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피어나던 날이었어요 / 꽃잎이 떨어질 아픈 시간도 담고 있네요 / 눈을 들어 자세히 봄을 바라볼 때면 / 수정체 깊숙히 맺혀지는 봄을 볼 수 있지요 // 다만 온 마음을 다해 봄날에 귀 기우릴 때 / 심장 뛰는 왼쪽가슴 언저리로 뻐근히 들려오는 / 꽃잎의 옹알이가 노래처럼 온답니다 // 무심히 걷는 들길에서도 눈길을 피하지 못해 / 그 길 위에서만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 숨쉬는 동안의 설레임 이었다는 것을 // 맞아, 그것은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코 끝이 찡하게 우는 것이지 저기 / 세상은 눈을 감아도 그렇게 깊은 것인 줄 알까 / 네가 살고 내가 살아서 때도 없이 당겨지는 힘인 줄 / 몸속 세포들이 살아나 자석처럼 온종일 / 당겨지는 힘인 줄 봄날은 알까 // 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지 / 자라나는 걸 멈출 길 없지 / 천천히 그림자 드리우는 나무숲을 바라 보았지 / 그림자 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같은 / 말의 뼈, 생각의 뼈 / 꽃잎에도 뼈가 있다지 / 견딜 수 없는 생각의 뼈가 있다지 / 봄을 향한 따듯한 그리움이지
시간은 흐르고 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꼭 사람을 멀리 보내고 돌아올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과도 같다. 우리는 기다림을 멀리 꿈속 같은 아련함에서 찾으려할 때가 있다. 발끝에 닫고 손끝에 만져지는 지금이라는 시간은 세워둔 채 말이다. 우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다리며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도 많은 날동안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갈지 모른다. 오랜 기다림으로 간직하려 손바닥만하게 남은 따뜻한 온기를 가슴에 담기도 하였다.
넘어가는 노울에 눈길을 주다보면 와락 밀려오는 낙엽같은 외로움이 흔들리곤 했다. 하루가 오는가 하면 어느새 하루가 소나기 뿌리듯 어둠 속으로 하염없이 내리기도 하였다. 삼월의 들녘은 아직 기지개를 펴지 못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훍더미를 밀고 나오는 새싹들은 보기엔 약해보이지만 그속에 녹색의 뼈대를 품고 있는듯 거침이 없다. 부풀어 오른 흙을 밟으며 지날 때면 발자국 뒤로 아작하는 새싹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깨어야 하고 눈 떠야 하기에 잠깐의 아픔은 참아야 하였으리라. 조금만 더 견딜 수 있을려나? 조금만 더 기다릴 수 있을려나?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봄의 새싹이나 움트는 꽃눈에게도,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에게도 속삭여주고 싶은 말이다. 입 밖으로 내뱉은 수도 없이 많은 말들. 흩어지고 사라져 기억도 못하는 단어들. 그 말들이 단단해져 꽃잎에도 뼈가 생기고 살이 되어지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은 사람에게도 마음에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생각의 뼈를 자라게 한다. 견딜 수 없는 따뜻한 그리움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늘로 뻗어난 나무들이 싱그럽다. 나무 밑둥으로 자욱히 깔린 안개를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아직 이른 아침 어두움이 막 가시고 하루가 밝아온다. 나무의 깊은 냄새가 온 숲을 덮고 이제 막 터진 잎눈이 가지마다 보석처럼 달려 있다. 달리기 동호회인지 몇사람이 어우러져 허연 입김을 내쉬며 좁은 숲길을 달리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이 나무숲 사이로 안개를 밀어내며 얼굴을 내민다. 몇 주 후면 꼿꼿이 허리를 펴고 빈들을 메울 들꽃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숲길을 걸으며 마음에 담겨오는 당신께 꽃 한송이 건네고 싶다. 따뜻한 그리움이 나무숲 안에 가득히 번져간다.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