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월4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이미 10% 관세를 부과받은 중국에는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불법이민과 합성마약인 펜타닐의 미국 유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3월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동맹이건 적국이건 예외를 두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친구와 적들로부터 두들겨 맞고 있었다. 외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며 모든 무역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 부과 방침도 발표했다. 4월 1일까지 미국의 무역상대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모두를 조사하여 미국 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국가에 정도에 따라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4월 2일부터는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전방위적인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브라질, 인도, 유럽연합(EU), 캐나다, 프랑스 등 주요 교역국들이 불공정 무역 상대로 지목되었으며, 미국의 동맹국들마저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이용당하게 두지 않겠다”며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미국 주도로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 철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트럼프의 일방적 관세 정책은 미국이 구축했던 자유무역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 배경에는 미국이 처한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2023년엔 사상 최대인 9184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 해 재정적자는 GDP의 6.3%인 1조833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초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흔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2024년 11월 발표된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위원장 스티븐 미란의 보고서(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조화를 위한 가이드)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강달러, 막대한 무역적자, 제조업 공동화를 초래했다”며 “관세와 환율 정책을 통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국제 무역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때 세계 GDP의 50%를 차지했던 미국의 경제력은 현재 25% 수준으로 감소했다. 2024년에는 미국의 국채 이자 총액이 국방 예산을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미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미국의 국채 이자는 8700억 달러에 달하며, 국방 예산(8500억 달러)을 초과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과도한 군사 개입과 재정적자가 미국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는 단순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초강대국 미국이 쇠퇴를 피하려 몸부림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우 전쟁 종전 협상에서 “유럽 안보는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하며 기존 동맹 관계의 변화를 시사했다. NATO 방위비 분담금을 GDP의 최소 5%까지 올릴 것을 요구하며, NATO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동맹국들이 안보 무임승차하며 미국에 손해를 끼치는 걸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해상 무역로를 보호하며 자유무역 시스템을 정착시킨 미국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불확실성과 충돌 가능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아메리카 팍스 트럼프 대통령 비관세 장벽 대통령 경제자문회
2025.03.03. 19:03
2001년 9·11 테러와 잇따른 중동 전쟁, 그리고 또 20년이 채 안 돼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목격한 우리는 세계 평화 유지가 안일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런데 평화라는 개념 자체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마시대의 평화다. 그 유명한 라틴어,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한마디로 군사적인 기량과 전쟁을 통해 이루어진 평화라는 뜻이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서기 14)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서기 121~180)까지 약 200년간의 로마제국 번성기를 지칭한다. 로마시대 제국주의적인 팽창기였으며 북쪽으로는 영국, 남쪽으로는 모로코,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라크 영토까지 다스리는 거대한 헤게모니였다. 아우구스투스가 고대 그리스의 마지막 왕족인 클레오파트라와 그와 동맹한 안토니우스를 격퇴한 후 로마제국 첫 황제가 되기까지, 로마 공화국 말년은 권력 투쟁과 내전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끔찍하게 암살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는 달리 그의 조카 아우구스투스는 조심스럽고 현명한 방책으로 정치적 권력 균형을 잡고 41년간 다스렸다. “나는 벽돌의 도시를 발견했는데, 대리석의 도시를 남긴다”는 그의 말대로 어마어마한 로마 제국의 미래를 구축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유명한 ‘평화의 제단(Ara Pacis Augustae)’을 보면 태평성대를 찬양하는 정치적 선전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때의 평화는 주위 영토를 끊임없는 전쟁으로 강제 예속시켜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투스의 평화 제단은 무솔리니가 1938년에 옮겨서 자신의 정치적인 선전에 도용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우리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평화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팍스 로마 팍스 로마 로마제국 번성기 로마 공화국
2023.07.07.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