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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래 이 또한 지나가겠지 어둠의 밤이 지나면 새벽 먼동이 밝아오듯 춥고 시린 겨울이 지나면 푸른 싹 돋아나는 봄이 오듯 그러니 지금은 깊은 숨 들이마실 때 고요히 지나가야할 때 발끝을 세워 걸어야할 때   한해의 마지막을 며칠 앞두고 불편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기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보아온 행태로 보아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우길 사람이기에,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누추한 아부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낄 때가 간혹 찿아온다. 그 때의 상태를 돌아보면 모자라지 않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은 삶의 태도를 가질 때였다. 남의 위에 군림하려는, 가르치려는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평정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가끔 비굴하거나 교만한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은 아니라고 발뺌하겠지만 표현하는 말 속에 이미 그의 속내가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함께 보는 글방에 알지 못하는 일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본다. 함부로 상대방을 자신의 잣대로 울타리 안에 가둬 놓고 하고 싶은 말을 퍼부어대는 사람이 있다. 그건 본인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교만이요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을 향한 아첨일 뿐이다. 혹자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곳에서 일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첨과 교만, 질투를 넘어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면 그때마다 은근히 자기를 뽐내면서 상대방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서슴치 않는다면 그는 상대할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입장과 나름대로의 삶을 대하는 기준이 있다. 그 입장과 기준으로 본인이 살아가는 데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러나 그 잣대로 이웃을 탓하려 하는 사람에겐 큰 문제가 있다. 그런 본인은 그렇게 걱정하는 단체를 위해 한 일이 있는지. 여기 저기 다니며 오히려 비아냥거리며 파멸로 몰아가는데 앞장을 서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길 바란다.   차라리 알량한 앎대신 모름이 낫다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럴듯한 울타리를 쳐놓고 금밖의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행태는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리해야할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누가 지금 잘 되어가는 단체를 가르고 흠집내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던 한해를 뒤돌아본다. 오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한해를 보내면서 마음에 담겨져오는 성경 귀절이 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모든 것이 오염될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知不知上(지부지상), 不知知病(부지지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알지 못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의 지성이지만, 가장 큰 위선자는 무엇을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고, 일부만 보고도 전체를 본다고 주장하여 이에 근거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은 위선의 한계를 넘어 죄악을 범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보다 100년 전에 노자가 한 말이다. 한해를 지나며 …. 불편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게 어떠한지? . . . 그러니 착하게 살자. Happy New Year!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본인 생각 교만 질투 사실 소크라테스

2025.12.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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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돌탑을 쌓는 오후

나도 쌓을 수 있겠다. / 돌을 쌓았습니다 / 넓고 편편한 돌을 모아 / 바닥에 놓고 그 위로 그보다 / 작은 돌을 쌓았습니다 / 모양이 탑이 되어갈 즈음 / 탑의 감정은 소원을 비는 / 사람의 마음보다 높았습니다 // 간밤에 이국에서는 눈이 / 내리고 이곳에서의 노을은 / 붉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신호들의 / 불빛 같은 그 빛을 넘으면 / 돌탑이 무너지듯 우리 몸이 / 부서지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 발을 헛디디면 돌아오지 못하는 / 지옥 같은 삶이 거기 있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을 보고 내 손을 / 비틀었습니다. 탑은 무너져 내리고 / 나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 탑과 사람의 손을 이어주는 다른 언어 / 끊어져 닿을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은 / 어떤 말로도 이을 수 없다는 말인가요 // 흐트러진 돌탑을 집어 들 손마저 / 사라져 버린 게 되었단 말인가요 / 보이지 않는 돌탑을 보인다는 구실을 / 붙잡고 밤을 새야 한단 말인가요   잠깐 나가본 바깥은 추웠습니다. 얼굴에 느껴오는 찬기가 정신을 번쩍 깨웠습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은 나무 밑, 듬성듬성 눈이 녹아 맨땅이 드러난 곳에 모여있는 참새떼였습니다. 연신 부리로 땅속을 파헤치는 걸 보니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배가 고픈가? 그래서 떨어진 나무 열매를 쪼고 있는 걸까? 바쁘게 이쪽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연신 부리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마리 다람쥐가 어딘가에서 뛰어나와 새무리를 헤쳐 놓았습니다. 겅중 뛰어오른 다람쥐의 무례함으로 새들은 재빨리 옆 가지로 날아갔습니다. 온종일 새들은 그렇게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무리 지어 날아가다가도 땅으로 내려와 부리로 먹이를 찾아냅니다. 깜짝 등장한 다람쥐는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참 한가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 탑을 자꾸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맹목적인 이유를 들어 탑의 꼭대기를 올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건가요. 쌓은 후 무엇인가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행복감에 빠져드는 건가요? 그래서 다 쌓은 탑을 두고 무엇인가 미련이 생겨 그 옆에 또 다른 탑을 쌓고 있는 건가요? 그렇게 몇 개씩 쌓아 올리다 보면 인생이 허락한 시간은 저물고 있을 텐데요. 모르셨나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 말도 안 되는 말 같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듯한 말이라 스스로도 놀라버리기도 하는 신기한 말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의 축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바라보면 가능하기도 한 시간.   그래서 우리는 하루해가 지고 서쪽 하늘에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인생의 황혼을 하루해로 말하지 않던가요. 시간은 촘촘한 간격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갑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뇌는 그 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순간의 풍경이 오래 잊히지 않는 이유도, 짧은 시간 이루어졌던 어떤 일은 내 일생을 통해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시간을 조절하는 반증이 아닐까요.   한가히 돌탑을 쌓고 있는 이 순간이, 참새떼가 흙을 부리로 파헤쳐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이 장면이, 불현듯 나타난 다람쥐 두 마리가 나타나 나와 참새 떼를 놀라게 한 이 사건이 오래 마음에 잊히지 않는 기억의 방에 저장된다는 것은 내 손으로 쌓아 올린 탑의 감정이 사람의 감정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조차 멈추게 한 한가한 오후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탑을 쌓는 사람의 마음까지 풍경으로 어우르는 멈춘 시간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부리로 먹이 부리로 땅속 찬기가 정신

2025.12.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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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숲은 말이 없다

*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과 하는 것이다 // 시간이 모든 아픔을 치유한다는 건 / 거짓말이에요 / 나는 잠깐의 시간에 알게 되었어요 / 숨 쉬는 것만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 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 햇볕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보았어요 / 지나간 자국마다 얼음이 녹아요 / 내리던 눈 속으로 눈물이 고여요 / 그 속에서도 꽃이 핀다니까요 // 새들이 날면 숲이 하늘로 떠 올라요 / 숲에선 별들이 자라지요 / 붙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 숲에선 꽃이 피어야 하고 / 별이 자라야 할 곳은 하늘이지요 //남겨진 사람들은 울지 않아요 / 다시 만나게 되리란 걸 아는 것처럼요 / 시간이 아픔을 치유한다는 건 / 거짓말이어요   *프로스트의 말   가을이 빠져나간 자리에 겨울이 왔다. 쓸쓸한 가을의 잔재. 그 위로 눈이 내렸다. 나는 창문을 통해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 보고 있다. 하늘이 하얗게 내려오고 있다. 마법의 하늘 아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잠자리가 불편한 다람쥐와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었을까? 차들도 끊기고 길도 사라진 마을. 하얗고 고요한 나라. 마치 다른 행성을 보고 있는 듯하다.   목이 긴 장화를 신고 푹푹 빠지는 눈 위를 걷는다. 파인 추리의 긴 가지들이 눈의 무게로 축 처져있다. 작은 묘목들은 하얀 모자를 높게 쓰고 있다. 덱크는 포근하고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조용히 누웠다. 잔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나무는 하얀 꽃나무가 되어간다. 깊은 공간 속으로 숲은 겨울의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천천히 하얀 여백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고요는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것인가. 너와 내가 꿈꾸던 세상이 이런 날들이 아니었던가?   가을을 이별하기 위해 나무와 숲은 붉고 아프게 물들었다. 가지로부터 단단히 한 몸이 된 단풍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무의 뿌리를 덮었다. 찬란한 봄을 위하여, 겨울을 이별하기 위하여 눈은 이렇게 내리는 걸까? 깊은 겨울을 껴안기 위해 하얗게 하늘의 통로를 열어준 걸까? 나는 알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잔인한 이별 뒤에 온다는 사실을. 숲은 찬란했던 가을의 색들을 감추고 하얀 겨울로 걸어 들어갔다. 흩어지는 눈길에 깊은 발자국을 남겨놓은 채로. 언제인가 겨울을 이별하기 위해 봄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눈이 뿌리의 정신을 다독여줄 것이다. 이별은 아픈 것만이 아니다. 시간이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겨울 숲은 말이 없다. 가끔 어깨의 눈을 털어내거나 긴 여운의 저음을 울기도 한다. 사람의 속마음에 대한 물음이 눈 속에 깊이 묻히기도 하고 가녀린 갈대의 흔들림 속에 드러나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작은 동작 하나에도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소소한 일상에 흔들리지 않는 일, 그 사소한 과정을 묵묵히 건너는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가늠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새 것에 대한 신비가 아니라, 함께 걸어온 발걸음을 이해하고 그 보폭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오래 창가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하얗게 쌓인 뒤란의 고요가 나를 위로한다. 다시 뒤돌아다 보는 시간. 눈이 쌓인 두께만큼이나 마음의 결이 헤아려지는 날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하늘 아래 시인 화가 파인 추리

2025.12.1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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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에게로 온 별빛

그때마다 나는 나무였다 / 언덕에 홀로 심겨진 나무였다 / 계절에 따라 잎을 내고 황홀히 / 물들다 취하여 돌아오곤 했다 / 부러진 잔가지들이 쌓이던 어느날 / 슬픔 속에 있을 때 / 당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 / 살아 숨쉬고 있는 내가 싫었다 // 외로운 마음으로 한 달만 살자 / 파도소리 들리는 언덕에서 / 뜬눈으로 한달만 살아보자 / 그리운 것들 사라지려나 / 팔을 뻗어 안지 못하고 / 빙빙 호숫가를 돌았다 / 발밑까지 따라와 밟히고 싶어하던 / 호수가 펑펑 울음을 터뜨리던 내내 / 그때에도 나는 나무였다 / 언덕 위 벙어리 나무였다 // 파도처럼 친밀한 사이였다가 / 모르는 사이로 돌아간다는 것도 / 당신이 나를 알지 못하는 날이 / 언젠가 오고야 말 것이라는 / 이것이 인생이라면 / 10년 후 쯤 마지막이 될 시를 / 오늘 당신께 쓰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것 모두 / 다 기억해 내 길고도 아득한 / 목이 긴 슬픈 이름의 시를 쓰겠다 / 한달 살이가 무엇이라고 / 파도가 높고 잔뜩 찌푸린 / 불편한 풍경이 가지에 자꾸 걸리는 // 수 억 광년의 길을 걸어 / 나무에게로 온 별빛을 모아 / 기초를 다지고 허공에 떠다니는 문장으로 / 기둥을 세웠다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 단어들을 모아 창문을 만들고 / 잊을 수 없는 풍경을 엮어 커튼을 만든다 / 목이 긴 슬픈 이름으로 지붕을 덮는다 / 떨어진 가지를 모아 마당에 친 / 울타리를 바라보며 그집에 누웠다 // 나무는 뼈만 남은 가지처럼 시가 되었다   한국 방문에서 시카고로 돌아온 지 오늘이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번번히 시차 때문에 한 달을 고생하곤 했다. 오는 날부터 낮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떠나기 전 미처 정리 하지 못했던 정원을 이틀 동안 다듬어 주었다. 짧은 소매 옷들을 다른 옷장으로 옮기고 수년 동안 입지 않았던 양복들을 큰 백에 담아 모아두었다. 긴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나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서재의 책들도 두 박스나 모아 버렸다. 자동차 바퀴 공기도 체크 해주고 차고안 낙엽도 치워주었다. 그렇게 분주한 일주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오늘 그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허공에 무수히 떠다니는 단어와 문장 때문에 눈을 감지 못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 같이 반짝이는 문장들을 놓치고 잠들 수 없었다. 반짝이는 한 문장을 데려다 기초를 다지고 다른 문장을 모셔와 기둥을 세웠다. 누웠는데 다시 별빛이 반짝인다. 지금 그 별빛을 데려오지 못하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서 다시 일어나 그 별빛을 엮어 지붕을 덮었다. 둥둥 떠 다니는 단어들로 창문을 만들었다. 책상을 지었고 잊혀지지 않는 풍경을 이어 커튼을 만들었다. 어느 새 나는 그 집의 주인이 되어 마당에 울타리를 치고 그 곳에 다시 누웠다.   찬바람에 가지만 남은 언덕 위 나무가 추워 보였다.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나무는 내 체온보다 더웠다. 그는 나에게 떨어진 가지를 주워 잊을 수 없는 이름을 땅 위에 써주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잊으면 안 되는 따뜻한 풍경도 보여주었다. 찬바람에 앙상해진 온 몸으로 오래 품어왔던, 자칫 잃어버릴 뻔한, 낙옆의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 보였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계절의 아픔도 감수한 채 이제 한 겨울을 살아야 한다. 몽롱하게 깨어나는 봄의 향기에 취할 때까지. 어둠의 깊은 뿌리로 부터 솟아나는 연두의 싹을 보게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꿈꾸며 살았어도 죽은 나무로 살아야 한다. 기억하고 기억해 내어 켜켜이 쌓여 목이 긴 슬픈 이름의 시를 기억해 내야 한다. 펑펑 울음을 쏟아내던 출렁이는 파도를 내려다 보는 벙어리 나무가 되어야 한다. 부서지는 파도를 싸매고 마음에 안아 그 울음을 삭혀야한다. 수억 광년의 까마득한 길을 걸어 내게로 온 별 빛처럼 다 타버리고 뼈만 남은 시만 남겨야 한다. 밤 하늘을 가르는 가녀린 별빛만 남겨져야 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벙어리 나무 문장 때문 추수감사절 연휴

2025.1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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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괜찮아요

서해 인천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한참을 달렸는데 아직 다리 위에 있다. 인천 대교다. 이 길을 다시 건너게 될까? 안개 너머로 다가오는 모습이 쓸쓸하기만 하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는데 다들 어디로 이렇게 바삐 가고 있는 걸까? 한 달의 한국 방문을 끝내고 시카고로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다. 다 주워 담지 못할 풍경과, 낯선 만남과, 발길 닿는 여행의 날들. 모두가 잊힐 리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여행의 반을 지낼 즈음 시카고가 몹시 그리웠다. 시카고로 간다.   사이의 힘 // 낙화하는 꽃은 더 이상 / 뿌리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법 //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 사이의 온도가 있다 // 너무 가까우면 뜨겁고 // 너무 멀면 식어 버린다 // 어느 쪽으로 기울지 / 알 수 없는 힘이 / 그 사이를 맴돈다 // 모든 사물은 서로의 사이에 / 서서 자신을 지탱하기도 한다 // 24시간의 벽에 부딪히기도 / 견디어 나가기도 한다 // 시차에 적응하느라 낮과 밤의 경계를 넘나든다 // 산다는 건 / 피고 지는 일 / 겨울 가고 봄 오듯 꽃이 핀다 / 가을 가고 겨울 오듯 꽃이 진다 / 꽃이 피었다 지듯 / 우리도 피어나고 진다 / 산다는 건 피고 지는 일 아닌가   밤새 잔 눈이 내렸다 쌀가루같이 내렸다. 새벽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몇 시간 내린 눈에 이렇게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버렸다. 위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눈은 계속 내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아래 덮일 것이다.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없을 것이고,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행복한 자의 마음에도 불행하다고 느끼던 안타까운 마음에도 공평히 내릴 것이다. 쌓이고 또 쌓이면 그곳에 집을 짓자. 누구도 쉽게 무너트릴 수 없는 견고한 집을 짓자.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평화가 가득하여 꽃이 마구 피어나는 하얗고 따뜻한 집을 짓자.   괜찮아요 / 눈이 내리고 있어요 / 오랜 이름을 불러보아요 / 무너지는 나의 기척을 알지 못해요 // 어디서 부터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 핏줄 선 손에 오랜 시간의 음각이 보여요 // 자신을 덜어 빈몸이 된 달처럼 / 깎여야 채울 수 있어요 / 그믐뿐이겠어요// 괜찮아요 / 눈이 쌓이고 있어요 / 반짝이는 윤슬의 기억으로 / 내 맘 같은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아요 / 달이 뜨고, 또 하루가 가고 / 파도의 결 하나씩 지워지고 있어요 // 일어나 허리를 펴는 남자 / 달빛이 남자를 껴안아요 // 파도를 깨우고 / 나는 눈을 뜨고 있어요 // 오래된 이름을 가슴에 불러 보아요 / 무너지는 나의 기척을 알지 못해요// 괜찮아요 / 세상을 하얗게 덮어줄 / 겨울이 오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미시간 호수 서해 인천 자의 마음

2025.12.0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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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말을 걸어오는 아침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 / 알지 못하는 당신이 말을 걸어오는 아침 / 대화를 해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 글을 읽다가 그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을 /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시인의 맘 / 정갈한 마음 같기도 하고 농부의 / 소박한 하루를 만나는 듯했소 / 고개 들지 못한 이유가 시 때문이라니 // 오늘은 새벽이 오기 전 아직도 반짝일 / 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았소 새날엔 / 가슴 가득 별들을 껴안을 거요 / 만나는 사람들에겐 별빛의 소중함으로 하늘에서 / 이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겠소 무엇을 달라 / 무엇이 부족하다 말하지 않으려 하오 / 밤이 깨어나 새벽으로 오고 있소 가까이 / 당신을 향해 걷다 보면 새벽은 나를 마중 나오고 / 동쪽 하늘 붉어질 하루 / 긴 호흡의 당신을 만나고  // 하늘과 별을 이야기해 주오 / 우리의 노력이란 단지 깨어서 바라보는 일뿐 / 무엇을 달라고 하는 내 안의 욕망을 멈추고 /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당신을 통해 시작된 / 물이 흐르는 일처럼, 바람이 지나는 일처럼 / 사람의 일도 그렇게 되어져, 밥을 먹다가도 / 옷을 입다가도, 감사하지 못하면 사람도 아니오 / 가던 길 서서 내게 물어보기도 하오 // 한술 밥으로, 한 벌 옷으로도 / 감사의 이유를 물어야 하지 / 나에게 있어 좋은 것이 너에게 없어 / 힘들어진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오 / 너에게 있어 나에게 없는 것이라면 / 나에게도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게 되오 / 나의 열심이 너에게 위기가 될 수 있고 / 나의 꿈과 성취가 누군가에게 상실이 된다면 /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게 되오 / 그러니 노을 따라 오늘도 걸을 수밖에 // 만삭의 보름달이 여위어져 가듯 / 조금씩 잃어져 가도, 멀어져 가도 / 밀물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 달은 여전히 달이고, 바다는 여전히 바다이듯 / 알 수 없는 당신이 말을 걸어오는 아침은 / 어제, 오늘 또 내일이라는, 어느 날에도 / 나에게 있어 좋은 것이 너에게 없더라도 / 너에게 있어 좋은 것이 나에게 없더라도 / 보이지 않는 당신의 창가에서 꿈꾸며 / 고즈넉한 가을밤 이렇게 빨리 잠들 수밖에    이층 계단을 내려옵니다. 맞은편 창문엔 아직 어둑한 새벽이 푸른 빛으로 앉아 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내려와 덱크의 문을 엽니다. 시야를 가린 호두나무의 잎들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서리 맞은 꽃들이 숨을 죽이고 뒤란은 낙엽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고요 속입니다. 올려다본 텅 빈 방이 내 앞에 다가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움과 기다림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친밀한 나의 벗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28년, 그 후 47년 미국 생활, 잃어버렸기에 다시 채워야 했던 빈자리들이 어쩌면 애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힘듦과 외로움은 오히려 나를 알아 가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계절에 따라 그의 모습에 반응하듯 꽃이 필 때 와 질 때를 스스로 알고 꽃대를 숙이듯 말입니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당신이라는 외로움과 미래를 위해 깊은 우물을 팝니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때로 밀려오는 파도같이 다시 찾아드는 힘이 됩니다. 결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부유함이나 지위나 풍요로움이 아닙니다. 다시 고독이라는 나와 세상사이 좁힐 수 없는 거리 앞에 서는 겁니다. 완장을 차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들은 몇 날이 걸려도 피해 가렵니다. 행여 찌그러기라도 물들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오늘도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이른 아침 언덕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을 바라보며 하루를 맞기도 합니다. 허락하는 만큼 삶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작은 몸짓에 반응하는 것. 오늘에 머물지 않으려면 내면의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내 호흡으로 살고, 내 땀으로 걸어야 합니다. 말을 걸어오는 아침이 소중한 이유는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동쪽 하늘 이층 계단 시인 화가

2025.10.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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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노래

빛을 잃을까 두려웠어요 밤이 / 내려 앉은 동네 어귀를 걷고 있어요 / 밤 고양이 야옹하며 담장을 넘어가요 / 놀란 건 나뿐이 아니라 어두운 밤이었어요 / 환하게 창가의 커튼이 열려있는 집 앞에서 / 당신의 창을 훔쳐보고 있어요 // 이곳에서 너무 멀어 긴 목을 내밀고 눈을 / 지긋이 떠야 해요 창가에 서서 / 하염없이 밤하늘을 보았는데 조금 더 /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묻기도 전에 타박타박 / 당신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가요 // 우리의 대화는 시간의 긴 흐름 위에서만 가능해요 / 어디에선가 떨고 있을 새들의 보금자리 / 젖은 날갯죽지 아래로 밤은 깊어가고 / 울고 있는 새들의 노래는 잦아드는데 당신은 / 이곳에 없네요 떨리는 다리로는 / 먼 길을 떠날 수 없잖아요 서둘러 오지 마세요 / 나는 반짝이며 손짓했어요 /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오르고 있어요 / 밤의 산등성이를 따라 오르고 / 또 오르다 보면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 당신 이마를 비출 거예요 /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마른 그믐달 아래서 하루에 / 두 번 길이 열린다는 작은 섬에서 / 바람에 눕는 갈대에 허리를 기대어 / 조금만 더 버틸 수 있겠냐고 물으려다 / 기대도 희망도 버린 채 하늘을 올려 보아요 / 별들의 노래가 텅 빈 호수를 채우고 호수는 반짝여요 / 거기 맞은편 언덕에서 다가오는 당신 이마에 / 흐르는 땀 닦아드릴께요 그럼에도 우리 / 여기서 천년의 별빛으로 만나요   별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밤 하늘을 가득 채운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가 듣고 싶지 않으신가요. 밤 하늘을 오래 올려다 보면 별들의 반짝이는 손짓을 볼 수 있어요. 별들은 입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빛으로 반짝이며 노래를 부르지요. 신기하게도 그 별빛이 내게로 오는 시간은 우리의 셈으로는 가능하지 않아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주 아주 오래 전 이 땅의 모양이 어색해서 분간하기 어려울 때 나를 위해 반짝이는 별들의 노래가 있었어요. 그 노래가 내게 들려 온다는 것은 기적이에요. 그래서 지금 별들의 노래를 듣고있는 시간은 내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어요.   아직 푸르러던 젊은 시절이었어요. 깜깜한 밤에 정라진 포구를 향해 언덕을 오르던 때였어요. 언덕길 양옆으로 검은 숲이 깊었고 하늘엔 별들이 총총 박혀서 빛을 내고 있었어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서둘러 발길를 재촉했어요. 울릉도로 떠나는 통통배를 얻어 타기 위해서 약속한 시간에 도착 해야 됐거든요. 그때 밤하늘의 별들의 노래가 들려 왔어요. 그 많은 별들의 반짝임이 다른 세상을 노래 하는 것 같았어요. 캄캄한 언덕길에 별들을 쳐다 보다 넘어지기도 하였지만 그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사실 요즘은 별들을 보기 위해 불빛이 없는 한가로운 시골을 찾을 때도 있고 도시를 떠나 깊은 산으로 들려 가야 선명한 별빛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웬만한 곳에서는 하늘 촘촘이 박혀 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거든요. 북극성이 어디에 있고 북두칠성이 어디에 있고 또 오리온자리가 은하수가 어디에서 반짝이며 흐르고 있는지 찾아내곤 했었거든요. 가끔 떨어지는 유성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있었지요. 오고 있을 아직 내게 도착하지 않은 수많은 별빛은 오늘처럼 누군가의 눈에 발견될 것이고 어떤 이의 창가에 머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마주친 당신 앞에 오랫동안 머무를 거에요. 힘에 겨워 간신히 머리를 든 당신의 이마에 송송 피어난 땀방울을 닦아드리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그때 밤하늘 언덕길 양옆 이의 창가

2025.10.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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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응급실 풍경

응급실에 꽃 단장하고 가는 사람은 없다. 쓰러져서 남이 911을 불러줘 가거나, 제 발로 가더라도 매우 아파서 가는 것이므로 제정신이 아닐 경우가 많겠다.   나도 아픔을 참다가 아무래도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살살 준비를 했다. 가면 여러 검사를 할 테니 샤워를 하고 속옷은 최소한으로 입고 아들아이를 불렀다. 나중에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책받침으로 정전기 일으킨 머리칼처럼 흰머리가 공중에 다 뻗쳐 부스스하더라만 알았어도 손을 못 쓸 상황이 펼쳐지는 곳이 응급실이다.   연휴에 놀러 가려고 여행 짐을 싼 아이는, 엄마의 호출에 병원에 데려와 등록하고 입원실 방배정까지 4시간을 기다렸다. 제 아빠와 바통 터치하고 여행지로 늦게 출발했다. 아들과 며늘아기에게 미안했다.   입원하면서부터는 인간이라기 보단 생체실험용에 가깝다. 어디 어디가 아프다는 하소연은 혼잣말일 뿐이고 침대에 실려 MRI를 찍고 CT를 찍으러 방사능 벙커로 간다. 서늘한 지하방에 기계음만 찰칵거리면 외계의 한구석에 와 있는 듯 낯설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Deep breath!” “Hold”를 반복하다가 “Breath out” 그때야 심호흡 쉬고 비로소 살아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몸을 스캔함과 동시에 지나온 지난한 세월이 찍힌다. 이번에 살아나간다면 잘 살아야지 하나마나한 결심도 한다. 방의 서늘한 온도가 냉동고 같아 기분이 나쁘다.   입원실로 무사히 돌아오면 링거와 바늘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끔! 은 살아있다는 표시이므로 참아본다.   응급실 첫날은 피검사, 소변검사, 링거 맞고, MRI를 찍고 둘째 날은 더 길고 긴 링거 맞고, 피검사, 수도 없는 당뇨검사, 무시로 혈압체크, 복부 초음파, 산소보충기 착용. 셋째 날에 또 피검사, 당뇨검사, 혈압체크, 가슴 엑스레이. 넷째 날 피검사, CT 두 차례, 항생제 링거. 온몸 구석구석 진단했으니 일 년 내 두고두고 받을 검사를 한꺼번에 받은 셈이 되었다. 복더위에 피서한 것으로 치니 차라리 잘 되었다.   새벽이면 어둠 속에서 쓱 나타나는 피검사 간호사는 마치 저승사자 같다. 그 이후 약을 주러, 혈압체크하러 간호사들이 들락거리면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더 말똥 해진다. 그 와중에 “코드 블루 웨스트 윙 607!”하는 방송이 연속으로 들리면 가슴이 철렁하다. 오늘 새벽 레테의 강을 건널 누군가가 또 있단 신호이다.   병원에 오면 공연히 겁도 나고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 병원 가기를 미루고 미루게 된다. 평소에 남편에겐 미안하다는 말 안 하고 뻗대는 자존심이 기계 앞에선 손 번쩍 들고 항복도 척척하는 이런 이율배반은 또 무어란 말인가?   남편이 간병한다며 곁에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드님은 벌써 가셨네요?” 한다. “나 원 참!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라니까 요 옷!” 이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응급실 풍경 응급실 풍경 피검사 간호사 피검사 당뇨검사

2025.10.0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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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꿈에서 만난 바다

부질없이 하루가 가네 / 어디쯤엔가 멈춰 설 초침처럼 / 길 아닌 길을 만들며 가지 / 안간힘의 별빛은 견디어내다 /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네 // 어찌할지 모르는 발걸음 / 다정한 풍경과 감싸오는 바람 / 왼쪽 가슴을 누르며 가네 / 파도가 밀려오고 모래는 쓸리고 / 말 못 한 수천 마디 대답이 / 밤하늘 별처럼 가슴에 박혀오네 // 바다가 보고 싶어 / 밀려오는 파도가 벌써 그리워지네 / 모래 위 물새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 양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숨결 / 눈을 감고 허우적대는 나는 어느 말로도 부끄러워 뜬 밤을 새우네 // 눈을 감으면 어느새 앞서 보이고 / 바다로 가는 언덕길은 저만치 서 있네 / 끝없이 펼쳐질 바다, 파도 소리, 짠 내음 / 길섶에 흔들리는 갈대를 가르며 가네 / 옆으로 누운 베개 밑으로 물살이 잠겨오네 썰물처럼 깊은 바닷속에 잠기네     무엇엔가 몰두하려고 애를 쓰네. 괜스레 호미를 들고 구석에 흙을 고르고 있네. 가을이 나뭇가지에 앉아 부질없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네. 주말엔 행사도 있고 작은 모임도 있지만 내키지 않아 하늘에 떠가는 구름만 보내. 있어야 할 사람이 그곳에 없을 때, 보여야 할 풍경이 희미해질 때,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길 아닌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당혹감이 엄습해 오네. 모든 일들이 부질없어 손에서 떠나가네. 내가 있는 곳에서 당신의 곳까지, 그리고 내가 보았던 굳이 기쁨이라 표현할 수 있는 비밀의 정원에서부터 모래언덕으로 이어지는 바다로 가는 둔덕까지, 가꾸지 않아도 때와 시간을 맞춰 피어나는 들꽃들의 청초한 모습이, 보내주었던 견딜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마음을 채우고 있네. 나비도 지쳐 날지 못해 거친 숨 내쉴 때 작은 들꽃처럼 나에게 왔지. 첫 발자국부터 마지막 걸음의 거리를 남겨두고라도 길을 잃은 적이 없네. 머릿속 각인된 길을 실제의 희미한 길보다 더 당당히 걸었지. 그곳을 걷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 했지. 들꽃 하나 지면 다른 꽃 하나 피어났지.     설레임으로 시작된 그대와의 만남 하늘가로 뻗은 가지 끝 가을이 가까이 와 묻었네     그대를 그리워함으로 산이 되어 숲을 품고 굽은 언덕의 긴 등성을 사랑하게 되었지     쓸어주고 어루만지는 바람으로 살기 위해 흐르는 별자리 그리다 길을 찾기도 하였네     고추잠자리 몸을 세워 바람에 날개를 맡기듯 내 한 몸 붉게 태워도 좋으리 눈가에 물들어 오는 가을로 살아도 좋으리     물방울 출렁이네 이리저리 부서져도 소멸되지 않는 기억 그대 세상에 단 한 사람 썰물처럼 바라만 보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들꽃 하나 왼쪽 가슴 시인 화가

2025.09.1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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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하늘을 보네 / 잔비가 내리더니 여름은 물러가고 / 낙서투성이 일기장 같은 계절이 오네 / 어디쯤인가 돌아서고 또 멈추어야 할 / 시작이 없으면 과정도 결과도 무의미하다는 / 사람을 지키는 일은 손의 일이기도 하여 / 두 손 모아 오라 반가운 손짓을 보내네 / 두 발로 걸을 때까지 // 강물의 흐름 위에 오늘을 보내고 있지 / 당신의 무릎을 찾아다니다 지치고 / 마지막 불빛 꺼지고 돌아갈 길 찾지 못할 때 / 길의 끝에서 사랑은 더 깊어 진다는 걸 / 어둠이 지고서야 알게 되었네 // 어느 날 몸의 기능이 멈추고 / 모두가 흙으로 돌아갈 어디쯤에서 / 파도가 뱉어낸 모래톱을 걸으며 알게 되었네 / 두 손을 모아 애타게 호수를 부르는 이유를 / 모든 원인과 이유가 한 곳으로 모아질 때 / 알게 되었네. 당신이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음을     이른 아침 얇은 패딩을 걸치고 뒤란에 나왔다. 바람이 차다. 한 무리의 꽃이 지면 또 다른 무리의 꽃이 핀다. 꽃들은 바쁘다. 지난 한 달 동안 일 년만큼의 일들이 있었다. 시 창작 아카데미를 준비하며 많은 분을 만났고, 지향 이창봉 신호철 시인의 삼인 삼색 시집 〈선물〉의 시작과 북 콘서트가 있었던 날까지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 열고 싶어도 열리지 않는 것이 마음의 문이다. 창작이란 개별적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쉽게 서로의 글을 마주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래서 만남은 조심스럽고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랜 삶 속에서 마주친 적 없는 분들이었기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스며드는 환희에 우리는 활짝 웃었다.   뒤란의 꽃들을 살피다가 저들의 이름 한자에 꽃 한 송이를 떠올려 본다. 꽃들의 모양도, 색깔도 다르듯이 시 한 편마다의 느낌과 감동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양지를 좋아하는 꽃들도 있지만 양지와 음지가 적당히 교차하는 곳을 선호하는 꽃들도 있다. 꽃의 향기도 달라 근거리에서도 꽃의 위치를 알아차릴 만큼 향이 짙기도 하지만 향이 거의 없는 꽃도 있다. 잔뜩 엎드린 앙증맞은 채송화가 있는가 하면 가을 찬 바람이 불 때쯤 산들산들 피어나는 아네모네도 있다. 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씨가 떨어져 살아나는 다소곳한 과꽃도 있다. 겹겹의 꽃들이 백 일 동안 피어있다는 백일홍의 풍성한 모습도 아름답다. 보라색 물감을 찍어낸 듯한 붓꽃도, 노랗다 못해 빛이 나는 달맞이꽃도 있다. 장미의 화려한 자태도,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코스모스도 있다.     달뜨면 나는 창가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세상의 모든 고요를 모아 당신 뜨락에 펼쳐 놓고 잠들고 싶다     손을 모아본다. 시를 대하는 태도는 진정과 애정이다. 꽃이 그렇고 나무가 그렇고 또한 사람이 그렇다. 뿌리의 진정으로 준비해 애착과 사랑으로 자라고 피운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쓰셨나요?”의 물음에 “무엇이 느껴지나요?”로 반문해 보면 어떨까. 깊은 대화는 여기로부터 시작된다. 보이는 무엇을 넘어 보이지 않는 내면을 서로에게 묻고 생각을 소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창작의 자유요 기쁨이다. 창작은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작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막을 수 없는 열정이다. 자신의 표현이고 자신의 결정이어야 한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창작 아카데미 가을 코스모스 애착과 사랑

2025.09.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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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람의 문

문을 열자 바람이 불었다 / 우리는 그 문을 바람의 문이라 불렀다 / 바람의 문은 여느 문과 달리 손잡이가 없다 / 어느 누구도 손잡이가 없음을 불평하지 않았다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어왔다 / 바람은 따뜻했지만 견고했다 / 문은 한 방향으로 열려 있었고 / 바람은 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 가을이 성큼 다가온 어느 날 / 햇살에 과일이 제맛을 내고 / 휘어진 가지마다 /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어 낼 때 // 그가 떠나고 바람이 불었다 /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익어갈 / 과일 같은 시들이 매달려 온다 // 보이지 않는 그의 발이 / 바람의 문을 연다   여름 내내 햇볕은 따가웠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는 밤새 세차게 내렸고, 아침이 되면 멈추곤 하였다. 그 사이에 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언어들을 깊은 내면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움츠렸던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 바람이 불어오듯 열린 방 안 가득 열기로 채워졌다. 서로에게 놀라워하였고, 서로를 향하여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잃어버린 나의 내면을 다시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한 번도 쓰지 못한 시를 여러 편씩 쓰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목소리로 본인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한 번도 꿈꾸어 보지 못했던 시 창작이 가슴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갈 즈음 우리는 짧은 시간에 시 한 편을 꽃 피우듯 피워내기도 하였다.   지난 한 달간 제2회 시카고 시 창작 아카데미가 이창봉 교수(중앙대 대학원)의 지도하에 37명의 수강생이 모여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밭을 일구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난해 여름 시 창작 캠프에 모인 인원만큼만 모이면 성공이라 생각했던 염려는 우리의 기우였다. 딱 두 배로 모였다. 어렵게 시작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서로를 가르치기보다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화합과 사랑으로 서로 나누며 지낸 한 달이 살같이 지나갔다. 시카고 문인협회와 예지 문학회 회원들을 제외하고도 반이 넘는 새로운 인원들이 등록을 했다. 시카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문학도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생각되었다. 시작반, 입문반, 창작반 이렇게 세 반을 통해 각자 원하는 반을 택해 스스로 소속 멤버가 되었다. 어떤 이는 창작반을 피해 입문반을 택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여러 모양으로 반을 심사숙고한 결과 조화롭게 반 편성이 되었다. 각 반은 주중에 따로 모임을 가졌다. 각반은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개별 모임을 통하여 시를 발표하고 시를 나누고 각자 살아온 삶을 나누었다. 1박2일의 시 캠프가 미시간 호수가 보이는 리트릿 센터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밤하늘 별을 노래하고 새벽의 일출을 보며 미시간 호수를 마음에 담기도 하였다.   시 창작 아카데미의 말미엔 이창봉 교수, 지향 시인, 그리고 신호철 저자 세 명의 삼인 삼색 시집 〈선물〉의 북 콘서트가 한인 문화원 비스코 홀에서 열렸다. 홀을 가득 메운 시를 사랑하는 시카고 교민들은 함께 모여 시가 있는 축제의 한마당을 이루어내었다. 이 열기는 조용하게 시카고를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줄 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피어날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들이 가을의 문턱에서 손짓하고 있다. 붉게 익어갈 시 한 편, 한 편이 주렁주렁 매달릴 가을 속으로 조심스런 걸음을 옮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신호철 저자 시작반 입문반 시카고 문인협회

2025.08.2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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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바람 불면 풀잎도 눕겠지요 /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 쑥부쟁이 하얀 꽃 밀랍 되어 /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 꺼져가는 당신을 안았지요 / 기댄 얼굴이 깃털 같아서 / 들썩이는 심장 소리에 날아갈까 숨도 쉬지 못했어요 // 마를 게 없는 남루한 등뼈를 손바닥에 각인시키며 / 빈 껍질로 지나가 버릴 것을 알면서도 /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지요 / 마른 가지의 잎이 덧없음을 알았을까요 // 한 가닥 감정이 붉어져 / 귓가에 흰 눈이 소복하게 앉았던 날 / 힘없는 눈빛이 다녀오라는 말 대신 / 진통의 시간을 침묵으로 쏟으셨지요 / 천근의 눈꺼풀을 감지 못하셨지요 / 열 갈래 흐트러진 소음으로 감아 내렸지요 // 의연하지 못한 슬픔이 연극처럼 막을 내리고 / 철없던 시절은 돌아올 수 없는 계절을 보내고 /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 왔다가 /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 그 아득함으로 그때가 되면 / 나도 바람 따라가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마지막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와서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없이 늦게 와도 먼저 떠날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모질게 긴 세월을 이 땅에 뿌리 내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같이 우리를 지으신 이 앞에 서게 될 날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조차도 예외 없이 돌아가는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선물이라는 책을 만든 저자 세 명이 Ross Hill 묘지를 찾아갑니다.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갑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손 잡음을 경험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또 당신은 나에게 무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나눕니다. 우리는 한낮의 오후에 세 그루 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묘지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침묵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제 어디서인가 맞닿은 풍경이 우리의 머릿속을 영화의 장면처럼 지나갑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이 되어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질문 앞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한낮은 더위도 우리의 발걸음을 떼어 놓지 못합니다. 한동안 먼저 가신 당신들과 아직 살아서 종착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대화는 끝이 없습니다. 마치 작은 간이역을 통과하는 열차 속 사람들처럼 다음 역을 기대하며 높은 등받이에 몸을 기댑니다. 차창 밖으로 내려놓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는 태양을 한동안 붙들어 놉니다.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우리는 돌아옵니다. 끝도 없이 우리는 작은 묘비에 써있는 이름들을 불러주며 지나갑니다. 어딘가에 세워질 내 묘비 하나씩을 떠 올리며 묘지와 세워질 묘지의 긴 강을 건너갑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그 길을 갑니다.   눈부셨던 봄빛도 스러집니다. 찬란한 윤슬의 반짝임도 멀어져 갑니다. 겨울의 찬바람도 윙윙 귓가를 지나갑니다. 슬픔도 사라지고, 웃음도 저 언덕을 넘어 숲으로 감추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당신을 보냈습니다. 회한의 모퉁이마다 덧없음이 바람으로 섞여왔다가 바람처럼 지나간다는 걸. 아득한 그때가 되면 우리 모두도 바람 따라간다는 걸. 연극은 막을 내리고 텅 빈 무대엔 남겨진 말들이 살아나 가벼워진 황홀로 맺혀 있을 겁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묘비 하나씩 심장 소리 시인 화가

2025.08.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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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행복의 법칙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습니다 / 던져진 말이 귓속에 맴돌았어요 // 말의 처음과 나중을 이은 문장이 / 내 안을 들여다 볼 때면 / 나는 환해진 내 속을 드러내고 / 밤의 별빛을 따라 흐르는 당신을 / 노래하겠노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 어제는 밤의 너른 품에 안겨 / 하늘에 펼친 어둠의 휘장을 열어 주었어요 / 당신의 머리로부터 나의 가슴으로 이어진 / 말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진 / 매듭을 단단히 매어 주었습니다 // 별빛을 모아 노래를 몇 곡 지었고 / 밤하늘에 노래 몇 곡을 묻어주기도 하였습니다 / 별들의 긴 목을 껴안고 당신의 창가로 내려와 / 상기된 양 볼로 새벽을 맞았습니다 // 말을 삼키며 기다리는 동안 / 아침이 당신의 창가에 햇살로 스며왔습니다 / 어제는 밤새 집을 짓느라 잠들지 못했습니다     행복을 나에게서만 찾다보면 어쩌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도 끝내 행복을 찿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자. 눈을 내게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돌려보자. 나의 행복이 아닌 내 이웃의 행복을 찾아보기로 하자. 놀랍게도 쉽게 저들의 웃음을, 저들의 활기찬 하루를,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행복에 관한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심리학 강의 시간에 교수는 학생들에게 풍선 속에 자기 이름을 써서 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워 모두 천장으로 날려 보내고 자기의 이름이 들어 있는 풍선을 5분 동안 찾아보라고 하였다. 5분이 흘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 주도록 하였다. 순식간에 학생들은 쉽게 풍선 하나씩을 가졌고 풍선 속에 이름을 보고 풍선을 전해주었다. 풍선을 찾아 전해준 사람이나 풍선을 받은 사람들의 표정은 밟고 행복해 보였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만 장님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라고 말하였다.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했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이 어렵다는 말이고, 편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설잠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두움에서 밝은 빛 가운데로 발걸음을 뗄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먼 곳에서, 현실성이 없는 큰 성공이나 특별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안부를 건네는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에, 힘든 고난의 시간에 내밀어 주는 편안한 손 잡음에 우리의 어깨는 펴지고 입가에 웃음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같이 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 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라. 그러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지금 시험한 자기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만 장님처럼 헤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라고 말하였다.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했다는 건 지금 내 상황이 어렵다는 말이고, 편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설잠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두움에서 밝은 빛 가운데로 발걸음을 뗄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을 먼 곳에서, 현실성이 없는 큰 성공이나 특별한 순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안부를 건네는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에, 힘든 고난의 시간에 내밀어 주는 편안한 손 잡음에 우리의 어깨는 펴지고 입가에 웃음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같이 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 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라. 그러면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행복은 바로 내 손안의 작은 꽃밭을 가꾸는 일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풍선 하나씩 자기 풍선 자기 이름

2025.08.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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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 앞에서

나의 하루는 / 색으로 피어납니다 // 어제는 파란색 / 푸른 하늘 / 연 꼬리 길게 늘어뜨린 / 흰 바람이었습니다 / 밤새 별들이 울다 간 / 꽃잎 흩어진 아침 / 전혀 회색입니다 / 오늘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 침묵입니다 / 혹 내일은 / 색깔을 되찾고 싶습니다만 / 초록으로 돌아갈 겁니다 / 숨이 트이는 곳 / 꽃봉오리 터지는 곳에 / 귀 기울이겠습니다 // 나의 하루는 / 색으로 칠해집니다 // 빌딩의 숲속에서 / 꺼지지 못하는 / 당신의 창을 찾아 / 초록이 자랄 수 있게 / 숲의 향기 스밀 수 있게 / 잠 못 이루는 창 / 닦아드리겠습니다 / 칠하고 덧칠함으로 / 껴지고 꺼짐을 반복하면서 / 당신과의 거리 좁혀가면서 /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 붉은 노을로 지겠습니다 / 나를 다 드려도 / 샘이 되지 않는 당신 앞에 / 뜨겁게 물들어 가겠습니다     하루가 색으로 피어난다? 색으로 칠해진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러다 혼자 피식 웃었어요. 허리를 구부렸다가 펄쩍 뛰어보기도 하였죠. 혹 지나가던 사람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혀를 차며 바라보았겠죠.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참 안됐다고요. 그럼에도 그건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 눈에 비친 어떤 풍경도 색을 띠지 않는 사물과 사람을 담고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될 수 있지요. 세상의 모든 화가의 눈엔 평범한 사람들 눈에 스치는, 사라지는 색 그 이상의 강렬한 색들이 보이겠지요. 그저 평면적인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색에 감정이 섞여 버무려진 움직이는, 살아나는 색들이 쿵 하고 가슴에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을 색으로 칠하고 이야기를 그리고 그 안에 사유를 담으니, 말이에요.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내 안엔 온통 일, 일, 일의 중독이 돼요.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하루가 다 가도록 고개 들어 그 아름다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아요. 빈들 가득히 바람에 일렁이는 들풀의 유희도,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는 야생화의 신비로움도, 쉼도 없이 밀려오는 광활한 미시간 호수의 파도도 그것을 자라게 하신 그분 손끝의 사랑 때문이지요. 우리 이제 그 손끝을 따라 하루를 시작해요. 우린 썩어갈 것들을 쫓아 발끝만 바라보고 많은 날을 살았어요. 우리에게 늦은 시간이란 없어요. 이제 하늘을 보며 살아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나무에 새순이 언제 피었는지, 그 색이 연두였는지 핑크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아요. 앙상한 가지에 어느새 잎들이 수북이 가지를 덮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고개 들어 나무를 바라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적이 없으니까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나요. 얼마나 작은 꽃봉오리가 꽃잎을 서로 붙들고 땀 흘리며 견디어 냈는지 기억하시나요? 스쳐 간 기억조차 아물거리니 생각이 남아 있을 리 없지요. 오늘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들의 색들을 기억하기로 해요. 그 색들 앞에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따뜻한 언어로 담아주면 어떨까요. 적어도 창조주의 손길을 다만 작은 부분이라도 공유하며 사는 것이 그분에 대한 바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시를 쓴다고 이름 석 자에 시인이란 호칭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어요. 아니라고 나는 아직 시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요. 뒤돌아 오면서 나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은 시인입니까?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순수와 열정을 회복해야겠어요. 하루가 어둠의 색으로부터 찬란한 빛의 색으로 피어나는 언덕에 다시 서겠어요. 당신의 손끝이 잠들은 씨앗들을 깨운 빈들의 기적 한가운데서, 당신의 긴 호흡을 느끼겠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시인 화가 미시간 호수 그분 손끝

2025.08.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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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詩)란

지쳐 잠드는 것이고 / 흔들려 깨어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 단어를 주워 짜맞추는 게 아니라 / 가슴을 치는 일을 받아 적는 일이다 / 깨달음을 위해 애쓰기보다 / 길을 걷다 눈에 띈 들꽃을 /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다 / /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 쓰여지는 것이다 / 지나온 걸음 속에서 /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 마음속에 흐르는 노래를 / 그저 흥얼거리는 것이다 / 사랑과 그리움, 절망을 / 아파하고 안아주는 일이고 / 널 보내지 못한 나를 꾸짖는 일이다 / 세상을 향한 날 선 독백마저 오늘 / 부딪치며 넘어지며 살아가는 / 나에게 보내는 편지요 / 당신께 드리는 용서인 것이다   나는 침대 모퉁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조금만 옆으로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아 한 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버티고 있다. 누가 나를 누르거나 밀쳐 내는 것이 아닌데 나는 여전히 침대 모서리에서 힘들게 잠을 청하고 있다.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비몽사몽 간에 한쪽 어깨가 저려 와 몸을 뒤척이다 결국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 소리를 듣는 순간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다시 침대에 누웠다.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뜬눈으로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고 있다. 잠깐 일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절박한 상황을 매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천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긴 시간을 짧게, 또 짧은 시간을 길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견디어낸다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하루를 견디어내고 한 계절을 견디어내야 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나이를 견디어내야 했고 내 삶에 갑자기 찾아와 귀 기울여야 할 것들에 대해 응답해야 했다. 어느새 피어난 들꽃, 흔들리는 풀잎의 춤사위에, 무심히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에 눈을 떠야 했다. 밤하늘 별자리를 세다 잠들고 싶었다. 깨어있는 새벽엔 그리운 이름을 부르기도 하면서 견디어 내야 했다. 내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어제는 중앙대학원 이창봉 교수님의 첫번째 시 창작 강의가 있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눈초리와 교수님의 진지한 열강에 잠자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내 안의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 안에 세계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시는 절박한 필요에서 나와야 한다. 사물과 존재의 본질을 깊이 보게 될 때 시는 탄생하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은 시의 원천이 되고 내면으로 향하는 고독이 시가 되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삶과 죽음은 하나다.‘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경험해야 할 존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내면의 성찰과 예술의 원천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사물을 정성스럽게 바라보면 단순한 대상도 깊은 존재의 신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에, 우주에 존재의 근원과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는 창조주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손길을 알아차리는 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워도 가슴 저리는 시 한 구절에 새벽을 맞는다. (시인, 확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침대 모서리 침대 모퉁이 근원과 우주

2025.07.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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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빈들의 하루

빈들의 하루    어디로부터 왔는지 왜 당신 앞에 서 있는지 아마 모르시겠죠 긴 세월, 먼 길을 돌아 당신 등에 기대어 있는지 잊으셨나요    어제의 어깨 위로 지나가는 바람결 따라 당신의 마음을 훔치고 어느 세월 여기에 왔어요 잠들은 태고적 고요, 공룡의 실루엣 처럼    정지된 하늘과 땅 사이 발끝 닿지 않은 심층까지 미지의 세상에 뿌리 내려 순백의 빛으로 오는 아빠 어깨같이 듬직한 당신 내 말만 쏟고 돌아 갑니다 둥굴고 넓은 당신 품 심장 소리에 살아납니다    나무는 하늘을 받들고 하늘은 나무를 안고 하루가 지고 있다. 너른 들녘엔 반딧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찬바람에 푸릇푸릇 들불의 흔들림이 마치 온 들이 손을 잡고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어둠은 점점 내려앉아 하늘과 나무의 경계는 사라지고 창밖은 검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고요한 정적이 내리고 있다.   하루가 저물듯 하루가 온다. 어제의 나무가 새날을 맞이하고 어제의 새들이 보금자리에서 깨어나 아침을 노래한다. 하늘은 구름과 어제와 다른 바람을 품고 밝아오고 있다. 나무의 끝까지 들은 손을 뻗어 하늘을 부르고 하늘은 아침을 바람에 실어 나무의 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헨델의 파사칼리아의 선율이 피아노 건반을 미끄러지듯 타고 잠든 세상을 깨운다. 52개의 하얀 건반과 36개의 검은 건반을 고르며 가늘고 긴 섬세한 손이 밝아오는 길로 마중 나간다. 모든 생명체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시계의 초침같이 세미한 걸음으로 새날이 내 앞에 선다. 나무의 그림자처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라벤더 보라 꽃봉오리가 아침햇살에 굽어진 허리를 편다.   비가 잠깐 뿌렸는데 들과 나무숲과 하늘이 깨끗해졌다. 공기 속 먼지들을 흡수하고 숨이 깊어졌다. 하나님이 하늘 창문을 열고 아래 숲속을 바라보시다 잠깐 비를 뿌렸더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뿐이 아니다. 나무도 숨을 고르고 숲속 작은 벌레들도 꿈꾸듯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열심히 기어다닌다. 나도 그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한낮의 황홀 속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이쪽저쪽에서 생명의 환호성을 듣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게 주어진 24시간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은 생각만 하는 꿈처럼 살지 말자. 꿈을 현실처럼 살자. 작은 씨앗 속에 푸른 하늘과 바람과 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아 마침내 피워낼 한 송이 꽃처럼. 내 안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무수한 단어들, 문장들을 꺼내어 한 편의 시를 노래해 보자. 어디선가 날아와 발길을 인도해 주는 나비의 날갯짓 따라 나도 춤추듯 간다. 꿈꾸었지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감추어진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철마다 다른 얼굴을 내미는 들꽃의 속삭임에 취해 나만의 비밀의 정원을 걷고 있다.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 너를 만나고 또 나를 만나고 싶다. 문득 호수가 보고 싶다. 밀려오는 파도의 하얀 부서짐이 내 귀에 들려온다. 기진했던 심장의 박동이 힘차게 살아나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하늘 창문 실어 나무 피아노 건반

2025.07.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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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너의 서 있는 자리

누구나 서있는 자리가 있지 / 서로를 바라보다 떠나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 찬찬히 너의 자리로 걸어오는 저녁 / 깃털의 날림같이 공기를 밟고 있었네 // 잎사귀 위로 물방울 궅러 내리고 / 잔 가지마다 가득히 써 내려간 손 편지 / 서둘러 모아지는 빈자리마다 /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지 // 너의 호흡은 향기가 되어 머물고 / 따뜻한 한낮의 햇살이 되어 녹아져 / 싸리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픈 소리가 되었지 / 감추어진 곳까지 속절없이 부딪혀오는 // 너의 손을 스치는 들풀의 누음도 / 너의 앞을 쉬지 않고 흐르던 강물도 / 먼 길 돌아 다시 만난다 해도 / 너의 깊은숨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 너의 서 있던 빈자리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 같아 / 서산에 걸친 노을처럼 / 비껴간 너의 그림자를 뒤쫓아 가네     나의 자리가 있고 너의 자리가 있다. 누군가의 자리에는 누군가의 자리에 어울리는 저만의 자리가 있다. 나무의 자리에는 나무가 있고 꽃의 자리에는 꽃이 있다. 넓은 들에는 들풀의 자리가 있고 흐르는 강에는 물결의 자리가 있다. 넓은 바다에는 밀려오는 파도의 자리가 있고 밤하늘에는 별들의 자리가 있다. 깊은 숲에는 새들의 자리가 있고 그 아래 덤불에는 들짐승들의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땀을 흘리기도 하고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기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걸으며 넓은 세상을 마주하면서 위로받기도 하고 무상으로 내리는 선물 같은 햇살과 마주하며 치유되기도 한다.     너의 서 있는 자리에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나의 자리에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한다. 우리는 움직이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다. 다른 풍경을 마주하면서 생각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 걸음이 느려지면서 나의 자리를 뒤돌아보게 되지만 이때 또한 내가 서있는 자리가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어떠한가. 나무는 나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보이는 줄기와 잔가지만큼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다. 그 뿌리가 너무 얕으면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마침내 쓰러지고 만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는 반면 치열하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서 있는 자리를 견고히 한다. 꽃들의 자리를 오래 버텨주기 위해,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식물은 꽃을 바치는 꽃대궁을 다른 줄기에 비해 단단히 자라게 한다. 그래야 무거운 꽃들을 꺾이지 않고 오래 지탱하게 된다. 사람은 사람대로 동식물은 그것들대로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버티고 살아간다.   너의 서 있는 자리는 그만큼 중요하다 / 너의 버텨내는 아픈 소리가 들려올 때 / 나는 잠들었던 세포들을 깨운다 / 조금만 더 버티어보라고 / 마지막 힘을 모아보라고 / 저무는 노을을 향해 소리쳐본다 / 너의 서 있는 빈자리 / 비껴간 너의 그림자는 / 떠나간 엄마의 뒷모습만큼 / 속절없이 부딪혀 온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잎사귀 위로 시인 화가 싸리문 사이

2025.07.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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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 전 젊은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산다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노래 뒤를 편안히 뒤따라오며 전체를 아우르는 기타 반주 때문이었다.   행여 늦을까? 처져 있는 느낌이 되지 않을까?의 염려를 무색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뒤를 받쳐주는 편안함을 느껴보았다. 삶의 보조를 맞춰 걸음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삶의 고난 속에서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보기도 하고 삶의 어려운 고비마다 발끝에 힘을 모아 뛰어보기도 한다. 때로 기쁨으로 다가오는 순간에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어 나를 지으신 이에게 기도하기도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고무케 한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지는 정원의 아침이 밝아올 때. 다시 오겠다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들, 가령 예를 들자면 작은 묘목, 잔가지를 많이 가진 나무, 스스로 씨를 뿌릴 줄 아는 들꽃들이지요.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잎을 펼치고 주먹만 한 꽃망울을 터뜨린다. 조용히 그들의 곁에 다가가면 반가움의 인사를 내 눈에 마구 쏘아대는 것이 아침햇살처럼 따스하다. 바람에 손을 흔드는 건지 잎사귀가 앞뒤로 팔랑거린다.   아침을 뒤따르며 저들의 걸음을 따라 한걸음 물러 걸어본다.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걸음은 바른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숨을 고르고 흘러가는 계절을 바라보다 보면 세상의 행복은 다 나의 행복이 된다. 무슨 세상의 행복이 다 자기 행복이냐고 반문하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작은 꽃 한 송이 피어나는 데에도 몇 계절이 바뀌어야 하고 수많은 낮이 지나고 밤이 찾아와야 한다. 꽃 한 송이 속에는 바람과 햇살과 밤하늘 별빛과 아침을 기다리는 그리움과 기대어 함께 자라고 피어나는 연민과 쏟아지는 빗줄기의 시원함과 한나절의 목마름이 층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내게서 사라지는 날이 오면 나는 사라진 존재로 남겨질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앞에서 나의 숨이 거칠어진다면 나는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뒤돌아 계절을 배웅하면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건 찰나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그 시간 속에 펼쳐지는 모든 것은 내 것이 된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세월을 탓하지 말자. 그 시간을 소중히 함께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 새 나의 손을 잡고 시간의 은밀한 첫 시작부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친밀한 손잡음으로 연결해 줄 것이다. 퀼트의 조각처럼 엮어 이어지는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나이 들면서 소중한 것 하나는 노동이다. 노동은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결과는 늘 정직하다. 헛되게 부풀려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무풍선처럼 김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땀 흘리며 일 한 후 찾아오는 보람이랄까. 아니 행복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 정원에 호미 한 자루 들고 시작한 정원일은 정오를 훨씬 넘긴 후에야 허리를 편다. 소쿠리에는 한 움큼의 잡초와 시든 꽃가지와 부러진 나뭇가지와 마른 잎사귀들로 가득하다. 불필요한 삶의 찌꺼기들도 광주리에 가득 걸러지는 아침을 맞이하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정원에서 당신이 보내준 것들을 가꾸다 어느 날 당신이라는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 가고 다시 뜨거운 여름이 왔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밤하늘 별빛과 통기타 가수 묘목 잔가지

2025.06.3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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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아름다운 세상

바람에 종이 인형처럼 마냥 휘날리더라 / 아무것도,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 바람에 밀려가는 네가 쓸쓸해 보이더라 / 걸음을 모아 하늘에 날려보내도 좋겠더라 // 바위에 부딛혀도 아프지 않더라 / 흩어지다 모아지고 또 산산히 부서지는데 / 세상을 잃고 춤추는 네가 서글퍼 보이더라 / 두손을 모아 호수에 담아도 출렁이더라 // 오늘 다짐하라던 서늘한 네 목소리 / 돌아서는 마음을 다잡아 나무 한그루 심었네 / 세월이 지나야 아름다워질 것들이 보이네 / 전나무 푸르름같이, 너의 깊어지는 눈망울 같이 // 내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보다가 / 후미진 곳에 꽃을 피운 네마음을 알겠더라 / 매일 가져야하는, 느껴야하는, 먹어야하는 /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고 귀하게 저무는 하루 // 내것이 아닌 것을 내것이라 말할 수 없듯이 // 행복을 채워줄 수 없는 작은 것들로부터 / 보이지 않는 당신의 손이 내 작은 생각보다 / 크고 높은 곳으로 이끄심을 느끼네 // 슬픔과 괴롬 가운데 넘어진 너의 근심이여 / 큰것이 아닌 작은 사소함으로 부터 밀려오는 / 당신의 눈길, 그 평안의 길을 걸어야하네 / 일상의 일들이 신성한 순간으로 이어지는 길로   아름다운 세상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엔 전혀 감흥이 다가오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마음 속엔 불만과 갈등의 요소로 가득 차 있기에 마음의 눈을 뜨고 그 풍경을 내안의 평안으로 기쁨과 경이함으로 마주할 시간을 순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 속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마음으로는 아름다음이라는 고요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비관론자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스스로를 어둠의 나락으로 내몰 때도 있다. 일정기간 주어진 삶의 순간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늘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찿아옴에는 이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것이 진실이고 그것이 삶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터로 가야 하고 온종일 일한 후에도 쉬지 못하고 part time 일을 해야 한다면 그 마음 속엔 쉬고 싶고 눕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쉼이 필요하고 또 포근한 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는 내일을 위하여, 조금 나은 미래의 삶을 누리기 위해 이 모든 순간을 참으며 노력한다. 만약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하자. 그 후에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풍족한 삶을 위해 끊임없는 그의 사투는 계속될 것이다. 이쯤에서 그의 삶을 복귀할 필요를 느껴야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물음 앞에 겸허히 서야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담장 후미진 곳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 한송이가 길가던 그를 멈춰 세웠다면 그때 그의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한 순간을 마음 속에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삶의 아픔은 치유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산다는 말은 그의 안에 아름다운 세상을 품고 산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see와 watch의 차이, hear와 listen의 차이를 알게 되면 우리 모두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있어서 볼 수 있는,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관심을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태도의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귀가 있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소리를 찿아내는 순간들이 잦아질 때 삶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다. 슬픔이 깊을수록 그 속에서 행복의 씨앗들을 찿을 수 있는, 아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밝아올 새벽의 먼동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전나무 푸르름 나무 한그루 종이 인형

2025.06.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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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창가에 비

마음속에도 비가 내린다 이른 새벽부터 한낮까지 젖어오는 꿈으로 팔을 뻗어보아도 하늘 가득 젖어오는 창가에 비 하염없음 만으로 잠겨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여 동그란 잎사귀 비에 젖어가는 제 몸의 무게에 고개를 떨구는 두 손을 모아 지탱해 주어도 하염없이 뿌리치고야 마는 혼탁한 언어를 지우며 젖어오는   그늘 틈새 얼굴을 내밀어도 저물어가는 어둔 길을 걸어도 보이지 않게 밑줄을 그어도 펄떡이는 새의 심장으로 날아와 눈물로 길게 적어 내리는 편지 흘러내리다 지워지기도 하는 당신이 보내온 창가에 비   Chopin - Spring waltz(Mariage d’ Amore)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비가 내리는 창가에 앉아 있다. 모든 게 정지된 정원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길게 자란 하얀 데이지, 보라색 제비꽃들이 산들 흔들리고 있다. 창문엔 빗물이 흘러내리고 그 긴 자국을 연신 지우고 있다. 빗물은 다시 너에게 보내는 한 줄의 연서같이 자꾸 내 마음을 적어 내린다. 내리는 비에 무거워진 나뭇잎들은 한 결로 고개를 떨구고 고해를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세상은 그다지 어둡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시간의 틈새를 살피다 보면 마음에 전해오는 따뜻한 숨결도 있고,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촉촉한 눈길도 있다. 그래서 지친 밤을 보내고도 아침을 맞이하는가 보다.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도 창가의 비를 바라보고 있나요. 그 비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되어 마음으로 흐르는 강이 되어 오고 있나요.   비를 맞아본 적이 있다. 처음엔 비에 옷이 젖고, 그 후엔 온몸이 비에 젖어간다. 얼마 후 마음 속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마음도 비에 젖어간다. 가랑비는 가랑비대로, 보슬비는 보슬비대로, 소나기는 소나기대로 온몸과 마음에 사뿐히 때론 세차게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젖어드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얼마 후면 감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몸과 마음까지도 비에 젖어갈 것이다. 창가에 앉아 비 오는 뒤란을 바라보고 있다. 장대 같은 나무도, 작은 묘목도, 꽃을 피우는 모든 식물이 조용히 움직임 없이 비를 맞아내고 있다. 무거워진 가지가 아래로 처지고, 작은 묘목의 잎들도 빗방울을 담아낸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 새들의 놀란 가슴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접었다. 나도 창을 사이에 두고 비에 젖어드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창가에는 빗소리와 함께 피아노의 청아한 멜로디가 들려오고 창가에 비는 마음에 젖어오는 시간을 소환하고 있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가깝게 붙어 있단 생각이 든다. 사랑의 마음 속에 한톨의 미움도 없을까? 미움의 마음 속엔 한 조각의 사랑도 없을까? 사랑 속의 한 톨의 미움이 더 아플 수 있다. 미움 속의 한 조각 사랑이 더 눈물겨울 수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다 사랑과 미움의 거리는 사실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과 미움의 정의를 나 스스로 정해놓으면 사랑 속 미움의 순간을, 미움 속 사랑의 조각들을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순간을 시계 초침같이 내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비가 내리는 아침부터 낮까지 시간에 따라 지워지기도 하고 다시 생겨나기도 하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 그 소중한 순간들, 그리고 지울 수 없이 마음에 깊게 새겨진 풍경들을 이제 기억해 내야 함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의 조각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조각 사랑 온몸과 마음 피아노 연주

2025.06.0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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