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웬디스’는 내가 즐겨 찾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주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자료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실내 공간이 넓고, 쾌적하며 카운터에서 직접 볼 수 없는 구조여서 부담 없이 오래 머물 수 있다. 간혹 햄버거가 먹고 싶을 때는 좋아하는 칼스 주니어 햄버거를 먹기 때문에 조금은 미안할 때가 있다. 그래도 직원들은 한결 같이 친절하다.
웬디스는 데이브 토마스가 1969년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처음 매장을 연 햄버거 체인점이다. 그는 다른 햄버거 체인점들이 아직 주목하지 않았던 중서부 지역에 웬디스를 창업했다. 이는 당시 맥도날드나 버거킹의 체인점 비율이 낮았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는 1932년 뉴저지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태어나 6주 만에 토마스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5살 때 양어머니가 죽고, 직업을 따라 옮겨다니는 양부와 평탄치 않은 삶을 살며,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12살부터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양외할머니와 살기도 했다. 이때 양외할머니가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데이브에게 평생 지켜야 할 세 가지 교훈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데이브의 웬디스가 세계에서 맥도날드, KFC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진 햄버거 식당이 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첫째, 옳은 일을 해라(Doing the right thing). 둘째,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라(Treating people well). 셋째, 질과 서비스를 중요시하라(Important lessons about quality and service)였다. 이 세 가지는 그의 모든 사업에 적용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리하고 있다.
식당에서 일하던 그는 30대 초에 주방장이 되었고, 이때 한참 가맹점을 늘려가던 KFC의 창업자 샌더스가 찾아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망해가던 KFC 4개를 맡아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매장을 살려내어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웬디스를 창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웬디스를 중서부와 북부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키워 내었다. 동북부를 대표하는 ‘파이브 가이즈’, 서부를 대표하는 ‘인 앤 아웃’과 더불어 지역별 대표 기업이 된 것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개념을 사업에 적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패스트푸드라는 이름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간편 외식점(Quick Service Restaurant)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부호임에도 “나는 그저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라며 겸손해 했다. 그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웬디스 TV 광고에 가장 오랜 기간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겸손한 모습을 좋아했다.
그는 부의 사회환원 방법으로 입양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했다.
웬디스에 가면 여기저기 보이는 로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말괄량이 삐삐’는 그의 딸 멜린다의 어릴 때 모습을 본떴다. 딸의 애칭이 ‘웬디’다. 그는 딸 이름으로 상호로 삼고, 본인은 대표 햄버거 메뉴인 ‘Dave’s’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