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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잊히지 않는 LA 폭동

4월이 저물었다. 엘리엇의 시구를 빌리지 않더라도 4월은 나에게도 잔인한 달이다. 폭동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느새 33년 전의 일이 됐다. 잊힐만한 세월인데 잊히지 않는다. 1992년 4월29일, 폭동은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들을 석방한 것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그 무렵 두순자 사건의 판결을 보도함으로써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을 야기하며 LA 코리아타운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4.29는 우리 식구가 LA에 정착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일어났다. 남편은 은행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은행 면접을 마친 상태였다. 출근을 앞두고 일어난 폭동으로 나는 예정보다 일주일 늦게 일터로 나갔다. 그 사이 주방위군이 출동했고 5월4일이 되어서야 폭동은 끝났다.     폭동이 진압되고 나서 은행에 출근했다. 폭동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피해자들의 실상은 다양했다. 화마로 전소된 가게를 보며 실의에 빠진 분들이 많았다. 물건은 약탈당했어도 가게는 그대로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란다.     장사가 안 되던 차에 가게가 전소돼 보상금을 받게 돼 오히려 잘됐다는 분도 있었다. 세금을 잘 낸 분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보조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 또 다른 희망을 내보이기도 했다.   폭동이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돈벌이만 열중하던 한인들은 정치력이 약함을 깨닫고 한인 정치인을 세우기에 한마음이 됐다.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 지역에서 장사하던 한인들이 그들과 친구로 지내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그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현지 타인종과 교류를 활발히 해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은행을 퇴직하고 지금은 리커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25년이 훌쩍 넘었다. 베트남 사람과 히스패닉이 대다수인 지역이다. 그동안 험한 일을 셀 수 없이 겪었다. 도둑이 가게에 들어와 물질적 손실을 낼 때마다 4,29를 생각하곤 했다. 개인적인 4.29를 수없이 겪었다. 눈앞에서 물건 들고 뛰는 도둑을 여러 번 마주했다. 나도 어느 순간 두순자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손님과 도둑을 구별할 수 없으니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 말은 예의 갖춰 하나, 가슴 한구석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먹고 사느라 바쁜 이민자일 터. 타인종 손님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히스패닉은 우리 자녀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됐다. 그들과 결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타인종 이민자들은 우리 아이들의 급우며 직장 동료며, 우리 며느리, 사위가 됐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 해당하겠지만 양심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남의 것을 훔쳐 살아가는, 옳고 그름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 그들의 가슴이 말랑말랑 해지길 바란다.      4월이 지나갔다. 오늘도 손님을 미소로 맞는다. 잊히지 않는 그날을 생각하면서.       김현실 / 수필가열린광장 폭동 la 폭동 타인종 이민자들 히스패닉 지역

2025.05.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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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전 오늘 4·29 폭동, 한인 사회를 바꾼 그날의 기억

  ━   LA폭동 의미 새기고 행동해야 한인사회 성장     고 민병수 변호사 아내 캐롤 민 여사 회고 많은 한인 상점이 약탈당할 때 그날 경찰 어디 있었는지 의문 한인사회 폭동 상처 딛고 성장 젊은 세대 협력 분위기 강해져   33년 전 오늘, LA시를 휩쓴 폭동은 한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한인 상점이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보호를 요청하는 한인들의 외침에도 경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인들은 고립된 채 홀로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단, 절망 속에서도 한인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LA폭동은 오히려 한인 사회의 단결과 성장을 이끌어낸 전환점이 됐다. 4·29 폭동 33주년을 맞아 당시 한인 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던 고 민병수 변호사의 아내, 캐롤 민 여사를 만나 그날의 기억과 이후 변화한 한인 사회의 모습을 들어봤다.   지난 1992년 4월 29일, 민 여사는 TV 뉴스를 통해 폭동 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 그는 한인타운에서 약 3마일 떨어진 파크 라브레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긴박한 뉴스를 본 민 여사는 곧장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한인타운 쪽을 바라봤다.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민 여사는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며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폭동이 더 큰 규모로 번지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덧붙였다.   민 여사는 남편 민 변호사와 함께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인 사회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민 변호사는 즉시 11명의 변호사와 함께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 산하에 법률 지원 조직을 결성하고 절도, 화재, 파손 등 각종 피해를 본 한인 업주들을 지원했다.   민 여사는 “당시 많은 한인 업주가 가게가 불타거나 약탈당하는 상황에서도 경찰을 기다렸지만, 끝내 그들은 오지 않았다”며 “지금도 경찰들이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폭동 당시 민 변호사는 집에 머무는 날보다 한인 사회 복구를 위해 밖을 뛰어다니는 날이 더 많았다.   민 여사는 “남편이 집에 온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며 “동료 변호사들과 피해 복구 방안을 논의하고, 직접 피해 현장을 발로 뛰며 꼼꼼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민 여사는 늘 일에 매달리던 민 변호사가 자녀들에게 미안해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늘 바쁘다 보니 두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아이 중 한 명은 ‘아빠가 나랑 시간을 더 보내주면 좋겠는데, 또 일하러 가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민 여사 부부는 한인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주류 언론이 한인 사회를 폭동 발발의 원인처럼 몰아간 현실에 깊은 분노를 느꼈다.   민 여사는 “한인 사회는 폭동의 원인도,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었는데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며 “한인 사회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한인타운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흑인 사회가 자신들의 분노를 아무 관련 없는 한인들에게 폭력으로 표출한 것은 비합리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참혹했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민 여사는 4·29 폭동이 한인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폭동 이후 한인들이 한인타운을 떠나면서 구심점은 약해졌지만, 한인 사회의 정치력과 경제력은 눈부시게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인 출신 판사,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이 늘어난 것은 한인 사회 전체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 여사는 차세대 한인들의 협력과 연대 의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분열과 이권 다툼이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가 서로 돕고 협력하려는 분위기가 훨씬 강해졌다”며 “한인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말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LA폭동의 의미와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민 여사는 “LA폭동은 한인 사회가 상처를 딛고 성장한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역사”라며 “한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LA폭동은 반드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폭동 아픔 한인 사회 사회 상처 한인 업주들

2025.04.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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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폭동 재발 막는다

연방정부가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 결과를 연방의회가 내년 1월 초 인증하는 절차를 대통령 취임식 수준의 국가 특별안보 행사로 지정했다.   이는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 인증을 저지하기 위해 그다음 해 1월 6일 워싱턴DC 연방의회 주변에 집결해 시위를 벌이며 의사당에 난입한 사태의 재발을 막으려는 조치다.   비밀경호국은 2025년 1월 6일 워싱턴DC에서 실시되는 선거인단 투표 집계 및 인증이 국토안보부 장관에 의해 국가 특별안보 행사로 지정됐다고 11일 발표했다.   선거인단 투표 집계 및 인증은 당선자가 드러난 이후 밟는 대선의 형식적 절차로, 각 주의 선거 결과를 반영한 선거인단 투표와 상·하원의 인증이 이뤄진다.   비밀경호국의 고위 인사 경호 부서 책임자인 에릭 라나한 특수요원은 “국가 특별안보 행사는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사”라며 “비밀경호국은 연방 및 주, 지역 파트너들과 협력해 이 행사와 참가자의 안전 및 보안을 보장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국가 특별안보 행사의 경호와 보안은 비밀경호국이 주도한다.   내년 1월 20일 열리는 차기 대통령 취임식은 이미 국가 안보특별 행사로 지정돼 관련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은별 기자의회 폭동 의회 폭동 의회 인증 연방의회 주변

2024.09.12. 21:08

LA폭동 32년 정치권 침묵…배스 시장 27단어 성명서

LA폭동 32주년을 맞아 정치권이 침묵 또는 망각을 이어가고 있다. 1992년 경관들의 로드니 킹 폭행과 두순자 총격 살해 사건〈본지 4월29일자 A-1면〉으로 사우스 LA에서 촉발된 LA폭동으로 한인 청년 1명을 포함해 60여 명이 사망했으며, 무려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상 피해를 남긴 초대형 인재였다.   하지만 올해도 지난해처럼 이를 기억하고 되새겨 재발 방지에 나서야할 정치권은 대부분 입을 닫은 하루였다.   당시 청년으로 사태를 목도했던 존 이 시의원(12지구)은 26일 성명을 통해 “4.29는 우리 모두가 LA 시민이자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했다”며 “특히 한인 사회에는 앞으로도 고통과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이 의원은 동시에 “어떤 이유에서도 이와 같은 폭력과 증오는 앞으로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며 시민의 대표로 한인사회의 대표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캐런 배스 LA시장은 29일 오전 “당시의 아픔을 발판 삼아 더 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영문 27 단어의 짧은 메시지를 냈다. 백악관과 가주.카운티 정부에서는 폭동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폭동 메시지 폭동 메시지 la폭동 32주년 정부 카운티

2024.04.29. 20:47

LA폭동 32주기 평화대행진 개최…“다음 세대에 역사 알려야”

“4.29 LA폭동을 겪은 이민 1세대는 고령으로 은퇴하고 있습니다. 잿더미에서 새롭게 한인타운을 일군 아픔과 역사를 다음 세대가 꼭 기억해야지 않겠어요.”   4.29폭동 32주기를 맞아 당시 약탈과 화재가 처음 시작된 장소에서 ‘평화대행진 퍼레이드’가 열린다.     그동안 4.29 평화대행진은 월드스페셜연맹(총재 존 김·사진)이 주최해 왔다. 사우스LA에서 태권도, 검도, 킥복싱 등 무도를 알려온 김 총재는 2년여 만에 평화대행진을 다시 개최한다고 알렸다.     김 총재는 한인사회와 흑인 커뮤니티 간 소통과 지속적인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4.29폭동이 발생한 지 32년이 지났고, 많은 분이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4년 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웨스트LA 상가가 약탈당하고 불에 탔다. LA한인타운에는주방위군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잊고 싶다며 과거의 아픔을 덮어버리면 안 된다. 젊은 세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리고, 여러 커뮤니티가 계속 소통하며 이해를 넓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평화대행진 행사는  27일 오전 11시 열린다. 1992년 4.29 폭동 당시 처음 약탈과 방화가 시작된 상가 주차장(1355 W. Florence Ave)에서 시작한다.     이날 행사는 중앙무대에서 남가주기독교총연합회 목사회장 기도, 한-흑 다민족 커뮤니티 화합 기원 촛불점화, KCBC 기독합창단, 세계탈북인협회아리랑평화통일무용단, 태권도 시범 등으로 시작한다. 이후 참가자들은 다같이평화대행진에 나설 예정이다.     또한 주최 측은 4.29폭동 당시 한인타운 지키기에 앞장선 봉사자를 찾아 ‘제3회 한인타운 지키기상’을 수여한다.   이번 행사에는 흑인 커뮤니티 인사와 단체가 여럿 참여한다. 주최 측은 한인과 단체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총재는 “‘사우스LA가 아프리카보다 더 멀다’는 말은 한인사회의 한 단면”이라며 “지금도 사우스LA에서는 한인 1세대의 사업을 이어받은 2세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한인 차세대에게 우리가 겪었던 아픔과 재건 노력을 알려야 한다. K팝 등으로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흑인 커뮤니티와도 더 친근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평화대행진 퍼레이드에 함께 할 한인단체 문의(213-503-2007)도 환영했다. 김 총재는 “한인 청소년 봉사단체가 퍼레이드에 참여하면 1세대가 겪었던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적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평화대행진 폭동 평화대행진 퍼레이드 29폭동 당시 올해 평화대행진

2024.04.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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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포스트 트라우마 센터’ 세운다

“그날, 그때를 기억하는 건 여러분들뿐입니다. 목소리를 내주세요.”   LA한인타운을 유린한 4·29폭동이 일어난 지 벌써 31년이 지났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HK 리 다큐영화 감독은 매년 나오는 폭동 이야기에 회의감이 들었다. 미래를 위한 포부는 없이 과거의 아픔에 멈춘 것은 답이 아니라고 느꼈다.     26일 리 감독은 “4·29폭동에 관한 책들도 많고 3000여건의 상담 자료도 있지만 모든 게 다 그저 기록일 뿐”이라며 “그걸로 끝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해답이 없으면 이런 상황은 또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감독은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폴 이 작가와 함께 아이디어를 냈다. 한인사회에 ‘포스트 트라우마 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조만철 전문의는 폭동 당시 500여명의 피해자를 상담한 5명의 정신과 전문의 중 한 명이며, 이 작가는 폭동의 도화선이 된 ‘두순자 사건’의 통역관으로 활약했다.     포스트 트라우마 연구센터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재난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전문가들과 협업해 사회적·범죄학적·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리 감독은 “LA폭동은 1965년 와츠(Watts) 폭동 당시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며 “남 탓만 하며 보상받는 것에 치중해선 안 된다. 미래를 예방하지 않는다면 재난은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4·29폭동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신적인 피해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공유의 힘이 크다”며 “본인이 아닌 내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도 좋다. 얼마든지 나눠달라”고 독려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사연을 기록한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 감독은 “오는 2024년쯤 관련 다큐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라고 전망했다.     4·29폭동과 관련해 사연을 접수할 한인들은 조만철 박사(310-713-8382)나 크리스토퍼 리 감독(213-925-3003)에게 연락하면 된다.   한편, ABC7뉴스는 25일 한인 부부가 운영하는 잉글우드 지역 ‘S&H 리커스토어’의 4·29폭동 극복 스토리를 전했다. 피해 업주인 서성호·경옥 부부는 끝까지 가게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와 흑인 직원 리차드 힉스의 끈끈한 우정은 지역 사회에서도 알려지면서 지난해 이들의 얼굴을 그린 벽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본지 2022년 4월 29일 자 A1면〉     피해 업주의 아들인 폴 서는 가주법무부 차관 검사(deputy attorney general)이자 랜초팔로스버디스 시의원이다.   그는 “부모님은 절대 분개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며 “이제 우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때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수아 [email protected]이야기 폭동 폭동 이야기 29폭동 피해자들 29폭동 극복

2023.04.26. 21:15

[시론] 폭동 30주년…남겨진 과제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우리에게 악몽이었던 4·29폭동 30주년을 맞이했다.     폭동 30주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CNN, LA타임스, NPR, AFN 등 미 주류언론과 한국언론, 미주 한인언론 등 다양한 매체였다. 특히 CNN은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데 1시간은 한인사회를 집중 조명한다고 했다. 30년 전 상황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1992년 4월 29일 오후 3시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어떻게 생각하냐?(What do you think?)"며 다짜고짜 물었다. 필자는 “무슨 질문이냐?"고 되물었다.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들의 '무죄 평결(Not Guilty)'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었다. 필자는 그날 오후 6시 앤젤라 오 변호사와 함께 한인식당 우래옥에서 젊은 유대인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흑 갈등'에 대한 특강을 하기로 돼 있었다.     필자는 무죄 평결로 사태가 심각하게 번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면서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8시쯤 우래옥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101번과 10번 프리웨이 일부가 폭도들이 점거해 폐쇄됐다면서 빨리 피신하라는 전화였다. 젊은 유대인들에게 사태가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으니 프리웨이를 타지 말고 일반 도로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미주 한인들은 4·29폭동을 경험하면서 소중한 교훈도 얻었다.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다인종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리안아메리칸 즉 미주 한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면서 주인 의식을 갖고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행사하기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2022년 한인타운은 완전한 재기에 성공했고 한인사회는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미주 한인 인구는 이제 거의 200만 명에 근접하고 있고 연방 하원의원 4명을 탄생시켰으며 LA시의원도 2명 배출했다.     4개로 쪼개졌던 한인타운이 한 개의 지역구로 통합돼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성과도 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아시안 증오범죄가 크게 증가하면서 한인들도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아19 팬데믹을 '쿵플루(Kung-flu)' 또는 '차이나 바이러스(China Virus)'라고 공식 석상에서 많이 언급하면서 아시안 인종혐오 범죄를 조장하기도 했다.     30년 전에는 사우스센트럴과 한인타운이 불에 탔지만 2020년 흑인 시위 때는 백인 부촌이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됐다. 백인들에게 인종 문제의 책임을 느끼고 해결책에 동참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폭동 3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인사회는 더 이상 '희생양'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한다. 우리의 힘을 기르고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권익을 보호하고 차세대에게 희망찬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4·29가 남긴 교훈이다. 장태한 /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시론 폭동 과제 무죄 평결로 29폭동 30주년 한인식당 우래옥

2022.04.28. 19:09

[사설] 폭동 30주년…재도약의 기회로

한인 이민사의 가장 큰 시련이었던 4·29폭동이 일어난 지 30주년을 맞는다. 흑인 용의자를 무차별 폭행한 백인경찰에 대해 무죄 평결이 내려지면서 폭동은 시작됐다. 무죄 평결로 흑백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폭도들의 파괴와 약탈은 한인커뮤니티를 기반부터 흔들어 놓았다. 아직도 당시의 분노와 울분이 남아 있는 피해 한인들이 많다.     아메리칸드림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도 한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폭동이 남긴 상처를 치유해 갔고, 새로 시작하는 계기로 삼았다. 다문화 사회에서 인종간 교류와 화합의 중요성도 뼈저리게 배웠다. 정치력 부재로 무력하게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함은 다수의 한인 정치인 배출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4·29의 교훈은 아직도 생생하고, 교훈은 항상 과제를 남긴다. 소수민족으로서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한 계획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2세들에게 폭동의 역사를 어떤 의미와 교훈으로 남겨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폭동의 잿더미에 일어난 한인사회는 남가주 소수계 중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폭동 30주년을 넘어 또 다른 30년을 맞는다. 역경과 시련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재도약을 위해 다시 힘찬 출발을 시작해야 할 때다. 사설 재도약 폭동 폭동 30주년 한인 이민사 무죄 평결

2022.04.27. 18:14

[기고] 4·29폭동이 남긴 과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지역에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대형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위정자들은 으레 사회 구성원 중 소수민족 또는 소수집단을 골라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혐의와 소문을 퍼뜨려 성난 군중으로 하여금 그들을 복수와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30년 전에 일어난 4.29폭동 당시 우리 한인들이 흑인 폭도들의 표적이 된 이면에는 주류방송과 신문사의 역할이 컸다. 성난 흑인들이 폭동을 저지른 원인은 로드니 킹을 인정사정 없이 폭행한 4명의 경관들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이 평결이 두순자 사건 판결과 공교롭게도 겹쳤다.     두순자 사건 판결이 난 후 1주일 내내 주류 일간지는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에 1달러19센트 오렌지 주스 한 명을 사러 들른 15살밖에 안된 흑인 소녀와 가게 주인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보도했다. 신문은 업소 주인과 고객의 다툼 끝에 주인이 어린 소녀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보도를 연일 계속했다. TV도 이런 내용의 영상을 1주일 내내 방영했다.     두순자 사건을 다룬 재판 과정에서는 사실과 다른 점들이 밝혀졌다. 15살밖에 안되는 어린 소녀로 묘사된 라타샤 할린스는 실제로는 나이답지 않게 덩치가 크고 건장했다. 업소 주인을 위압할 정도였고 연약한 가게 주인을 주먹으로 가격해 두 번이나 쓰러뜨린 장면이 방영되었다.     또한 흑인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강도에 살해되고 시달렸는지도 알려졌다. 목숨은 잃지 않더라도 매일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제대로 장사를 못한다는 사실 등이 법정 심리 중에 논의됐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주로 어린이 복지문제를 다루던 변호사였다. 그는 언론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가벼운 형량을 판결했다.     한인 커뮤니티는 4.29 폭동의 희생양이 되어 인명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겪었다. LA 전체가 당한 8억 달러의 피해 중 한인 피해액이 4억 달러였다. 2300개 이상의 한인업체가 피해를 당했으며 그 중 많은 점포가 문을 닫았다.   4.29는 한인 이민 역사에 경종을 울린 가장 큰 사건이다. 한인들은 이 같이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전보다 더 발전하는 저력을 보였다. 또한 4.29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은 있다. 주류사회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대변인이 필요하다. 4.29 폭동 때에도 앤젤라 오 변호사가 우리의 사정과 억울함을 주류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더 많은 정치인들이 배출돼야겠지만 이와 함께 사명감을 갖고 커뮤니티의 의견과 상황을 주류사회나 매체에 전달할 대변인도 필요하다.     한인사회에는 여러 장학재단이 운영돼 학생들의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장학금의 일부를  이들 커뮤니티 대변인 배출에 사용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주류에 전달하는 효과적인 창구가 될 것이다. 서동성 / 변호사기고 폭동 과제 한인 커뮤니티 한인 피해액 29폭동 당시

2022.04.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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