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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 학생들은 왜 코미디를 배우나

Los Angeles

2025.11.26 18:27 2025.11.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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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직장과 소통능력 키우는 새 교육
의사·공학도도 선택한 코미디 부전공
스탠드업 즉흥극 웃음치료 수업 인기
부모 당혹 속 학생들은 “실전에 도움”

원문은 LA타임스 11월25일자 “Why USC students who want to be doctors and engineers are minoring in comedy” 기사입니다.

자비에 데이비스, 카밀 앙리, 엠마 하일런드, 제이컵 코트라이트(왼쪽부터) 등 USC 학생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하우스/LA타임스]

자비에 데이비스, 카밀 앙리, 엠마 하일런드, 제이컵 코트라이트(왼쪽부터) 등 USC 학생들이 스탠드업 코미디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하우스/LA타임스]

 
USC 캠퍼스의 작은 극장. 강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서 한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잡고 “대변 불안증”과 “남성 성기 크기”에 관한 농담이 섞인 짧은 스탠드업 세트를 펼치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제가 다닌 유치원은 공동 화장실이었어요. 변기 5개가 줄지어 있고 … 칸막이도, 문도 없었죠. 거의 로마 목욕탕이었습니다.”
 
객석 2열에서 웃음을 터뜨린 여성은 이 공연자의 교수였다. 공연자는 USC 학생이었다.
 
3학년 조슈아 우(20)가 무대에 선 이 수업은 오늘날 대학 캠퍼스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없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다소 의외로 보인다. 수업명은 '스탠드업 코미디 입문'. USC가 운영하는 코미디 퍼포먼스 부전공의 핵심 과목이다.
 
2015년 가을 USC 연극예술대학(School of Dramatic Arts)이 개설한 코미디 퍼포먼스 부전공에는 스탠드업뿐 아니라 즉흥극, 마술 등을 배우는 수업도 포함된다. 등록 학생 수는 매년 약 15~20명 정도다. 일부 학생은 배우나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지망해 부전공 선택이 자연스럽지만, 의학·과학·공학 등 전혀 다른 진로를 원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코미디 실기 조교 수 주디스 쉘턴(가운데)이 엘리아스-마이클 겔러, 자커리 그레이, 카밀 앙리(왼쪽부터) 등 학생들과 즉흥극 연습을 이끌고 있다. [크리스티나 하우스/LA타임스]

코미디 실기 조교 수 주디스 쉘턴(가운데)이 엘리아스-마이클 겔러, 자커리 그레이, 카밀 앙리(왼쪽부터) 등 학생들과 즉흥극 연습을 이끌고 있다. [크리스티나 하우스/LA타임스]

그들에게 코미디는 미래 직업에 도움이 되는 표현·소통·리더십 능력을 실제로 연습할 수 있는 장이다.
 
인간의 발달과 노화(Human Development and Aging)를 전공하고 간호사가 되려는 우는 “이 수업을 통해 자신감과 자기표현 방법을 배웠다”며 “단순한 공연 수업 이상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극 실기 부교수이자 코미디 프로그램 책임자인 자커리 스틸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협업하는 환경이라면 어느 분야든 이 수업에서 배우는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전공 과정에는 특이한 수업도 있다. 스틸 교수가 가르치는 '병원 웃음치료(Medical clowning)' 수업이 대표적이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병원 환자들과 위트와 유머를 활용해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동시에 저글링과 마술도 익힌다. 스틸은 “이 과정을 거쳐 실제로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있다”며 “환자와의 소통, 공감,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물론 코미디 부전공은 학비를 내는 부모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의사를 꿈꾸며 건강과·인문과학을 전공하는 4학년 말라야 갈린데즈(21)는 부모에게 코미디를 부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가 놀랐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런 수업을 들으라고 학비를 내는 거냐'고 하셨어요.”
 
USC는 영화예술대학(School of Cinematic Arts)에서도 글쓰기 중심의 또 다른 코미디 부전공을 운영한다. USC 출신 유명 코미디 배우로는 윌 페럴, 존 리터, 그리고 SNL 출신 에고 느워딤, 카일 무니, 벡 베넷 등이 있지만, 그들이 재학했을 당시엔 코미디 부전공 자체가 없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4학년 아르준 베디는 원래 교양요건 충족을 위해 코미디 수업을 들었다가 부전공으로 선택하게 됐다. 연간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최대 9만9,139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부모와 상의는 필수였다.
 
“수업이 공짜가 아니니까요. 정말 가치가 있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하셨어요. 회사에서 자신 있게 발표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직장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이니까요.”
 
갈린데즈도 “코미디는 누군가 취약한 상태일 때 다가설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며 “의학과 코미디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하루를 조금 더 밝게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사인 아버지도 결국 “유머는 환자와 연결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며 응원하게 됐다.
 
부전공 이수에는 5~7개의 수업(16유닛)을 들어야 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대부분 학생이 2016년부터 USC에서 가르치는 주디스 쉘턴의 ‘스탠드업 코미디 입문’을 듣는다. 쉘턴은 TV 시트콤 ‘세인필드’ 출연, 애니메이션 ‘The Great North’ 성우 경력 등도 있다. 그는 “코미디는 안전한 장르가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최근 한 수업에서는 11명 중 6명이 무작위로 짧은 세트를 공연했다. 소재는 유치하거나 도발적이기도 했고, 불경한 주제도 많았다. ‘동성애 혐오 로봇’, ‘다이어트 버전 블랙’ 같은 표현이 등장했고, 한 학생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에다마메와 압정’에 비유했다. 또 다른 학생은 십대 여동생의 성적 일탈을 노골적으로 농담했다.
 
그 경우 쉘턴은 “그 농담은 웃기가 쉽지 않다”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비판했다. “왜 이 말을 하는지, 단지 복수하려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쉘턴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에서 소재를 찾으라고 말한다. USC 애넌버그 스쿨에서 PR·광고를 공부하는 4학년 제이든 오조에메나는 수업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다 차에 치였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섹시하게 치인 것도 아니고 쿼터백처럼 충격에 대비해야 했다”며 “그래도 이 경험으로 비욘세 콘서트 자금은 벌게 됐다”고 농담했다.
 
그는 학기 초 학생들에게 자신이 '의무 보고자(mandated reporter)'임을 설명한다. 아동 학대 등 특정 정보를 알게 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아직 웃을 수 없다면, 그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기는 이르다”고 현실적인 조언도 건넨다.
 
수업이 실제 코미디 클럽의 ‘바닥부터 시작하는 문화’를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USC 딕 울프 드라마센터 내 스톱 갭 극장은 약 100석 규모로 작은 클럽 분위기를 낸다. 공연 후 쉘턴은 “소리 지를 땐 마이크를 멀리하라”며 기술적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올 가을 '스탠드업 코미디 입문' 수업은 오는 12월 4~5일 두 차례 무료 공개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쉘턴은 “추수감사절 연휴 가족 모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인종차별적 농담을 갑자기 들고 오지는 말라”고 말해 학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글=다니엘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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