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날, 나는 그녀를 ‘삼월 언니’라 불렀다. 칠월에 태어난 친구는 ‘칠월 언니’, 시월생인 나는 자연스레 ‘시월이’가 되었다. 달 이름으로 부르는 호칭은 금세 우리 사이의 거리가 되었다.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첫인상은 참 따뜻했다. 언니는 내 어깨에 빨간 숄을 조심스레 둘러주었다. 직접 뜬 것이라 했다. 한 코 한 코에 담긴 온기가 어깨를 타고 전해졌다. 우리는 칠십 중반의 나이를 잠시 잊고, 열일곱 소녀로 돌아가 첫사랑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고, 그 웃음은 유난히 맑았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언니의 삶은 오랜 인내의 연속이었다. 언니의 남편은 스무 해가 넘도록 뇌졸중을 앓았다. 언니는 그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뎠다. 휠체어를 밀어 공원과 바닷가를 거닐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사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니는 늘 호박꽃을 닮고 싶다고 했다. 넓은 잎 아래 수수하게 피어나 아픔을 견딘 끝에 기어이 열매를 맺는 꽃. 하지만 세월은 그 열매마저 서서히 약하게 만들었다. 남편의 기력은 급격히 쇠했다. 요양원으로 하루 두 번 발걸음을 옮기며 식사를 거부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언니의 마음은 말라갔다. 얼마 뒤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이제는 남편의 거친 숨소리에도 겁나지 않아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 77세 희수의 센티멘털인가 봐요.”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다가온 시간은 예고 없이 시렸다. 사랑이란 결국 함께 늙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니는 남편의 가장 빛나던 시절부터 가장 초라해진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을 끝까지 동행했다. 운명은 묘하게도 정교했다. 동부에서 달려온 두 아들이 가족들과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로 한 날 아침, 남편은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위독하다는 연락 앞에서 언니는 직감했다. 아들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두 아들의 손을 남겨주려는 남편의 배려였음을. 그렇게 남편은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 속에 조용히 떠났다. 고통은 끝났지만,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리움이 남았다. 장례를 마친 뒤, 서울에서 온 딸이 욕실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엄마, 비누에서 아빠 냄새가 나요….” 사람은 떠나도 향기는 남는다는 말을 그날 처음 실감했다. 비누 한장에 스민 체취가 큰 파도가 되어 마음을 흔들었다. 언니는 말했다. “내 몫의 사랑은 다 했으니, 남은 시간은 잘 살아야지요.” 그 말에는 상실을 견뎌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담담함이 있었다. 이제는 서로의 빈자리를 보듬으며 남은 길을 같이 걷고 있다. 우리의 노년이 너무 쓸쓸해지지 않도록. 삼월 언니는 여전히 호박꽃 같은 사람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낮은 곳에서 제 몫을 다하고, 끝내 열매를 남긴 사람. 그 사랑은 이제 조용한 향기로 남아 언니의 뒷모습을 따라온다. 엄영아 / 수필가이아침에 비누 향기 비누 향기 첫사랑 이야기 남아 언니
2026.03.11. 19:50
학창시절, 지루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진도와 무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 졸랐지만, 선생님 본인이 가장 즐거워하며 해주신 이야기는 졸업한 선배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막상 우리는 만나본 적도 없는 선배들을, 선생님은 그윽한 그리움의 눈빛으로 소환했습니다. 사회의 중진으로 성공한 그들이 어릴 적 얼마나 똑똑했는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딛고 성취를 이뤄냈는지 이야기하시며 선생님은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한참이나 미성숙한 우리를 가르치시느라 지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선생님은 성공한 제자의 어릴 적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르긴 몰라도 성공했다는 그들 역시 아이 때는 우리처럼 부산스러웠을 터이니, 어쩌면 우리 중에서도 멋진 제자가 나올지 모른다고 선생님은 믿고 싶으신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지난달 강연하러 간 국내 수위권 유통회사에서는 10년도 넘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면서 겸임의 직책으로 수업했던 학교의 학생이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강연에 참여한 것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수줍게 다가오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열정 가득한 눈으로 몇 개의 디지털 기기를 들고 와서 기록하고 질문하며 수업에 몰두했던 그는, 졸업 후에 유수의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합니다. 이제 어엿한 전문가가 되어 큰 기업에서 멋진 일을 하는 것을 보며 저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작가가 된 저를 축하한다며 세심하게 고른 선물까지 준비해 온 그의 정성에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물이 없었어도 저의 보람은 지난 몇 년 치의 행복과 같았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가르치는 일에 서툴렀기에 더욱 열심히 수업에 임했던 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스승이 되기엔 한참 모자람을 자각했기에, 그 시절 수업을 넘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보려 애썼습니다. 그때의 학생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가르친 이보다 훨씬 훌륭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성장은 저에게 큰 감동과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예전 선생님의 대견한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모두가 좌충우돌하던 시기,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연이 닿은 대가의 문하생으로 수련을 쌓은 그는, 이제 어엿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전해왔습니다. 그 분야의 가장 큰 기관의 전속작가가 되어 전 세계를 상대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한 그는, 한적한 지역의 멋진 집에서 8마리 고양이와 함께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각자의 경력을 보내고 있는 이들의 전화통화는 서로에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저도, 그도 아직은 설익은 시기에 무엇이든 시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도하던 치기 어린 시절이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 세월의 그의 축적을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시도와 좌절이 그를 단단히 만들어왔음을 충분히 알만큼, 이제 저의 몸속에도 나이테가 늘어갑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인연이 멈추지 않고 지속하려면 추수에 기뻐하기보다 다시 씨를 뿌려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주 중학교 학생들과 그들의 학습을 지도하는 대학생의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국내 유수의 기업이 후원하는 재단에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중학생을 돕기 위해 후배들을 돌보고자 하는 선한 대학생들을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된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방학을 맞은 그들을 위해 인공지능과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캠프가 열린 것입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기대와 흥분으로 바라보는 선후배들을 보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었습니다. 선한 의지와 높은 뜻으로 모인 이들의 만남은 구만리 같은 그들의 미래에 관심과 용기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진의 패기가 성취의 원숙함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의 과정에 저의 작은 경험이 밑거름되기를 희망합니다. 10년 후 그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날 때, 저도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송길영 / Mind Miner빅 데이터 어른 밑거름 첫사랑 이야기 예전 선생님 선생님 본인
2024.08.11.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