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만나 뵙고 이 글을 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옛 제자가 보낸 글을 읽는 순간, 오십여 년 전의 시간이 영화 필름처럼 되감기기 시작했습니다. 내 얼굴에 지금처럼 주름이 잡히기 전, 젊음과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눈빛이 맑고 귀엽기만 했던 남학생, 아홉 살, 열 살이던 그 아이가 이제는 예순을 훌쩍 넘긴 장년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섞인 머리와 삶의 관록이 배어 있는 모습은, 길에서 스쳤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신사의 풍모였습니다. 그도 나도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졸업 앨범을 펼쳐 들고서야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성껏 카드를 준비했고, 화분과 함께 아내가 마련했다는 유명한 한국산 화장품까지 챙겨 와 늙어가는 옛 스승을 기쁘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미 은퇴했고 며느리까지 보았다니, 머지않아 손자를 안게 될 나이라고 했습니다. 각박하고 냉랭한 세상에서 옛 스승을 찾아와 기억해 주고 대접하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감격했습니다. 이 마음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워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세상에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늙은 스승을 찾아온다는 일이 과연 흔한 일일까요. 한국 신문을 펼치면 스승을 폭행했다는 학생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세상입니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도 접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한국 교육 현장의 살벌한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교단에 서라고 한다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학생이 두려운 세상에서 어떻게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하고 캐럴이 울려 퍼져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고독한 사람은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화려한 파티 초대를 받지 않아도,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이민 생활 50년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그리운 고향의 향기와 동포들의 숨결은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미국 땅에서 살며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이곳에서 자란 음식을 먹고 살면서도 끝내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나 자신이 때로는 촌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우리말을 쓰는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꿈도 우리말로 꾸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교회도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찾는 나는 여전히 미국 안의 이방인입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살던 옛집은 온데간데없고 서양 도시처럼 변모한 풍경 앞에서 이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옛집은 성터처럼 사라졌지만, 그곳에 깃든 향수는 여전히 나를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게 합니다. 잊고 지냈던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려 준 옛 제자에게, 그리고 그 제자의 삶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 작은 사랑 한 점이 허허로웠던 내 가슴 한복판에 ‘행복’이라는 점을 찍어 주었습니다. 김명선 / 소설가·미주문인협회 이사이아침에 제자 편지 한국산 화장품 한국 교육 한국 신문
2025.12.24. 19:44
저는 45년 전 가주로 이사 와 유대인이 운영하던 병원을 인수해 운영했습니다. 그 후 혼자 살던 그 의사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지 1주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됐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홀로 사는 분들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0년 전 은퇴마을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로 혼자 생활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며 그때 일이 떠올라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홀로 사는 분들에게는 외로움도 문제지만 급작스럽게 문제가 생길 경우 옆에 도움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시니어가 심장병·당뇨병 등 기저질환들을 갖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등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혼자 생활하는 분들은 기억력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마을에서는 서로의 안전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도록 모든 주민을 교회나 동창회, 향우회 등의 조직을 통해 연락망을 만들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안녕 팀’ 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아무리 가까운 이웃집이라고 해도 각자의 사생활이 있기에 불쑥 찾아가 확인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떠오른 방법의 하나가 신문 구독하기 캠페인입니다. 신문 구독은 고독한 노인들에게는 외부세계와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 고리 역할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 날치 신문이 문 앞에 있는 집을 보게 되면 무슨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의심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신문 구독은 꼭 사고 대비용이 아니더라도 평소 대화 상대조차 없는 외로운 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됩니다. 매일 전해지는 외부 소식은 이들에게 활력과 생동감을 줄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 등에 밀려 종이 신문의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시니어들에는 종이신문이 더 편하고 향수를 느끼게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도 책을 펴 놓고 읽는 것이 기계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에 다들 공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은퇴마을 주민들이 신문 구독을 많이 하지 않는 데는 경제적 이유보다 구독신청의 번거로움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또는 이웃들끼리도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자는 것입니다. 신문 구독권은 명절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내가 사는 은퇴마을부터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하려 합니다. 이곳 한인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을 도서관에 한국 신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지역 한인회 같은 단체가 앞장서 그 지역 도서관이나 양로시설 등에 한국 신문 보내기 캠페인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홍식 / 은퇴의사발언대 부모 신문 신문 구독권 한국 신문 종이 신문
2024.01.17. 19:23
몇 달 전 일이다. 모처럼 오렌지카운티 어느 골프장에 예약을 했다. 당일 예약시간 30분 전 클럽하우스에 들러 계산을 했다. 첫 홀 티그라운드에 네 명이 모두 모였다. 현장에 있던 직원이 우리 일행을 확인했다. 티샷을 위해 몸을 풀고 있을 때, 난데없이 백인 골퍼들이 나타나더니 티그라운드에 올라갔다. 특별한 설명도 없고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어안이 벙벙했다.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우리보다 먼저 그들을 내보냈다. 명백한 규칙 위반이자 차별이었다. 인종차별이니 텃세니 하는 말은 들어왔지만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황당했다. 골프를 치면서도 종일토록 그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인들이 이 골프장을 많이 찾는데 노상 이런 식으로 대접을 받아왔는가 싶어 화가 치밀었다. 무언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다졌다. 저절로 좋아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싸우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나 자신은 물론 이 땅에 살아갈 후손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누가 지켜주겠는가. 골프장으로부터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를 약속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골프를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가서 매니저를 찾았다. 외출 중이라 했다. 집에 돌아와 골프장 사장에게 편지를 썼다. 구글 번역을 참고하고 지인의 협조를 받아 편지를 완성하여 보냈다. 한 달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완전히 무시하기로 했나? 그렇다면… 일단 매스컴에 호소하자. OC레지스터와 한국 신문을 통해 여론을 일으켜보자고 작정했다. 그 와중에 답장이 왔다. 장기 출장 중이어서 답이 늦어 미안하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정중한 답신이었다. 몇 주 후, 골프장에 다시 가 보니 직원들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이 있다. 미국 내 인종차별은 물론 모든 불합리한 차별에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지난 달 오피니언 지면을 통해 필자는 재외동포문학상에 수필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올해부터 수필을 넣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울지 않으면 아픈 아이의 심정을 누구도 알 수가 없다. ‘Stop Asian Hate.’ 최근 미국 도처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피부 색깔을 겨냥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단다. 걱정스럽다. 밖에 나다니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민자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 차별을 느끼면서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항의하고 싸워야하는 줄 알지만 서툰 영어 때문에, 혹은 더 큰 화를 입을까 두려워 입술을 깨물고 참는다. 그런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래서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피켓을 흔들고 소리치는 뉴스를 보면 누군가 싸워준 덕택에 내가 편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부끄럽다. 힘을 모아 대처하면서도 한편으론 각자가 현장에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부터, 내가 먼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별을 근절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골프 경험 오피니언 지면 한국 신문 피부 색깔
2022.03.29. 19:18