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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혁명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탄생 순간 숨 막히게 재현

코미디의 전설은 고조된 긴장으로부터 시작됐다. 1975년 10월 11일 저녁 11시 30분 ‘Saturday Night Live’의 첫 방송을 준비하는 시간,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 쇼의 시작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이제 막이 오르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 불과 90분.     당시 하락세에 있던 네트워크TV NBC에게 새로운 부흥기를 가져다준 새로운 백스테이지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스케치 코미디의 기원을 알려주는 영화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수 노미니될 가능성이 크다. 작품상 후보군의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고 각본, 음악,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의상, 메이크업 등의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 록펠러 센터 8층 NBC 스튜디오. 코미디의 혁명적 순간, 그 90분간의 혼란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영화 ‘새터데이 나이트’는 오늘날 코미디의 전설이 된 SNL의 첫 방송이 시작되기 전, 쇼를 준비하는 제작진,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이 직면하고 있던 숨 막히는 90분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SNL에 바치는 헌사다. VHS 테이프에 늦은 밤 SNL을 녹화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많다. 그리고 유튜브에 떠도는 일회성 코믹 장면들을 보고 자란 오늘의 세대들에게는 무려 50년 동안 라이브로 방영되어 온 코미디의 원조 SNL이 첫 방송된 이후 코미디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훌륭한 코미디는 언제나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 우리들의 폭소 그 이면에는 번득이는 천재성과 기동성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누군가의 용기가 있었다. ‘새터데이 나이트’가 집중하는 대목이다. ‘주노’, ‘업 인 더 에어’(Up in the Air) 등의 수작들을 연출한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각본, 연출)은 이 과정을 스릴과 긴장감으로 전개해 나간다.     10분 미만의 짧은 에피소드(스케치 코미디)만으로 구성된 ‘새터데이 나잇’은 코미디가 연출해내는 웃음 뒤에는 관객이 알지 못했던 인간사의 대립과 시기가 있었으며 코미디는 단순히 웃음을 선사하는 장르가 아님을 조명한다.     영화는 록펠러 센터 앞 거리에서 아직 스튜디오에 도착하지 않은 배우 앤디코프먼(니콜라스 브라운 분)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총책임 프로듀서 론마이클스(가브리엘 라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코프먼이 도착하고 그들이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카메라는 스튜디오의 곳곳에서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제작진, 서로 몸을 부딪쳐가며 대사 외우기에 골몰하고 있는 배우들의 분주한 모습들을 따라 다닌다.   존 벨루시(맷 우드)가 코카인을 흡입하고 있고 이에 당황한 동료 배우들은 패닉상태에 있다. NBC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프로듀서 중 한명인 데이비드 테벳(윌렘 대포)의 잔소리! 그는 오히려 쇼가 망하길 바라는 듯, 자니 카슨쇼를 재방송하는 게 낫겠다며 핀잔을 준다. ‘MR. 텔레비전’이라 불리는 NBC의 실력자 밀턴 버리(J.K. 시먼스)는 스튜디오 구석에서 자니 카슨과 통화를 하고 있다.   작가 마이클 오도노휴(토미 듀이)는 SNL에 얽힌 NBC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스캔들화하려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거의 모든 여성 스태프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댄 애크로이드(딜란 오브라이언), 유난히 분장에 신경을 쓰는 체비 체이스(코리 마이클 스미스), 자신이 잘생겼다고 믿는 그는 외모로 기회를 잡으려 한다. 줄리아드대 출신의 개럿 모리스(라몬 모리스)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바바라 월터스 패러디로 유명한 길다 래드너(엘라 헌트), 여성 코미디언의 새로운 지형을 연 제인 커틴(킴 마툴라)의 모습도 보인다.     스튜디오는 엉망진창, 혼돈 그 자체이다. 사방에서 터지는 사고들을 진화해야 하는 사람은 총책임 프로듀서 론 마이클스이다. 쇼러너로서의 그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1시간 분량의 대본을 잘라내야 한다.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자신들의 출연이 무산된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직도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존 벨루시가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마지막 순간에 조명 감독이 그만두겠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사방에서 일어난다. 그 자신의 지나친 고집으로 인하여 쇼가 막을 올리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순간마저 있다. 그의 아내이며 쇼의 작가 중 한명인 로지 슈스터(레이첼 세노트)가 마이클스의 주변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준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스의 혁명적인 아이디어, 각기 배우들의 독특한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투입, 활용하는 연출자의 능력이 극적인 순간에 최대치로 발휘된다. 그리하여 SNL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다.     론 마이클스 자신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스토리에는 엄청난 양의 숨겨졌던 ‘팩트’들이 나열되어 있다. 당시 신인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니콜라스 포다니)이 쇼에 출연하기 위해 로비를 벌이는 일, 짐 벨루시와 체비 체이스 두 스타 간의 알력과 갈등, 마이클스가 술집에서 작가를 고용하는 일 등.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이 숨 막히는 긴장의 순간들을 16mm 필름에 담아내 70년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냈다.     202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영화 ‘더 파벨만스’에서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여 인지도를 높였던 라벨이 또다시 엔터테인먼트의 큰 아이콘 론 마이클스를 연기한다. 라벨과 세노트 외 출연진 전원이 이루어낸 앙상블 연기는 배우조합(SAG)의 ‘캐스트 앙상블’ 연기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 풍자, 버라이어티쇼의 효시 격인 SNL은 빌 머레이, 존 벨루시, 짐 벨루시 형제, 댄 아키로이드, 블루스 브라더스, 체비 체이스 등 시즌 초기 스타들과 이후 티나 페이, 윌 페렐, 에디 머피, 아담 샌들러, 마이크 마이어스 등 수많은 코미디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핫한 라이브 TV쇼로 인정받고 있는 SNL의 신화는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2025년 2월 16일에는 SNL 50주년을 기념하는 3시간짜리 라이브쇼가 방영될 예정이다. SNL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올드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코미디 새터데이 새터데이 나이트 백스테이지 코미디쇼 오늘날 코미디

2024.12.0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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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에 코미디 입혀…영화에 패러디 도입 첫 영화

카메라가 따라가는 곳은 오래된 성, 공포가 엄습해오고 곧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날 것 같은 예감.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간다. 곧바로 코믹 모드로 전환되는 반전의 시작. 놀라운 상상력, 패러디 영화의 거장 멜 브룩스 감독의 호러 코미디 ‘영 프랑켄슈타인(Young Frankenstein)’의 첫 장면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아 왔던 몬스터의 이름이 아니다. 이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다. 1974년 개봉된 브룩스 감독의 ‘영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한 몬스터 장르 영화 중 하나다.   세계 최초의 SF 소설가 메리 셸리가 그녀 나이 18세 때 영국에서 ‘프랑켄슈타인’ 초판을 발표한 것은 1818년의 일이다. 소설의 대범함과 깊이 때문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1910년 무성영화 시절의 ‘프랑켄슈타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65편에 이른다. TV와 애니메이션 등을 합하면 수백 편에 이른다.     브룩스 감독의 ‘영 프랑켄슈타인은’ 1931년 제임스 웨일이 연출한 전설적 공포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다. 컬러의 시대 1970년대에 1930년대의 원작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드물게 흑백으로 촬영됐다.   1926년 뉴욕에서 출생한 브룩스는 오늘날 가장 흔한 풍자의 형태인 ‘패러디’를 영화에 도입한 최초의 감독이다. 패러디 코미디 장르의 실질적인 창시자 브룩스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막스 형제와 같은 이전 세대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차별화된 패러디 코미디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전형적인 호러 몬스터 장르의 외형을 띄고 시작하는 영화는 브룩스 특유의 상상을 뛰어넘는 패러디와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브룩스 영화의 단골 배우인 진 와일더가 전성기 시절의 개그로 영화의 웃음 코드를 이끌어 간다.     시체를 되살렸다가 세상을 혼돈 속으로 빠뜨렸던 할아버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악명 때문에 자신이 손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뇌 전문 외과의 프레더릭 프랑켄슈타인(진 와일더). 하지만 할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그가 살았던 트란실바니아의 거대한 고성으로 향한다.     백치미의 하녀 잉가와 괴물보다 더 무섭게 보이는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하인 아이고르의 안내를 받아 성에 도착, 할아버지를 돌보던 하녀 프라우를 만난다. 천둥 번개 치는 음침한 성에서 잠을 자던 그는 이상한 바이올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소리를 찾아가다 할아버지의 비밀 실험실을 발견한다. 할아버지가 남긴 실험 기록들을 훑어보다가 전율하는 프레더릭!   거구의 사형수의 시체 앞에 선 그는, 할아버지의 미완성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아이고르에게 냉장실에 보관되어 있는 뇌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고르의 엉뚱한 실수로 비정상(abnormal) 뇌를 이식, 몬스터가 태어난다.   사람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 괴물은 프레더릭을 죽이려 한다. 마취제로 괴물을 기절시켜 묶어 놓았지만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두려워하고 캠프 형사가 프레더릭을 찾아온다. 프레더릭은 자신은 할아버지처럼 미치광이가 아니고 괴물도 만들지 않을 거라 말한다. 그 순간 깨어나 울부짖기 시작하는 괴물.     프라우는 괴물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를 풀어준다. 마을을 전전하던 괴물은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다가간다. 프레더릭은 할아버지의 연인이었던 프라우가 바이올린으로 자신을 실험실로 유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이올린 소리로 괴물을 다시 잡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를 지성인이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의 뇌 일부를 그에게 이식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멸시에 괴물은 괴력을 발동하고 실험실에서 탈출한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마을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 프레더릭을 죽이려 한다. 이즈음 프레더릭과 잉가는 연인으로 발전하고 때를 같이해 약혼녀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괴물에게 납치당하는 엘리자베스, 그의 거대한 남성에 반하여 괴물과 사랑에 빠진다.       뜻하지 않은 두 커플의 탄생으로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진다. 잉가가 프레더릭에게 묻는다. 당신은 괴물에게 뛰어난 지성을 주었는데 괴물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느냐고? 프레더릭이 괴물로부터 받은 ‘거대한 남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영 프랑켄슈타인’은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오로지 자기만의 욕망을 위하여 저지르는 반인륜적 행위들로 가득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장르의 효시 격인 작품으로 기억되며, 말도 안 되는 저급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장면 장면마다 코미디를 호러로, 호러를 코미디로 전환하는 브룩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때문이다. 패러디의 전형을 만들어 낸 그는 1930년대 원작에 억지스럽게 충실하면서도 그만의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브룩스 감독은 1974년 두 편의 패러디 코미디 ‘불타는 안장’과 ‘영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한다. 그가 두 영화를 통해 보여준 초현실주의와 저속한 슬랩스틱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그의 최고의 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브룩스의 대표작으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브로드웨이의 인간군상들을 충격적이고도 예리하게 풍자한 데뷔작  ‘프로듀서’(1968)가 아닐까 한다.     브룩스는 우디 앨런에 앞서 유대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영화에 사용한 감독이었고 앨런과 오랜 기간 협업을 했다.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앨런과 브룩스 중 누가 더 유대인을 대표하는 감독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배우, 코미디언, 작가, 감독으로 활동한 브룩스가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나이 올해 98세.   김정 영화평론가영화 코미디 패러디 코미디 브룩스 영화 호러 코미디

2024.10.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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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 게이블이 세상을 홀린 ‘로맨틱 코미디’ 원조

2024년은 컬럼비아 픽처스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컬럼비아는 스튜디오 창립 10주년이 되는 1934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로 제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 주요 5개 부문(그랜드슬램)을 석권한다. 이후 90년 동안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62)와 ‘양들의 침묵’(1991) 두 편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 거장들이 존경을 표해온 이탈리아 출신 감독 프랭크 카프라가 연출한 ‘어느 날 밤 …’은 영화사에서 남녀 주인공이 톡톡 쏘는 대화로 갈등을 겪다가 깨질 듯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의 효시로 기록된다.     시대를 초월한 낭만적 로드 무비, 여행지에서 만난 두 남녀 사이의 로맨스로 오늘날까지 영원한 명화로 기억되는 ‘어느 날 밤 …’은 백화점 점원, 농부, 단역 배우로 전전하던 클라크 게이블이 ‘할리우드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발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는 5년 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엔터테인먼트계의 불멸의 스타, 가장 위대한 남성 스타로 떠오른다.     플로리다에 사는 은행가이며 대부호의 상속녀 엘리(클로데트 콜베르)가 바람둥이 남자친구 킹 웨슬리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뉴욕행 버스에 오른다. 그녀는 버스에서 근무 중 술을 마시다 해고된 신문기자 피터(클라크 게이블)와 나란히 앉게 된다. 지갑을 잃어버리고도 신고하지 않는 엘리를 보며 피터는 기자의 본능적 호기심을 발동한다.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피터에게 엘리는 뉴욕에 도착하도록 도와주면 특종 기삿거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피터는 부잣집 딸의 스토리에 관심이 없다면서 엘렌의 제안을 거절한다.     폭우로 다리가 끊겨 엘리와 피터는 캠프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버스 기사가 승객들의 노래에 흥겨워하다 차를 도랑에 처박는 사고가 발생한다.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지만 하필이면 그가 노상강도다. 이처럼 연달아 일어나는 우연찮은 사고로 인하여 두 사람은 터벅터벅 함께 걷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슬을 맞으며 함께 잠을 청한다.     피터와 엘리는 호텔비를 절약하기 위해 부부로 가장하여 한 방에 투숙한다. 피터는 두 침대 사이에 줄을 매고 담요로 커튼을 치면서 엘리를 안심시킨다. 피터는 퉁명스럽고 거칠게 행동하지만 흑심을 품지 않는다. 엘리는 대부호의 딸답지 않게 고분고분하며 늘 피터에게 제압당한다. 원나이트스탠드가 간단히 이루어지는 요즘의 시대상과 달리 두 사람은 끝까지 숙녀와 신사의 품격을 지킨다.     엘리는 다음번 도착지 모텔에서 피터에게 다가간다.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자 그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사랑을 고백한다. 피터는 엘리를 잠시 안아주지만 곧 단호하게 그녀의 침대로 돌아가라 말한다. 젠틀맨다운 피터의 진면목에 엘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든다. 이튿날 새벽녘 잠든 엘리와 아픈 마음을 뒤로한 채 조용히 모텔방을 빠져나가는 피터.     3박 4일의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온 엘리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식장에 들어선다. 신랑 웨슬리가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딸에게 속삭인다. “웨슬리를 사랑하지 않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라.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내가 피터를 만나봤는데 좋은 녀석이더라. 널 사랑하더구나.”   엘리는 식장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대기시켜둔 차를 타고 저 멀리 사라진다.     ‘어느 날 밤 …’은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신부를 다룬 최초의 영화다. 하객들의 경악 속에 신부가 결혼식장을 탈출하는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들에서 재연되는데 ‘졸업’(1967)과 ‘런어웨이 브라이드’(1999)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9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다. ‘어느 날 밤 …’은 여배우가 자신의 각선미를 보여주며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히치하이킹 장면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였다. 콜베르는 처음엔 숙녀답지 않다는 이유로 다리 노출을 거부했다. 카프라 감독은 하는 수 없이 대역을 사용했다. 촬영을 지켜보던 콜베르가 “저건 내 다리가 아니잖아!”라고 화를 내며 촬영에 응했다.   콜베르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최악의 영화’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 히치하이킹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녀의 히치하이킹 장면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또한 패션 트렌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클라크 게이블이 모텔에서 옷을 벗는 중에 셔츠 안에 내의를 입고 있지 않은 ‘파격적’ 장면은 여성들에게는 섹스 어필로,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내의를 입지 않는 유행으로 이어졌다.     게이블이 도넛을 커피나 우유에 담가 먹는(Dunk-in) 장면에서 도넛 체인점 ‘던킨 도너츠’의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루니 툰’ 시리즈에서 당근을 먹는 토끼 버니도 이 영화에서 게이블이 당근을 먹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인데 그 덕에 무슨 야채든 다 잘 먹는 토끼가 당근을 주로 먹는 동물이라는 근거 없는 오해를 낳았다.     두 연인이 버스에서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내용은 버스 여행이 시대의 낭만과 풍조로 인식되며 시외버스 여행 붐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당시 청춘남녀들은 버스 안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로맨스를 기대하며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냈다.     ‘어느 날 밤 …’의 대성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콜베르의 데뷔작이 하필이면 폭망했던 카프라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에 그녀는 처음에 출연 제의에 응하지 않았다. 촬영장에서도 콜베르와 카프라의 충돌이 잦았다. 피터 역은 원래 로버트 몽고메리가 맡기로 했었지만 그가 대본을 읽고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거절하자 콜롬비아는 MGM 소속의 게이블을 대타로 빌려와야 했다. 게이블은 당시만 해도 마이너 영화사였던 콜롬비아를 메이저로 부각시키며 영화 산업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 신화의 주인공 자리에 올랐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코미디 로맨틱 클라크 게이블 로맨틱 코미디 신문기자 피터

2024.04.0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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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안믿는 가짜 퇴마사, 호러 코미디

영화는 2014년 출간된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한 초자연적 스릴러이며 판타지 드라마다. ‘빙의’란 타인의 영혼 또는 악령에게 들러붙어 깃드는 현상을 말한다.   천박사(강동원)는 악령을 무르게 하는 일을 퇴마사가 직업이다. 대대로 마을을 지켜 온 당주집 장손이지만 정작 자신은 귀신을 믿지 않으니 그는 가짜 퇴마사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퇴마를 한다고 믿으며 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천박사는 파트너 인배(이동휘)와 함께 유튜브 퇴마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고 믿고 사람을 대상으로 가짜 굿을 행한다. 어느 날 유경(이솜)이 찾아와 그들이 업로드한 유투브 영상을 꾸준히 봐왔다며 거절하기 힘든 일을 의뢰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발을 빼려던 천박사는 먼저 오천을 주고, 퇴마 성공시 오천을 더 주겠다는 유경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배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 천박사는 귀신을 보는 유경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얽혀 있는 부적인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뜻하지 않은 ‘진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천박사의 내면의 아픔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는 결국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당의 영력을 발휘하는 악귀 범천(허준호)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한다.   ‘천박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주연과 조연들의 앙상블 연기, 참신한 소재,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를 높인다. 판타지에 액션과 코미디가 가미되어 여러 장르가 혼합을 이룬 엉뚱하고 재미있는 호러 코미디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강동원의 영화이다. 여전한 미소년의 느낌과 유머가 살아 있는 연기, 그러나 허준호와의 대결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가 끌어내는 액션의 박진감이 절정에 달한다. 최근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종수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늘 새로운 가면을 쓰고 관객 앞에 나서는 그는 천박사와 어릴 적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든든한 지원군 황사장(골동품점)으로 출연한다.   현재 한국의 추석 극장가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라 있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콘스탄틴’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어 줄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김 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퇴마사 코미디 가짜 퇴마사 퇴마사 천박사 봉준호 감독

2023.10.0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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