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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독하고 매운 사람들

New York

2025.06.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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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떠나 타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을 때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주위에서 아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들이 있다. 한국의 국력을 실감하는 중이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인의 두뇌 자원’이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여서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냈던 기억이 난다.  
 
지구본에서 보면 한국은 너무나도 작은 나라이다. 땅이 작으니, 천연자원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국은 땅이 작지만, 두뇌 자원은 무한하다, 이를 개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멸한다’라고 강조했었다.  
 
한국인의 파워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설 (lunar new year)과 김치의 날(11월 22일)이 연방 기념일이 되었다. 한류가 뜨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고 요즘에는 K-food와 K-문학이 한창 물오르고 있다. 왜 한국인은 우수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중 [작은 땅의 야수들]-김주혜-을 읽게 되었다. 실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큰 기대를 하고 읽었으나 그 당시 나의 큰 기대만큼 실망하게 되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노력하는 만큼 얻는다고 했던가. 이번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읽기를 도전해 보니 거기에 주옥같은 한국인만의 야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만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이 바로 오늘의 한국을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이 책으로 많은 상을 받게 된 작가는 ‘우리의 유산인 호랑이를 한국 독립의 상징이라고 세계적으로 알릴 기회가 되고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긍지를 높일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 한국의 독립운동과 근대사가 먼 역사가 아니라 삶의 한 부분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1917-1964까지 한국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에 그 작은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야수들인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으로 나라를 되찾았는지를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주인공 옥희는 기녀 수습생으로 시작해 정식 기녀가 되고 스승이자 은인인 기녀들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대주는 독립군임을 배우게 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호(명사수인 사냥꾼의 아들) 또한 경성에 오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결국 깡패의 두목이 된다.  
 
기녀들의 거리 행진에서 처음으로 옥희를 본 정호는 사랑에 빠지지만 옥희는 가난한 고학생 한철에게 사랑을 느낀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화려했던 기녀에서 배우로 성공한 옥희는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정호는 옥희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지만, 옥희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친 한철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게 된다.  
 
한편, 정호는 옥희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다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공산당 당원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 내면에 있는 야수를 만나 용감하게 살아내고 결국 조국은 독립을 맞게 된다. 그 후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되고 작은 땅의 야수였던 정호는 사형을 받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잃고 경성에 환멸을 느낀 옥희는 제주로 내려가 외롭게 살아간다.  ‘삶은 견딜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해 주기 때문에’라고 독백하며 이 책은 끝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 속에는 처절하고도 비참한 일제 강점기를 견뎌낸 선조들의 삶, 사랑 방식, 전쟁, 돈, 명예 등 그 시대에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신 속의 야수성을 만나 독하고 맵게 살아내는 그들만의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한국인의 우수성의 뿌리가 아닐까?

정명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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