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속엔 한 톨의 미움도 없었을까 / 미움 속엔 한 조각의 사랑도 없었을까 /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붙어있다는 / 동전의 양면같이 떨어질 수 없다는 / 사랑 속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고 / 미움 속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는 / 한 때 한 뿌리에서 부비며 자라났기에 // 매미가 울어대는 나무 밑에 앉아 / 행여 짝짓기 소리라든가 / 서러워 마음을 찢는 소릴지라도 / 그 한 생은 얼마나 애절하고 잔혹한가 / 남겨 두고 온 호수가 눈앞에 출렁인다 / 억겁을 출렁여도 채울 수 없는 달그림자 / 물이 차오른다 온몸으로 견디어 내는 / 호수는 깊어지고 하얗게 시간을 토해낸다 // 사랑이 울고 미움이 웃는다거나 / 미움이 울고 사랑이 마침내 웃었더라는 모두 / 밀려왔다 사라져 부서지는 파도인 것을 /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피고 지는 들꽃인 것을 / 야누스의 두 얼굴 같은 우리 슬픈 인생인 것을 / 눈에 보인다. 계절이 지나는 손짓을 / 귀에 들린다 바람에 눕는 들풀의 속삭임을 /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더 아프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 너무 급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릇된 결정으로 인해 말을 함부로 내뱉지는 않았는가? 진의가 어떠한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따라 깊은 생각 없이 결정하지는 않았는가? 엎지른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듯이 내 입으로 뱉어낸 말도 되돌릴 수 없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서 조심스레 말해야 한다. 감정이 먼저 앞서다 보면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서로 간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견해가 비슷한 방향을 가질 때에는 더 빠른 시간에 서로의 공감대를 경험하며 서로를 깊이 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말 한마디, 가벼운 행동으로 그동안의 신뢰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침묵이 금일 수도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은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한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르거나 이중적인 면모를 보일 때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야누스는 출입문의 수호신으로, 출입문을 지키는데 사각지대가 없도록 머리의 앞뒤로 얼굴이 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본래는 수호신이라는 긍정적인 특성을 가진 신이었지만, 중세를 거쳐오면서 두 얼굴을 가졌기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야누스의 얼굴 같다고 말한다. 현재는 이중적인 모습 혹은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이중 인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이나 단체,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야누스의 두 얼굴, 현대인의 얼굴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도 양면성을 보여주는 두 가지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활기차고 사교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자포할 수도 있다. 맹목적인 감정의 쏠림은 위험하다. ‘남의 눈에 티끌은 바로 알아차리면서 제 눈의 대들보는 알지 못한다는,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성경의 말씀도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비일비재한 일이어서 분명하게 못 박아 기록해 두고 있다.〉〉〉 털들이 바늘같이 꼿꼿한 고슴도치일지라도 제 새끼의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고 여긴다는 건데, 사랑하되 그의 단점을 알고 있어야 하며, 밉더라도 그의 좋은 점을 알아야 한다. 옳고 그름도, 아름다움과 추함도, 선과 악도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으로 장점과 아름다움과 선함만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랑 속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고, 미움 속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야누스 조각 사랑 얼굴 현대인 그름도 아름다움
2025.09.29. 13:58
부질없이 하루가 가네 / 어디쯤엔가 멈춰 설 초침처럼 / 길 아닌 길을 만들며 가지 / 안간힘의 별빛은 견디어내다 /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네 // 어찌할지 모르는 발걸음 / 다정한 풍경과 감싸오는 바람 / 왼쪽 가슴을 누르며 가네 / 파도가 밀려오고 모래는 쓸리고 / 말 못 한 수천 마디 대답이 / 밤하늘 별처럼 가슴에 박혀오네 // 바다가 보고 싶어 / 밀려오는 파도가 벌써 그리워지네 / 모래 위 물새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 양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숨결 / 눈을 감고 허우적대는 나는 어느 말로도 부끄러워 뜬 밤을 새우네 // 눈을 감으면 어느새 앞서 보이고 / 바다로 가는 언덕길은 저만치 서 있네 / 끝없이 펼쳐질 바다, 파도 소리, 짠 내음 / 길섶에 흔들리는 갈대를 가르며 가네 / 옆으로 누운 베개 밑으로 물살이 잠겨오네 썰물처럼 깊은 바닷속에 잠기네 무엇엔가 몰두하려고 애를 쓰네. 괜스레 호미를 들고 구석에 흙을 고르고 있네. 가을이 나뭇가지에 앉아 부질없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네. 주말엔 행사도 있고 작은 모임도 있지만 내키지 않아 하늘에 떠가는 구름만 보내. 있어야 할 사람이 그곳에 없을 때, 보여야 할 풍경이 희미해질 때,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길 아닌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당혹감이 엄습해 오네. 모든 일들이 부질없어 손에서 떠나가네. 내가 있는 곳에서 당신의 곳까지, 그리고 내가 보았던 굳이 기쁨이라 표현할 수 있는 비밀의 정원에서부터 모래언덕으로 이어지는 바다로 가는 둔덕까지, 가꾸지 않아도 때와 시간을 맞춰 피어나는 들꽃들의 청초한 모습이, 보내주었던 견딜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마음을 채우고 있네. 나비도 지쳐 날지 못해 거친 숨 내쉴 때 작은 들꽃처럼 나에게 왔지. 첫 발자국부터 마지막 걸음의 거리를 남겨두고라도 길을 잃은 적이 없네. 머릿속 각인된 길을 실제의 희미한 길보다 더 당당히 걸었지. 그곳을 걷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 했지. 들꽃 하나 지면 다른 꽃 하나 피어났지. 설레임으로 시작된 그대와의 만남 하늘가로 뻗은 가지 끝 가을이 가까이 와 묻었네 그대를 그리워함으로 산이 되어 숲을 품고 굽은 언덕의 긴 등성을 사랑하게 되었지 쓸어주고 어루만지는 바람으로 살기 위해 흐르는 별자리 그리다 길을 찾기도 하였네 고추잠자리 몸을 세워 바람에 날개를 맡기듯 내 한 몸 붉게 태워도 좋으리 눈가에 물들어 오는 가을로 살아도 좋으리 물방울 출렁이네 이리저리 부서져도 소멸되지 않는 기억 그대 세상에 단 한 사람 썰물처럼 바라만 보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들꽃 하나 왼쪽 가슴 시인 화가
2025.09.15. 12:40
소원을 빌고 하늘을 보네 / 잔비가 내리더니 여름은 물러가고 / 낙서투성이 일기장 같은 계절이 오네 / 어디쯤인가 돌아서고 또 멈추어야 할 / 시작이 없으면 과정도 결과도 무의미하다는 / 사람을 지키는 일은 손의 일이기도 하여 / 두 손 모아 오라 반가운 손짓을 보내네 / 두 발로 걸을 때까지 // 강물의 흐름 위에 오늘을 보내고 있지 / 당신의 무릎을 찾아다니다 지치고 / 마지막 불빛 꺼지고 돌아갈 길 찾지 못할 때 / 길의 끝에서 사랑은 더 깊어 진다는 걸 / 어둠이 지고서야 알게 되었네 // 어느 날 몸의 기능이 멈추고 / 모두가 흙으로 돌아갈 어디쯤에서 / 파도가 뱉어낸 모래톱을 걸으며 알게 되었네 / 두 손을 모아 애타게 호수를 부르는 이유를 / 모든 원인과 이유가 한 곳으로 모아질 때 / 알게 되었네. 당신이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음을 이른 아침 얇은 패딩을 걸치고 뒤란에 나왔다. 바람이 차다. 한 무리의 꽃이 지면 또 다른 무리의 꽃이 핀다. 꽃들은 바쁘다. 지난 한 달 동안 일 년만큼의 일들이 있었다. 시 창작 아카데미를 준비하며 많은 분을 만났고, 지향 이창봉 신호철 시인의 삼인 삼색 시집 〈선물〉의 시작과 북 콘서트가 있었던 날까지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 열고 싶어도 열리지 않는 것이 마음의 문이다. 창작이란 개별적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쉽게 서로의 글을 마주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만남은 조심스럽고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랜 삶 속에서 마주친 적 없는 분들이었기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스며드는 환희에 우리는 활짝 웃었다. 뒤란의 꽃들을 살피다가 저들의 이름 한자에 꽃 한 송이를 떠올려 본다. 꽃들의 모양도, 색깔도 다르듯이 시 한 편마다의 느낌과 감동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양지를 좋아하는 꽃들도 있지만 양지와 음지가 적당히 교차하는 곳을 선호하는 꽃들도 있다. 꽃의 향기도 달라 근거리에서도 꽃의 위치를 알아차릴 만큼 향이 짙기도 하지만 향이 거의 없는 꽃도 있다. 잔뜩 엎드린 앙증맞은 채송화가 있는가 하면 가을 찬 바람이 불 때쯤 산들산들 피어나는 아네모네도 있다. 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씨가 떨어져 살아나는 다소곳한 과꽃도 있다. 겹겹의 꽃들이 백 일 동안 피어있다는 백일홍의 풍성한 모습도 아름답다. 보라색 물감을 찍어낸 듯한 붓꽃도, 노랗다 못해 빛이 나는 달맞이꽃도 있다. 장미의 화려한 자태도,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코스모스도 있다. 달뜨면 나는 창가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고요를 모아 당신 뜨락에 펼쳐 놓고 잠들고 싶다 손을 모아본다. 시를 대하는 태도는 진정과 애정이다. 꽃이 그렇고 나무가 그렇고 또한 사람이 그렇다. 뿌리의 진정으로 준비해 애착과 사랑으로 자라고 피운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쓰셨나요?”의 물음에 “무엇이 느껴지나요?”로 반문해 보면 어떨까. 깊은 대화는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보이는 무엇을 넘어 보이지 않는 내면을 서로에게 묻고 생각을 소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창작의 자유요 기쁨이다. 창작은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작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막을 수 없는 열정이다. 자신의 표현이고 자신의 결정이어야 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창작 아카데미 가을 코스모스 애착과 사랑
2025.09.08. 14:18
문을 열자 바람이 불었다 / 우리는 그 문을 바람의 문이라 불렀다 / 바람의 문은 여느 문과 달리 손잡이가 없다 / 어느 누구도 손잡이가 없음을 불평하지 않았다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어왔다 / 바람은 따뜻했지만 견고했다 / 문은 한 방향으로 열려 있었고 / 바람은 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 햇살에 과일이 제맛을 내고 / 휘어진 가지마다 /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어 낼 때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었다 /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익어갈 / 과일 같은 시들이 매달려 온다 // 보이지 않는 그의 발이 / 바람의 문을 연다 여름 내내 햇볕은 따가웠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는 밤새 세차게 내렸고, 아침이 되면 멈추곤 하였다. 그 사이에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언어들을 깊은 내면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바람이 불어오듯 열린 방 안 가득 열기로 채워졌다. 서로에게 놀라워하였고, 서로를 향하여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잃어버린 나의 내면을 다시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한 번도 쓰지 못한 시를 여러 편씩 쓰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로 본인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한 번도 꿈꾸어 보지 못했던 시 창작이 가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갈 즈음 우리는 짧은 시간에 시 한 편을 꽃 피우듯 피워내기도 하였다. 지난 한 달간 제2회 시카고 시 창작 아카데미가 이창봉 교수(중앙대 대학원)의 지도하에 37명의 수강생이 모여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밭을 일구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난해 여름 시 창작 캠프에 모인 인원만큼만 모이면 성공이라 생각했던 염려는 우리의 기우였다. 딱 두 배로 모였다. 어렵게 시작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서로를 가르치기보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화합과 사랑으로 서로 나누며 지낸 한 달이 살같이 지나갔다. 시카고 문인협회와 예지 문학회 회원들을 제외하고도 반이 넘는 새로운 인원들이 등록을 했다. 시카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문학도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생각되었다. 시작반, 입문반, 창작반 이렇게 세 반을 통해 각자 원하는 반을 택해 스스로 소속 멤버가 되었다. 어떤 이는 창작반을 피해 입문반을 택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여러 모양으로 반을 심사숙고한 결과 조화롭게 반 편성이 되었다. 각 반은 주중에 따로 모임을 가졌다. 각반은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개별 모임을 통하여 시를 발표하고 시를 나누고 각자 살아온 삶을 나누었다. 1박2일의 시 캠프가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 리트릿 센터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밤하늘 별을 노래하고 새벽의 일출을 보며 미시간 호수를 마음에 담기도 하였다. 시 창작 아카데미의 말미엔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 그리고 신호철 저자 세 명의 삼인 삼색 시집 〈선물〉의 북 콘서트가 한인 문화원 비스코 홀에서 열렸다. 홀을 가득 메운 시를 사랑하는 시카고 교민들은 함께 모여 시가 있는 축제의 한마당을 이루어내었다. 이 열기는 조용하게 시카고를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줄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피어날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들이 가을의 문턱에서 손짓하고 있다. 붉게 익어갈 시 한 편, 한 편이 주렁주렁 매달릴 가을 속으로 조심스런 걸음을 옮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신호철 저자 시작반 입문반 시카고 문인협회
2025.08.25. 13:35
바람 불면 풀잎도 눕겠지요 /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 쑥부쟁이 하얀 꽃 밀랍 되어 /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 꺼져가는 당신을 안았지요 / 기댄 얼굴이 깃털 같아서 / 들썩이는 심장 소리에 날아갈까 숨도 쉬지 못했어요 // 마를 게 없는 남루한 등뼈를 손바닥에 각인시키며 / 빈 껍질로 지나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지요 / 마른 가지의 잎이 덧없음을 알았을까요 // 한 가닥 감정이 붉어져 / 귓가에 흰 눈이 소복하게 앉았던 날 / 힘없는 눈빛이 다녀오라는 말 대신 / 진통의 시간을 침묵으로 쏟으셨지요 / 천근의 눈꺼풀을 감지 못하셨지요 / 열 갈래 흐트러진 소음으로 감아 내렸지요 // 의연하지 못한 슬픔이 연극처럼 막을 내리고 / 철없던 시절은 돌아올 수 없는 계절을 보내고 /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 왔다가 /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 그 아득함으로 그때가 되면 / 나도 바람 따라가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마지막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와서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없이 늦게 와도 먼저 떠날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모질게 긴 세월을 이 땅에 뿌리 내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같이 우리를 지으신 이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조차도 예외 없이 돌아가는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선물이라는 책을 만든 저자 세 명이 Ross Hill 묘지를 찾아갑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갑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손 잡음을 경험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또 당신은 나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나눕니다. 우리는 한낮의 오후에 세 그루 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묘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침묵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제 어디서인가 맞닿은 풍경이 우리의 머릿속을 영화의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질문 앞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한낮은 더위도 우리의 발걸음을 떼어 놓지 못합니다. 한동안 먼저 가신 당신들과 아직 살아서 종착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습니다. 마치 작은 간이역을 통과하는 열차 속 사람들처럼 다음 역을 기대하며 높은 등받이에 몸을 기댑니다. 차창 밖으로 내려놓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는 태양을 한동안 붙들어 놉니다.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우리는 돌아옵니다. 끝도 없이 우리는 작은 묘비에 써있는 이름들을 불러주며 지나갑니다. 어딘가에 세워질 내 묘비 하나씩을 떠 올리며 묘지와 세워질 묘지의 긴 강을 건너갑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그 길을 갑니다.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찬란한 윤슬의 반짝임도 멀어져 갑니다. 겨울의 찬바람도 윙윙 귓가를 지나갑니다. 슬픔도 사라지고, 웃음도 저 언덕을 넘어 숲으로 감추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당신을 보냈습니다.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왔다가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아득한 그때가 되면 우리 모두도 바람 따라간다는 걸. 연극은 막을 내리고 텅 빈 무대엔 남겨진 말들이 살아나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묘비 하나씩 심장 소리 시인 화가
2025.08.18. 14:46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습니다 / 던져진 말이 귓속에 맴돌았어요 // 말의 처음과 나중을 이은 문장이 / 내 안을 들여다 볼 때면 / 나는 환해진 내 속을 드러내고 / 밤의 별빛을 따라 흐르는 당신을 / 노래하겠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 어제는 밤의 너른 품에 안겨 / 하늘에 펼친 어둠의 휘장을 열어 주었어요 / 당신의 머리로부터 나의 가슴으로 이어진 / 말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진 / 매듭을 단단히 매어 주었습니다 // 별빛을 모아 노래를 몇 곡 지었고 / 밤하늘에 노래 몇 곡을 묻어주기도 하였습니다 / 별들의 긴 목을 껴안고 당신의 창가로 내려와 / 상기된 양 볼로 새벽을 맞았습니다 // 말을 삼키며 기다리는 동안 / 아침이 당신의 창가에 햇살로 스며왔습니다 / 어제는 밤새 집을 짓느라 잠들지 못했습니다 행복을 나에게서만 찾다보면 어쩌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도 끝내 행복을 찿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자. 눈을 내게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돌려보자. 나의 행복이 아닌 내 이웃의 행복을 찾아보기로 하자. 놀랍게도 쉽게 저들의 웃음을, 저들의 활기찬 하루를,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행복에 관한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심리학 강의 시간에 교수는 학생들에게 풍선 속에 자기 이름을 써서 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워 모두 천장으로 날려 보내고 자기의 이름이 들어 있는 풍선을 5분 동안 찾아보라고 하였다. 5분이 흘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 주도록 하였다. 순식간에 학생들은 쉽게 풍선 하나씩을 가졌고 풍선 속에 이름을 보고 풍선을 전해주었다. 풍선을 찾아 전해준 사람이나 풍선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은 밟고 행복해 보였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만 장님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라고 말하였다.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했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이 어렵다는 말이고, 편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설잠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두움에서 밝은 빛 가운데로 발걸음을 뗄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먼 곳에서, 현실성이 없는 큰 성공이나 특별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안부를 건네는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에, 힘든 고난의 시간에 내밀어 주는 편안한 손 잡음에 우리의 어깨는 펴지고 입가에 웃음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같이 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 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라. 그러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만 장님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라고 말하였다.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했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이 어렵다는 말이고, 편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설잠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두움에서 밝은 빛 가운데로 발걸음을 뗄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먼 곳에서, 현실성이 없는 큰 성공이나 특별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안부를 건네는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에, 힘든 고난의 시간에 내밀어 주는 편안한 손 잡음에 우리의 어깨는 펴지고 입가에 웃음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같이 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 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라. 그러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행복은 바로 내 손안의 작은 꽃밭을 가꾸는 일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풍선 하나씩 자기 풍선 자기 이름
2025.08.11. 14:58
나의 하루는 / 색으로 피어납니다 // 어제는 파란색 / 푸른 하늘 / 연 꼬리 길게 늘어뜨린 / 흰 바람이었습니다 / 밤새 별들이 울다 간 / 꽃잎 흩어진 아침 / 전혀 회색입니다 / 오늘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 침묵입니다 / 혹 내일은 / 색깔을 되찾고 싶습니다만 / 초록으로 돌아갈 겁니다 / 숨이 트이는 곳 / 꽃봉오리 터지는 곳에 / 귀 기울이겠습니다 // 나의 하루는 / 색으로 칠해집니다 // 빌딩의 숲속에서 / 꺼지지 못하는 / 당신의 창을 찾아 / 초록이 자랄 수 있게 / 숲의 향기 스밀 수 있게 / 잠 못 이루는 창 / 닦아드리겠습니다 / 칠하고 덧칠함으로 / 껴지고 꺼짐을 반복하면서 / 당신과의 거리 좁혀가면서 /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 붉은 노을로 지겠습니다 / 나를 다 드려도 / 샘이 되지 않는 당신 앞에 / 뜨겁게 물들어 가겠습니다 하루가 색으로 피어난다? 색으로 칠해진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러다 혼자 피식 웃었어요. 허리를 구부렸다가 펄쩍 뛰어보기도 하였죠. 혹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혀를 차며 바라보았겠죠.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참 안됐다고요. 그럼에도 그건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눈에 비친 어떤 풍경도 색을 띠지 않는 사물과 사람을 담고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될 수 있지요. 세상의 모든 화가의 눈엔 평범한 사람들 눈에 스치는, 사라지는 색 그 이상의 강렬한 색들이 보이겠지요. 그저 평면적인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에 감정이 섞여 버무려진 움직이는, 살아나는 색들이 쿵 하고 가슴에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을 색으로 칠하고 이야기를 그리고 그 안에 사유를 담으니, 말이에요.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내 안엔 온통 일, 일, 일의 중독이 돼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하루가 다 가도록 고개 들어 그 아름다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빈들 가득히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의 유희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야생화의 신비로움도, 쉼도 없이 밀려오는 광활한 미시간 호수의 파도도 그것을 자라게 하신 그분 손끝의 사랑 때문이지요. 우리 이제 그 손끝을 따라 하루를 시작해요. 우린 썩어갈 것들을 쫓아 발끝만 바라보고 많은 날을 살았어요. 우리에게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이제 하늘을 보며 살아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무에 새순이 언제 피었는지, 그 색이 연두였는지 핑크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요.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잎들이 수북이 가지를 덮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고개 들어 나무를 바라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적이 없으니까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나요. 얼마나 작은 꽃봉오리가 꽃잎을 서로 붙들고 땀 흘리며 견디어 냈는지 기억하시나요? 스쳐 간 기억조차 아물거리니 생각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오늘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의 색들을 기억하기로 해요. 그 색들 앞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따뜻한 언어로 담아주면 어떨까요. 적어도 창조주의 손길을 다만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며 사는 것이 그분에 대한 바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시를 쓴다고 이름 석 자에 시인이란 호칭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어요. 아니라고 나는 아직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요. 뒤돌아 오면서 나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은 시인입니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순수와 열정을 회복해야겠어요. 하루가 어둠의 색으로부터 찬란한 빛의 색으로 피어나는 언덕에 다시 서겠어요. 당신의 손끝이 잠들은 씨앗들을 깨운 빈들의 기적 한가운데서, 당신의 긴 호흡을 느끼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인 화가 미시간 호수 그분 손끝
2025.08.04. 14:04
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게 되는 자리가 있지 누군가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오네 잎사귀 위 흐르는 푸른 핏줄 따라 가지마다 꾹꾹 찍어 쓴 편지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남겨두고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호흡은 거칠었지만 향기로와서 저녁 햇살 되어 녹아져 오네 벽 하나 사이 아픈 소리가 되어 오네 손을 스치는 들풀의 이야기 소리내 우는 강 너의 자리에 서면 들리는 노래 물방울처럼 모아지는 그 깊은 울음을 누가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누구나 누운자리가 하나 있지 서로를 부르다 사라지는 자리가 있지 비껴간 그림자는 허공에 달려 저녁이 되면 로즈힐 묘지로 오네 마음 한 구석 걸친 노을마져 떠나간 누이의 뒷 모습 같아서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든 Ross Hill 묘지에는 정겨운 묘비 세걔가 있다. 시카고에서 10년 전 이곳에 먼져 누우신 어머니의 작은 묘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한국 선산에서 이장해온 아버지의 묘가 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묘는 큰 누이의 묘이다. 누이의 묘는 가장 늦게 한국의 교회묘지에서 이장되어 이곳에 안치되었다. 세개의 작은 묘비가 나란이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한낮의 햇살에 일광욕을 하고 어쩌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옆자리의 정다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으리라. 배고픔도 잊은채 바람에 눕는 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꽃봉오리의 개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들릴 때마다 마음이 참 좋다. 한꺼번에 보고싶은 부모님과 큰누이까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큰누이 묘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누이 얼굴이 바람결에 정겹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꾸 쓰러지셨다. 그때 누이는 고등학생 3학년이었지만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셨다. 약한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아래로 여동생 셋과 남동생 하나를 위해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중압감에 잠못 이루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중 2대 국회 도서관장으로 발탁되셨다. 청렴결백 하셨던 성품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을 사과궤짝 밑바닥에 넣어 청탁 온 사람을 꾸짖어 돌려보냈다 하셨다. 물질에 관심이 없으셨기에 모아둔 돈도 없었고 그저 집 한채 남겨 놓으신 게 다였다. 큰누이는 대전역전에 큰 병원을 운영하시는 큰아버지에게 대학 진학을 상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는 냉냉한 반응이었다. 누이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되었다. 큰 용기를 내어 찿아간 마지막 희망이 좌절되었다. 누이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없었다. 누이는 힘든 세상에 홀로 내몰려 끝내 피지못하고 스스로 꺾여진 꽃봉오리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이를 먹어 그 때 누이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누이의 소매를 붙잡고서라도 막았을 것이라고. 대전 큰 아버지를 찿아가 눈물로 호소했을 것이라고. 이제 환하게 피어날 나이에 아버지의 부재로 한 가정의 무거운 짐을 안고 힘든 나날을 보냈으리라. 어느날 짧은 편지 한통을 남기고 스스로 꽃대를 꺾어버리고 말았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얼마나 쓸쓸했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초등학생이 아닌 노년이 되어 스무살 누이를 마주하고 있다. 누이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바람에 풀잎을 흔들었다.누이는 아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처진 어깨를 따뜻이 안아줄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누이의 묘위에 걸친 노을이 천사의 큰 날개가 되어 내게로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로즈힐 로즈힐 묘지 아버지 이야기 누이 얼굴
2025.07.28. 14:16
지쳐 잠드는 것이고 / 흔들려 깨어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 단어를 주워 짜맞추는 게 아니라 / 가슴을 치는 일을 받아 적는 일이다 / 깨달음을 위해 애쓰기보다 / 길을 걷다 눈에 띈 들꽃을 /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다 / /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 쓰여지는 것이다 / 지나온 걸음 속에서 /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 그저 흥얼거리는 것이다 / 사랑과 그리움, 절망을 / 아파하고 안아주는 일이고 / 널 보내지 못한 나를 꾸짖는 일이다 / 세상을 향한 날 선 독백마저 오늘 / 부딪치며 넘어지며 살아가는 / 나에게 보내는 편지요 / 당신께 드리는 용서인 것이다 나는 침대 모퉁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아 한 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다. 누가 나를 누르거나 밀쳐 내는 것이 아닌데 나는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서 힘들게 잠을 청하고 있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비몽사몽 간에 한쪽 어깨가 저려 와 몸을 뒤척이다 결국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 소리를 듣는 순간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다시 침대에 누웠다.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고 있다. 잠깐 일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절박한 상황을 매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천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긴 시간을 짧게, 또 짧은 시간을 길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견디어낸다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하루를 견디어내고 한 계절을 견디어내야 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나이를 견디어내야 했고 내 삶에 갑자기 찾아와 귀 기울여야 할 것들에 대해 응답해야 했다. 어느새 피어난 들꽃, 흔들리는 풀잎의 춤사위에, 무심히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에 눈을 떠야 했다. 밤하늘 별자리를 세다 잠들고 싶었다. 깨어있는 새벽엔 그리운 이름을 부르기도 하면서 견디어 내야 했다. 내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어제는 중앙대학원 이창봉 교수님의 첫번째 시 창작 강의가 있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초리와 교수님의 진지한 열강에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내 안의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 안에 세계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시는 절박한 필요에서 나와야 한다. 사물과 존재의 본질을 깊이 보게 될 때 시는 탄생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은 시의 원천이 되고 내면으로 향하는 고독이 시가 되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삶과 죽음은 하나다.‘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경험해야 할 존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내면의 성찰과 예술의 원천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사물을 정성스럽게 바라보면 단순한 대상도 깊은 존재의 신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에, 우주에 존재의 근원과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는 창조주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손길을 알아차리는 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워도 가슴 저리는 시 한 구절에 새벽을 맞는다. (시인, 확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침대 모서리 침대 모퉁이 근원과 우주
2025.07.21. 13:16
빈들의 하루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당신 앞에 서 있는지 아마 모르시겠죠 긴 세월, 먼 길을 돌아 당신 등에 기대어 있는지 잊으셨나요 어제의 어깨 위로 지나가는 바람결 따라 당신의 마음을 훔치고 어느 세월 여기에 왔어요 잠들은 태고적 고요, 공룡의 실루엣 처럼 정지된 하늘과 땅 사이 발끝 닿지 않은 심층까지 미지의 세상에 뿌리 내려 순백의 빛으로 오는 아빠 어깨같이 듬직한 당신 내 말만 쏟고 돌아 갑니다 둥굴고 넓은 당신 품 심장 소리에 살아납니다 나무는 하늘을 받들고 하늘은 나무를 안고 하루가 지고 있다. 너른 들녘엔 반딧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찬바람에 푸릇푸릇 들불의 흔들림이 마치 온 들이 손을 잡고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어둠은 점점 내려앉아 하늘과 나무의 경계는 사라지고 창밖은 검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고요한 정적이 내리고 있다. 하루가 저물듯 하루가 온다. 어제의 나무가 새날을 맞이하고 어제의 새들이 보금자리에서 깨어나 아침을 노래한다. 하늘은 구름과 어제와 다른 바람을 품고 밝아오고 있다. 나무의 끝까지 들은 손을 뻗어 하늘을 부르고 하늘은 아침을 바람에 실어 나무의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헨델의 파사칼리아의 선율이 피아노 건반을 미끄러지듯 타고 잠든 세상을 깨운다. 52개의 하얀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을 고르며 가늘고 긴 섬세한 손이 밝아오는 길로 마중 나간다. 모든 생명체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시계의 초침같이 세미한 걸음으로 새날이 내 앞에 선다. 나무의 그림자처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라벤더 보라 꽃봉오리가 아침햇살에 굽어진 허리를 편다. 비가 잠깐 뿌렸는데 들과 나무숲과 하늘이 깨끗해졌다. 공기 속 먼지들을 흡수하고 숨이 깊어졌다. 하나님이 하늘 창문을 열고 아래 숲속을 바라보시다 잠깐 비를 뿌렸더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뿐이 아니다. 나무도 숨을 고르고 숲속 작은 벌레들도 꿈꾸듯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다닌다. 나도 그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한낮의 황홀 속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이쪽저쪽에서 생명의 환호성을 듣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게 주어진 24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은 생각만 하는 꿈처럼 살지 말자. 꿈을 현실처럼 살자. 작은 씨앗 속에 푸른 하늘과 바람과 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아 마침내 피워낼 한 송이 꽃처럼. 내 안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단어들, 문장들을 꺼내어 한 편의 시를 노래해 보자. 어디선가 날아와 발길을 인도해 주는 나비의 날갯짓 따라 나도 춤추듯 간다. 꿈꾸었지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감추어진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철마다 다른 얼굴을 내미는 들꽃의 속삭임에 취해 나만의 비밀의 정원을 걷고 있다.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너를 만나고 또 나를 만나고 싶다. 문득 호수가 보고 싶다. 밀려오는 파도의 하얀 부서짐이 내 귀에 들려온다. 기진했던 심장의 박동이 힘차게 살아나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하늘 창문 실어 나무 피아노 건반
2025.07.14. 12:24
AP통신의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 취재’를 지휘해 퓰리처상 수상을 끌어낸 ‘50년 외신 기자’ 신호철(영어명 폴 신·사진) 전 AP통신 기자가 지난 8일(한국 시간) 오전 10시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9일 전했다. 향년 85세. 1940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일고,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ROTC 1기로 임관해 통역 장교로 복무했다. 1965년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UPI통신을 거쳐 1986∼2003년 AP통신에서 활동했다. 퇴직 후에는 2015년까지 연합뉴스에서 영문 기자 재교육과 영문 기사 리뷰를 담당하는 외국어뉴스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의 격동 현대사를 취재하며 ‘폴 신’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필명을 날렸다. 고인이 외신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4대 통신사 말고는 서울에 외국 언론사 지국이 거의 없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한국을 알리려고 애를 쓰면서 ‘외신 기자의 거목’으로 불렸다. 한편,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일부터 닷새 동안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미국의 비행기 폭격 등으로 피난민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당시 300명가량이 숨졌다. 고인이 이 사건을 보도(1999년 9월 30일)한 후 진상 규명과 배상 과정 등을 통한 후속 보도로 당시 AP통신 기자 3명은 퓰리처상을 수상(2000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신호철 완료 별세노근리 학살 외신 기자 시작 upi통신
2025.07.09. 20:22
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 찬찬히 너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있었네 // 잎사귀 위로 물방울 궅러 내리고 / 잔 가지마다 가득히 써 내려간 손 편지 / 서둘러 모아지는 빈자리마다 /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 너의 호흡은 향기가 되어 머물고 / 따뜻한 한낮의 햇살이 되어 녹아져 / 싸리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픈 소리가 되었지 / 감추어진 곳까지 속절없이 부딪혀오는 // 너의 손을 스치는 들풀의 누음도 / 너의 앞을 쉬지 않고 흐르던 강물도 / 먼 길 돌아 다시 만난다 해도 / 너의 깊은숨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 너의 서 있던 빈자리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 같아 / 서산에 걸친 노을처럼 / 비껴간 너의 그림자를 뒤쫓아 가네 나의 자리가 있고 너의 자리가 있다. 누군가의 자리에는 누군가의 자리에 어울리는 저만의 자리가 있다. 나무의 자리에는 나무가 있고 꽃의 자리에는 꽃이 있다. 넓은 들에는 들풀의 자리가 있고 흐르는 강에는 물결의 자리가 있다. 넓은 바다에는 밀려오는 파도의 자리가 있고 밤하늘에는 별들의 자리가 있다. 깊은 숲에는 새들의 자리가 있고 그 아래 덤불에는 들짐승들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땀을 흘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기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걸으며 넓은 세상을 마주하면서 위로받기도 하고 무상으로 내리는 선물 같은 햇살과 마주하며 치유되기도 한다. 너의 서 있는 자리에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나의 자리에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움직이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다. 다른 풍경을 마주하면서 생각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걸음이 느려지면서 나의 자리를 뒤돌아보게 되지만 이때 또한 내가 서있는 자리가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어떠한가. 나무는 나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보이는 줄기와 잔가지만큼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다. 그 뿌리가 너무 얕으면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마침내 쓰러지고 만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는 반면 치열하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서 있는 자리를 견고히 한다. 꽃들의 자리를 오래 버텨주기 위해,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식물은 꽃을 바치는 꽃대궁을 다른 줄기에 비해 단단히 자라게 한다. 그래야 무거운 꽃들을 꺾이지 않고 오래 지탱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대로 동식물은 그것들대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버티고 살아간다. 너의 서 있는 자리는 그만큼 중요하다 / 너의 버텨내는 아픈 소리가 들려올 때 / 나는 잠들었던 세포들을 깨운다 / 조금만 더 버티어보라고 / 마지막 힘을 모아보라고 / 저무는 노을을 향해 소리쳐본다 / 너의 서 있는 빈자리 / 비껴간 너의 그림자는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만큼 / 속절없이 부딪혀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잎사귀 위로 시인 화가 싸리문 사이
2025.07.07. 14:21
얼마 전 젊은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뒤를 편안히 뒤따라오며 전체를 아우르는 기타 반주 때문이었다. 행여 늦을까? 처져 있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의 염려를 무색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뒤를 받쳐주는 편안함을 느껴보았다. 삶의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삶의 고난 속에서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발끝에 힘을 모아 뛰어보기도 한다. 때로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나를 지으신 이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고무케 한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정원의 아침이 밝아올 때.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들, 가령 예를 들자면 작은 묘목, 잔가지를 많이 가진 나무, 스스로 씨를 뿌릴 줄 아는 들꽃들이지요.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잎을 펼치고 주먹만 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조용히 그들의 곁에 다가가면 반가움의 인사를 내 눈에 마구 쏘아대는 것이 아침햇살처럼 따스하다. 바람에 손을 흔드는 건지 잎사귀가 앞뒤로 팔랑거린다. 아침을 뒤따르며 저들의 걸음을 따라 한걸음 물러 걸어본다.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걸음은 바른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숨을 고르고 흘러가는 계절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행복은 다 나의 행복이 된다. 무슨 세상의 행복이 다 자기 행복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작은 꽃 한 송이 피어나는 데에도 몇 계절이 바뀌어야 하고 수많은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와야 한다. 꽃 한 송이 속에는 바람과 햇살과 밤하늘 별빛과 아침을 기다리는 그리움과 기대어 함께 자라고 피어나는 연민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시원함과 한나절의 목마름이 층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내게서 사라지는 날이 오면 나는 사라진 존재로 남겨질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앞에서 나의 숨이 거칠어진다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뒤돌아 계절을 배웅하면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건 찰나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그 시간 속에 펼쳐지는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세월을 탓하지 말자. 그 시간을 소중히 함께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 새 나의 손을 잡고 시간의 은밀한 첫 시작부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친밀한 손잡음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퀼트의 조각처럼 엮어 이어지는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나이 들면서 소중한 것 하나는 노동이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결과는 늘 정직하다. 헛되게 부풀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무풍선처럼 김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땀 흘리며 일 한 후 찾아오는 보람이랄까. 아니 행복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 정원에 호미 한 자루 들고 시작한 정원일은 정오를 훨씬 넘긴 후에야 허리를 편다. 소쿠리에는 한 움큼의 잡초와 시든 꽃가지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마른 잎사귀들로 가득하다. 불필요한 삶의 찌꺼기들도 광주리에 가득 걸러지는 아침을 맞이하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정원에서 당신이 보내준 것들을 가꾸다 어느 날 당신이라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 가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왔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밤하늘 별빛과 통기타 가수 묘목 잔가지
2025.06.30. 14:16
바람에 종이 인형처럼 마냥 휘날리더라 / 아무것도,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 바람에 밀려가는 네가 쓸쓸해 보이더라 / 걸음을 모아 하늘에 날려보내도 좋겠더라 // 바위에 부딛혀도 아프지 않더라 / 흩어지다 모아지고 또 산산히 부서지는데 / 세상을 잃고 춤추는 네가 서글퍼 보이더라 / 두손을 모아 호수에 담아도 출렁이더라 // 오늘 다짐하라던 서늘한 네 목소리 / 돌아서는 마음을 다잡아 나무 한그루 심었네 / 세월이 지나야 아름다워질 것들이 보이네 / 전나무 푸르름같이, 너의 깊어지는 눈망울 같이 // 내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보다가 / 후미진 곳에 꽃을 피운 네마음을 알겠더라 / 매일 가져야하는, 느껴야하는, 먹어야하는 /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고 귀하게 저무는 하루 //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 말할 수 없듯이 // 행복을 채워줄 수 없는 작은 것들로부터 /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이 내 작은 생각보다 / 크고 높은 곳으로 이끄심을 느끼네 // 슬픔과 괴롬 가운데 넘어진 너의 근심이여 / 큰것이 아닌 작은 사소함으로 부터 밀려오는 / 당신의 눈길, 그 평안의 길을 걸어야하네 / 일상의 일들이 신성한 순간으로 이어지는 길로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엔 전혀 감흥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 속엔 불만과 갈등의 요소로 가득 차 있기에 마음의 눈을 뜨고 그 풍경을 내안의 평안으로 기쁨과 경이함으로 마주할 시간을 순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 속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마음으로는 아름다음이라는 고요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비관론자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스스로를 어둠의 나락으로 내몰 때도 있다. 일정기간 주어진 삶의 순간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늘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찿아옴에는 이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삶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터로 가야 하고 온종일 일한 후에도 쉬지 못하고 part time 일을 해야 한다면 그 마음 속엔 쉬고 싶고 눕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고 또 포근한 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는 내일을 위하여, 조금 나은 미래의 삶을 누리기 위해 이 모든 순간을 참으며 노력한다. 만약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하자. 그 후에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풍족한 삶을 위해 끊임없는 그의 사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쯤에서 그의 삶을 복귀할 필요를 느껴야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물음 앞에 겸허히 서야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담장 후미진 곳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 한송이가 길가던 그를 멈춰 세웠다면 그때 그의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한 순간을 마음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삶의 아픔은 치유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산다는 말은 그의 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품고 산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see와 watch의 차이, hear와 listen의 차이를 알게 되면 우리 모두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있어서 볼 수 있는,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관심을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의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귀가 있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소리를 찿아내는 순간들이 잦아질 때 삶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 슬픔이 깊을수록 그 속에서 행복의 씨앗들을 찿을 수 있는, 아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밝아올 새벽의 먼동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전나무 푸르름 나무 한그루 종이 인형
2025.06.23. 13:28
길가에 떨어진 작은 씨앗이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바람아 나를 날려 저 언덕 너머로 옮겨줄 수 있겠니? 그곳은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비옥한 땅이거든. 나도 그곳에서 꽃피우고 싶어." 바람은 씨앗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래 남풍이 불 때 너를 안아 저 언덕 너머로 옮겨줄게." 며칠이 지나자, 남풍이 불어왔습니다. 씨앗은 그동안 허기와 추위로 부쩍 야위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안간힘을 쓰며 견디었는데 드디어 남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어깨를 펴고 다리를 한데 모으고 비상할 준비를 마쳤는데 바람은 씨앗을 언덕 너머로 옮겨주지 않았습니다. 밤이 다시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하늘에 온통 먹구름이 끼더니 굵은 빗방울이 밤새 쏟아졌습니다. 기진맥진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엔 울퉁불퉁한 돌멩이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이리 받히고 저리 받히며 온몸엔 멍이 들어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넋을 놓고 큰 돌멩이에 기대어 있는데 바람이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 너를 찾을 수가 없었잖아." “나는 너만 기다렸는데 밤새 쏟아진 비에 잠깐 정신을 잃었나 봐.” 미안함에 상처 난 얼굴을 붉히며 씨앗은 얼굴을 들었읍니다. 오늘도 씨앗의 꿈은 여전합니다. 언젠가 손바닥만 한 양지에서 꽃 한 송이 피워내기를 바랐습니다. 입술을 꼭 다물고 끝까지 견디어내면 꼭 좋은 일이 자신에게 올 거라는 희망을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눈앞엔 어른거리는 따뜻한 양지가 포근하게 그려질 뿐입니다. 저녁노을 진 풍경이 눈에 비치고 들녘의 숨소리가 깊어질 때였습니다. 바람은 남풍을 몰고 와 나를 번쩍 안아 하늘로 나르더니 모두 깊이 잠든 언덕 너머로 나를 옮겨 주었습니다. 삐죽삐죽 올라온 들풀들 사이로 발을 뻗었습니다. 밀려오는 나른함과 행복감에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적막과 고요함 속에 길들어 있던 씨앗은 마음 속에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세미한 음성의 주인은 햇빛이었습니다. “이제 꽃을 피울 수 있겠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찾아온 감사와 행복의 시간이 몰려왔습니다. 조금은 서툴어도 그 은혜의 시간에 뿌리를 내리려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행위보다는 내가 먼저 죽는 씨앗이 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내 양분을 뿌리로 뿌리로 내렸습니다. 진짜 행복은 지금부터입니다. 산산이 부서졌던 곳으로부터 작은 씨앗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어제와 다른 새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들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그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우리는 누구입니까? 자신을 버려 싹을 내는 작은 씨앗 한 톨보다 못 한 인생이라면 우리의 모난 모서리는 얼마나 더 깎여야 하나요." 귀를 쫑긋 세우고 귀 기울여봅니다. 영혼의 봄날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봄은 향기로운 몸짓으로 다가와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불편했던 서로의 거리를 좁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작은 씨앗도, 부서지기 쉬운 우리도,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봄날도 정겹습니다. 이제 막 터질 듯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가 모두에게 기적처럼 펼쳐진다는 것은 생명이 있는 모두에게 가슴 저미며 맞이해야 할 사실 아닌가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이야기 씨앗 이야기 적막과 고요함 시인 화가
2025.06.16. 14:49
마음속에도 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부터 한낮까지 젖어오는 꿈으로 팔을 뻗어보아도 하늘 가득 젖어오는 창가에 비 하염없음 만으로 잠겨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여 동그란 잎사귀 비에 젖어가는 제 몸의 무게에 고개를 떨구는 두 손을 모아 지탱해 주어도 하염없이 뿌리치고야 마는 혼탁한 언어를 지우며 젖어오는 그늘 틈새 얼굴을 내밀어도 저물어가는 어둔 길을 걸어도 보이지 않게 밑줄을 그어도 펄떡이는 새의 심장으로 날아와 눈물로 길게 적어 내리는 편지 흘러내리다 지워지기도 하는 당신이 보내온 창가에 비 Chopin - Spring waltz(Mariage d’ Amore)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있다. 모든 게 정지된 정원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길게 자란 하얀 데이지, 보라색 제비꽃들이 산들 흔들리고 있다. 창문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그 긴 자국을 연신 지우고 있다. 빗물은 다시 너에게 보내는 한 줄의 연서같이 자꾸 내 마음을 적어 내린다. 내리는 비에 무거워진 나뭇잎들은 한 결로 고개를 떨구고 고해를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세상은 그다지 어둡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시간의 틈새를 살피다 보면 마음에 전해오는 따뜻한 숨결도 있고,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촉촉한 눈길도 있다. 그래서 지친 밤을 보내고도 아침을 맞이하는가 보다.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도 창가의 비를 바라보고 있나요. 그 비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되어 마음으로 흐르는 강이 되어 오고 있나요. 비를 맞아본 적이 있다. 처음엔 비에 옷이 젖고, 그 후엔 온몸이 비에 젖어간다. 얼마 후 마음 속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마음도 비에 젖어간다. 가랑비는 가랑비대로, 보슬비는 보슬비대로, 소나기는 소나기대로 온몸과 마음에 사뿐히 때론 세차게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젖어드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얼마 후면 감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몸과 마음까지도 비에 젖어갈 것이다. 창가에 앉아 비 오는 뒤란을 바라보고 있다. 장대 같은 나무도, 작은 묘목도,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이 조용히 움직임 없이 비를 맞아내고 있다. 무거워진 가지가 아래로 처지고, 작은 묘목의 잎들도 빗방울을 담아낸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 새들의 놀란 가슴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접었다. 나도 창을 사이에 두고 비에 젖어드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창가에는 빗소리와 함께 피아노의 청아한 멜로디가 들려오고 창가에 비는 마음에 젖어오는 시간을 소환하고 있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깝게 붙어 있단 생각이 든다. 사랑의 마음 속에 한톨의 미움도 없을까? 미움의 마음 속엔 한 조각의 사랑도 없을까? 사랑 속의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다. 미움 속의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사실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미움의 정의를 나 스스로 정해놓으면 사랑 속 미움의 순간을, 미움 속 사랑의 조각들을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순간을 시계 초침같이 내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비가 내리는 아침부터 낮까지 시간에 따라 지워지기도 하고 다시 생겨나기도 하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 그 소중한 순간들, 그리고 지울 수 없이 마음에 깊게 새겨진 풍경들을 이제 기억해 내야 함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의 조각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조각 사랑 온몸과 마음 피아노 연주
2025.06.09. 12:46
그래요 / 당신은 맘껏 이뻐도 됩니다 / 오늘은 발길 닿는 대로 걸었어요 / 갈림길에선 주저 없이 / 바위고개 진달래 꽃무덤 가로 / 개나리 펄펄 날리는 언덕 너머로 / 그리움 묻어나는 어느 봄날 노래하며 / 지워도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그리며 / 진달래 붉게 핀 아픈 언덕 넘었어요 그럼요 / 당신은 맘껏 뽐내도 됩니다 / 온 땅이 살아나는 생명으로 가득해요 / 새순이 아기 손처럼 꼬물거려요 / 붉어진 꽃망울은 또 얼마나 서글픈지요 / 눈물방울이 막 떨어지려 해요 / 저만 그런가요 / 지난 일들이 봄날의 책장을 넘겨요 / 잊혀진 얼굴들이 꽃처럼 피어나요 / 목련이 지면 어머니 무덤가로 갈 거예요 / 파릇하게 솟아난 잔디에 누워 / 어린 누이 손에 봉숭아 붉은빛 손톱에 물들이던 / 갸륵한 봄날 베개 삼아 잠들 거예요 봄기운이 뒤란에 찾아들면 즐겁고 행복해진다. 무채색의 정원이 연두와 초록빛을 띠기 시작한다. 어느 사이 한 움큼씩 자라나는 싹들을 보기 위해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느 구석, 어느 틈엔가 손톱만큼씩 자라나는 잎들의 키재기와 단단하게 맺혀있는 꽃봉오리들이 힘을 빼고 꽃을 피우려나 궁금해진다. 커피를 내리고 김이 나는 커피잔을 들고 뒤란의 꽃들과 눈인사를 한다. 이슬에 젖은 눈망울엔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을 또르르 굴릴 것 같은, 떨굴 것 같은 아이리스. 밤새 부쩍 자란 잎들을 쓰다듬으면 바람에 흔들리며 반가워하는 나뭇가지들을 보듬어준다. 눈길 가는 곳마다 어제보다 더 넓고 높게 살아나는 것들로 가득한 뒤란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보금자리로 한 작은 수목원이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뒤란의 새벽은 고요하고 그윽하기만 하다. 가까운 곳에서, 저만치 나무 틈 사이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나무와 작은 묘목들의 잠을 깨운다. 그렇게 정원에서의 하루는 어제와 다름없이 시작되고 있다. 한여름 늦게 피는 게으른 꽃들도 있고 봄의 전령처럼 이른 봄에 피었다 지는 서글픈 꽃 생도 있다. 이르면 이른 기대로 늦으면 오랜 기다림으로 바라봐 주면 된다. Chicago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4월에도 눈이 내린다. 한국에서는 꽃이 만발하여 꽃구경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이곳 시카고에는 이제야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때론 오월에도 서리가 내려 막 피어난 꽃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움츠린 모든 것들이 허리를 세우는 봄날의 풍경은 겨우내 위축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너도 할 수 있어. 허리를 펴! 나를 따라 깊게 숨을 들이마셔야지. 꿈꾸지 않으면 그 꿈은 네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꿈과 현실은 가깝지도 않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아. 중요한 건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매일 눈을 뜨면 생각하고 걷고 그 꿈을 나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꽃들과의 대화는 깊어만 간다. 나의 정원에 대한 꿈은 이 집에 이사 오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정원을 가꾸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 부지런히 움직여도 안 되고 너무 게으름을 피워도 안 된다는 진리 같지 않은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도 때가 있듯이 정원을 가꾸는 일에도 그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할 일을 급한 마음에 먼저 하면 후에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몇 배의 수고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먼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면 그 시기를 놓치게 되어 하고 싶어도 손을 놓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 정원을 가꾸는 일조차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의 내면에 기쁨과 고요를 가꾸는 일이 정원의 묘목과 꽃밭을 가꾸는 일과 매우 닮아 있다. 며칠만 무관심하면 어디서 자라났는지 잡초가 쑥쑥 올라온다. 내 마음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도 매일 내 안에 자라는 잡초를 뽑아주고 묘목을 심고 꽃씨를 뿌리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오늘도 정원을 가꾸며 나를 가꾸는 작은 행복,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봄날 베개 기간 정원 바위고개 진달래
2025.06.02. 13:37
양지가 좋다 따뜻한 햇살이 좋다 머문 고요가 좋다 아득한 시간이 좋다 어디에서 가질 수 없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저 누리라고 펼쳐놓은 하늘이 보내준 선물 나뭇가지로 땅에 쓴다 나 말고 다른 이름을 그 이름 부르다 양지에 앉아 운다 ‘선물’을 선물하세요 커피잔이 버거우신가요. 두 손으로 가지런히 들어 마시는 모습. 예식을 치르듯이 향을 마시는군요. 커피는 향으로 마신다고 하더라고요. 향기가 가만가만 퍼져가요. 양지쪽을 바라 보고 있어요. 며칠 전 심은 LOBELIA가 짙은 보라색 꽃들을 잔뜩 피워놓았네요. MIDNIGHT BLUE라고도 불리는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몇 해 전 내게 선물처럼 다가왔지요. 제철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모종을 거의 얻다시피 가져와 매일 물을 주고 영양분을 뿌려주며 애지중지 키웠더니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모종은 상태가 좋아지고 원기를 회복했는지 한 아름의 새끼손가락만 한 꽃들을 피워주었지요. 선물이란 아마도 이런 것인가 봅니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는 이의 내리사랑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모종은 활짝 꽃을 피워 마음의 깊은 위로와 잔잔한 선물이 되어주었어요. 사람의 상처 난 몸과 마음도 다를 리 없겠지요. 누군가 사랑의 손길과 끊임없는 관심은 죽을 목숨도 살려내고 상한 마음도 회복되어 마음 밭에 꽃들을 피운다 해요. 올해는 싱싱한 LOBELIA 모종을 잔뜩 사다 덱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심어주었지요. 선물은 그런 것이에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양지의 느낌같이 따뜻하게 번져가는 그 무엇 같아요. 나는 지금도 양지가 좋아요. 양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지요. 무언가를 만들어가게 하는 모티브를 만들어줘요. 그래요, 우리 모두는 어느 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낯선 간이역에 내려질 거예요. 기차는 떠나고 쓸어내리는 생각에 당황하게 될는지도 몰라요. 철로를 따라 다시 걸어야 하나? 환승할 열차를 기다려야 하나? 많은 사유가 나에게 혼돈을 줄지 몰라요. 이때에도 선물처럼 다가오는 사람과 풍경과 이야기를 내것처럼, 내 시간처럼, 나의 정원처럼 가지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내 몫이 아닌 덤으로 사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거에요. 기적소리는 숲에 묻히고 이제 하늘이 선물처럼 뉘어져 내게로 와요. 3인 3색 시집 〈선물〉이 8일 전 한국의 각 서점에 뿌려졌다는 소식이 출판사 달아실로부터 전해왔어요. 기대하지도, 꿈꾸지도 않았던 시 에세이 부문 주간 베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이 교보문고로부터 전해왔고요. 기쁘다기보다 일 년을 고민하고 6개월을 땀 흘린 시간에 대한 보상 같은 따뜻한 선물이었어요. 다음 주간도 기대가 돼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아요. 이미 나에겐 큰 선물이었어요. 연이어 전해온 선물이 도착했네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가 한 번쯤 꿈꾸어볼 만한 현대시학에서의 원고 청탁계약서가 도착했어요. 아직 원고 마감일이 남아 있어 보내야 할 시를 고민해야겠어요. 선물이 봄비같이 내리고 안개 너머로 오네요.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바람처럼 지나가겠죠. 하지만 선물의 따뜻한 기억은 잊힐 리 없어요. 그간 수고하고 고생한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어요. 선물 고마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선물 신호철 lobelia 모종 이의 내리사랑 원고 청탁계약서
2025.05.19. 13:53
눈을 뜨니 새벽 4시. 아직 밖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데. SNS에선 반가운 소식들이 태평양을 건넌다. 마른 땅에 빗물이 고이듯 오랫동안 담겨 있던, 내 속에 메어 있어 주변을 떠나지 못했던, 내 것이 아닌 양 툭 맡겨져 있던 일들이 한꺼번에 풀어져 내린다. 2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아직 검푸른 하늘을 본다. 커피를 내리고 눈을 비비고 앉아 〈선물〉이란 시화집과 마주하고 있다. 아직 손에 쥐어지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 책장을 넘기며 시를 담고, 그림과 사진을 간간이 포개어가며 시작과 끝까지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시화집. 잔잔한 숨결과 마음의 따뜻한 시간들이, 다른 배경과 환경 속에서 자란 목소리들을 조율하여 만든 삼인 삼색의 시화집, 푸른 마음들에 인생의 희로애락의 갖은 양념을 버무려 국 끓이듯 오래 달구어낸 선물 같은 〈선물〉. 더운 심장 소리가 들리고, 느껴진다. 오랜 시간 함께 달려오면서 거침없이 가까워졌던 그 순간들이 사랑스럽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빈들에 들꽃이 소리 없이 피어나듯이. 작은 실개천이 모아져 조용히 강물을 이루고 마침내 너른 바다에서 만나게 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겨 있는 놓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시로 모아서.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사진들의 사유들을 모아서, 푸른 하늘이 붉은 노을로 바뀔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던 자연이 던지는 묵직한 물음에 대답으로 표현된 그림일기 같은 그림들을 모아서 시화집 〈선물〉이 태어나게 되었다. 내게는 세 번째 시집이 된 셈이다. 이 세 번째 시집 〈선물〉이 특별했던 이유는 개인 시집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세 명의 시인이 각자 다른 배경과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목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하모니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겠는가였다.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집을 준비하는 서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집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면서 놓지 않았던 한가지 “시 앞에서 부끄럽지 말아야지.” 느슨해지고 편해지려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조율하여 우리의 소리를 내고 싶었다.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는 독특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각과 결이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통하는 점이 많았다. 시를 대하는 태도나 앞으로 시인이 걸어가야 할 방향과 지향점이 같았다. 결국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매일 시인의 삶을 살아야 함에 겸허하고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3인이 시카고와 서울의 가교를 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을 정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물의 의미는 대가 없이 그냥 주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다. 그 대상의 폭도 더 가깝게 내가 나에게 잘 살았다고 주는 선물, 그리고 당신에게 잘 견뎌냈다고 주는 선물, 삶의 무게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들꽃 한 아름 건네주며 뜨겁게 안아주는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올 7월 중순 시카고 시 창작 아카데미를 위해 시카고에 오실 중얼거리는 양반(이창봉 교수, 시인)과, 날개 달린 별똥별(지향 디자이너, 시인)과, 구름 모자 쓴 황소(신호철 화가, 시인)의 3인 3색의 콜라보 시화집 〈선물〉. 사랑과 위로가 담긴 시집 〈선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보내는 사랑의 편지 〈선물〉. 말로 전하는 포옹, 귀로 전하는 〈선물〉. 선물 같은 〈선물〉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인 화가 중순 시카고 숨결과 마음
2025.05.12. 13:03
내 안에서 좁아지는 길을 본다 / 길이라는 원형의 두 축 / 사랑과 쉼이면 더 바랄 것 없다 / 바람이 실어다 주는 진심은 /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닦아도 닦아지지 않아서 돌담을 쌓고 길을 내는 오늘도 / 한 걸음 두 걸음 거친 숨 몰아쉰다 / 온기로 점점 채워지는 몸 / 소실점으로부터 점점 다가오는 길 속마음 모른 척 외면하여도 / 길의 반대편은 바라보지 않기로 한다 / 마음에 짚이는 순서대로 양지에 심고 / 그 밑에 산처럼 누워보기로 한다 / 어디선가 까막까치 날아오르고, / 노란 생강나무 꽃 아련히 피어나는데 / 시간에 감겨 태엽처럼 구부러지는 길 빠르게 흐르는 모든 것들을 한데 모아 / 발끝으로 시간을 길게 펴 *적바림하고 / 긴 호흡으로 숲의 위까지 사랑해 본다 / 하루가 아니라 겁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 사람의 걸음이 되고야 마는, / 결국 한 사람의 삶이 새겨지고야 마는 / 내 안에 점점 좁아지는 *천둥지기 길, *적바림: 짧게 요지를 적음, *천둥지기: 외딴곳 살이 오르는 나무숲을 지나 낮게 드리운 풀섭을 끼고 걷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이 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얹어 더 선명하게 길을 다지며 간다. 온갖 초록들이 대지로부터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새삼 신기할 것도 없는 풍경이 오늘은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짐승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며 애태웠던, 맵새가 날개를 접고 머물렀을 상수리나무 깊은 가지 안에, 보금자리마저 감출 곳이 없이 드러나는 푸른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봄날의 숲정이길을, 하얀 날개를 펴고 접으며 가쁘게 오르는 흰나비의 길을, 봄을 마시며 걷는다. 일생을 걸어도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길. 그 길 위에서 생각한다. 내가 길을 선택하는 것인지 길이 걷고 있는 나를 손짓하는 것인지. 두 길이 만나 한 길이 되기도 하고 한 길이 갈라져 두 길이 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의 가는 길과 다르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길을 걷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길을 평가해서도, 판단해서도 안 된다. 길이란 다만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 말자. 어쩌면 그 길이 바로 당신이 지금까지 찾고자 했던 것을 만나게 해줄 유일한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의 인생길을 꽃길만 걸으라 말할 수 있는가. 어찌 봄날같이 평탄하고 기쁜 날만 걸으라고 말하겠는가. 때로는 가시밭길을 걸을 때도 있고, 걷기 힘든 진흙탕 길을 걸으며 온몸이 더럽혀질 때도 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려고 애쓰기도 하고, 길 같지 않은 길을 걸으며 온몸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 않았던가. 길을 걷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고 서로의 길을 위해 떠나는 그를 위해 축복의 손을 들기도 한다. 나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그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지기도 한다.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이 없음에도,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우리는 오늘도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 많이 휘어져 길의 끝을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없어도 결국 사람의 걸음이 되어야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되어야 하는 그 길 위에서 후회 없는 길을 걸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래서 나를 지으신 이의 부름에 뒤돌아보지 않는 후회 없는 발걸음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시인, 화가) 신호철천둥지기 신호철 시인 화가 이의 부름
2025.05.05. 1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