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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자아 표현하고 상상력 자극하는 언어

Los Angeles

2026.04.0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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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바이 소피아(Mark by Sophia)
제이콥스·코폴라 예술적 상호 교감 조명
90년대 초 ‘그런지’룩, 하이패션 틀 파괴
작업실·런웨이를 폐쇄된 소우주로 묘사
의상과 시선으로 인물의 깊은 내면 표현
90년대가 발견한 시대의 아이콘 두 아이콘, 소피아 코폴라와 마크 제이콥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는 팬이자 친구로서 30여년을 이어왔다. [A24]

90년대가 발견한 시대의 아이콘 두 아이콘, 소피아 코폴라와 마크 제이콥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는 팬이자 친구로서 30여년을 이어왔다. [A24]

1990년대 초 ‘그런지(Grunge) 룩’을 하이패션에 도입하며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로 떠올랐던 마크 제이콥스의 성향은 반항적인 우아함, 일상의 재해석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패션을 단순히 몸을 가리는 옷이 아니라, 자아를 표현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언어로 바라본다.  
 
제이콥스는 90년대 주류 패션의 보수적인 틀을 깨고 하위문화나 길거리 감성을 고급 패션과 결합시킨 대표적 디자이너다.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폴리섹슈얼(Polysexual)’ 라인을 런칭하거나, 런웨이에 다양한 배경과 체형의 모델을 세우는 등 포용적인 가치를 지향해 왔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의 대작을 연출한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는 탐미적 우울함과 여성적 시선을 확장해온 감독으로 평가된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과 공허함을 섬세한 시각 언어로 포착해내는 데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그녀는 ‘스타일이 곧 내용’이라고 할 정도로 의상과 소품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녀의 영화들은 주로 부유하거나 화려한 환경(호텔, 왕궁, 상류층 가정)에 놓여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깊은 외로움, 고립감과 방향 상실을 겪는 인물들을 조명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나 ‘섬웨어(Somewhere)’가 이 범주에 속한다. 코폴라 감독은 또한 억압된 환경 속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 ‘처녀 자살 소동’(The Virgin Suicides)부터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최근의 ‘프리실라’(Priscilla)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의 고통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마크 제이콥스와 소피아 코폴라 두 사람은 패션이라는 공통 분모 외에도, 주류 문화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브컬처적 감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영감을 얻고, 제이콥스는 코폴라를 자신의 뮤즈로 삼으며 서로의 예술 세계로부터 창조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여성이 겪는 고독과 우아함을 발견했고, 제이콥스는 코폴라의 영화적 세계관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을 정교화했다. [A24]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여성이 겪는 고독과 우아함을 발견했고, 제이콥스는 코폴라의 영화적 세계관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을 정교화했다. [A24]

90년대가 발견한 시대의 아이콘 두 아이콘, 소피아 코폴라와 마크 제이콥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92년의 전설적인 ‘그런지 컬렉션’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서로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는 팬이자 친구로서 30여 년을 이어왔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옷에서 여성이 겪는 고독과 우아함을 발견했고, 제이콥스는 코폴라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스타일을 정교화했다.  
 
다큐멘터리 ‘마크 바이 소피아’에서의 그들의 관계는 ‘창작자와 기록자’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는 예술적 동반자의 형태를 띤다. 그들의 명성과 무게감이 실린 연대기나 패션 산업의 거대한 야심을 전시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 특유의 나른하고 탐미적인 시선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의 내면에 숨겨진 ‘연약한 균열’을 집요하게 주시한다. 코폴라 감독은 제이콥스의 성향을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기묘함을 패션 속에 보존할 줄 아는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소피아 코폴라의 카메라는 대상을 분석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상과 같은 리듬으로 호흡하며, 마치 오랜 친구의 안부를 묻듯 정겹고 사적인 대화 속에 관객을 초대한다. 영화의 전반부를 채우는 것은 두 예술가가 나누는 즉흥적인 수다와 격식 없는 교감이다. 카메라 밖에서 들려오는 코폴라의 나지막한 질문과 그에 화답하는 제이콥스의 목소리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공적 기록물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은밀한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영화에서의 마크 제이콥스는 패션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제이콥스가 지닌 ‘자신감 부족’과 그로 인한 ‘내적 고통’이다. 세계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인물이 정작 자신의 창작물 앞에서는 소년처럼 떨고 있는 모습은 역설적인 감동을 안긴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이 지극히 인간적인 취약함을 포착함으로써, 그의 디자인이 단순히 화려한 외피가 아니라 결핍과 불안을 메우기 위한 절박한 시도였음을 드러낸다.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거대한 사탕 상자처럼 그려냈듯, 이 영화에서도 제이콥스의 작업실과 런웨이를 하나의 폐쇄된 소우주로 묘사한다. 2024년 봄 컬렉션을 준비하는 제이콥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왕국에 갇힌 고독한 군주처럼 보인다. 여기서 카메라는 옷감의 질감과 모델들의 무심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패션이 지닌 ‘박제된 시간’의 속성을 극대화한다. 이는 ‘프리실라’에서 보여준 그레이스랜드의 정적인 공허함과 매우 유사하다.  
 
제이콥스가 원단을 매만지는 손길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영화적 리듬은, 패션이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노동이 집약된 예술임을 말없이 증언한다. 코폴라는 이 과정을 미화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깔린 피로감과 권태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화려한 조명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내쉬는 제이콥스의 실루엣은, 그의 내면에 드리운 우울함을 은유한다. 이러한 연출은 코폴라가 단순히 친구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영화적 문법으로 제이콥스의 세계를 다시 써내려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편 영화는 ‘위험할 정도의 맹목적 찬양’이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코폴라는 제이콥스의 사생활이나 브랜드의 경영적 갈등, 패션 산업이 지닌 고질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다. 다채로운 아카이브 자료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서사적 밀도는 인물의 실제 삶이 지닌 무게에 비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표면의 미학에 집중하다 보니 깊이가 부재한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마크 바이 소피아’는 대상의 초상화를 그리는 다큐의 전형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제이콥스가 가진 반짝이는 잔상들을 더욱 흥미롭게 포착하는 방식을 택한다.  
 
패션은 본래 눈부시게 화려하고, 덧없으며, 끝없이 자기 창조적인 예술이다. 코폴라의 영화 또한 바로 그러한 특성들을 고스란히 체현하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감독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상의 ‘표면’이야말로 그 인물의 가장 진실한 ‘실체’라는 코폴라 특유의 미학이 스며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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