새고 두밤을 깨어 네게로 가는 길은 어둡고 추워 봄 앞에, 피어나는 봄 앞에 아픔의 시간 멈춰 서기를 오롯이 꽃망울 피어나기를 너와 나 사이 건너지 못한 부활의 봄, 부활의 십자가 이 봄 속에 마냥 향기롭기를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 새벽 기도를 다녀오는 길에 Higgins Park에 들려 싱그런 봄길을 걸었다. 잔잔한 안개비가 내리는 park에는 삼삼오오 벌써 힘찬 걸음들이 지나쳐간다. 푸른 싹들이 뾰족이 살아나는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깨어나는 내 몸의 세포들도 덩달아 깊은 호흡을 숨 쉰다. 송송 맺은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밤새 영근 이슬인지 봄의 싱그런 기운을 담아내고 있다.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가지마다 하얀 목을 길게 내민 목련이며, 노란 입을 뾰족이 내민 병아리 같은 개나리 덤불이며, 벌써 바닥에 엎드려 탐스런 얼굴을 내민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은 봄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Park 안쪽을 기울여 보다 연두로, 초록으로, 노랑으로, 핑크로 내가 좋아하는 보라로 피어나는 봄의 생명들을 만나게 된다. 지난 겨울 홀연히 사라졌던 색들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고 있는 이 기적 같은 현상을 나는 부활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될 것이라고, 가진 것을 내려놓으면 풍성히 얻겠고 내 안에 많은 것을 채우려 하면 가진 것마저 잃게 되리라는, 그래서 죄 없으신 이가 스스로 죄가 되어 오신, 골고다 언덕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 시켜주셨음이라’(롬5:8)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요1 4:11) 세상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동원해 그를 죽였다. 큰 바위로 무덤 입구를 막고 병사들로 하여금 그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 우리의 죄를 위해 스스로 죄가 되신 예수는 죽음이라는 가장 무서운 어둠의 권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로 사망을 깨트리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세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게 보였지만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이름 앞에는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순간이었다. 우리가 행여 절망과 어두움 속에 있다면 부활의 기쁜 소식을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벅찬 감격 안에 거하기를 소원한다. 우리의 남은 삶을 혼자 걷지 말자. 그분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시길 바란다. 우리 안에서도 부활의 능력은 마른 가지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물을 건널 때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물에 비친 풍경이다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나무가 보이고 숲이 있으면 숲이 보인다 달이 떠 있기도 하고 바람의 결이 새겨지기도 한다 한 줄의 결이 아프다 아프다는 말속엔 보고 싶다는 말도 있다 무수히 떠 있는 밤하늘 별빛 속에서 단 한 사람의 눈빛이 보고 싶다 무심한 세상에 빛으로 오는 한 사람 깜깜한 밤하늘에 당신의 얼굴을 그리고 싶다 사랑을 아는 시인이 되고 싶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아 셀 수 없는 색들이 살아나는데 “왜 시를 쓰냐?”고 물으면 “왜 사느냐”라고 되묻고 싶다 회색의 세상으로 등지려느냐고 세상은 싹을내고 꽃을 피우는데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예수 그리스도 밤하늘 별빛 park 안쪽
2025.04.21. 12:59
94번 highway를 타고 시카고로 내려가던 아침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 복잡한 러시아워에 5차선 도로에서였다. 차가 충돌한 후 에어백이 터지고 잠시 정적이 흐르고 흐릿한 차 속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간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살아 있다는 안도감보다는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며칠 후 차는 폐차되었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물리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받았다. 꾸준히 받은 덕인지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고 있다. 오늘은 치료를 받은 후 근처 공원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봄바람이 아직은 차지만 푸릇푸릇 올라오는 잔디, 느린 걸음으로 흐르는 시내, 막 잎사귀들을,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물오른 나무들이 싱그럽게 어깨를 감싸고 봄을 부르고 있다. 낮게 드리운 솜사탕 같은 구름이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끊이지 않게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정점을 찍어준다. 혹한 겨울을 지나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 당연하고도 신기한 풍경 속에 앉아 나도 신비로움 속으로 돌아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봄비가 내렸다. 메마른 나뭇가지마다 물기를 머금고 촉촉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창에 맺혀 있는 빗방울, 크기도 다르고 맺혀 있는 모양도 다르지만 하나 같이 하늘에서 빚어낸 물방울이다. 구름은 셀 수도 없는 수억 수만의 물방울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추운 날엔 눈으로 내리고 때론 온 대지를 하얀 세상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가랑비로 세상 모든 것들의 얼굴을 말끔히 씻어주기도 하고 때론 앞을 볼 수 없이 퍼부어대는 소낙비로 변하여 작은 시내를 굽이치는 강물로 불어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물방울이다. 나와 너의 걸음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의 걸음도 그렇다. 누군가의 길을 막기도 하고 막힌 길을 터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추측하고 예증으로 그 과정을 추론할 뿐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길을 걸을 뿐이다. 내 앞에 펼쳐진 오늘이라는 시간과 풍경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당연한 듯 인정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밖에. 어제를 접은 사람만이 오늘을 맞이할 수 있다. 신비롭고 기대로 가득 찬 또 하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차를 주차하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와서 나를 통과해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 잠든 자를 흔들어 깨우고 감은 눈을 뜨게 하고 정지된 걸음을 춤추게 한다 물방울 속에 하나씩 맺혀있는 풍경이여 방울져 맺힌 시간이여 그리운 이의 눈망울이여 소원을 빌고 하늘을 보았다 봄비가 살포시 내리고 있다 저 비가 들었을 소원은 사랑을 지키는 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 보면 보인다 가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날려 보내는 그리운 이의 가슴이여 그 안에 살고 있다 마음속에 사는 것이다 당신에게 온 것을 빼면 당신께 받은 걸 갈무리하면 세상은 텅 빈 것이 된다 버린 후 찾아드는 아픔 참아내는 사람이 나뿐이더냐 살다 보면 잠깐씩 길이 끊어질 때가 있다. 날아갈 때는 뒤 돌아보지 않는다는 새들의 길도 끊어질 때가 있다. 때로 기대를 저버린 두려움으로 끝이 없는 길을 힘들게 날았을까? 땅의 길도, 호수의 길도, 새들의 길도, 하늘의 길도 언젠가 끊어질 날이 있겠지. 눈을 뜨면 걸어야 하는 나의 길은 또한 어떨까?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때로 맥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던 날도 있었다. 그건 다만 밖으로부터 오는 어려움과 고통 때문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내 안에 여러 갈래 갈라진 길 때문일 것이다. 넓은 길을 버리고 굳이 좁은 길을 택해 걸어야 할 때도 있다. 평탄한 길 대신 가파른 경사길을 택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할 때도 있다. 모두가 힘겨운 걸음 때문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실패를 경험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진리. 다만 겨울을 참아내는 자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그 살을 에이는 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부딪쳐본 사람만이 따뜻하고 싱그러운 봄볕에 앉을 수 있다는. 생명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이 늘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벤치에 앉아 봄을 느끼며 들었던 생각은 봄의 구석구석에서 품어내는 생명의 에너지, 어느 하나에도 혹독한 겨울을 참아낸 후 가질 수 있었던 긴 호흡이었다는 사실. 유독 나에게만 닥쳐온 고통이 아니었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고통은 통과한 후에야만 가질 수 있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에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삶의 희열이라는 사실을….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혹한 겨울 빗방울 크기 이의 눈망울
2025.04.14. 13:01
햇빛 쨍한 날에 비가 내려요 잠시 생각이 지나쳤을 뿐인데 내 마음에 당신이 있네요 홀로 남아 지난 일 떠 올리면 무엇하겠어요 엎드리는 겨울 호수가 서글퍼요 물새가 낮게 물결 위를 날아가요 속삭이는 파도는 마음 빼앗는데 당신은 무엇 하나요 노을 지는데 석양이 내려앉은 붉은 보라 하늘 하나둘 부서지는 물살의 구애 며칠 밤낮으로 찬비로 내리고 호수는 맘껏 깊어만 가요 당신은 잘 지내죠 바람도 심한데 홀로 남아 지난날 떠올리면 무슨 소용 있나요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애처로워요 뱃길 비추는 등대의 따뜻한 불빛 당신 머물렀던 시간이 꿈같아요 물결도 그리움마냥 출렁이는데 당신은 잠들었나요 별 뜨는데 대학을 마치고 시카고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 묘지를 다녀왔다. 대전에서 온양을 지나 문이라는 작은 마을에 선산이 있었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늘 찾아갔던 반가운 곳이다. 큰아버지 병원이 대전역 맞은편에 있었고 그곳에서 차로 이동하면 멀지 않은 곳에 할아버지 소유의 포도 과수원이 있었다. 사촌 형들이 여러 명 계셨고 사촌 누나들도 여럿 있어서 늘 대전은 내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였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억엔 3시간이 넘어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에서 문이 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한적한 도로변에 버스는 나를 내려놓고 흙먼지를 날리며 멀어져 같다. 얕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얼마만큼이나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드문 보이는 농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밭일을 나가셨는지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언덕길 위로 낮게 드리운 구름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걷고 있던 나를 휩싸였던 적막. 거대한 유리병 속에 갇힌 듯한 내 모습에 가던 발길을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홀로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조심스레 다시 발걸음을 띄었지만,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묘한 감흥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에 두 배를 이곳 시카고에서 살고 있다. 세 번의 이사를 갔고 그때마다 짐을 싸며, 내 마음에 깊숙한 곳에 담겨져 있던 기억을 사진첩을 정리하듯 정리하곤 했다. 매해 봄날이 다가올 때쯤에는 늘 지난 겨울의 혹독한 이야기들마저 언제 그랬었나 내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봄날이 다가오곤 했다. 홀로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두려움에서 언제부터인가 그리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 어제는 종일 봄비가 내렸다. 틈새로 간간이 햇빛도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려도, 미시간 호수에 물새가 낮게 날아도, 서쪽 하늘에 붉은 보라 노을이 져도, 늘 마음 한구석을 자리 잡고 있는 그리움이라는 실체. 별이 뜨고, 달빛이 내려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볼 수 없기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당신을 나는 이제 향기라 부르겠다. 계절마다 다른 향기를 품고 아침을 여는 당신을 기억한다. 사람은 주저하고 때로 망설이기도 하지만 계절은 망설이지 않는다. 매번 처음 다가오는 날들인 양 너의 향기는 여기까지 깊숙이 실려 왔다. 새싹을 내밀며, 새 가지를 키우며, 꽃을 피운다. 어떤 상황이 향기처럼 몽롱하다. 음악이 들려오듯, 바람에 온기를 담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연두로, 초록으로 뒤란에 가득 향기를 쏟아 놓는다. 홀로 남은 것들에게 봄은 쓸쓸함이란 찻잔에 그리움의 차를 오래 끓여 만든 향기를 풍기며 어느새 내 안 가득히 피어나고 있다. 세상을 다 아우르는 봄의 향기로 오는 당신은. 봄의 향기 향기는 여기까지 실려 왔다 꽃이 피어나듯 강물이 흐르듯 바람이 불어오듯 음악이 흐르듯 너는 그렇게 오고 있다 걸어 잠근 겨울 뒤로 혹독한 것의 속으로부터 닫힌 문지방 사이로 너는 그렇게 가까이 왔다 향기는 오래 머물렀고 까닭도 없이 바람이 춤추고 놀란 가슴 쓸어내듯 봄비가 내렸다 잔디가 살아나고 언덕이 푸르게 다가오고 살아나는 기억 속 향기 함께 걷는 행간을 좁히며 어느새 내 안에 가득한 너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물결도 그리움 대전역 맞은편 미시간 호수
2025.04.07. 12:45
그래 그래야지 그리 살다 보면 슬픔도 견디는 아름드리나무 되겠지 외로움도 손 젓는 다소곳한 들꽃 되겠지 내 자리인 양 푸른 싹 보듬는 구름 한 점 되겠지 그래 그래야지 그리 살다 보면 오라 손짓하는 그대 앞에 서겠지 옷가지 매만지며 뒤돌아보겠지 굽이굽이 걸어온 길 손잡고 함께 걷는 꽃길 보이겠지 그래 그래야지 그리 살다 보면 문학 단체 카톡방엔 하루에도 상당한 양의 글들이 올라온다. 글 하나 하나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글들이다. 무엇 하나 가볍게 지나칠 글은 하나도 없지만 며칠 전 올라온 소식이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 삶과 죽음 사이로 흐르는 강은 그리 깊지 않을 거야. 그래서 누구도 어렵지 않게, 슬프지 않게 건너갈 수 있겠다고 생각할거야. 그러나 사실 그 문턱에 한발을 디디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쓸쓸함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 두려움 없이 강물을 건널 수 있겠단 생각. 죽음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내게 그런 절실한 상황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피부로 껴안고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일지 생각했다. 준비된 삶을 살고 있다면 눈을 떠 맞이하는 하루의 삶은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올 것이다. 입안이 헐어서 며칠을 고생했다. 혀가 상처에 닿아 분명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작은 상처가 이렇게 온 몸을 찌푸리게 할 줄 몰랐다. 이 상황만 지나면 무엇이든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안됐다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그 말에 시원하게 대답도 못 하고 씩 웃고 말었다. 당신도 한번 아파보라 하며 속으로 혼자 대답하고 말았다. 고작 혓바닥에 불거진 좁쌀만 한 상처 때문에.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부인께서 세상을 달리하셨다. 오랜 시간 동안 병원을 오가며 투병하셨기에 마음이 더 더욱 아프다. 아직도 앞길이 길게 펼쳐져 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다. 아픔을 당한 가족들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극정성으로 병상의 아내를 간호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늘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가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투명할까? 서로에게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이 이리도 덤덤하고 아름다울지 생각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바람일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처지에 놓여있든, 가난하든 혹 부유하든, 건강하든 혹 병상에 누워있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언덕이 되어준다면 긴 삶이든, 짧은 삶이든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죽음은 언제일지 몰라도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내 마음가짐의 문제일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부끄러워 한참 만에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입안에 난 작은 상처로 일주일 내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창피스러웠는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내게 남겨진 소중한 날들을 따뜻하게 안아 내 체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해주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나는 진정 죽음을 준비하고 살고 있는가?라고. 잎눈에 맺힌 이슬방울 속에도 본향으로 돌아가는 숨 가쁜 걸음 위에도 막 피어난 목련의 눈부심 속에도 당신은 그곳에 있네요 노을 속 빛의 섞임같이 어우러져 살고 싶어요 죽음이 나를 건드려도 오늘 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당신은 용기를 주네요 하루가 지는 고요 속에 내 한 몸 누울 수 있을까요 덤덤히 맞아들여야 할 죽음이라는 유혹마저 소중히 꽃피우고 싶어요 내일 깨어날 기대는 하지 않아요 그저 함께할 수 있다면 두려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손길이 나를 흔들고 있어요 깨어나 봄날 새벽을 맞이해야 하겠지요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오늘 가야 할 길 떠나야겠어요 한껏 사랑하지 못한 부끄러운 봇짐 챙겨 새싹 보리 나가야겠어요 저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인생의 날들이 보여요 봄날처럼 아름다워요 그날이 오면 이곳에 머물고 싶어요 당신 품에 안겨서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상처 때문 봄날 새벽 시인 화가
2025.03.31. 13:14
창가에 앉아 뒤란을 바라보고 있어요. 초록빛을 띠는 잔디가 봄을 성큼 데리고 온 느낌이어요. 나뭇가지 끝에는 도톰한 잎눈이 맺혀 있어 언제라도 연둣빛 잎사귀를 내밀 준비를 마친 듯해요. 릴리와 부추는 손가락만큼 씩이나 벌써 싹을 내밀었어요. 테크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봄바람이 얼굴을 스쳐요. 이만큼 가까워진 봄의 생기가 뜰 안 가득 퍼져와요. 노랗게 꽃 피울 달맞이 꽃무덤이 보이는 듯해요. 하얀 꽃잎을 기지개 켜듯 피워낼 데이지의 가느다란 줄기가 서로에게 기대며 바람에 흔들리는 꿈을 꾸어요. 뭉쳐 있는 낙엽을 줍고, 흙을 고르며 봄날 아침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 기다림의 끝에서 꽃신 신고 오는 당신을 만나요. 당신 손길 같은 봄날 1 아직 멈추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 봄 / 끝이 있으면 시작이 찾아옴을 알려준 / 기억이라는 선물을 펼쳐 보여준 봄 / 작은 관심에 큰 기쁨으로 되돌려준 / 조용한 침묵의 기다림을 알게 해준 / 성실하게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준 /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도,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음이 당연함을 알게 해준 봄 / 나를 상실할 수 있었음에도 대지의 몸으로 다시 뜨겁게 달궈준 / 신비한 생명의 끈질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 / 창조주의 손길이 엄마의 손길과 닮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 잃어버릴 뻔한 색깔들을 되찾게 해준 / 흉내와 진심을, 죽음과 삶을, 구별해 보여준 / 방황과 포기의 날에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해준 봄 / 울타리를 열고 다른 세상의 문을 들여다보게 해준 / 느낌과 감정에 자유의 언어를 부여해 준 / 우주 속 소우주가 펼쳐지는 뒤란의 / 그리운 사람의 마음을 마구 훔쳐 가는 / “뭐야 이거?” , “이게 뭐지?” 하면서 빠져드는 봄 / 온통 당신 눈물로 맺힌 봄, … 봄 2 엄마 부르면 먼 길 가셨는데 눈 녹듯이 마음속에 피어나 종일 가슴에 삽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엄마 부르면 가슴부터 웁니다 봄이 다소곳이 기대와 두 눈에 눈물 고입니다 엄마 목소리 들려 동구 밖으로 나가보니 출렁이는 백열등 아래 엄마 손이 약손이다 아픈 곳 쓸어주는 봄바람 엄마 부르면 먼 길 가셨는데 봄 오듯이 뒤란 가득 피어나 평생 가슴에 삽니다 3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 살아가는 반경은 작고 심플하게 / 포용과 사랑의 온도는 더 높고, 뜨겁고, 빛나게 / 감성은 꽃을 피우듯 풍요롭지만 절제되게 / 삶의 무게는 날아 오르는 새의 무게만큼 가벼웁게 / 내 마음을 물들인 단풍처럼 더 붉게 타오르면서 / 촛불같이 자신을 태워며 사라져도 환하게 비추면서 / 땀을 비 오듯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 끝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사는 것처럼 /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날에도 슬퍼하지 말고 /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허둥대지 말고 / 이슬로 깨어나는 당신의 아침을 맞으면서 / 연두의 입눈을이 터지는 설레임으로 4 나에게 오셔요 반짝이며 날 이끌어 주셔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사라질 어둠을 나는 알지요 이제 먼동이 트면 당신은 원래의 모습으로 녹아질 테니 오시려거든 빛으로 오셔요 당신을 쳐다볼 수 없지만 천지에 가득한 봄은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네요 소리 없이 다가와 바람 속에서도 나를 흔드는 하늘 가득 당신이어요 내 안에 살게 가만두셔요 지난겨울 눈꽃처럼 흐드러지게 필 시간이어요 한겨울 죽은 듯 숨죽여 봄을 피운 당신 아닌가요 삶의 흔적, 기대의 자리마다 흐른 시간이 거름 되어 가지마다 터질 듯 피어날 봄 내 안에 살게 가만두셔요 흔들릴수록 아픔은 희망으로 움 틀 터이니 가만히 바라만 보셔요 일제히 눈꽃처럼 피어날 봄날 기적앞에 당신이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엄마 목소리 봄날 기적앞 흔적 기대
2025.03.25.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