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당신은 나의 거울입니다

Chicago

2026.03.09 13:4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신호철]

[신호철]

찾아온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 덩그렇게 손잡은 당신과 나만 남았습니다 / 마른 달처럼 가늘어진 손을 쓰다듬으며 / 당신은 아무 말 안 하시지만 / 나는 당신을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아마도 지나온 시간을 헤아리나 봅니다 / 코스모스 같은 여린 미소를 지으시며 // 나는 낯선 방 한가운데서 눈을 뜹니다 / 밤을 넘어선 문들은 출렁이는 호수에서 /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새벽을 부릅니다 / 거울을 보면 당신이 보입니다 / 나는 갓 피어난 당신의 봄날 하루를 빌려 / 오늘도 알뜰한 아침을 지어 삽니다 //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은 그러나 / 온 힘을 다해 밀려 올 당신으로부터 / 코스모스 향이 노을로 젖어가는 하루의 끝까지 / 나는 봄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납니다 / 당신이라고 부르다 호수에 잠기고 / 그립다 말하려다 말문이 막힙니다 / 가라앉는 나는, 발끝을 세우는 당신은 / 들꽃을 한 아름 안고 걸어오는 거울입니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난 지도 13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는 그만큼 늙었고, 당신의 묘엔 나지막한 도장 나무 두 그루가 새봄에 내밀 초록 잎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친구들도 세상을 떠나 당신의 나라로 갔습니다. 겨울이 한 걸음 물러나고 이곳엔 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그곳은 어떠신지요? 어찌 사나 궁금해 가끔 하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시는지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어떤가요. 혹여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네요.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있어요. 지난밤 찬비가 내렸고 그 때문에 안개가 자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지요. 새소리가 가득한 덱의 문을 엽니다. 차고 청명한 아침 공기를 큰 호흡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호수엔 물새 떼가 유유히 흐르고 덱 주변 나무에는 새들의 수다가 한창입니다. 이런 아침 소리와 풍경이 움츠렸던 마음을 깨어나게 합니다. 가지고 온 시집을 펼쳐 나지막이 소리 내 읽어봅니다. 시를 읽다 보면 나 또한 살아있다는 행복감을 불러옵니다.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다른 현실에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내 기억의 거울 속에서 나의 하루는 당신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만날 수 없는 당신을 거울 속으로 부르고 그곳이 현실인 양 당신의 여윈 손을 가만히 잡아봅니다. 언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주셨던 따듯한 마음이 그리워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매일 맞이하는 하루는 높은 계단을 오르듯 거친 숨을 쉬어야 하지요. 당신도 떠나고 우리 생애에 초대받은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이제 우리 앞엔 가파른 계단 대신 곡선의 여유로운 언덕과 호수가 남아 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하늘 아래 파도가 출렁이는 그곳에 당신의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 속엔 당신이 숨 쉬고 유년의 나도 살고 있습니다. 호수에 노을이 지면 중절모를 쓰고 허리가 약간 굽은 미래의 내 모습도 보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울을 가지고 삽니다. 그 거울 속에는 나의 살아온 길이 보입니다. 소중했던 순간도, 절망했던 시간도, 보고 싶은 얼굴도 모두 그곳에 있습니다. 거울 속엔 당신도 있고 나도 살고 있습니다.
 
그 거울을 잃어버리게 될 날은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바라보는 경계가 없는 하늘과 호수처럼 나도 그곳에 살고 있고 당신도 그곳에 나와 함께 있을 테니까요. (시인, 화가)  
 

신호철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