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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자아 표현하고 상상력 자극하는 언어

1990년대 초 ‘그런지(Grunge) 룩’을 하이패션에 도입하며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던 마크 제이콥스의 성향은 반항적인 우아함, 일상의 재해석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패션을 단순히 몸을 가리는 옷이 아니라, 자아를 표현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로 바라본다.     제이콥스는 90년대 주류 패션의 보수적인 틀을 깨고 하위문화나 길거리 감성을 고급 패션과 결합시킨 대표적 디자이너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폴리섹슈얼(Polysexual)’ 라인을 런칭하거나, 런웨이에 다양한 배경과 체형의 모델을 세우는 등 포용적인 가치를 지향해 왔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의 대작을 연출한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는 탐미적 우울함과 여성적 시선을 확장해온 감독으로 평가된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과 공허함을 섬세한 시각 언어로 포착해내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그녀는 ‘스타일이 곧 내용’이라고 할 정도로 의상과 소품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녀의 영화들은 주로 부유하거나 화려한 환경(호텔, 왕궁, 상류층 가정)에 놓여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깊은 외로움, 고립감과 방향 상실을 겪는 인물들을 조명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나 ‘섬웨어(Somewhere)’가 이 범주에 속한다. 코폴라 감독은 또한 억압된 환경 속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 ‘처녀 자살 소동’(The Virgin Suicides)부터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최근의 ‘프리실라’(Priscilla)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의 고통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마크 제이콥스와 소피아 코폴라 두 사람은 패션이라는 공통 분모 외에도, 주류 문화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브컬처적 감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영감을 얻고, 제이콥스는 코폴라를 자신의 뮤즈로 삼으며 서로의 예술 세계로부터 창조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90년대가 발견한 시대의 아이콘 두 아이콘, 소피아 코폴라와 마크 제이콥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92년의 전설적인 ‘그런지 컬렉션’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는 팬이자 친구로서 30여 년을 이어왔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여성이 겪는 고독과 우아함을 발견했고, 제이콥스는 코폴라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을 정교화했다.     다큐멘터리 ‘마크 바이 소피아’에서의 그들의 관계는 ‘창작자와 기록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예술적 동반자의 형태를 띤다. 그들의 명성과 무게감이 실린 연대기나 패션 산업의 거대한 야심을 전시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 특유의 나른하고 탐미적인 시선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의 내면에 숨겨진 ‘연약한 균열’을 집요하게 주시한다. 코폴라 감독은 제이콥스의 성향을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기묘함을 패션 속에 보존할 줄 아는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소피아 코폴라의 카메라는 대상을 분석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상과 같은 리듬으로 호흡하며, 마치 오랜 친구의 안부를 묻듯 정겹고 사적인 대화 속에 관객을 초대한다. 영화의 전반부를 채우는 것은 두 예술가가 나누는 즉흥적인 수다와 격식 없는 교감이다. 카메라 밖에서 들려오는 코폴라의 나지막한 질문과 그에 화답하는 제이콥스의 목소리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공적 기록물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은밀한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에서의 마크 제이콥스는 패션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제이콥스가 지닌 ‘자신감 부족’과 그로 인한 ‘내적 고통’이다. 세계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 정작 자신의 창작물 앞에서는 소년처럼 떨고 있는 모습은 역설적인 감동을 안긴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이 지극히 인간적인 취약함을 포착함으로써, 그의 디자인이 단순히 화려한 외피가 아니라 결핍과 불안을 메우기 위한 절박한 시도였음을 드러낸다.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거대한 사탕 상자처럼 그려냈듯, 이 영화에서도 제이콥스의 작업실과 런웨이를 하나의 폐쇄된 소우주로 묘사한다. 2024년 봄 컬렉션을 준비하는 제이콥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왕국에 갇힌 고독한 군주처럼 보인다. 여기서 카메라는 옷감의 질감과 모델들의 무심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패션이 지닌 ‘박제된 시간’의 속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프리실라’에서 보여준 그레이스랜드의 정적인 공허함과 매우 유사하다.     제이콥스가 원단을 매만지는 손길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영화적 리듬은, 패션이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노동이 집약된 예술임을 말없이 증언한다. 코폴라는 이 과정을 미화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깔린 피로감과 권태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화려한 조명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내쉬는 제이콥스의 실루엣은, 그의 내면에 드리운 우울함을 은유한다. 이러한 연출은 코폴라가 단순히 친구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영화적 문법으로 제이콥스의 세계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편 영화는 ‘위험할 정도의 맹목적 찬양’이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사생활이나 브랜드의 경영적 갈등, 패션 산업이 지닌 고질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다. 다채로운 아카이브 자료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서사적 밀도는 인물의 실제 삶이 지닌 무게에 비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표면의 미학에 집중하다 보니 깊이가 부재한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마크 바이 소피아’는 대상의 초상화를 그리는 다큐의 전형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제이콥스가 가진 반짝이는 잔상들을 더욱 흥미롭게 포착하는 방식을 택한다.     패션은 본래 눈부시게 화려하고, 덧없으며, 끝없이 자기 창조적인 예술이다. 코폴라의 영화 또한 바로 그러한 특성들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감독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상의 ‘표면’이야말로 그 인물의 가장 진실한 ‘실체’라는 코폴라 특유의 미학이 스며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상상력 표현 소피아 코폴라 마크 제이콥스 코폴라 감독

2026.04.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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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의 시대 어두운 내면을 엿듣는 예리한 귀

현대 영화사의 걸작들인 ‘대부’, ‘대부2’, ‘지옥의 묵시록’ 등을 감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1974년 ‘대부’의 차기작으로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발표했다.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코폴라의 다른 대작들에 비해 비교적 생소한 이 영화는 ‘대부 1’(1972)과 ‘대부 2’(1974) 사이에 발표됐다. ‘대부’ 시리즈에 비하면 캐스팅, 제작비 면에서 규모가 작은 영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너지는 미국의 도덕에 들이대는 코폴라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코폴라와 주연 배우 진 해크먼은 추후 이 영화를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코폴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재편집하는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오늘날 여러 버전의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코폴라는 1974년 개봉한 이래 5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이 영화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완벽한 영화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멀리 떨어진 곳, 방해 전파와 소음 속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직업인 도청 전문가 해리 콜(진 해크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고립된 ‘감시자’의 삶을 살고 있다. 수줍은 성격의 해리는 필연적으로 외롭고  우울하다. 뉴욕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이 아직도 그의 잠재 심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혼자 아파트에 있을 때만 색소폰을 연주하는 해리의 연락처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여성과의 만남조차도 거리를 유지한 채 절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해리는 거금의 착수금을 받고 젊은 커플의 일상을 도청하라는 의뢰를 받는다.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 도청한 커플의 대화에는 이들이 불륜 관계이고 ‘그’가 그들을 죽일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해리는 이들의 일상의 대화를 음모로 오인한다.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 했던 뉴욕에서의 일이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이 그의 심리를 파고든다. (당대의 조연 배우이며 코폴라가 최애했던 로버트 듀발이 크레딧 없이 의뢰인 ‘그’를 연기한다.)   남의 대화를 엿들어야 하는 해리의 심리는 늘 양심과 충돌한다. 비극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그는 의뢰인에게 테이프를 넘기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의 ‘음모론’은 더욱 그를 고립시키고 동료,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고통의 당사자는 도청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청 전문가로 자부해왔던 해리 자신이다.     해리는 결국 도청 테이프를 빼앗기게 되고 젊은 커플이 암살당하기 전 테이프 속에 담긴 그 누군가와 증거를 찾기 위해 호텔로 향한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반대의 상황에 부딪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로 알았던 의뢰인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상황에 이르자 해리는 이제껏 자신을 지탱해주던 정체성에서 이탈해버린다.     극도의 불안 증세, 무력감과 절망감, 죄의식이 그를 조여온다. 그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편집광적 의심은 마침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광기를 유발하기에 이른다.     해리의 광기는 고독과 단절의 다른 모습이다. 영화는 해리가 누군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아파트 전체의 바닥을 뜯어내고 허탈감에 빠져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컨버세이션’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의 수사 직전에 발표되었다. 영화가 발표된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반전운동, 흑인들의 민권운동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차이나타운’(1974),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마라톤 맨’(1976), ‘블랙 선데이’(1977), ‘브라질에서 온 소년’(1978) 등 음모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다.     코폴라 감독은 해리의 도청과 감시를 관음증의 한 형태로 표현한다.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남을 엿보는 감시와 도청이 지속되는 동안 해리의 죄의식은 쌓여만 간다. 그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혼자만의 처절한 사투 끝에 반전의 결말은 충격과 고통 그 자체이다.   감독의 예리하고 냉소적인 관찰은 진 해크먼이라는 대배우의 대체불가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크먼은 관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가운데 나락으로 빠져가는 해리의 어두운 심리를 스릴과 서스펜스로 묘사해낸다.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해크먼은 자신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전 작품 ‘프렌치 커넥션’(1971)을 통해 각인시켰던 냉정하고 강직한 캐릭터를 이 영화에 그대로 가져온다. 두 인물 모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안티 히어로들이다. 당시 44세의 해크먼은 노년에 접어들어 주연 못지않은 조연 연기로 더욱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수퍼맨’ 시리즈의 렉스 루터 역은 그가 연기한 대표적 악역이었다.   레인코트를 걸치고 철 지난 뿔테 안경 차림의 내성적인 해리는 사실 외향적인 성격의 해크먼과는 반대되는 인물이어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엔딩의 색소폰 연주 장면을 위해 해크먼이 색소폰을 배웠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에는 메릴 스트립의 연인이었으며 고작 5편의 영화에 출연, 영화 5편이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 3편이 작품상을 수상했던 존 카제일(‘대부’에서 마이클의 둘째 형 프레도 역), 젊은 시절의 해리슨 포드, 해크먼에 버금가는 연기파 배우 로버트 듀발 등이 모습을 보인다. 김정 영화평론가내면 음모 그해 칸영화제 현대 영화사 코폴라 감독

2024.09.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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