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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말을 걸어오는 아침

Chicago

2025.10.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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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 / 알지 못하는 당신이 말을 걸어오는 아침 / 대화를 해본 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 글을 읽다가 그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을 /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시인의 맘 / 정갈한 마음 같기도 하고 농부의 / 소박한 하루를 만나는 듯했소 / 고개 들지 못한 이유가 시 때문이라니 // 오늘은 새벽이 오기 전 아직도 반짝일 / 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았소 새날엔 / 가슴 가득 별들을 껴안을 거요 / 만나는 사람들에겐 별빛의 소중함으로 하늘에서 / 이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겠소 무엇을 달라 / 무엇이 부족하다 말하지 않으려 하오 / 밤이 깨어나 새벽으로 오고 있소 가까이 / 당신을 향해 걷다 보면 새벽은 나를 마중 나오고 / 동쪽 하늘 붉어질 하루 / 긴 호흡의 당신을 만나고  // 하늘과 별을 이야기해 주오 / 우리의 노력이란 단지 깨어서 바라보는 일뿐 / 무엇을 달라고 하는 내 안의 욕망을 멈추고 /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당신을 통해 시작된 / 물이 흐르는 일처럼, 바람이 지나는 일처럼 / 사람의 일도 그렇게 되어져, 밥을 먹다가도 / 옷을 입다가도, 감사하지 못하면 사람도 아니오 / 가던 길 서서 내게 물어보기도 하오 // 한술 밥으로, 한 벌 옷으로도 / 감사의 이유를 물어야 하지 / 나에게 있어 좋은 것이 너에게 없어 / 힘들어진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오 / 너에게 있어 나에게 없는 것이라면 / 나에게도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게 되오 / 나의 열심이 너에게 위기가 될 수 있고 / 나의 꿈과 성취가 누군가에게 상실이 된다면 /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게 되오 / 그러니 노을 따라 오늘도 걸을 수밖에 // 만삭의 보름달이 여위어져 가듯 / 조금씩 잃어져 가도, 멀어져 가도 / 밀물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 달은 여전히 달이고, 바다는 여전히 바다이듯 / 알 수 없는 당신이 말을 걸어오는 아침은 / 어제, 오늘 또 내일이라는, 어느 날에도 / 나에게 있어 좋은 것이 너에게 없더라도 / 너에게 있어 좋은 것이 나에게 없더라도 / 보이지 않는 당신의 창가에서 꿈꾸며 / 고즈넉한 가을밤 이렇게 빨리 잠들 수밖에
[신호철]

[신호철]

  
이층 계단을 내려옵니다. 맞은편 창문엔 아직 어둑한 새벽이 푸른 빛으로 앉아 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내려와 덱크의 문을 엽니다. 시야를 가린 호두나무의 잎들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서리 맞은 꽃들이 숨을 죽이고 뒤란은 낙엽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고요 속입니다. 올려다본 텅 빈 방이 내 앞에 다가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움과 기다림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친밀한 나의 벗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28년, 그 후 47년 미국 생활, 잃어버렸기에 다시 채워야 했던 빈자리들이 어쩌면 애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힘듦과 외로움은 오히려 나를 알아 가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계절에 따라 그의 모습에 반응하듯 꽃이 필 때 와 질 때를 스스로 알고 꽃대를 숙이듯 말입니다.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당신이라는 외로움과 미래를 위해 깊은 우물을 팝니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때로 밀려오는 파도같이 다시 찾아드는 힘이 됩니다. 결코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부유함이나 지위나 풍요로움이 아닙니다. 다시 고독이라는 나와 세상사이 좁힐 수 없는 거리 앞에 서는 겁니다. 완장을 차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들은 몇 날이 걸려도 피해 가렵니다. 행여 찌그러기라도 물들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오늘도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이른 아침 언덕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을 바라보며 하루를 맞기도 합니다. 허락하는 만큼 삶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작은 몸짓에 반응하는 것. 오늘에 머물지 않으려면 내면의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내 호흡으로 살고, 내 땀으로 걸어야 합니다. 말을 걸어오는 아침이 소중한 이유는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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