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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숲은 말이 없다

Chicago

2025.12.15 12:45 2025.12.1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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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과 하는 것이다 // 시간이 모든 아픔을 치유한다는 건 / 거짓말이에요 / 나는 잠깐의 시간에 알게 되었어요 / 숨 쉬는 것만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 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 햇볕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보았어요 / 지나간 자국마다 얼음이 녹아요 / 내리던 눈 속으로 눈물이 고여요 / 그 속에서도 꽃이 핀다니까요 // 새들이 날면 숲이 하늘로 떠 올라요 / 숲에선 별들이 자라지요 / 붙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 숲에선 꽃이 피어야 하고 / 별이 자라야 할 곳은 하늘이지요 //남겨진 사람들은 울지 않아요 / 다시 만나게 되리란 걸 아는 것처럼요 / 시간이 아픔을 치유한다는 건 / 거짓말이어요   *프로스트의 말
[신호철]

[신호철]

 
가을이 빠져나간 자리에 겨울이 왔다. 쓸쓸한 가을의 잔재. 그 위로 눈이 내렸다. 나는 창문을 통해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 보고 있다. 하늘이 하얗게 내려오고 있다. 마법의 하늘 아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잠자리가 불편한 다람쥐와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었을까? 차들도 끊기고 길도 사라진 마을. 하얗고 고요한 나라. 마치 다른 행성을 보고 있는 듯하다.
 
목이 긴 장화를 신고 푹푹 빠지는 눈 위를 걷는다. 파인 추리의 긴 가지들이 눈의 무게로 축 처져있다. 작은 묘목들은 하얀 모자를 높게 쓰고 있다. 덱크는 포근하고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조용히 누웠다. 잔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나무는 하얀 꽃나무가 되어간다. 깊은 공간 속으로 숲은 겨울의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천천히 하얀 여백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고요는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것인가. 너와 내가 꿈꾸던 세상이 이런 날들이 아니었던가?
 
가을을 이별하기 위해 나무와 숲은 붉고 아프게 물들었다. 가지로부터 단단히 한 몸이 된 단풍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무의 뿌리를 덮었다. 찬란한 봄을 위하여, 겨울을 이별하기 위하여 눈은 이렇게 내리는 걸까? 깊은 겨울을 껴안기 위해 하얗게 하늘의 통로를 열어준 걸까? 나는 알고 있다. 계절의 변화가 얼마나 잔인한 이별 뒤에 온다는 사실을. 숲은 찬란했던 가을의 색들을 감추고 하얀 겨울로 걸어 들어갔다. 흩어지는 눈길에 깊은 발자국을 남겨놓은 채로. 언제인가 겨울을 이별하기 위해 봄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눈이 뿌리의 정신을 다독여줄 것이다. 이별은 아픈 것만이 아니다. 시간이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겨울 숲은 말이 없다. 가끔 어깨의 눈을 털어내거나 긴 여운의 저음을 울기도 한다. 사람의 속마음에 대한 물음이 눈 속에 깊이 묻히기도 하고 가녀린 갈대의 흔들림 속에 드러나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작은 동작 하나에도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소소한 일상에 흔들리지 않는 일, 그 사소한 과정을 묵묵히 건너는 태도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가늠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새 것에 대한 신비가 아니라, 함께 걸어온 발걸음을 이해하고 그 보폭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오래 창가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하얗게 쌓인 뒤란의 고요가 나를 위로한다. 다시 뒤돌아다 보는 시간. 눈이 쌓인 두께만큼이나 마음의 결이 헤아려지는 날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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