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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 담긴 철학·정신 알릴 터"

사단법인 한국민화협회 OC지부(지부장 신혜정)가 라하브라 아트 갤러리(151 W. La Habra Blvd)에서 ‘민화, 세계를 물들이다’란 주제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22일 시작, 내달 22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엔 총 33명의 작가가 참여해 꽃과 새를 소재로 한 화조도, 책과 도자기, 문방구 등이 책꽂이 안에 놓인 모습을 그린 책가도 등 33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개막 리셉션은 내일(2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OC예술고 사물놀이 공연팀은 축하 무대를 선보인다.   신 지부장은 “최근 한류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한국 전통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민화의 아름다움은 물론 민화가 담고 있는 한국 고유의 철학과 정신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단순한 장식화가 아니라 자연과 우주, 인간의 관계를 그 안에 녹여낸 철학적 예술인 민화가 더 사랑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지부장은 민화에 담긴 오방색이 이번 전시회 주제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오방색은 음양오행 사상에 기반을 둔 다섯 가지 색(청, 적, 황, 백, 흑)으로 자연과 인간, 우주를 아우르는 조화와 균형의 원리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신 지부장은 “민화의 구성에서 중심을 이루는 각각의 색이 지닌 고유의 의미는 작품 속에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표현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는 전화(909-868-8565)로 하면 된다.민화 철학 철학과 정신 사단법인 한국민화협회 철학 정신

2025.01.23. 19:01

[문장으로 읽는 책]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내가 존재, 그러니까 무(無)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내가 ‘사람’이 된 날이었다. 무의 아우라가 없는 것은 아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기 전인 것은 확실하지만, 4살이었는지 혹은 6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느 곳을 걷고 있었고, 그 사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청명한 야밤으로 별들이 많았다. 죄다 익숙한 존재물로, 바로 이 ‘존재라는 틈’의 틈입이 아니라면 아예 언급할 일이 없는 범상한 것들이었다. 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것은 ‘무’, 무의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어머니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고, 없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절절하고 공포스러운 체감이었다, 존재의 틈으로 무가 번개처럼 찾아들던 순간이었다. 내가 비로소 사람이 된 날이었다. 내게 ‘영혼’이 생긴 날이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제도권 대학을 떠나 30년 가까이 인문학 공동체와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철학자·시인 김영민의 책이다. ‘무가 찾아온 날, 영혼이 생긴 날’이라는 제목의 윗글에 저자는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팡세』의 문장을 달았다. ‘공부의 철학자’로 유명한 저자는 수행자처럼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에게 공부란 “매사에 진짜를 구하는 애씀” 혹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고, 그 덕으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사는 일”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생활 철학 공부 모임 시인 김영민 무가 번개

2023.11.29. 18:52

“홍익인간 철학에 기반 둔 교사 되길”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 (회장 김선화)가 지난 25일 2023 봄학기 교사연수회를 개최했다.   메릴랜드 실버스프링 소재 지구촌교회에서 팬데믹 이후 3년 반만에 대면으로 이뤄진 이번 교사연수회는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열렸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워싱턴 42개 학교에서 참여한 총 223여명의 교사와 어린이프로그램(워싱턴 종이문화원) 참가자(19명), 보조교사(3명)등 총 254명이 참석해 “워크숍을 통한 한국어 교육효과 높이기”란 주제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온라인으로도 동시 진행된 워크숍에는 한국, 웨스트버지니아, 리치먼드 등 다양한 지역의 참가자들도 함께 했다.     김선화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며 계속 발전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연 중 교사연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수요공급 매치 교사연수, 한국문화 역사 수업 공모전에 도전하고, 모든 교사가 서로 수업자료와 방법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청용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사람이 가져야 할 5가지 덕목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담고있는 홍익인간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힘쓰는 교사가 되어달라”고 전했다.   이어 강경탁 교육원장은 격려사에서 "워싱턴지역은 코로나 이전으로 학교, 학생 수가 거의 회복되었고, 교육원에서는 한국어 실력 인증 제도, 공립학교에서 한국어 학점 인증 제도 등에 대해 연구하여 한국학교 , 학부모님들께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매 주 차세대 교육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께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달 말 3년 임기를 마치는 한상신 교육관에게는 감사패가 전달되기도 했다. 한 교육관은 “코비드와 함께 한 재임기간이었지만 미국 근무하는 동안 늘 행복했고, 워싱턴기념탑을 소재로 한 감사패를 보며 워싱턴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워싱턴기념탑을 생각하며 차세대 교육에 힘쓰시는 한국학교 교사들을 늘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홍익인간 철학 재미한국학교 워싱턴지역협의회 봄학기 교사연수회 이번 교사연수회

2023.03.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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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으로 휴식하라

유치원생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높고 표정도 밝다. 저마다 칭찬받을 거리가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이 먹을수록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며 낯빛도 어두워진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길이 돈과 명예, 권력 등 몇 개로 단순화되는 탓이다. 월저는 ‘다원적 평등’을 강조한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존경받지 못할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는 명예롭게 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안광복 『철학으로 휴식하라』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에게도 인정받을 무엇인가가 있다면 상 받는 이에 대한 질투심도 수그러든다. 내가 속한 집단은 과연 구성원 하나하나의 노력을 보듬을 만큼 다양한 평가 잣대를 갖고 있을까?” 실제 그렇다. 많은 사회적 갈등과 개인적 불행이 질시와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모든 존재가 고루 다양하게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인용문 속 월저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 마이클 월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일하는 저자는 철학에서 일상의 지혜를 찾는 ‘임상철학자’를 표방한다. 책 제목은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따왔다. “좋은 인생을 사는 이들은 쾌락을 좇지 않고 겪어야 할 감정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내가 주인공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50대는 박수받는 나이가 아니라 박수 치는 나이여야 한다” 등의 구절이 눈길을 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철학 휴식 정치 철학자 사회적 갈등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2023.01.11. 19:18

“실패 권장하는 철학 바탕으로 도전”

     “15~20년 전엔 크고 무겁던 이 모터들이 이제 전력 사용량을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크기가 아주 작아졌습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한 호기심이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맘스베리에 있는 다이슨 본사. 지난 1993년 이 회사를 설립한 제임스 다이슨(75) 창업자 겸 수석 엔지니어가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한쪽에 전시된 모터 10여 개를 모두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다이슨은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유명한 건 ‘계속해서 실패하라(Against the Odds)’는 경영 철학이다. 진공청소기만 해도 5127개의 시제품을 만든 끝에 개발됐다. 지난 2019년 방한 이후 3년 만에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다이슨은 “실패를 장려하는 철학은 바뀌지 않는다”며 “이를 바탕으로 ‘뷰티 시장’에 본격 도전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다이슨의 헤어케어 제품인 슈퍼소닉, 에어랩 등은 한국에서도 인기다. 향후 계획은. “뷰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관련 연구와 기술 개발을 위해 앞으로 4년간 5억 파운드(약 5억7012만4200달러)를 투입한다. 이 기간에 뷰티 신제품 20개를 새로 선보이는 게 목표다.” -이런 투자 결정을 한 계기는. “헤어스타일이나 모발 관리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이 부분에서 혁신을 가져오고 싶다. 다이슨은 헤어드라이어 출시 전부터 모발과 모발과학을 연구하는데 수년간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왔다.” 어떤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냐는 질문에 다이슨은 “기밀”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모발 손상을 최소화하며 머리를 말릴 수 있는 특별한 전기모터를 개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이슨은 자신을 ‘수석 엔지니어’라고 소개할 만큼 기술 개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17년엔 맘스베리 본사 안에 아예 다이슨기술공과대학을 세우고 후학을 키우고 있다. 다이슨 취업과 연계되는 4년제 학위 과정으로 등록금은 전액 무료다. 다이슨은 “매년 신입생 40여 명을 선발하는데 이들이 다이슨의 미래”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어떤 교육을 받나. “공학과 과학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다. 구체적으론 배터리와 전기모터 기술을 주로 배운다. 일주일 중 사흘은 과학자들과 기술 개발을 하고, 이틀은 학문적인 이론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메시지는. “지난 1일(현지시간) 2기 졸업식이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와 러시아 전쟁 등 세계적인 혼란을 겪은 첫 번째 졸업생이다. ‘여러분에겐 조언이 필요 없다. 최악의 세계 혼란을 경험했고, 견뎌냈고, 극복했다’고 격려했다.” 다이슨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의 평균 나이는 26세라고 한다. ‘젊은’ 엔지니어는 그의 자산이기도 하다. 다이슨은 “우리는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경력자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해보지 않은 사람’이 더 과감하게 도전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혁신 과제는. “배터리를 더 개선하려고 한다. 배터리는 여전히 위험하고 유지력이 낮은 등 부족한 점이 많다. 다이슨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배터리를 개발하는 로드맵을 준비했다. 또 공기청정 기능을 탑재한 헤드폰인 ‘존’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다이슨은 “전기차 상업화처럼 (다이슨은)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6년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던 다이슨은 3년 만인 2019년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그는 “다이슨이 만드는 제품은 투자와 위험 감수를 거쳐 만들어진다”며 “앞으로도 과감히 투자하고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기술·제품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영국 맘스베리=채혜선 기자     ---- 사설 1. 글로벌 기술 기업 ‘다이슨’의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인 제임스 다이슨. 2. 제임스 다이슨 사무실에 있는 과거 그가 개발했던 모터들과 청소기들. [사진 다이슨]   권장 철학 기술 개발 전기모터 기술 수석 엔지니어

2022.11.09. 14:28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롱한 별을 볼 수 있다. 햇볕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곡식은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고난 속에서 강해지고, 고난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행을 겪게 되면 주저앉거나 무너지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 인생을 자신있게 사는 사람음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며 한계를 규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은 평생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중심을 지키며 후회없는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삶의 모든 여정에서 절망에 맞닫뜨린 다산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다산에게 절망은 매가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삶을 포기할 이유는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실시구시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혁명가였고,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등 500여권의 책을 남긴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혼란한 해(1762년)에 태어났고, 벼슬에 올라 나랏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서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유배인이 되었고,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쓴 〈황사영 백서〉에 연루되어 오랜 생활을 강진에서 묶여 지냈다. 그후 18년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났으나 그의 부활을 저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벼슬하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며 여생을 보냈다. 공적인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험난한 다산의 삶은 사적인 기록을 보태면 더욱 처절해진다. 다산은 부인 홍씨와 6남매를 낳았지만, 4남2녀를 가슴에 묻었고, 함께 수학하던 동료들과 형 정약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또한 우애를 나누던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상황도 견뎌야 했다. 이렇듯 탄생부터 죽음까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다산을 둘러싼 세상은 무척 소란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이 '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어떤 상황에서든 세상에 휩쓸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산에게 신념을 지키는 방법은 신념을 가지고 현실을 살며, 생각을 크게 가지고, 생각에 그치지 말고 행동하며, 주변을 신경쓰는 일이었다. 다산은 요즘말로 하면 '엄친아'였다. 가문으로 보나 개인으로 보나, 그는 상당히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정약용의 집안은 이른바 '8대 옥당'이라 불린 명문가였다. 학문이 높은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옥당 관리, 즉 홍문관 관리를 8대 연속으로 배출했다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이 가문은 양반 중에서도 양반이었다. 정약용은 스물두 살에 소과시험인 생원시에 합격, 스물여덟에는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병조참의(국방부 국장), 황해도 곡산부사, 부승지(대통령 비서)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정조 임금의 신임까지 얻었으니 그의 앞날은 푸른 하늘처럼 높고 맑기만 했다.   그런데 서른아홉살 때부터 정약용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주군이 정조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 그 시초였다. 정조의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는 손자가 죽은 뒤 심환지를 비롯한 보수파와 손잡고 정조시대의 개혁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정조의 측근들은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정약용도 그런 표적이었다. 정조의 시신이 땅에 묻히고 얼마 뒤 정약용은 자택에서 의금부 관리들에게 체포되었다. 죄목은 '서학쟁이'였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였다. 오래 전에 천주교를 떠난 사람에게 이런 죄목을 뒤집어씌운 것은 정약용 체포의 본질이 정치탄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정약용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가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했다. 둘째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고, 셋째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했다. 이외에도 고초를 겪은 집안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약용의 수난은 무려 18년간이나 계속됐다. 구속된 이후에 그는 경상도 장기현(포항시)과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렇게 새장에 갇힌 새가 되어 그는 18년을 견뎌야 했다. 18년의 수난생활에 대해 정약용은 독특한 대처법을 취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승리를 위한 날개짓이었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패배를 만회하고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고자 그는 유배지에서 18년간 그렇게 날개짓을 했다. 특이한 것은 정약용의 날개짓이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중앙정계에 복귀하거나 반정부운동을 벌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완성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런 철학적인 방법으로 그는 승리를 이룩하고자 했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의 하나는 유배지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가 유배지에서 당한 설움을 감안하면, 이런 태도는 따스한 가슴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기현 유배 당시, 정약용은 죽림서원이란 곳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현지 선비들의 저지로 문앞에서 쫓겨난 것이다. 정조가 살았을 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번째 유배지인 강진군에서는 한동안 숙소를 구하지 못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정약용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집이 없었던 것이다. 장례문제에 관한 서적인 〈상례사전〉 서문에서 그는 “강진 백성들은 귀양온 사람 보기를 큰 해독처럼 여겼다.”고 했다. 다행히 주막집 여주인의 도움으로 숙소 문제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여주인이 그에게 객실 하나를 선뜻 내어준 것이다. 세상이 다들 기피하는 인물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보면 마음도 좋고 배짱도 좋은 술집마담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정약용은 유배지 주민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베풀었다. 대표적 증거중 하나가 〈촌병흑치〉라는 저서다. 이 책은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저술한 의료지침서다.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뱀을 잡아먹을 정도로 의료사각지대였던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이 책을 지었던 것이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투적 글쓰기였다. 그가 남긴 저서는 약 500권이다. 저술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기간은 18년간의 유배생활중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검찰청)의 보고서나 재판서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죄인이 되었지만, 역사의 재평가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생각이았다.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쓴다면 후세 사람들이 자기를 올바로 평가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자기에 대한 현실권력의 법적 평가를 무력화시키고 미래권력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자 그토록 치열하게 글을 썼던 것이다. 죽어서 승리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얼마든지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글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다. 오랜 유배 생활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500권의 책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쓴 500권의 책은 승전비나 마찬가지다. 젊은 나이에 주군도 잃고 가문도 망한 정약용은 길고도 지루한 유배생활 중에도 스스로를 혁명하기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 못다 한 일들을 죽어서라도 달성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역전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면 쓰러진 채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그는 불굴의 날개짓을 했다. 결국 그는 새장을 뚫고 날아올랐고, 적들보다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정약용은 그렇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김지민 기자소란 철학 다산 정약용 정약용 체포 유배지 주민들

2022.08.03.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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