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고와 사람의 땀은 다르지 않다. 나무가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의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사람이 모여 단체를 이룬다. 나무가 더 많이 모이면 산이 되고 밀림이 되고 사람이 더 많이 모이면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된다.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루는 요소인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조금씩 봄기운이 불어오는 삼월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나무들도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성경에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져 버리라’라는 구절을 읽고 마음이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나무를 비유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이나,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지만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 역시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집 앞마당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잘 자라 많은 가지를 뻗었고 무성한 잎들이 나무를 덮었다. 그러나 그해 열매는 없었다. 그 이듬해도 한 개의 사과도 열리지 않았다. 삼 년째 되던 해 우듬지에 연분홍 꽃을 살짝 피우더니 사과 두 개를 내어주었다.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 다음 해 사과나무는 연분홍 꽃을 나무 가득 피어 감동을 주더니 ‘Free Apple’ 팻말을 걸고 몇 광주리에 가득 담고도 남을 사과를 선물로 주었다.
사진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기암절벽 바위틈에 피어난 보라색 들꽃을 담은 ‘기적’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속에 담겨 있다. 돌짝밭에 떨어져 간신히 뿌리를 내린 나무는 애처롭고 더 사랑스럽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난 아이들은 얼굴도 환하고 매사에 거침이 없이 호의롭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좌절과 고통 속에 자라난 아이들에겐 그늘이 있다. 눈물이 있다.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시가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라고 노래하였다. 우리는 그늘과 눈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무의 일과 사람의 일은 다르지 않다. 길가에 돌짝밭에 뿌려져 건강히 자라지 못하는 씨앗과 같이 사람의 일도 그렇다. 이제 막 옮겨져 뿌리내리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 사과나무처럼 사람의 삶도 그러하다. 봄이 오는 길도 그렇다. 나무에 움이 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어느 하나 그늘 없이 눈물 없이 자라는 것은 없다.
눈물과 그늘을 극복하고 자기의 길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 보이는 장애보다 불편한 환경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뿌리내리는 나무의 수고, 그늘과 눈물의 아픔을 견디고 일어선 사람들 앞에 서면 치열하게 살아나는 봄의 협주곡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