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떠나 타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주위에서 아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들이 있다. 한국의 국력을 실감하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인의 두뇌 자원’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여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냈던 기억이 난다. 지구본에서 보면 한국은 너무나도 작은 나라이다. 땅이 작으니, 천연자원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국은 땅이 작지만, 두뇌 자원은 무한하다, 이를 개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멸한다’라고 강조했었다. 한국인의 파워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설 (lunar new year)과 김치의 날(11월 22일)이 연방 기념일이 되었다. 한류가 뜨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고 요즘에는 K-food와 K-문학이 한창 물오르고 있다. 왜 한국인은 우수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중 [작은 땅의 야수들]-김주혜-을 읽게 되었다. 실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큰 기대를 하고 읽었으나 그 당시 나의 큰 기대만큼 실망하게 되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노력하는 만큼 얻는다고 했던가. 이번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읽기를 도전해 보니 거기에 주옥같은 한국인만의 야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만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바로 오늘의 한국을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이 책으로 많은 상을 받게 된 작가는 ‘우리의 유산인 호랑이를 한국 독립의 상징이라고 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되고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일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가 먼 역사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1917-1964까지 한국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에 그 작은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야수들인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나라를 되찾았는지를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 옥희는 기녀 수습생으로 시작해 정식 기녀가 되고 스승이자 은인인 기녀들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독립군임을 배우게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호(명사수인 사냥꾼의 아들) 또한 경성에 오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결국 깡패의 두목이 된다. 기녀들의 거리 행진에서 처음으로 옥희를 본 정호는 사랑에 빠지지만 옥희는 가난한 고학생 한철에게 사랑을 느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화려했던 기녀에서 배우로 성공한 옥희는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정호는 옥희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지만, 옥희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친 한철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게 된다. 한편, 정호는 옥희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다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당 당원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내면에 있는 야수를 만나 용감하게 살아내고 결국 조국은 독립을 맞게 된다. 그 후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되고 작은 땅의 야수였던 정호는 사형을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경성에 환멸을 느낀 옥희는 제주로 내려가 외롭게 살아간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해 주기 때문에’라고 독백하며 이 책은 끝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 속에는 처절하고도 비참한 일제 강점기를 견뎌낸 선조들의 삶, 사랑 방식, 전쟁, 돈, 명예 등 그 시대에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 속의 야수성을 만나 독하고 맵게 살아내는 그들만의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한국인의 우수성의 뿌리가 아닐까? 정명숙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사랑 방식 한국 독립 자라 한국
2025.06.30. 17:37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곳 미국 땅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 무명의 독립운동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루스벨트대통령의 뉴욕 롱아일랜드 별장에서 생긴 일 1905년 8월 4일자 뉴욕타임스(NYT)는 이승만 박사의 루스벨트 대통령 방문기를 보도했다. 이때 이승만의 옆에는 숨은 독립 영웅, 윤병구 씨가 있었다. 1903년 하와이에 목사로 파견된 윤병구 씨는, 한인 대표로 1905년 7월 하와이에 잠시 들른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와 만나 루스벨트 대통령을 접견하기 위한 소개장을 받게 됐다. 이를 한국의 독립을 위한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한 윤 씨는, 소개장을 받은 즉시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던 이승만을 찾아가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별장에 머물던 루스벨트 대통령 방문 계획을 상의했다. 당시 NYT 기사에 따르면, 윤 씨와 이승만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사전에 약속도 없이 오이스터베이에 도착해 인근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 호텔에 들어가 등록하는 데는 적지 않은 설명이 필요했다. 실랑이가 계속되자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윤 씨는 방문 목적을 미국 언론에 알릴 기회를 갖게 됐다. 그 결과 윤 씨는 호텔 대기실에서 장장 1시간에 걸쳐 한국의 어려운 실정을 설명하고, “나와 이승만은 자주독립을 갈구하는 모든 한인들을 대표해 루스벨트 대통령을 접견하러 왔다”고 전했다. 그는 외신 기자들에게 “한미간의 수호조약은 아직 유효하며, 따라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가 미국에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리가 미국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원하는 것은 한국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다음날인 8월 5일에도 〈대통령을 접견한 한인들(Koreans See the President)〉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이에 따르면 윤 씨와 이승만은 약 30분간 루스벨트를 접견하고 청원서를 제출했다. 윤 씨는 이후에도 ‘대한인국민회’의 지방외교원으로 임명돼 미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한국의 상황을 언론에 소개했고,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자유대회에서 미국정부에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도록 하는 청원서를 작성한 3인 중 1인이기도 했다. 그는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25일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평화회의에 이승만과 함께 한인대표로 참석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1936년 일본영사관 앞에는 그가 있었다 1936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했다. 독일의 베를린올림픽에서 한국의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신기록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 한국의 언론들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앞다퉈 보도했는데,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 부착된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다. 이에 일본당국은 두 신문을 강제로 폐간시켰고, 이에 분노한 뉴욕의 한인들은 일본영사관 앞에 나가 열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 숨겨진 독립 영웅, 임창영 씨다. 뉴욕한인교회의 4대 담임목사였던 임창영 씨는 신문 폐간 소식을 듣고 뉴욕의 한인들을 이끌고 5애비뉴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다. 이후 1937년 일본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는 강경한 탄압정책을 쓰자, 또 한인들을 이끌고 일본영사관에 나가 “일본상품을 보이콧하자”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에는 5애비뉴의 교통을 1시간가량 차단시킬 정도로 많은 인원이 참가했고, 다수의 미국 시민들도 동화돼 함께 한국 독립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대한민국의 확성기 1896년 워싱턴 한국공사관 직원으로 도미한 김헌식 씨는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한국이 일본에 외교권을 뺏기자, 미국에 주저앉아 맹렬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0년 8월 26일 NYT는 그를 “105인 사건(1911년 일제가 항일세력에 대한 통제를 위해 데라우치총독 암살모의사건을 조작,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사건)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미국 언론에 보내거나, 미국 국무장관에게 진정서를 자주 보내는 뉴욕의 대표적인 한인 인사”라고 소개했다. 이후 김 씨는 1917년 뉴욕에서 개최된 소약국동맹회 집행위원회 임원으로 선출돼 “일본의 한국 합병은 위헌이고, 윌슨 대통령의 약소국자결권 부여선언은 지켜져야 한다”는 결의문을 미국 국무부에 제출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글·사진=윤지혜 기자일본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그들 루스벨트 대통령 한국 독립
2024.08.15. 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