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미국 사회의 외로움 확산이 종교 공동체 내 교류 축소와 시민 참여 감소, 사회적 관계 약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는 2023년 5월 비벡 머시 당시 공중보건국장이 발표한 '외로움과 고립의 전염병' 경고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진행됐다. 하버드 인간 번영 프로그램은 지난해 말 연구를 발표했으며 올해 들어 이를 업데이트했다. 연구진은 최근 정책 논의에서 "공동체와 소속감의 위기가 상대적으로 간과돼 왔다"고 지적했다. 연구 업데이트는 "일부 지표에서는 현재 미국인의 절반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보고하며 그 비율은 특히 젊은 층에서 가장 높다"고 밝혔다. 업데이트는 또 혼인율과 출산율이 사상 최저 수준인 점과 함께 종교 소속과 종교 참여, 기타 시민 참여 형태 역시 급격히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는 단순히 안타까운 현상을 넘어 공중보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단절과 외로움은 불행감과 우울, 불안, 나아가 조기 사망 증가의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기독교와 공공생활 센터의 마이클 웨어 대표는 "시민 참여 감소에 대해 단순히 뉴스 소비나 소셜미디어에서의 정치 콘텐츠 소비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웨어 대표는 "정치가 오락의 한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참여의 장으로서 정치와 시민 생활이 쇠퇴하면서 외로움을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외로움이라는 진단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경제·기술·정치 시스템과 규범이 만드는 소외"라고 강조했다. 종교 공동체와 혼인의 쇠퇴는 외로움 확산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머시 전 공중보건국장은 전통적 구조 밖에서 사회적 연결을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하버드 연구진은 전통적인 구조인 종교 공동체와 혼인이 여전히 강력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종교 공동체와 혼인은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해온 가장 오래된 공동체 형태이며 번영을 촉진하는 면에서 다른 어떤 소속 형태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연구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종교 참여 감소는 신앙 부족뿐 아니라 직장과 여가 활동, 자녀의 스포츠 활동 등 세속적인 활동과 경쟁하면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혼인 감소에 대해서는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재정적 혜택을 더 많이 받는 복지 구조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인공 피임의 발전으로 성과 출산의 연결 고리가 약화하면서 전통적인 혼인의 정당성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전히 결혼을 원한다"며 이를 가능하게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과제로 종교 공동체와 혼인 제도의 활성화와 청년층 삶의 자유와 독립성 확대가 제시됐다. 구체적 정책 대안으로는 복지 프로그램에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혼인의 불이익 제거와 지역 단위에서 일요일 영업 제한법 부활 등이 제시됐다. 이는 유럽 일부 지역과 이스라엘에서 토요일 안식일에 시행되는 제도처럼 예배 참석을 돕고 모든 노동자에게 휴식일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경제적 요인도 중요한 배경으로 제시됐다. 연구진은 "튼튼한 가정과 깊은 우정, 공동체 참여는 충분한 여가 시간과 재정적 안정, 낮은 경제적 스트레스,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노동의 존엄성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네 가지 기초 요소는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이들에게서 감소했다. 주요 요인으로는 실질 중위임금의 정체나 하락, 불규칙한 근무, 불안정한 계약이 특징인 저숙련 일자리의 확산이 꼽힌다. 연구진은 "저임금과 불규칙한 근무 환경으로는 안정된 가정과 종교 공동체, 시민단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 수준이 낮은 층에서 안정적 일자리 상실이 삶의 방식 자체를 붕괴시키며 자살,약물 과다복용, 알코올 남용 등'절망의 죽음'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청년층의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이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사용 증가뿐 아니라 어린 시절 놀이 감소와도 연관이 있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성인의 지시 없이 서로 어울리는 놀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학업 시간 증가와 성인이 감독하는 과외 활동 증가, 불안감이 높은 양육 방식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청년층의 대면 교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연구진은 "우리는 연말연시에 가족과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헌신을, 12월을 넘어 일상으로 확장한다면 어떨까"라며 "부모가 자녀의 독립적인 사회 활동의 중요성을 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종교 공동체를 일 년 내내 가치 있게 여기며 각자가 소중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돌본다면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연구진은 "공공정책을 넘어 공동체의 선을 향한 광범위한 영적, 문화적 지향점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안유회 객원기자하버드대 외로움 하버드대학교 연구진 종교 공동체 종교 소속과
2026.02.23. 21:44
지난 일요일, 32년간 몸담았던 교회에서 고(故) K 씨의 천국 환송 예배에 참석했다. 80여 명의 조문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향년 63세로 그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K씨는 이민 후 사업 실패로 가정이 파탄 나 가족과 연을 끊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동료로 만나게 된 인연이다.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성실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경영주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직원이었다. 그런 그가 노후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세금을 공제하지 않는 사업체로 이직했을 때, 먼지 쌓인 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그 열악한 환경이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어 그를 불러냈다. 의사가 방사선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며 그는 어느 정도 안심하는 듯했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뒤 식대를 계산하러 카운터에 갔을 때, 이미 그가 지불했다는 말을 들었다. 호되게 나무라자, 그는 평소 내게 신세 진 것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리 준비해 간 작은 성의가 담긴 봉투를 그의 차 안에 던져주고 헤어진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부음이 날아든 것이다. 그와의 이별은 나에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유교의 운명론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신의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치매 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장수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고통과 재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이 100세까지 산다 한들, 신적인 차원에서 보면 조물주가 눈 한 번 깜박이는 찰나의 순간과도 같다. 그래서 인생을 ‘초로(草露)’, 즉 풀잎에 맺힌 이슬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햇볕이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슬처럼,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몇 년 전,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평소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노인 60명을 대상으로 한 명씩 수영장에 빠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스로 물속에 가라앉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100%의 노인들이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 대학 동문인 최 선배는 올해 90세이다. 3살 어린 부인을 파킨슨병으로 올 초 먼저 떠나보내고 ‘짝 잃은 고무신’ 신세가 되었지만, 5년 넘게 눈물겹도록 아내 병수발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선배는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 외에는 여전히 꼬장꼬장하다. 혈색도 좋고 걸음걸이도 제대로다. 그는 “내가 살아보니 85세에 죽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너무 오래 살았다. 지금이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판단으로는 그가 100세까지 장수하는 것은 무난할 것 같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일로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후세에 악인으로 오명을 남기지 않고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죽을 때 입고 가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죽을 때 가져갈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가는 이 짧은 인생을 왜 쓸데없는 욕심으로 아옹다옹하는가. 왜 부정한 짓으로 남을 울리는가. 내 나이 이제 고희를 넘겼다. 남은 인생은 죄를 짓지 않고 타인에게 선을 베풀며 살다가, 지금이라도 자다가 죽는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니겠는가. 이진용 / 수필가열린광장 성찰 하버드대학교 연구진 폐암 말기 투병 소식
2025.07.17.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