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jazz story에서 저녁 한 때를 지냈다. 그리 넓지 않았지만 공연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 있는 장소였다. 오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었다. 콘트라베이스 대신 베이스기타를 맨 리더인 듯한 중년 신사가 인사를 했다. 젊은 피아니스트, 잘 생긴 드러머, 안경을 내리낀 여성 보컬로 이뤄진 4인조 그릅. 시작인듯 아닌듯 피아노의 끈적한 리듬이 관객을 사로 잡았다. 연이어 분위기를 맟춰주는 베이스기타의 절제된 저음. 드럼의 잘 구성된 리듬. 그리고 재즈 특유의 굵고 깊은 음색과는 거리가 먼 톡톡 튀는 여성의 목소리가 왠지 잘 어울렸다. 재즈의 시작은 뉴올리안즈, 꽃피운 곳은 시카고인데 길상사 오르는 길 성북동에 재즈가 피었다. 커피를 음미하면서, 코냑을 홀짝이면서, 어느분은 맥주를 들이키면서…
어느 아침을 본다
숲과 길과 담장이 있는 곳 / 그곳에 가을이 왔다 은행나무 잎이 / 좁은 길을 감추고 있는 곳 마지막 / 구절초가 숲의 구석을 수 놓는 사이 // 십 일월의 하루가 왔다 / 그 긴 하루를 나는 / 숲과 길에서 보냈다 // 나무가지와 나무가지가 부딪히는 소리를 / 들으며 가지 사이로 음양이 내려앉은 / 구름이 걸려있고 날아와 앉은 / 새들의 대화가 들렸으며 // 그리고 그 사이로 잎사귀가 떨어졌다 / 이 길의 끝을 모르는 발자국들이 온 곳으로 되돌아 가는 / 손을 뻗어 길을 구부리고 있을 / 이 길의 끝에 긴 하루의 저녁이 있다 // 떡갈나무 숲이 감춘 오솔길 여전히 / 바람이 불고 나는 높고 깊고 / 외로운 하늘을 올려다 본다 // 숲과 길과 담장이 있는 곳 / 그 곳에 겨울이 오고 있다 눈 감으면 / 첫 눈이 내린다는 목소리에 / 눈이 내 눈에 쌓인다
울룽도를 가기 위해 삼척에 들러 정라진이라는 작은 포구를 들렸던 일과 청량리 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타고 몇번 여행했던 대학 시절의 일을 빼고는 강원도를 여행한 적이 없다. 시간되면 한번 들려오려던 태백의 예수촌이 마음에 걸렸지만 5명이 함께 하는 여행을 택하기로 했다. 태백은 시간이 되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기에 대신 속초의 내설악과 동해를 보러 떠난다. 경기도 퇴촌에서 국도로 풍경을 따라 간다.
커튼을 연다. 아침이 조용히 밝아 오고 있다. 우뚝 솟은 돌산 울산바위가 신비하기만 하다. 바위 뒤편으로 하루가 온다. 산의 골자기 마다 찬 바람이 불고 숲은 벌써 겨울 준비에 들어간듯 잔뜩 움츠려 있다. 내설악의 골짜기엔 낙옆의 숲이 일렁이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바위산은 그 얼굴을 광할하게 빛을 향해 펼치고 있다.
바다정원에서 동해를 본다 / 누구라도 바다를 품고 간다 / 출렁이는 바다가 손을 흔든다 / 하늘아래선 상한 갈대라도 한계절 흔들리거니 / 상한 영혼아 고통에게로 가자 / 뿌리 깊은 벌판에서 한겨울을 보내자 / 겨울의 찬 바람 속에서도 영원한 눈물이야 있으리오만 / 영원한 고통이야 있으리오만 / 눈 덮힌 하늘 아래서도 뿌리로 다가오는 / 따뜻한 싹 피어날 날 있으리오만 / 바다를 품은 겨울은 검푸르게 일렁이는데 (시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